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6부 혁명의 시대 - 19장 산업혁명과 19세기 사회 3: 유럽 대륙의 산업혁명 본문

서로 다른 자연적·경제적·정치적 자원을 갖고 있던 유럽 대륙은 영국과는 다른 경로를 밟았다.
18세기 프랑스 France, 벨기에 Belgium, 독일 Germany은 원료 구입이 쉽고 시장이 가까우며 특정 수공업과 기술에 대한 전통적 애착이 강한 제조업 중심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들 나라에서는 1830년대까지도 영국에서 본 것과 같은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영국의 수송 체계는 고도로 발달했던데 비해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다.
프랑스는 영국보다 국토 면적이 훨씬 넓었지만 강들은 운항하기에 수월치 못했고 항구, 도시, 석탄 매장지 따위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중부 유럽 역시 자체의 통행료 및 관세 징수권을 갖는 작은 공국들로 나뉘어져 있어서 원료나 공산품의 원거리 수송이 대단히 어려웠다.
유럽 대륙은 영국보다 원료 특히 석탄의 매장량이 훨씬 적었다.
값싸고 풍부한 목재는 새로운 석탄 매장지의 발견을 가져다줄지도 모를 탐사에 방해가 되었다.
그것은 또한 석탄으로 가동하는 에너지 소비가 많은 증기기관이 대륙에서는 상대적으로 경제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뜻했다.
자본 역시 조달이 쉽지 않았다.
영국의 초기 산업화는 개인의 부가 비용 부담을 떠맡았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그것이 미약했다.
서로 다른 토지 보유 형태도 농업의 상업화를 막았다.
동유럽에서는 농노제가 노동절약적 기술 혁신을 크게 저해했다.
서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수많은 소농 또는 농부들이 토지에 묶여 있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Napoleon Wars(1803~1815)은 법적 변화와 국가 권력의 통합을 촉진했지만 경제는 붕괴시켰다.
18세기 동안 인구는 증가했고 일부 핵심적 산업에서는 기계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정치적 격변,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 부담, 우레 같은 군대의 말발굽 따위는 사실상 경제 발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폴레옹의 대륙 체제와 영국의 프랑스 상선단 파괴로 상업 역시 큰 타격을 받았다.
모직 의류에 대한 군대의 더 큰 수요가 직물산업 분야를 활발하게 만들어주긴 했지만, 영국 상선에 선적된 면화의 수입 금지는 몇십 년 동안 면직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군대의 늘어나는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철 가공은 늘었지만 철 제조기술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아마도 유럽에서 산업 발달에 있어 가장 유익한 혁명적 변화는 자본과 노동의 이동을 제한했던 규제의 철폐, 즉 수공업 길드 guild의 폐지와 대륙 전역에 걸친 관세 장벽의 감소 같은 것들이었다.
1815년 이후 여러 요인들이 결합해 유럽 대륙의 경제적 분위기를 바꾸어놓았다.
상업 및 산업적 토대를 갖춘 지역들, 예컨대 프랑스 북동부, 벨기에, 그리고 라인란트 Rheinland, 작센 Sachsen(영어 Saxony), 슐레지엔 Schlesien, 보헤미아 Bohemia 북부에 걸친 띠 모양의 지역에서는 인구 증가가 경제 발전을 한층 더 가속시켰다.
하지만 인구 증가 자체가 산업화를 야기시키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다른 필수적 요인들이 없었던 아일랜드 Ireland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식량이 더 적었다는 것을 뜻했다.
수송도 향상되었다.
오스트리아 Austria 제국은 1830년과 1847년 사이에 4만 8,000킬로미터의 도로를 추가로 건설했다.
벨기에는 같은 기간 동안 도로망을 거의 두 배로 늘렸다.
프랑스는 도로뿐만 아니라 3,200킬로미터에 달하는 운하를 건설하기도 했다.
이러한 운송망의 향상은 1830년대와 1840년대의 철도 건설과 결합해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고 새로운 제조 방법의 도입을 고무시켰다.
하지만 유럽 대륙의 많은 제조업 지역에서 산업가들은 숙련되었지만 저렴한 대규모 노동 요원들은 장기간 계속해서 끌어올 수 있었다.
따라서 한층 오래된 선대제先貸制(객주제客主制: 유럽에서 상인 자본가가 가내 수공업자에게 미리 원료와 기구를 대 주고 물건을 만들게 한 후에 삯을 치르고 그 물건을 도맡아 팔던 제도) 산업과 수작업이 신형 공장들에서도 지속되었다.
유럽 대륙의 산업화 모형은 그 밖의 어떤 방식에서 서로 달랐는가?
유럽의 산업화에는 정부가 상당히 한층 더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와 프로이센 Preussen(영어 Prussia)은 철도를 건설하는 개인 회사에 상당한 보조금을 제공했다.
1849년 이후 프로이센은 벨기에와 나중에 러시아 Russia가 그랬던 것처럼 국가 자체가 회사의 일을 떠맡았다.
다시 말해 원료 및 전문 기술 수입을 주로 하던 정부가 종종 커다란 이윤을 창출하는 사업까지 떠맡았던 것이다.
프로이센에서는 국가가 자국에 있는 대다수 광산을 운영했다.
유럽 대륙의 정부들은 산업화에 도움이 되는 유인책과 법을 마련했다.
가장 중요한 사례를 들면 유한책임법 limited-liability law은 투자가로 하여금 회사 부채를 지불할 책임을 지지 않고도 주식회사나 회사 주식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이 법은 기업들이 철도, 다른 형태의 산업, 상업 따위에서 막대한 투자를 위한 자본을 한데 모으는 일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산업을 위한 자본을 동원하는 일은 19세기 난제 중 하나였다.
영국에서는 해외무역이 잘 조직된 금융시장을 창출했지만 유럽 대륙에서는 자본이 분산되었고 공급 또한 부족했다.
새로운 유한투자은행 joint-stock investment bank은 개인 은행과는 달리 채권을 판매하고 개인이나 소규모 회사들로부터 예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은행들은 야심이 있는 사업가에게 장기 저리의 상업 대출 형태로 창업 자본을 제공할 수 있었다.
벨기에의 소시에테 제네랄 Société Générale은 1830년대에 창립되었고, 오스트리아의 크레디탄슈탈트 Creditanstalt와 프랑스의 크레딧 모빌리에 Crédit Mobilier는 1850년대에 창업했다.
예를 들어 부유하고 문벌이 좋은 페레르 형제 Pereire brothers가 1852년에 세운 크레딧 모빌리에는 보험회사들, 파리의 버스 체계, 6개 자치도시의 가스 회사, 대서양 횡단 해운, 기타 유럽 국가들의 사업 따위에 대한 국가적 후원으로 1850년대의 대규모 철도 건설에 재정 조달을 해주기에 충분한 자본을 모았다.
페레르 형제의 성공은 그들에게 벼락출세한 투기꾼이라는 명성을 안겨주었고 크레딧 모빌리에는 추문으로 붕괴되었지만 은행업에서의 혁명은 순항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대륙의 유럽인들은 발명과 기술적 혁신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그 무엇보다도 산업 기술의 발전을 도울 수 있는 잘 훈련된 엘리트를 배출하는 것이 목적인 교육제도를 기꺼이 수립하고자 했다.
요약하면 영국이 거의 우연히 창출해냈던 것을 유럽인들은 의도적으로 재창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850년 이후의 산업화
1850년까지도 영국은 발군의 산업 강국으로 남아 있었다.
영국의 개별 공장들은 현대의 기준은 말할 것도 없고 19세기 말의 기준으로 봐도 소규모였다.
그래도 이 공장들의 생산량은 엄청났고 국내 및 해외 시장에 판매하기 위한 그들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러나 1850년과 1870년 사이에 프랑스, 독일, 벨기에 및 미국 USA은 영국 제조업자들의 권세와 지위에 대한 도전자로 떠올랐다.
영국의 철 산업은 세계 최대 수준으로 남아 있었지만(1870년에 영국은 여전히 전 세계 선철의 절반을 생산), 프랑스나 독일의 철 생산에 비해 한결 더디게 성장했다.
유럽 대륙이 이런 성장을 보인 것은 대부분 지속적인 산업 성장에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는 수송, 상업, 정부 정책 따위에서 계속적인 변화가 이루어진 결과였다.
철도의 확산은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촉진했다.
국제금융조합들이 설립되고, 도나우 강과 같은 국제적 수로에 대한 제한이 제거되었다.
업계에 진입하기 위한 길드의 장벽이 제거되고 사업을 하는데 필요한 규제가 종식됨으로써 자유무역은 더욱 진척되었다.
수공업자의 생산에 대한 길드의 통제는 오스트리아에서는 1859년 폐지되었고, 독일 대다수의 지역에서는 1860년대 중반에 폐지되었다.
고리대금업을 금지하는 법률이 대부분 강제적으로 영국, 홀란드 Holland, 벨기에, 독일의 많은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1850년대에 프로이센은 광산 운영에 대한 정부 규제를 포기했는데, 이로써 기업가들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자원을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화폐 공급의 증가와 1849년 캘리포니아 California의 금광 개발에 뒤이은 손쉬운 대출에 고무되어 투자은행의 설립이 계속되었다.
어느 경제사가가 상기시켜주듯이 산업혁명의 첫 단계는 한정된 산업에 국한되었고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요약될 수 있다.
"더 값싸면서도 더 질 좋은 의복(주로 면화로 만든), 더 값싸면서도 더 질 좋은 금속(선철, 단철, 강철), 그리고 더 빠른 여행(주로 철도로)."
19세기 후반에 변화가 더 먼 지역까지 널리 퍼져나갔으며 초기에 우월했던 영국의 지역들은 더 이상 결정적이지 않게 되었다.
대서양 횡단 케이블(1865년 개통)과 전화(1876년 발명)는 통신에서의 혁명을 위한 기초를 다졌다.
새로운 화학 공법, 염료, 제약 따위가 등장했다.
새로운 동력원, 즉 미국과 독일 양국에서 발명과 상업적 발전을 이끌었던 전기가 등장했다.
그리고 1850년대에 정제되고 있던 석유가 1900년에 이르러 널리 사용되었다.
러시아 석유 매장지의 초기 채굴자들 가운데는 스웨덴 Sweden의 노벨 형제 Nobel brothers와 프랑스의 로칠드 가문 Rothschild family이 있었다.
결국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집중된 발전은 독일과 프랑스에서 이루어졌다.
작고 효율적이며 폭넓은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될 수 있는 내연기관은 1880년대 카를 벤츠 Carl Friedrich Benz(1844~1929)와 고트리브 다임러 Gottlieb Daimler(1834~1900)가 개발했다.
1891년 에두아르 미슐랭 Édouard Michelin(1859~1940)은 탈착이 가능한 공기 타이어 tire에 대한 특허를 냈다.
그는 가족의 소규모 농기계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자신의 기술자 형제와 손잡은 화가였다.
이런 발전을 가져온 선구자들의 친숙한 이름들은 산업과 발명이 19세기 전체에 걸쳐 얼마나 다양했는가를 보여준다.
동유럽에서는 19세기에 또 다른 유형의 경제 발전이 일어났다.
증대되는 식량과 곡물에 대한 수요에 자극받은 동유럽의 드넓은 지역은 서유럽으로 식량을 수출하는 특화된 역할을 한 집약적이고 상업화된 농업 지역으로 발전했다.
그들 수많은 거대한 기업적 농업은 농노제에 입각해 있었고 점증하는 개혁의 압력에 직면하는 1850년까지도 그런 상태로 남아 있었다.
개혁을 향한 농민의 저항과 자유주의자의 요구는 자신들의 특권과 노동체제를 계속 움켜쥐려는 귀족의 결심을 단지 점진적으로 조금씩 갉아낼 뿐이었다.
농노제는 1850년에 이르러 동유럽과 남유럽의 대부분 지역에서 폐지되었고 1860년대에는 폴란든 Poland와 러시아에서도 폐지되었다.
농업에 비해 뒤지긴 했지만 동유럽은 몇몇 중요한 제조업 지역을 갖고 있었다.
1880년대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지방의 면직 산업에 고용된 남녀의 수는 독일의 작센 지방에 고용된 사람 수를 능가했다.
체코 Czech 지역에서는 18세기에 발전한 섬유 산업이 계속 번창했다.
1830년대에 이르면 기계로 작동하는 체코식 면직 공장과 제철 작업이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아마포가 주류를 이루는 조악한 작물을 생산하는 공장 산업이 모스크바 Moscow 주위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19세기 중반 러시아는 자국의 공장을 기계화하기 위해 영국의 전체 기계류 수출의 24퍼센트를 구입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산업에서 일한 많은 사람들은 1860년대까지 사실상 농노로 남아 있었고 그들 중 약 40퍼센트가 광산에서 일했다.
하지만 1860년 무렵 제조업에 종사하는 80만 명 이상의 사람 가운데서 대다수는 40명 정도가 일하는 소규모 작업장에 고용되어 있었다.
1870년 무렵 유럽의 핵심 산업국가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Italia(영어 Italy), 네덜란드 Netherlands, 스위스 Switzerland(영어 Swiss) 따위였고 오스트리아는 이에 근접했다.
러시아, 스페인 España, 불가리아 Bulgaria, 그리스 Greece, 헝가리 Hungary, 루마니아 Romania, 세르비아 Serbia는 산업 주변부를 형성했지만, 이들 국가의 일부 지역은 실질적으로 산업 발달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가장 충분히 산업화된 국가인 영국에서조차 농업 노동자는 1860년에도 여전히 가장 커다란 직업군을 형성했다(비록 농업 종사자 수는 전 인구의 단지 9퍼센트를 차지했지만 말이다).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독일, 프랑스, 스칸디나비아 Scandinavia, 아일랜드에서는 인구의 25~50퍼센트가 여전히 토지에서 일했다.
러시아에서는 그 수가 80퍼센트에 달했다.
더욱이 '산업적 industrial'이라는 말은 장기간 소수 경제 분야에 국한되어 있었던 자동화나 기계 생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계가 특정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일부 분야에 도입되었는데, 보통 수작업의 속도를 더해주는 것에 불과했다.
따라서 산업화된 지역에서조차 많은 직업은 여전히 손바닥만 한 작업장이나 집에서 이루어졌다.
○산업과 제국
국제적 관점에서 19세기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산업화된 지역이었다.
유럽인 특히 영국인은 방심하지 않고 자국의 국제적 이점을 지켰다.
그들은 차입 자본의 이용 효과를 통해 국제적 이점을 지키고자 했다.
영국, 프랑스, 그리고 여러 유럽 국가들은 중국, 오스만 제국 Osman Empire, 이집트 Egypt, 브라질 Brazil, 아르헨티나 Argentina 및 기타 비유럽 강대국의 국채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했다.
또한 유럽 국가들은 비유럽 강대국을 자국의 투자가들에게 묶어주는 막대한 대출금을 이들 나라에게 제공했다.
1830년대에 이집트가 자국의 면직 산업을 확립하고자 시도했던 때 그랬던 것처럼 만약 채무국들이 불만을 표시한다면 이들 채무국들은 재정적 압박과 무력시위에 직면했다.
하지만 늘 강제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고 일방적이지도 않았다.
중국, 페르시아 Persia, 인도 India의 무굴 제국 Mughal Empire과 같은 제국들에서의 사회 변화는 이들 제국을 취약하게 만들었고 유럽 열강과 이들 제국 내 동업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주었다.
취약해진 이들 제국의 야심찬 엘리트들은 종종 서양 정부나 영국의 동인도회사 East India Company 같은 집단과 협정을 맺었다.
이런 무역 협정은 유럽인과 제휴한 지역 동업자들에게 상당한 배당을 남긴 뒤 유럽에 가장 큰 이윤을 보내는 약정으로 지역 경제를 변모시켰다.
협정이 맺어질 수 없는 곳에서는 무력이 판을 쳤고 유럽은 정복을 통해 영토와 무역을 차지했다.
산업화는 무역과 상호의존이라는 새로운 체계망(네트워크 network)을 창조하면서 유럽과 세계의 나머지 국가 사이에 전 지구적 연결을 강화했다.
어떤 면에서 세계 경제는 공산품의 생산지인 유럽과 필요한 원료의 공급자이자 완제품의 구매자인 그 밖의 다른 나라로 나뉘어졌다.
미국 남부의 면화 재배업자, 카리브 해 Caribbean Sea의 사탕수수 재배업자, 우크라이나 Ukraine의 밀 재배업자는 산업화된 서구가 제시하는 협정을 받아들였고 일반적으로 그로부터 소득을 얻었다.
하지만 이들 공급자들은 만약 논쟁이 벌어진다면 유럽이 동일한 상품을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은행 원장의 폐기나 대포 포신으로 사업의 거래 조건을 지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1811년 영국은 자국이 소비하는 밀의 3퍼센트만을 수입하는데 그쳤지만, 1891년에 이르러 그 비율은 79퍼센트로 껑충 뛰었다.
그 이유는?
도시 사회가 점점 늘어나면서 토지에 의존해 생활하는 사람 수는 점점 줄게 되었다.
일찍이 영국에서 시작된 농업의 상업화는 다른 곳에서 한층 더 강하게 나타났다.
즉, 오스트레일리아 Australia, 아르헨티나, 북아메리카 North America(캐나다 Canada와 미국)가 곡물과 밀 생산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했다.
새로운 형태의 수송, 금융, 통신은 국제적 체계망을 통해 상품과 자본의 이도을 한결 더 쉽게 해주었다.
바꾸어 말하면 이런 단순한 비율들은 19세기의 새로운 상호의존성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이 비율은 그 어떤 통계보다도 다른 나라의 보통 사람들의 삶처럼 보통 영국인의 삶이 전 지구적 경제에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출처
1. 주디스 코핀 Judith G. Coffin·로버트 스테이시 Robert C. Stacey 지음, 손세호 옮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하): 근대 유럽에서 지구화에 이르기까지, Western Civilizations 16th ed., 소나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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