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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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걸어온 길, 우리가 나아갈 길

새샘 2025. 10. 8. 12:18

출저자료1의 겉표지(출처-BOOK21 홈페이지 https://www.book21.com/book/book_view.html?bookSID=6120)

 

○흉노는 정말 신라인의 조상이었을까?

 

삼국의 지배계급은 모두 자신들이 북쪽에서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고구려, 백제의 왕족이 스스로 부여 계통이라고 말한 내용은 기록에도 남아 있고 고고학적으로 증명되기도 했다.

신라인들은 흉노인을 자처했고 실제로 인적 교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몇천 명의 군사가 내려와 신라 정권을 갈아치운 것은 아니다.

또한 삼국시대에 살았던 모든 사람이 북쪽에서부터 남하한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에 한정된 주장에 불과하다.

 

이 주장은 몇몇 경우에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신라시대는 흉노가 사라진 지 300년이나 지난 다음에 생겨났다.

이때 남은 흉노인들은 실제로 나라를 이루고 번영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후손들이었다.

이런 일부의 사람을 신라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고대인들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흉노족의 실체다.

흉노는 하나의 민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목민들에게는 단일 민족 개념이 없으므로 흉노도 몇십 개의 부족이 섞인 조각무늬 그림(모자이크 mosaic)같은 형태였다.

대체로 흉노는 투르크계 Turkic와 몽골계 Mongolian 언어권으로 나뉜다고 한다.

그들은 500년 가까이 유라시아 초원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서로 정복하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이것은 미국이 유럽이나 남미, 아프리카 따위에서 모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다민족 국가인 것과 마찬가지다.

흉노 역시 하나의 조상에서 갈라져 혈연관계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고대 삼국시대 사람들 사이에서 관념화되고 상상이 섞이면서 형성되었다.

 

이에 대해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신라인의 사람뼈에서 DNA를 추출해 당시 유라시아 초원 지역과의 연관성을 살펴야 한다.

남아 있는 신라인의 사람뼈가 많지 않으므로 연구에 어려움을 겪던 중, 최근에 6세기 무렵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신라인 사람뼈를 발견해 분석한 결과 북방지역과는 관계가 없으며, 대신에 한국인과의 관련성이 훨씬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라인들의 DNA에는 다양한 유전자가 섞여 있지 않고 단순한 편이다.

버스가 종점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적어지는 것처럼 대륙의 끝에 자리한 신라까지 다른 민족들이 내려왔다고 해도 그 흔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등장한 태극기 집회를 떠올려보자.

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성향을 주장하기 위해 우호적인 관계라고 생각하는 미국 USA, 이스라엘 Israel과 같은 여러 나라의 국기를 들고 나왔다.

만약 몇천 년 뒤에 어떤 고고학자나 역사학자가 다른 자료 없이 이 사진만 발견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이 집회를 이스라엘이나 미국과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주최한 국제적인 집회였다고 추론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극단적인 예지만 '누구의 후손'이라고 하는 고대의 기록이나 자료는 결코 그들의 혈연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통성에 대한 믿음일 가능성이 크다.

또는 그들의 '워너비 Wannabe'(Want to be, 되고 싶어하는 모습)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삼국에서 북방지역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은 이처럼 혈연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사회와 문화적인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현대의 관점에서 바라본 문화는 단편적인 해석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기마민족은 정말로 정착민들을 정복했을까?

 

신라가 흉노임을 자처하는 사건과 함께 흔히 나오는 또 하나의 학설은 '기마민족설'이다.

이 설은 1940년대에 일본의 고고학자 에가미 나부오(강상파부江上波夫)가 처음 제기했다.

이 학설은 표면적으로는 당시 한반도와 일본이 유라시아와 동떨어져 고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며 함께 역사를 만들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쉽다.

한국에서도 그의 학설에 영향을 받아 신라나 가야로 진출한 북방의 기마민족이 나라를 세웠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에가미 나부오가 주장한 기마민족설에는 기마인들이 일본으로 진출한 과정이 전부 생략된 채 단편적인 자료만 나와 있다.

북방 유라시아의 사람들의 선진 기술과 기마술은 당연히 한반도와 일본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몇천 또는 몇만 명의 기마인들이 험준한 산지를 뚫고 내려와 정권을 바꾸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나아가 일본이 주장하는 기마민족설의 핵심은 기마민족의 도래가 아니라 일본이 삼국시대에 한반도를 정벌할 정도로 강력한 국가라는 환상을 심어주려는 데에 있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한국과 만주를 점령하며 아시아에서 벗어나 '탈아입구脫亞入歐'하고자 했다.

기마민족설은 바로 자신들은 토착 동아시아인이 아니라고 하는 억지 주장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물론 동아시아에서 기마민족의 영향력은 거대했다.

우리가 배운 역사에서도 칭기즈칸 Genghis Khan(성길사한成吉思汗), 티무르제국 Timurid Empire, 거란(계단족契丹族) Khitan people 따위의 강력한 기마인과 그들의 국가는 수많은 민족을 정복하고 세력을 키워왔다.

문제는 그 과정에 대한 상세하고 구체적인 논증없이 일부 자료만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현대인으로서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그들의 역사와 이동 과정을 단정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런 결론은 자국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과 주변 국가에 대한 혐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에가미의 기마민족설이 일본에서 널리 퍼진 이유는 세계제2차대전 이후 패망한 일본이 여전히 자신들을 주변 국가와 구별된 우월한 천손민족이라는 믿음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 일본에서는 한국전쟁과 도쿄올림픽을 거치면서 한국이나 중국에 대한 비하와 혐오가 이어졌고, 지금도 이 문제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왜곡하면 국가 우월주의라는 망령에 사로잡혀 과거를 똑바로 보지 못하게 된다.

이런 문제는 비단 일본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든 생길 수 있다.

 

예컨대, 2008년과 2022년 중국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과 한국의 문화가 등장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세계인의 축제라는 올림픽에서 다양한 나라의 풍속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중국에서도 김치나 한복과 같은 한국 문화를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소개했다면 올림픽 취지에 잘 부합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내 조선족을 거론하며 한국의 역사를 '중국문화의 일부'라는 식으로 호도한다면 외교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

즉, 과거 역사는 그 자체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현대인들의 인식과 외교에도 큰 영향을 준다.

 

 

○유전자가 전하는 새로운 역사

 

그렇다면 한민족이 유라시아의 민족들과 교류하며 이주해온 과정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고려시대 무렵에 칭기즈칸과 그의 부대가 세계를 정복한 과정에서 이를 짐작해볼 수 있다.

 

2003년에 칭기즈칸의 정복과 관련해 <몽골인의 유전적 유산 The Genetic Legacy of the Mongolia>이라는 논문이 나온 적이 있다.

이 논문에서는 몽골인들의 DNA를 분석해 부계 혈통이 분포된 형태를 살펴봤다.

현재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DNA를 분석한 결과, 그중 8퍼센트는 부계 혈통이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논문의 저자는 그 사람이 칭기즈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가 정복하는 곳마다 현지의 여성을 만나 자손을 퍼뜨렸기 때문에 가장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이 논문은 곧바로 칭기즈칸의 존재를 증명했다는 식으로 보도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칭기즈칸의 DNA를 발견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같은 혈통이라고 해서 단 한 명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같은 부계라는 것은 중앙아시아라는 표본이 가진 한계이지, 칭기즈칸의 후예라는 증거로 볼 수 없다.

 

당시 몽골인들은 조선시대의 한국처럼 혈연관계를 중요시하지 않았다.

칭기즈칸의 첫째 아들인 주치 Jochi만 해도 그의 혈연이 아니다.

칭기즈칸이 전쟁을 벌이던 중에 부인이 적에게 납치되었는데 이후 돌아온 부인은 이미 임신한 상태였고 그렇게 태어난 자녀가 첫째 아들인 주치였다.

그런데도 칭기즈칸은 전혀 차별하지 않고 그를 친아들로 키웠다.

유목민들에게는 혈연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치의 후손들에게서 DNA를 추출해 분석한다면 아마도 칭기즈칸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이다.

 

물론 칭기즈칸의 후손들은 몽골이 강성할 당시 안정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생존해서 후손을 더 많이 퍼뜨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해도 이후 중앙아시아에서는 신흥 유목민 세력이 우후죽순처럼 발흥해 이전 세력들은 멸절되다시피 했다.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조선시대가 들어서면서 고려시대의 왕족들이 혹독하게 박해받은 것과 같다.

하물며 초원 지역에서는 그런 과정이 빈번하게 발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수의 중앙아시아인들을 칭기즈칸의 후손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 이 연구는 무엇을 뜻할까?

이 연구결과가 나온 데는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로 '집단(또는 개체군) 병목 효과 Population bottleneck'다.

예를 들어, 페스트 pest 같은 집단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단 몇 명만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후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모두 이 소수의 유전자를 갖게될 것이다.

팬데믹(범유행병) pandemic이 지나가고 난 뒤에 살아남은 극소수의 사람을 반드시 유목국가의 왕족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물론 인간이 키우는 동물 가운데는 우수한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교배시켜 자손을 퍼뜨리는 사례가 있다.

능력이 특히 뛰어난 말을 종마種馬(씨말: 씨를 받기 위하여 기르는 말로서 씨수말, 씨암말이 있다)라고 하는데, 은퇴한 종마는 오로지 교배로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에 쓰인다.

 

이러한 과정을 인간에게도 실행한 사례가 있다.

첫 번째는 알타이 Altai의 전사들이다.

알타이의 파지릭 Pazyryk에서 가장 대표적인 유적인 대형고분에는 전사들이 많이 묻혀 있었다.

이 무덤에 묻힌 사람들은 전부 남자로, 그리스어로 코미타투스 Comitatus라고 하는 왕을 따르던 사람들이었다.

 

그리스 기록에서는 이 전사들을 생식기관이 불완전한 남자를 뜻하는 고자鼓子란 뜻의 '에나리스 Enarees'라고 불렀다.

초원의 전사들은 여성이나 돈에도 관심이 없고, 충성심과 우정만을 위해 싸우는 인간병기와도 같아서 다른 나라에 상당한 위협이 되었다.

게다가 이들은 결혼도 하지 않았다.

가족을 두고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전쟁터에 나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왕을 따라다니며 주군의 목숨을 지키는 일만 충실하게 실행했다.

 

그렇다면 이 문화권에서 자손은 어떻게 유지되었을까?

이 무리에는 출산을 전담하는 무리가 따로 있어서 아이를 낳으면 집단 양육 장소로 보내는 식으로 출산과 사회활동을 분리했다.

영화 <300>에 등장하는 스파르타 Sparta의 문화가 초원 지역에서는 이미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한 파지릭 고분에서 발견된 뼈로 DNA 분석을 해보자 3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사람뼈와 유전형질이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로 '창시자 효과 Founder effect'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주하다가 어떤 원인으로 특정 지역에 머무를 경우, 그 소수의 사람이 가진 유전자 특성이 아주 강해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언어로 비유해보자.

만약 어떤 배가 항해를 하다가 난파를 당했는데, 공교롭게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만이 살아남아서 무인도에서 정착했다고 생각해보자.

몇백 년이 지나면 이곳에는 하나의 사투리만 남아 그것을 표준어로 쓰게 될 것이다.

 

칭기즈칸에 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쏟아지고 있다.

잘 알려진 칭기즈칸의 연구 사례도 복잡한데, 그보다 더 이전인 한반도의 고대 상황은 짐작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얽히고설킨 사회적 맥락과 다른 분야의 연구를 비교하며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 모든 연구에 일희일비하고 쉽게 단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

이 순간에도 게속해서 새로운 연구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DNA를 활용한 인간 기원 연구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미 고고학자들도 유물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고대 인류의 흐름을 밝히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생물학, 언어학 따위와 결합해 종합적인 의견을 내는데 노력하고 있다.

DNA 연구는 역사 연구의 새로운 인식체계(패러다임 paradigm)이다.

가장 개인적이고 은밀한 인간의 내력이 모여 거대한 역사를 이루기 때문이다.

 

필자는 "가장 개인적인 DNA가 가장 보편적인 역사가 된다"로 말하곤 한다.

역사와 고고학은 집단화된 과거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조선인들을 비파형 동검을 사용했다'라거나 '조선시대 양반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었다'는 사실은 그 시대의 전반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고분에서 발굴된 사람뼈의 DNA는 한 사람의 역사를 대변한다.

 

이런 유전적 특성은 21세기에 극도로 개인화되어 누리 소통 매체(소셜미디어 social media)로 소통하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이어진다.

누리 소통 매체에 올리는 글이나 사진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의 표출이지만, 이것이 모이면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시대의 흐름으로 나타난다.

유전자 연구도 마찬가지다.

개별 연구는 각자의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그 결과로 치우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되며 전체로 치환해 융합된 모습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단일민족'의 신화를 넘어서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는 주민의 교체가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듯 한반도가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다.

다른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순수함을 지킨다는 것은 인간의 진화적인 속성에 반하며 실제와도 맞지 않는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이민이 흔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는 동아시아 이외의 지역과 꾸준히 교류했고 심지어 종종 한반도에 들어와 정착한 사례도 발견되었다.

 

주민의 교체와 단일민족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유입된 사람들이 지역의 지리적·인문적 환경에 맞게 적응했냐는 것이다.

토착 사회에서 이방인을 받아들일 때는 그 사회의 필요나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즉, 이방인의 DNA가 남는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정치, 사회, 문화, 관습 따위가 현지와 잘 조화되었고, 상대적으로 생존의 가능성이 컸다는 방증이다.

즉, 특정한 집단의 생물학적 DNA가 나왔다면 그들이 그 사회에서 잘 적응했음을 말해준다.

 

적응 잠재력은 인간의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지구에 빙하기와 같은 한랭화가 발생하면 북극권의 알래스카 Alaska나 시베리아 Siberia에 사는 사람들처럼 추위에 적응한 사람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이것은 우월의 문제가 아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절박함이 강한 신체를 만든 것이고, 그 덕분에 다른 위기 상황까지도 잘 극복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기마민족의 출현과 확산도 생각해보자.

푸른 초원에서 유목하는 사람들에게 농사에 적합한 한반도의 땅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평생 농업에 종사한 한국인들이 몽골 초원으로 이주한다면 동물을 기르기에 적합한 초원보다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물가를 찾아 이주하게 될 것이다.

초원의 기마대는 한반도와 일본으로 내려오려면 수많은 말을 먹일 목초가 필요했다.

그들에게는 경주나 부여 같은 평야보다는 강원도 대관령의 초원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즉, 기마민족의 기마술과 새로운 전술이 한반도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을 한반도에 토착화하는 적극적이 노력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특히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징을 생각하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인 반도이며 북쪽으로는 유라시아와 이어진다.

유라시아 대륙과 동아시아와 태평양의 바다가 만나는 요충지다.

한반도는 바다로 뻗어나가는 교통의 요지이지, 고립된 지역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리적으로도 폐쇄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북방민족과 통하는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가 지금은 북한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인 상황과 정치적인 상황을 혼동하는 것이다.

 

한반도는 비록 매우 작은 지역이지만, 지리적 다양성만큼은 다른 여느 나라 못지않다.

주 경제 지반은 벼농사였지만, 전 국토의 70퍼센트가 산간 지형으로 논농사를 짓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백두대간을 따라서 발달한 고원 지역은 시베리아에 버금갈 정도로 혹한이 몰아친다.

기후만 놓고 보더라도 단일민족이 한결같이 안정된 상황에서 대를 이어왔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아니함)이다.

이는 실제 사료와 맞지 않음은 물론, 지금 우리나라의 특성을 이해하고 발전하는 데에도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물론 현대 한국인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세상의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일한 유전인자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단일민족 신화는 더욱 공고해졌다.

우리나라처럼 외모와 문화면에서 동질성을 띠는 국가는 흔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형질의 일관성은 유구한 한반도의 형성과정이 아니라 근대 이후 조선이라는 나라가 선택한 생존전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조선은 쇄국정책 때문에 외국인에게는 극도로 배타적이었으며, 교류는 하되 혼인은 금지하는 강력한 국가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고려 때는 몽골의 침략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가 유입되고, 함경남북도 일대에는 일제강점기까지 여진족 마을이 있었다.

고기를 잡고 가죽을 가공하는 향, 소, 부곡의 백정들이 원래는 말갈과 여진에서 이주한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 역시 인정받는 학설이다.

이방인의 공존은 조선사회에서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전수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만약 조선시대가 계속 유지되어 몇천 년 동안 쇄국정책을 고집하고 외국인의 유입을 멀리했다면 이방인의 유전자는 점차 희석되고 한민족은 전 세계의 유일무이한 단일민족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합스부르크 왕가 House of Habsburg의 사례처럼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에 한참 뒤떨어져 퇴보하는 결과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최근 코로나19 상황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외국인 혐오(제노포비아 xenophobia)가 횡행橫行하고(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퍼짐) 있다.

자신의 삶이 힘들면 사람들은 자신과 이질적인 사람을 배척하면서 희생양으로 삼고자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선민의식'과 '순혈주의'를 무시로 내세워 자신의 계통을 더 강조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틀렸다.

순수함이나 정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땅에 적응해 살아남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이 책을 쓰면서 우리나라에 사람이 정착해 몇천 년을 살아온 과정에 관한 수많은 연구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국가 형성과정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럼에도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단일민족이란 없다.

민족은 혈연이 아니라 문화, 역사, 지리 환경이 결합된 것이며, 순수한 기원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복잡하게 섞이면서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한민족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밝힌 네 가지 주제어(키워드 keywords) 무기, 금관, 환동해, DNA에 대해 살펴봤다.

앞 세 가지 주제어로는 북방 지역과의 관련성을 보았고 DNA 주제어로는 단일민족의 신화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교과서에서는 나오지 않는 고고학적인 접근으로 파고들었지만, 여전히 뭔가 시원한 게 없이 두루뭉술한 느낀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뭔가 확실한 민족의 기원을 찾지 못했다면, 그것은 필자의 의도에 맞게 제대로 읽은 것이다.

필자는 우리가 순수한 민족이 아니며 다양한 교류 속에서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환경에 얽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원은 순수한 혈통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때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주는 가치는 충분하다.

인간의 학문과 과학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역사에 접근하면 할수록 우리의 형성과정이 복잡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사람을 만날 때도 첫인상만으로 판단할 수 없고, 만날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데 인간의 역사를 과연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교류했다.

적응과 생존 과정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우리 민족의 기원도 진면목을 드러낼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외롭거나 고립된 민족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고고학 연구를 통해 한반도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밝히는 것은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장 개인적으로 활발하게 교류한 필자 자신의 모습, 이것이 바로 무엇보다도 가장 한국적인 21세기 한반도의 모습이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우리의 기원-단일하든 다채롭든(21세기 북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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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