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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현동자 안견 '몽유도원도'

새샘 2025. 9. 23. 17:25

"미술관 가는 길"

 

안견, 몽유도원도, 1447, 두루마리 비단에 담채, 38.7x106.5cm, 일본 덴리대학교 중앙도서관(출처-공유마당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216248&menuNo=200018)

 

난 그해 가을을 잊지 못한다.

코스모스가 유난히 예뻤던 계절, 필자 운명의 나침반은 한곳으로 정해졌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담임선생님은 우리에게 아무 때나 늘 학교 근처 망우당공원으로 야외 스케치 sketch(속사速寫)를 하러 보냈다.

우리는 코스모스가 여기저기 지천至賤으로(매우 흔하게) 핀 들판에서 그림을 완성하면 교실로 돌아와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선생님은 특이했다.

우리와 동행하지도 않았고, 그림 뒷면에 이름도 쓰지 못하게 하셨다.

학생 수만큼 작품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순전히 자율적이었다.

교탁 위에 놓인 작품을 보여주며 꼼꼼하게 설명하는 것이 미술 수업의 전부였다.

 

그날도 선생님은 그림을 한 점 한 점 들어 보이며 설명에 열중이었다.

그때였다.

선생님이 교탁 위의 그림을 보면서, "이 그림을 그린 친구는 앞으로 훌륭한 화가가 될 소질이 있어"라고 했다.

모두들 그 그림을 궁금해했다.

잠시 뒤, 보여준 그림은 뜻밖에도 필자가 그린 것이었다.

 

미술을 전공한 뒤부터 미술관 가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굵직한 전시가 서울에서 많이 열리기에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이름난 미술관을 자주 간다.

발품을 팔아서 직접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작품 구상에 영감을 받고 삶의 활력을 얻었다.

 

2009년 가을, 안개 자욱한 새벽에 첫 열차를 탔다.

서울까지 가는 내내 가슴이 설레었다.

조선시대 초기 회화의 문을 연 안견安堅(1400?~1479?)의 작품을 알현하러 가는 길이었다.

걸작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세 번째 우리나라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몽유도원도>는 세종대왕의 셋째 왕자인 안평대군安平大君(1418~1453)의 꿈 이야기를 듣고 안견이 3일만에 완성한 그림이다.

복사꽃이 만발한 이상향인 무릉도원武陵桃源이 환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세로 38.6센티미터, 가로 106.2센티미터인 두루마리 그림이다.

기괴하면서 거대한 바위 계곡을 지나 도화桃花(복사꽃)가 만발한 신비로운 세계로 이어지는 스토리 story(줄거리)가 드라마틱 dramatic하다(극적이다).

안견의 그림 옆에는 21명의 학자들이 쓴 그림에 대한 감상과 평이 붙어 있어서 역사성까지 더한다.

안타깝게도 이 그림은 현재 일본 덴리(천리天理)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다.

이번 고국 나들이를 한 <몽유도원도>를 보기 위해서 관람자들은 전시 기간 동안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필자도 긴 행렬에 섞여 순서를 기다렸다.

작품을 보는 순간 황홀했다. 떨리는 가슴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요즘은 인쇄술이 워낙 좋아서 화질 좋은 도판을 스마트폰으로 편리하게 감상할 수 있다.

굳이 지방에서 서울까지 가서 긴 줄을 설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수고를 무릅쓰고 작품을 감상하러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품의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느끼기 위함이다.

작가의 필치와 체취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그 즐거움을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전시를 보러 가는 날이면, 서울에 사는 지인과 미리 약속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나 전시를 보고 차를 마신다.

햇살 좋은 야외 전시장을 돌면서 탑과 석불을 감상한다.

소복이 핀 구절초 옆에서 잠시나마 속세를 잊는다.

바로 무릉도원이다.

 

지금은 지역에도 비중 있는 미술 전시와 공연이 넘쳐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갤러리 gallery(그림방, 화랑)를 비롯한 곳곳에서 전시를 한다.

전공자가 아니면 미술관과 갤러리에 발을 들여놓기란 쉽지않다.

그러나 전시장도 대중화가 되어, 커피숍 coffeshop(커피점)이나 병원, 은행 따위에서 갤러리를 만들면서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특히 대구 근교에 있는 전시장은 드라이브 drive(승차) 코스로 제격이다.

야외 경치도 구경하고 데이트 date(교제, 만남)도 하고 전시도 보고 향긋한 차도 마실 수 있다.

동행한 지인과 진솔한 대화로 스트레스 stress(짜증, 긴장, 불안)도 날릴 수 있다.

 

돌이켜보면,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힘입어 필자는 화가가 되었고, 대학 강단에서 학생을 지도하고 있다.

여건이 되면 학기마다 한 번씩 학생들과 미술관에서 미술 감상 수업을 한다.

몇 해 전이었다.

대구미술관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미술관에서 일하는 한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사연인즉 그녀는 학부시절 필자의 미술이론 수업을 듣고, 대학 졸업 뒤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는 것이다.

미술사를 전공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수업시간에 경주 남산에 답사 갔던 기억이 좋아서였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불끈 힘이 솟았다.

필자도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의 역할을 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돌아오는 길에, 차창 너머로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있었다.

가녀린 자태였지만 안견의 <몽유도원도>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안견에게는 '금 수저', 아니 '다이아몬드 수저'인 안평대군이 있었다.

안평대군은 예술에 대한 안목이 뛰어났고,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다.

안견은 안평대군의 후원이 있었기에 화가로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다.

필자에게는 인생의 지도를 그려준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인생의 방향등이 된다는 것은 보람찬 일이다.

 

단풍이 붉게 타는 11월이다.

눈이 즐겁고 속이 든든해지는 번시가 풍성하다.

전시장마다 화가의 열정이 잘 익은 모과처럼 향기롭다.

 

※출처

1. 김남희 지음, '옛 그림에 기대다', 2019. 계명대학교 출판부

2. 구글 관련 자료

 

2025. 9. 2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