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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암 강세황 '자화상'

새샘 2025. 11. 3. 11:23

"이상한 차림의 자화상"

 

강세황, 자화상, 1782, 비단에 채색, 88.7x51.0cm, 보물 제590호, 국립중앙박물관(출처-출처자료1)

 

꼬장꼬장한 얼굴에 눈빛이 단단한 늙은 선비가 관모官帽(관리가 쓰도록 정하여진 일정한 규격의 모자)를 쓰고 평상복 차림으로 앉아있다.

딱 봐도 차림새가 예사롭지 않다.

 

이 인물이 관료이면서 화가였던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다.

그런데 화가가 '자화상自畵像'(스스로 그린 자기의 초상화)을 전신全身(온몸, 몸 전체)으로 그린 것은 조선시대에 처음 있는 일이다.

 

강세황은 몰락한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데, 생을 바쳤다.

대대로 관직을 지낸 명문가의 집안 출신이지만 강세황 대에 와서 정치의 출사가 가로막히는 불운에 처했다.

1728년 무신란武臣亂(이인좌李麟佐 의 난)에 연루되어 오랜 동안 과거시험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의 자화상과 자전自傳(자서전自敍傳)인 ≪표옹자지豹翁自誌≫는 인생역경을 이겨낸 불굴의 의지로 빛난다.

 

서울에서 살림살이가 기울자 강세황은 처가가 있는 안산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30여 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며 자신의 예술관을 갈고 닦았다.

안산에는 실학사상의 대가 성호 星湖 이익 李瀷(1681~1763)과 남인문사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강세황은 그들과 교류하며 폭넓은 문화적 소양을 쌓는 한편 그림으로 존재감을 알렸다.

이러한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1763년 그의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정치에 나간 뒤, 1773년 예순 살인 강세황에게도 벼슬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 뒤 10년 동안 강세황의 관료생활은 승승장구하여 일흔 살 때는 연로한 고위 문신을 예우하던 '기로소耆老所'(조선 시대에, 70세가 넘는 정이품 이상의 문관들을 예우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구)에 입소하는 영예를 누린다.

 

강세황은 송도松都(지금의 개성開城)를 여행하며 그린 ≪송도기행첩松都紀行帖≫을 남겼다.

이 화첩에는 대부분 서양화의 원근법을 적용한 수채화풍의 작품과 사실화풍의 산수화가 들어 있다.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서양화 기법을 훨씬 더 현실감 있게 발전시킨 것이다.

강세황이 활약했던 18세기는 문인들의 서화를 수집하는 수장의 폭이 넓어지는데, 왕공王公(왕王과 공公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서 신분이 높은 사람)·사대부士大夫(사士와 대부大夫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서 문무 양반文武兩班) 중심에서 중인들까지 확대되었다.

사회 분위기는 강세황의 편이었다.

 

1782년 일흔이 된 강세황은 <자화상>을 제작한다.

연로한 나이에 관모를 쓰고 도포를 입은 조합이 낯설다.

그는 <자화상>에서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까?

작품에는 푸른색의 평복을 입고, 허리에 붉은 세조대細條帶(가느다란 띠)를 착용하고, 머리에 관모를 썼다.

눈은 약간 아래로 응시하며 주름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흰 수염은 선비의 고결한 이미지를 상징한다.

푸른색의 옷은 음영으로 처리하고, 옷 주름으로 인체의 뼈대를 표현했다.

단정하게 앉은 자세에서 옹골찬 정신이 감지된다.

 

그림의 배경에는 '자화상찬自畵像讚'(자기가 그린 그림을 스스로 칭찬하는 글)을 적어두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수염과 눈썹이 희다. 머리에는 관리의 모자를 쓰고 몸에는 야인의 옷을 입었네. 마음은 산수에 있지만 이름은 조정에 오른 것을 볼 수 있네. 가슴에는 만권의 서적을 간직하였고 붓은 오악을 흔든다.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아주겠는가? 나 혼자서 낙으로 삼는다. 옹의 나이는 일흔, 호는 노죽이다. 그의 초상은 그가 그린 것이며, 찬문도 스스로 지은 것이다. 임인년任寅年(1782)."

 

이 글에서 강세황이 <자화상>을 그린 동기와 그림 설명을 확인할 수 있다.

평복을 입은 것은 과거 안산시절 자신의 모습이고, 관모를 착용한 것은 현재 관료인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자화상은 사진기가 없던 시절의 '사진寫眞'이다.

자화상은 개인사를 넘어 한 시대의 초상이기도 하다.

강세황의 <자화상>은 흐트러진 삶의 자세를 곧추세우게 하는 힘이 있다.

<자화상>은 강세황의 자서전이자 인생이다.

그는 힘겨운 생을 역전시킨 승리자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초상을 후세에 전한다.

 

※출처

1. 김남희 지음, '옛 그림에 기대다', 2019. 계명대학교 출판부

2. 구글 관련 자료

 

2025. 11. 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