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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考古, 오래된 것을 생각하다

새샘 2025. 10. 19. 15:00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의 겉표지(출처-https://www.google.co.kr/books/edition/%EC%82%AC%EB%9D%BC%EC%A7%84_%EC%8B%9C%EA%B0%84%EA%B3%BC_%EB%A7%8C%EB%82%98%EB%8A%94_%EB%B2%95/XfgUEQAAQBAJ?hl=ko&gbpv=1&printsec=frontcover)

 

땅을 파서 과거 역사를 연구한다는 생각은 누가 처음 했을까?

모르긴 해도 한 명이 아닐 것이며, 인간이 등장한 이후부터 오래된 전통이었을 것이다.

고고학考古學의 정의는 간단하게 말하면 땅을 파서 유물을 발굴하여 잃어버린 과거 사람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고고학을 한자 그대로 본다면 '옛것(고古)'을 '생각한다(고考)'는 뜻이다.

고고학이라는 용어는 서양에서 먼저 쓰인 영어 'archaeology'라는 용어를 번역하며 생겨났다.

이 단어는 글자 그대로 '옛것 arch'을 연구하는 '학문 logos'이라는 뜻이다.

글자 그대로 보면 서양에서도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의미다.

이 영어 단어를 '고고考古'라는 말로 번역한 것은 메이지 Meiji(명치明治: 일본 메이지 천황 시대의 연호) 시절(1867~1912)의 일본인들이었다.

당시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며 많은 단어를 번역했다.

그 와중에 비슷한 뜻이면 기존에 썼던 말을 재활용하기도 했다.

'Culture'는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문치교화文治敎化'를 뜻하는 '문화文化'로 번역했고, 서양의 작위는 동양의 제후들이 받은 작위인 '공·후·백·자子·남男'을 따서 '공작·후작·백작·자작子 ·남작男' 따위로 번역했다.

원래 '고고考古'라는 단어 역시 전통적으로 중국에서는 ≪논어論語≫, ≪맹자孟子≫와 같은 옛 문헌을 읽고 다시 해석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1990년대 초반 필자가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에는 인터넷 internet(누리망網)이 없었다.

당시 학과 사무실에 우편으로 배달되는 중국 책의 카탈로그 catalog(상품목록)를 보고 주문을 하는 식으로 필요한 자료를 모았다.

워낙 고고학 책이 귀하던 때라 수많은 중국 책에서 考古라는 글자만 보면 일단 주문하고 보는 식이었다.

그런데 막상 받고 보니 고고학이 아니라 읽을 수도 없었던 ≪논어≫나 ≪맹자≫의 해석을 달아놓은 책이라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考古와 archaeology라는 단어에 고고학을 이해하는 키워드 key word(핵심어)가 숨어 있다.

고고학은 옛날을 제대로 생각하는 것이 목적이지 유물 자체의 화려함이나 값어치를 매기는 학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도 가끔 필자 전공이 골동품의 가치를 매기는 것인 줄 알고 문의를 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그 유물의 가치를 평가할 수는 있지만, 값을 매기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고고학에 대한 오해

 

"고고학은 역사학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의 사람은 선뜻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일반 독자라면 고고학은 당연히 역사학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 글을 쓰는 필자도 사학과에 속해 있다).

그에 대한 답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애매하게 답할 수밖에 없다.

과거의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고고학은 넓게 본다면 역사학도 될 수 있고, 인류학도 될 수 있다.

물론, 주민의 커다란 이동 없이 한반도에서 계속 살아온 한국인은 자신의 조상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본다는 발상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신대륙적 관점과 달리 동아시아 전통의 역사 학문의 일부로 고고학을 바라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그렇다고 고고학을 막연하게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도 큰 오해다.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라는 것은 흔히 ≪삼국사기≫나 ≪조선왕조실록 같은 기록, 즉 주로 문헌에 기록된 것만을 대상으로 한다.

기록에 근거한 역사학을 보통 '문헌사'라는 명칭으로 따로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기록이 역사학에서 대부분을 차지한다.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은 기록에 있는 글자 하나하나를 정성과 공을 들여 해석하고 과거를 판단한다.

 

반면에 고고학은 기본적으로 발굴한 유물을 해석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특정한 역사 기록을 증명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가끔씩 역사적인 사실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극히 일부의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등산으로 비유하면 역사, 인류학, 고고학 모두 하나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과 같다.

다만 각자가 택한 길과 등산 도구가 다를 뿐이다.

다양한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 옛날 사람의 모습을 밝히는 것은 똑같다.

 

 

○천의 얼굴을 가진 학문

 

고고학은 여러 분야의 학문 범주에 걸쳐 있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에서 고고학 전공 교수가 있는 곳은 약 30곳이다.

그런데 순수하게 고고학과라고 하는 경우는 3곳밖에 없다.

그 밖에 사학과(이 경우는 고고학 전공이 설치되어 있는 대학만 해당됨), 문화유적학과, 고고미술사학과, 고고인류학과, 인류학과, 문화인류학과, 융합고고학과, 문화재보존학과, 역사고고학과 따위로 다양하게 나뉘어 있다.

이것은 단순히 고고학자가 명명을 잘못해서가 아니다.

여기에는 고고학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고고학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고고학을 역사학의 일부로 보는 관점이다.

아마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견지하는 입장일 것이다.

과거 사람의 삶을 밝히는 과정을 역사학의 일부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고학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두 학문은 분리될 수밖에 없다.

고대 역사서를 읽어내는 능력과 실제 현장에서 유물을 발굴하고 그 자료를 분석하는 일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관점으로 역사학과 고고학을 별도의 학문으로 분리하는 관점이 있다.

주로 고고학이 매우 발달한 나라에서 그렇게 한다.

대표적인 나라로 영국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고고학을 역사학에서 분리시켜서 고고학을 학제상 별도의 항목으로 설치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는 고고학과 역사학과 동급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자기 영토 안의 문화재를 국가적으로 발굴하고 조사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겠다는 뜻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고고학에 대한 투자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티베트 Tibet나 신장(신강新疆)처럼 근대 이후에 영토로 편입한 지역에 대해서는 엄청난 자본을 투자해서 발굴 조사를 한다.

중국 지린(길림吉林)성의 대표 대학인 지린대학은 고고학과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전 세계 최초로 고고학 단과대학인 고고학원을 만들었다.

지린대학의 고고학원에는 2024년 기준으로 45명의 교수가 근무한다.

2024년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활동하는 고고학자는 250명 내외이며(한국연구재단 인물정보 기준) 한국 전체의 고고학 전공 교수를 다 합쳐도 70명이 되지 않는다.

중국의 고고학에 대한 투자를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대륙에서는 대부분 인류학과 안에 고고학 전공을 편입시킨다.

고고학으로 밝혀내는 역사는 이미 사라져 버린 인류를 밝힌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인류의 모든 것을 알아가는 학문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미국적인 사고가 반영된 것이다.

북아메리카에 백인이 들어와서 활동한 시점은 몇백 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고고학적 발견은 그들과 크게 관계가 없는 원주민의 역사였다.

그러니 미국은 고고학을 다른 인간을 연구하는 인류학의 범주에 포함켰다.

고고학이 대상으로 하는 사람이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대다수 주민들과 문화든 혈연적으로 거의 관계가 없는 미국에서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관점이다.

한국으로 비유한다면 한국 사람이 아프리카나 호주 같은 지역의 고고학을 연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의 많은 대학에서 고고학 전공이 인류학과 같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지어 어떤 학교에서는 인문대학이 아니라 사회과학대학에 고고학이 속해 있기도 하다.

일반인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적 분류다.

하지만 해방 이후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고고학도 미국에서 공부를 한 연구자가 많았고, 학제도 그 영향을 받아서 현재와 같이 편제가 된 것이다.

 

'고고미술사학과'라고 편제가 된 학과 역시 마찬가지다.

고고미술사학과는 글자 그대로 고고학과 미술사 art history라는 두 학문을 함께 공부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유럽과 20세기 초반 미국 일부의 대학에서 이러한 학과의 편제를 유지했다.

유물의 아름다움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고고학과 미술사는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19세기 후반까지 그리스 Greece나 로마 Roma(영어 Rome)의 조각상이나 건축을 발굴하는 데에는 고고학과 미술사적 관점을 모두 필요로 했다.

이에 유럽의 전통적인 학문 체계는 고고학과 미술사가 같이 있고, 그 영향이 한국에도 미쳤다.

 

한편, 러시아 Russia는 미국과 상황이 비슷하다.

러시아는 우랄산맥 Ural Mountains을 너머서 시베리아 Siberia를 지배한 것이 4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러시아가 택한 방법은 달랐다.

러시아는 고고학을 역사학의 범주 안에 두었고, 인류학 anthropology이라는 용어 대신에 민족학 ethnography이 발달했기 때문에 고고/민족학을 함께 연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고고학은 역사학의 범주에 넣는지조차 의견이 다를 정도로 그 실제 적용은 각 나라마다 다르다.

누구나 다 아는 학문이지만 정작 그 학문에 대한 이해는 천차만별이다.

전공자도 많지 않는데 이렇게 중구난방식으로 이해를 하는 것은 지리환경이 다르고 학문으로 형성된 과정도 비교적 짧아서 나라마다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물건을 발굴해서 역사를 추론한다는 기본 원리는 모두 동일하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김영사, 2024)
2. 구글 관련 자료
 
2025. 10. 1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