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과거, 영원한 화두 본문

고고학이라고 하면 황금이나 보물을 찾는 신나는 모험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 발굴의 과정은 음침한 남의 무덤을 발굴하는 것과 크게 진배없다.
2024년 개봉해서 흥행몰이를 한 영화 <파묘>는 무덤의 이장을 둘러싼 이야기다.
으스스한 분위기의 영화를 보면서 고고학자에게는 일상적인 무덤을 파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포영화의 소재가 된다는 것에 혼자 쓴웃음이 났다.
이렇게 죽은 자의 영역을 침범하여 그들의 물건의 꺼내 가는 학문이 어떻게 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발달할 수 있었을까.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간에게 내재된 본능의 발로였을 가능성이 크다.
바로 과거를 생각하고 그것을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인류의 진화라는 숙명에 기인한다.
인간이 두발걷기(직립보행)를 시작하며 다른 영장류와 다른 진화 과정으로 간 것은 위험한 선택이었다.
상대적으로 두뇌가 발달한 대신에 육체적인 능력은 다른 동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30여 종의 인류가 살았지만 현생인류를 제외하고 모두 멸종한 것이 그 방증이다.
약점을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인간은 동물과 달리 학습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하고자 했다.
인간은 과거를 통하여 지식을 습득하고 후대에 전달하기 위하여 언어와 함께 주변 현상과 사물을 상징화시키는 방법을 발달시켰다.
인간의 이러한 진화적 습성은 구석기시대 후기에 처음 등장하는 인간만이 가지는 미술의 특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 Neanderthals(Homo neanderthalensis)은 동굴에 벽화를 그려서 그들이 보고 들었던 사물의 특징을 잘 잡아서 묘사했다.
이러한 장식과 예술의 핵심은 그들을 둘러싼 사물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사물을 모방하여 학습하는 습성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모방의 습성은 우리의 삶에도 잘 남아 있다.
아이의 소꿉놀이는 끊임없이 어른의 모습을 흉내 낸다.
또한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코미디 comedy의 기본은 흉내 내기나 패러디 parody이다.
코미디언 comedian의 그럴듯한 성대모사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폭소를 터뜨리는 이유도 이렇게 다른 사람과 정보를 모방하려는 인간의 습성에 있다.
이러한 대를 잇는 지식의 전달은 언어를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언어의 시작에 대해서는 학계에 논란이 다소 있지만 적어도 네안데르탈인 단계에서는 상당히 발달된 정보를 전달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언어로 정보를 전달하면서 대를 잇는 지식은 바로 과거의 정보를 통해서 미래의 불행을 예측하는 식으로 이어졌다.
과거 사람의 앞선 세대 경험을 습득하는 능력은 곧 생존을 가름하는 중요한 덕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정보를 상징적으로 받아들였고, 그들이 보는 사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예술품도 만들었다.
동굴벽화와 같은 예술품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4만 년 전부터 이러한 인식이 보인다.
그리고 이때와 동시에 유명한 이라크의 샨다다르 동굴 Shanidar Cave in Iraq 유적과 같이 무덤을 만들었다.
이후 그 뒤를 이어 세계로 확산된 현생인류는 각지에서 지금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무덤을 만들었다.

이렇게 과거를 꿈꾸는 인간의 본능은 지금까지도 이러지고 있다.
고고학의 발달로 옛 사람이 꿈꾸던 찬란한 과거란 없음이 증명되었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사람은 과거를 꿈꾼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애착은 '시간 여행(타임 슬립 time slip)'(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서로 연결된 타임라인이 이어지는 것)이라는 소재로 대중문화에서 발현된다.
<시그널>이나 <선재 업고 튀어>와 같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 <너의 이름은>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만화영화) animation까지 수많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시간을 쉽사리 뛰어넘고 또 다른 자아에 동화된다.
보통 시간 여행이 가지는 틀(포맷 format)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미개'한 과거로 간 현대인이 최신의 기술과 정보로 과거 사람들을 압도하는 경우가 있다.
간단한 일기예보와 스포츠 게임 결과의 예측으로 현대에서 평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과거에서는 엄청난 능력자가 될 수 있다.
현실에서는 평범한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서 무소불위의 능력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매력적이지 않은가!
영화 <백 투 더 퓨처 Back to the Future>처럼 미래로 가서 역대 스포츠 경기 기록을 가지고 로또를 사서 돈을 버는 식이다.
또 다른 타임 시간 여행의 유형은 어두운 지금의 모습을 뒤로 하고 찬란했던 자신의 전성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젊은 모습으로 돌아가거나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과 재회하는 따위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다시 맛보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상반된 관점은 우리가 과거를 바라보는 양면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사실 시간 여행은 어떠한 드라마보다 비현실적이다.
우리의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시간을 뛰어넘는 기술은 전혀 알려진 게 없다.
그러니 현실성만으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우연으로 스토리가 이어지는 드라마보다도 더 가능성이 없다.
그럼에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시간 여행을 주제로 한 드라마에 쉽게 감정이입을 하고 인기가 많은 이유는 과거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과거를 때로는 찬란하게, 때로는 원시적으로 바라보는 역사에 대한 이중적인 시각은 바로 시간 여행이라는 틀에서 주로 등장하는 두 종류의 이야기와 교차된다.
원시시대에 대해 떠올리는 심상(이미지 image)은 상반된 것이 교차된다.
세계사에서 바라보는 인류의 기원은 원숭이와 진배없는 모습을 한 털복숭이 사람이 맹수와 싸우는 불쌍한(?)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반면에 자기 나라의 기원이라면 현명해 보이는 지도자가 태양을 등지며 신천지를 바라보는 듯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런 현상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다른 사람들의 과거는 미개하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조상의 과거는 찬란하다고 생각하는 이런 이중성은 바로 시간 여행 드라마에 비춰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 Ancient Greece의 작가 헤시오도스 Hēsíodos(영어 Hesiod)는 시집 ≪일과 날≫에서 인간의 역사를 황금의 시대, 은의 시대, 구리(동銅)의 시대로 간주했다.
물론, 황금이나 은을 직접 사용하던 시기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는 바로 과거는 순수하고 행복했으나, 현대로 올수록 삶은 힘들어지고 퇴보한다는 생각의 발로이다.
이런 생각은 고고학이 등장한 이후에도 여전히 영향을 발휘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히틀러 Hitler의 측근으로 친위대를 지휘했던 하인리히 힘러 Heinrich Luitpold Himmler는 탐험대를 파미르고원 Pamir Mountains과 티베트고원 Tibet Mountains으로 파견해서 아리안족 Aryan의 뿌리를 찾고자 했다.
어딘가 신비스러운 산속에는 고대에 위대했던 자신의 조상이 살고 있었으리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과거를 아름답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성향이다.
사람은 과거 기억에서 안 좋은 것은 금방 잊고 좋은 추억만 남기려 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때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을 주로 한다.
지금은 고고학이 발달하면서 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로 이어짐이 밝혀졌고, 인간의 역사는 기술의 발달과 함께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고대 사람이 황금의 시대를 산 것이 아니라 동굴 속에서 초라하게 불을 피우며 고기를 뜯던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고대는 미개하다는 심상이 덧붙여졌다.
과거 역사를 원시적이라며 자신의 현재 모습을 위안하거나, 반대로 찬란한 시기로 간주하여 그때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거나 하는 과거에 대한 양면적인 인식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과거를 미개하게 보든 찬란하게 보든 현실에서 아쉬운 것을 과거에 빗대어서 해소하려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상일 것이다.
시간 여행 이야기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인류의 회귀 본능
이런 과거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고고학이 발달한 원동력이 되었다.
인간은 고대부터 조상의 물건을 모으고 그것을 해석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고대 근동의 아시리아 Assyria나 중국의 춘추시대부터 과거 유물을 모았다는 기록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서양에서는 15세기 무렵부터 1,000년을 끌어온 중세의 암흑시대를 끝낼 때에 그리스 Greece와 로마 Roma(영어 Rome)의 예술품을 수집해서 품평회를 하는 모임, 이른바 딜레탕티즘 Dilettantism(향락적享樂的 문예도락文藝道樂)이 유행했다.
이러한 딜레탕티즘은 근대 고고학의 시초가 되었다.
중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놀랍게도 지난 2,000년 동안 동아시아 정치철학의 근간을 이루었던 공자의 사상이 알려지게 된 것은 그 후손의 발굴에 의한 결과이다.
중국에서는 예술품 대신에 과거의 책을 다시 찾고자 했다.
한나라 때에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諸子百家(서기전 5세기 이후 중국에서 생겨난 다수의 사상가들)의 책을 다시 찾고자 했다.
한나라 때에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책을 다시 복원하려고 발흥한 '훈고학訓詁學'을 말한다.
특히 한나라 경제景帝(재위 서기전 157~서기전 141)의 아들 노공왕魯恭王이 공자 사당의 벽을 허물다 과두문자蝌蚪文字(마치 애벌레가 지나가는 듯이 흘려서 쓴 옛 글자)로 쓴 다량의 고문서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것을 공자의 후손 공안국孔安國이 사람이 알 수 있는 문장으로 풀어서 46권으로 정리한 ≪고문상서古文尙書≫를 펴냈다.
예전 집을 발굴해서 책을 발견했으니, 이것을 본격적인 훈고학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이 이야기가 맞는다면 진시황秦始皇(재위 서기전 247~서기전 210)의 출현과 분서焚書(책을 불살라 버림)를 예견한 공자의 덕에 지금의 유학이 발달한 셈이니, 정말 극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현재 그 실물 죽간竹簡(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되기 전 대나무 조각을 엮어서 만든 책)은 남아 있는 게 없으며, 발견 당시에도 이 유물을 직접 봤다는 사람은 없다.
고고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필자는 벽에서 공자의 책이 발견되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는 공자 활동 이후 약 300년 뒤에 일어난 일이다.
그사이에 한문의 서체가 완벽하게 바뀌었어도 알아보지 못할 리 없다.
지난 100여년 동안 발굴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많은 문자 가운데 해석할 수 없는 글자는 거의 없다.
심지어 5,000년 전의 신석기시대 문자도 해독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한문漢文은 가독성可讀性(인쇄물이 얼마나 쉽게 읽히는가 하는 능률의 정도)이 높다.
그럼에도 공안국이 다시 풀어서 번역했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아마도 당시 수많은 해석이 난무하니 자신의 해석에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극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공자 사당에서 발견됐다는 극적인 이야기 전개(스토리텔링 storytelling)는 다양한 설이 분분했던 한나라 때에 큰 설득력을 지녔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공자 사당의 벽에 경전이 묻혀 있다는 이야기의 진실을 어떨까?
이제까지 중국에서 수많은 고고학 자료가 발굴되었지만 집 안이나 벽에 경전을 묻었던 흔적은 발견된 적은 없다.
대신에 전국시대부터 한나라 시대에 이르는 시기의 귀족의 무덤에서는 죽간으로 만든 책이 종종 발견된다.
당시는 아직 종이가 발명되기 전이라 모든 책은 죽간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사람은 죽간을 이어서 만든 책을 둘둘 말아서 보관했다.
때로는 작고 긴 죽간을 통에 담아서 이동하는 도중 하나씩 뽑아서 읽기도 했다.
책을 쓰고 만드는 것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이기 때문에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실제 전국시대부터 한나라 때까지는 저승에 가서 읽으라고 죽은 귀족이 평소에 즐겨 읽던 죽간을 무덤에 같이 넣었다.
그러므로 벽보다는 무덤에 들어간 죽간을 발굴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한나라 때에는 이미 도굴이 널리 횡행했다.
초나라 장수 항우는 진시황의 무덤을 도굴하려 했고, ≪삼국지≫로 유명한 조조도 옛 무덤을 파서 군자금을 마련할 정도였다.
그런 도굴 과정에서 죽간은 심심치 않게 나왔을 것이다.
다양한 경로로 다시 세상에 나온 죽간은 서로 정통성을 내세웠고, 그 가운데서도 공자의 후손이 인정한 공자 사당에서 나온 죽간이라는 후대의 이야기와 해석이 덧붙여져서 한나라 대에 널리 퍼졌을 것이다.

실제로 고고학자도 완전히 사라져 버린 책을 발굴하기도 한다.
1972년 문화혁명의 서슬이 시퍼렇던 중국에서 우연히 산둥(산동山東)성 린이(임기臨/临沂)현의 인췌산(은작산銀雀山)에서 발굴된 한나라 무덤에서 죽간이 발견된 적이 있다.
분석 결과 대부분 병법서였다.
아마 무덤의 주인은 군사와 관계된 일을 하거나, 아니면 요즘 말로 '밀리터리 military 애호가(밀리터리 덕후, 밀덕)'였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죽간 중 일부는 그동안 전해지지 않았던, ≪손자병법孫子兵法≫으로 유명한 손무孫武(서기전 545?~서기전 470?)의 손자인 손빈孫臏(서기전 382~서기전 316)이 쓴 ≪손빈병법孫臏兵法≫이었다.
손빈 역시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군사전략가의 길을 걸었고, 자신의 병법을 남겼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전해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막연히 할아버지의 책을 증보해서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것으로 추정했었다.
손빈에 대한 오해는 그가 죽고 나서 2,500년이나 지나서야 풀렸다.
아마 한나라 때에 훈고학이 발달하면서 무덤을 도굴하면 이런 고대의 지혜를 담아놓은 죽간이 비싸게 거래되었을 것이다.
그중에는 가짜도 많았을 것이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침면서 몇 차례에 걸쳐서 후대에 덧붙여진 책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여하튼 한나라 때 훈고학이 발달하는 데에는 이러한 고대의 무덤을 발굴해서 사라져 버린 고대의 지혜를 얻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과거 유물은 고대의 잃어버린 지혜를 찾는 주요한 도구가 되었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이런 골동품을 모은 흔적이 있다.
비파형동검이 엉뚱하게 신라시대 주거지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고, 백제시대 주거지에서 비파형동검문화 시기의 청동 도끼가 나오기도 한다.
일본 홋카이도(북해도北海道) 치토세(천세千歳)의 조몬(승문縄文)시대 주거지에서는 백악기의 화석유물 암모나이트 ammonite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런데 치토세 근처에는 암모나이트 산지가 없다.
멀리서 교역을 해야만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니, 특별히 수집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 사람은 옛것을 수집하고 그것을 소중히 했다.
과거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조상 숭배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의 발로였다.
이렇듯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지탱해가는 지식의 원천이기에 사람은 언제나 과거를 알고 싶어 했다.
고고학은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었다.
고고학은 인류의 영원한 화두, 과거라는 인류 공통의 관심이 만들어낸 학문이었다.
○유토피아 Utopia(이상향理想鄕)에 대한 향수
몇 년 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雪國列車>라는 영화가 크게 흥행몰이를 한 적이 있다.
주요한 이야기는 인간의 과욕으로 다시 빙하기가 도래한 지구 위에 유일하게 생존한 사람들이 열차를 타고 궤도를 무한히 돈다는 내용이다.
영화는 프랑스에서 출판된 같은 이름의 만화를 각색한 것이다.
원작에서는 세 개의 이야기가 엮여서 디스토피아 dystopia(역逆유토피아: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이 극단화한 암울한 미래상) 시대의 '노아의 방주'에 탄 군상群像(떼를 지어 모여 있는 많은 사람)을 그렸다.
인간의 전쟁으로 지구가 한랭화되고 그 안에서 생존한 사람이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목적 없는 여행을 계속한다.
그들에게 남겨진 희망은 다시 이전처럼 땅에서 사는 것이고, 희미하게 전파에 잡힌 음악을 찾아 사생결단으로 궤도 이탈을 해서 마지막 모험을 한다는 내용이다.
설국열차라는 디스토피아적 상황에서 인간은 과거의 따뜻했던 지구를 갈망하고, 그들의 바람과 기대는 고고학적으로 표출된다.
인간이 스스로 환경을 파괴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이 갈수록 비참해지는 상황이다.
이럴 때에 사람들은 과거에 의지하고 과거를 열망한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고위층에 속하는 어떤 신부는 과거의 유물을 기를 쓰고 모으고, 남아 있는 과거의 영화나 영상을 보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이러한 광경은 바로 고고학의 시초인 딜레탕티즘과 맞닿는다.
고대 그리스 이래로 19세기까지는 고대 사회를 찬란한 유토피아로, 현실을 디스토피아로 묘사했다.
즉 고고학은 찬란한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토머스 모어 Thomas More(1478~1535)는 ≪유토피아 Utopia≫라는 책에서 과거를 이상향으로 보면서 플라톤 Platon(영어 Plato)이 우화를 들기 위해서 예를 들었던 아틀란티스 Atlantis를 실제 있는 이상향의 나라로 설정했다.
이것은 지금도 종종 아틀란티스 대륙을 찾았다는 가십성性 gossip 기사(신문, 잡지 따위에서 개인의 사생활에 대하여 소문이나 험담 따위를 흥미 본위로 다룬 기사)가 인터넷 internet(누리망)에 난무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20세기에 과학이 무한히 발전하면서 우리의 현실을 계속 발달하여 유토피아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21세기가 되면서 다시 세계는 고립되고 세계화도 급격히 붕괴되어 가면서 '레트로 retro(복고復古)'가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흔히 고고학이라고 하면 미개하고 원시적인 과거를 해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지금보다 뛰어난 사회제도와 물질문화를 향유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관념은 근대 이후에 등장한 것일 뿐, 그 이전에는 과거를 이상향으로 보기도 했다.
만화 ≪설국열차≫는 우리의 미래에 고도로 발달한 현대 문명도 붕괴될 수 있다는 메시지 message(전언傳言)를 전한다.
그렇게 본다면 고고학은 인간의 이상향이었던 유토피아를 다시 보여주어 인간이 현실을 탈피할 비상구를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과거가 지금보다 찬란했는지 또는 미개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사람은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끊임없이 해석한다.
따라서 과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해석에 해석을 더하는 뫼비우스의 띠 Möbius strip와도 같다.
이런 점에서 고고학은 현대라는 렌즈 lens로 과거를 바라보는 카메라(사진기) camera와 같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김영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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