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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의 역사 1 - 필피프 피넬과 정신병 환자들의 쇠사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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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의 역사 1 - 필피프 피넬과 정신병 환자들의 쇠사슬

새샘 2025. 9. 18. 20:34

필리프 피넬(출처-https://endlesslove0287.tistory.com/685)

 

정신병 psychosis(또는 psychotic disorder)을 가진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고 시대에 따라 다른 대접을 받았다.

원시시대의 정신병 환자들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주술사 또는 선지자처럼 대우받았다.

하지만 고대 자연철학자들은 점점 정신병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했다.

뇌 속에 4체액 중 하나인 점액粘液 mucilage이 막혀 간질이 생기고, 흑담즙黑膽汁이 많아 우울증이 생긴다고 여겼다.

특히 여성의 정신병은 여성에게만 있는 장기인 자궁이 몸 안을 돌아다니기 때문이라 여겨 '히스테리 hysteria'라고 불리기도 했다(라틴어 hystera는 자궁이라는 뜻).

비과학적으로 접근하긴 했지만 중세 초기까지는 정신병 환자들을 보호하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특히 이슬람 문화권은 정신질환자를 신에게 영감을 받은 존재라 여겨 '마우리스탄 mauristans'이라는 최초의 정신병원에서 보살폈고, 유럽에서도 초기에 정신병 환자 보호시설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가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정신병 환자는 어느덧 악마에게 영혼을 판 존재가 되어버려 비난과 학대의 대상이 되었다.

많은 유럽 국가들이 정신질환자를 격리할 목적으로 배에 태워보냈다.

목적지도 없었다.

정신질환자들은 그저 바다를 헤맬 뿐 다시는 땅을 밟지 못했다.

그 배는 나중에 '바보들의 배 ship of fools'라 불렸다.

또 정신질환자를 높은 탑에 가두기도 했다.

여성 정신질환자는 특히 가혹한 대우를 받았다.

교회 성직자들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여성이 정신병에 더 쉽게 걸린다고 생각했다.

성직자 대부분이 남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마녀 재판'이 등장했다.

여성 정신질환자는 마녀로 몰려 억지로 자백하고 처형당하거나, 마녀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 했다.

 

환자를 보호할 목적으로 설립한 정신병원은 어느새 감옥이 되었다.

정신병원에는 정신병 환자뿐 아니라 사회에서 격리하고자 하는 사람들(범죄자, 거지, 만성질환자)까지 수용해야 했다.

당연히 이들은 학대받았고 학대를 감시하는 곳도 없었다.

그중 유명한 정신병원으로 1247년 영국 런던 London에 생긴 베들레헴 성 마리아 병원 Saint Mary of Bothlehem Hospital과 프랑스 파리 Paris의 비세트르 병원 Bicêtre Hostpital이 있었다.

특히 런던의 병원은 이름이 길었는지 나중에 '베들렘'으로 줄여서 불렀는데, 이 명칭은 비참한 정신병원의 상징이 되었다.

정신병 환자의 비참한 모습은 구경거리가 되어 해마다 몇만 명이 돈을 내고 관람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신질환자의 환경 개선에 가장 힘쓴 의사 중 가장 유명한 이는 프랑스의 필리프 피넬 Philippe Pinel(1745~1826)이다.

피넬 이전에도 많은 의사들이 노력했지만 피넬과 그의 제자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피넬이 정신병 환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그의 친구 때문이었다고 한다.

정신병에 걸린 피넬의 친구가 정신병원의 비인간적인 대우 때문에 자살했는지 또는 정신병원을 탈출하다가 야생동물에게 물려죽었는지는 문헌에 따라 다르나, 이 일로 충격을 받은 피넬은 본격적으로 정신병에 대한 연구글 시작했다.

 

연구 업적을 인정받은 피넬은 1792년 파리의 남성 정신병원이었던 비세트르 병원의 수석 의사가 되었다.

그곳에는 약 200명의 정신병 환자들이 쇠사슬에 묶인 채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피넬이 1795년 수석 의사로 일하게 된 정신병원 살페트리에르 병원 Salpêtrière Hospital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피넬은 그곳에서 18년 동안이나 쇠사슬에 묶여 있던 환자를 마주하기도 했다.

정신질환자들의 열악한 환경에 큰 충격을 받은 피넬은 환자 보호에 발 벗고 나섰다.

먼저 의학잡지를 통해 정신병원의 비참한 상황을 알려나갔다.

정신질환은 악마에 의한 것이 아니고 단지 질병일 뿐이며, 환자에게 정성 어린 치료와 인간적인 대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정신병 환자를 묶은 쇠사슬을 풀고 그들이 바깥세상과 소통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이런 주장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다.

정신병원에는 정신질환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당시 프랑스 혁명으로 어수선한 시기에 권력을 잡은 세력가들이 자신의 정적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정신병원에 가두기도 했다.

권력자들의 압력에 꿋꿋이 맞선 피넬은 1801년 비세트르 병원의 정신질환자 40명의 쇠사슬을 풀어주는데 성공했다(하지만 아쉽게도  양팔이 묶인 상태는 변하지 않았다).

정신질환자의 쇠사슬을 본격적으로 풀어준 이는 피넬의 제자 장 에티엔 에스퀴롤 Jean-Étienne Dominique Esquirol(1772~1840)이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환경개선운동은 유럽의 다른 도시로 아주 천천히 퍼져나갔다.

그에 따라 정신병원은 단지 환자를 가두어두는 감옥이 아니라 서서히 진짜 병원이 되어갔다.

 

정신병원이 진짜 병원이 되어가면서 학문 연구도 시작되었다.

의사들은 정신병원에 있는 같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무리로 묶고 그들의 증상을 분석했다.

피넬도 마찬가지였다.

피넬은 모든 정신질환을 증상별로 분류했고, 환자들의 이상 행동의 원인이 대뇌 기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피넬은 정신병 환자를 증상에 따라 분류하고 합리적인 치료법을 제안한 최초의 의사였다.

이처럼 어느 정도 각성한 시기의 정신과 의사들은 '에일리어니어스 alienist'로 불렸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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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9. 1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