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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의 역사 2 - 메스머와 메스머리즘

새샘 2025. 10. 2. 10:44

1800년대에 과학이 발달하면서 정신질환이라 생각했던 몇몇 질환이 새로운 의학 분야로 보금자리를 바꾸었다.

간질 환자의 경련, 매독 말기의 정신착란, 뇌졸중 환자의 신경장애 따위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생리학의 발달로 뇌와 신경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신경과학이 정신과학과 분리되었다.

 

이제 신경과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해결하지 못한 것들만 정신질환으로 남았다.

이때 만들어진 단어가 정신의학(정신과학, 정신과) pshchiatry이다.

정신의학은 라틴어의 '정신 psykhe'과 '치유 iatreia'에서 유래된 단어로 독일 의사 요한 크리스티안 라일 Johann Christian Reil(1759~1813)이 1808년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이름을 달고 멋지게 시작한 정신의학은 1800년대 말에 이르면 위기를 맞게 된다.

마취, 소독, 미생물학의 발전으로 내과, 외과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했지만 정신의학은 여전히 정신질환을 설명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자신만의 논리를 내세우며 각자의 치료방법을 사용했다.

여기서 시간을 과거로 100년 정도 돌려 흥미로운 오스트리아 Austria 의사를 만나보자.

 

화학의 아버지 앙투안 라부아지에 Antoine-Laurent de Lavoisier(1743~1794)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기 10년 전 어느 날, 그는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로부터 한 의사를 조사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 의사는 물과 자석을 이용해 치료했는데 환자들에게 인기가 정말 많았다.

그래서 과학아카데미는 라부아지에에게 그 의사가 진정한 의사인지, 돌팔이 사기꾼인지 판정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물과 자석으로 질병을 치료한다고?

 

 

프란츠 안톤 메스머(출처-2018.11.06 중앙SUNDAY 임재준의 의학노트 인터넷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091142)

 

오스트리아 의사 안톤 메스머 Franz Anton Mesmer(1734~1815)는 의대에서 제대로 의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박사학위 논문이 <행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일 만큼 신비로운 이론에 꽤나 심취한 상태였다.

메스머는 논문에서 행성, 태양, 달의 중력이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동물 중력 animal gravitation'이라 불렀다.

메스머의 이론은 1768년 그가 사회에 진출할 때쯤 '동물 자력(동물 자기력磁氣力) animal magnetism' 이론으로 변경되었다.

그에게 동물 자력의 힘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생물체의 내부에 존재하는 힘이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력의 흐름이 막히면 질병이 발생한다고 생각했으며, 자력을 띠는 물질과의 접촉을 통해 건강한 자력의 흐름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기 자체 또는 자력을 띠게 만든 물체를 이용해 사람들을 치료했다.

 

1744년 메스머는 사혈법瀉血法(피를 뽑아내는 치료법)을 포함한 당대의 어떤 치료에도 효과가 없던 28세의 히스테리 hysteria 여성에게 철분이 함유된 약을 삼키게 했다.

그리고 몸 여기저기에 자석을 붙여 인공적인 자력의 흐름을 만들었다.

젊은 여성은 자신의 몸에 신비로운 액체가 흐르는 것 같다며 히스테리 증상이 좋아졌다고 느꼈다.

환자의 반응에 고무된 메스머는 자력 치료의 효과를 선전하기 위해 동료 의사에게 자신의 치료법을 검증해 달라고 부탁했다.

검증은 처음에는 메스머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런데 검증 담당 의사는 검증을 위해 메스머와 히스테리 환자 모르게 몇 개의 자석을 미리 숨겨놓았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히스테리 여성은 자신이 자석이라고 믿거나 메스머가 자석이라고 알려준 것에만 자력을 느낄 뿐 숨겨놓은 자석에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히스테리 여성의 질환이 좋아진 것은 자석과는 무관하게 심리적인 효과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검증은 실패했고, 메스머는 사기꾼 취급을 받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메스머의 바켓과 연결된 금속 막대를 잡고 있는 1700년대 유화. 그림 오른쪽에 검은색 옷을 입고 지시봉을 들고 있는 사람이 메스머다(출처-출처자료1)

 

그 이후로도 몇 번의 치료에 실패한 메스머는 도망치듯 오스트리아를 벗어나 1778년 파리 Paris에 도착했다.

어떤 치료에도 마음이 열려 있던 파리의 환자들은 선입견 없이 그의 자력 치료법을 받아들였다.

하루에 20명 이상이 치료를 받으려고 그를 찾았다.

밀려오는 환자를 감당하기 위해 메스머는 집단 치료법을 고안했다.

큰 통에 자력을 담은 물을 준비하고, 통 안에 여러 개의 금속 막대를 꽂았다.

이런 통을 바켓 baquet이라 불렀다.

자력 치료를 원하는 사람들은 바켓에서 꺼낸 금속 막대를 자신의 아픈 부위에 대고 문질렀다.

부드러운 조명, 잔잔한 음악, 화려한 망토 manteau(소매가 없이 어깨 위로 걸쳐 둘러 입도록 만든 외투)를 두른 메스머의 춤사위가 곁들여져 자력 치료는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치료지만 효과는 생각보다 좋아 그의 명성이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갔다.

 

1784년 메스머의 치료에 대한 대중의 환호와 의사들이 비난이 격렬하게 충돌하자 벤저민 프랭클린 Benjamin Franklin(1706~1790)과 앙투안 라부아지에 같은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회원들이 메스머의 치료에 대한 과학적 검증에 나섰다.

예상대로 검증위원들은 메스머가 치료에 사용한, 자력이 깃들었다는 물에서 효과가 있을 만한 어떤 것도 찾지 못했다.

심지어 그 물은 자력도 띠지 않았다.

검증위원들은 메스머의 자력 치료는 치유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건강을 되찾게 했다고 비꼬았다.

메스머는 명성에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일부 추종자들의 꾸준한 지지로 노후까지 꽤나 부유하게 살았다고 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메스머가 환자를 낫게 한 것은 자석의 힘이 아니었다.

자석은 환자의 믿음을 이끌어내는 하나의 상징물이었을 뿐이고, 정작 치료를 한 것은 메스머가 환자에게 선사한 치유에 대한 확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치료법은 달리 부를 말이 없어 '메스머리즘 Mesmerism(동물자력/동물 자기력)' 치료라 불렸다.

이후 프랑스의 장 마르탱 샤르코 Jean-Martin Charcot는 메스머리즘을 최면술이라는 치료법으로 업그레이드 upgrade(어떤 기기나 기술의 성능을 기존의 것보다 뛰어난 새것으로 변경하는 일)한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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