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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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오래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광대한

새샘 2025. 11. 20. 12:09

영국에서 발견된 25만 년 전 주먹도끼. 가운데 박혀 있는 조개화석은 고대인이 신기한 형태롤 일부러 활용해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케임브리지대학교 박물관 소장)(출처-출처자료1)

 

흔히 고고학이라고 하면 생각하는 오해가 그 시간적인 범위이다.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어떤 사람은 고고학자가 공룡을 발굴한다고 생각한다.

고고학의 범위는 인간이 살던 모든 시대를 대상으로 한다.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인류의 시작을 400만 년 전으로 보니, 대략 그 정도가 고고학의 시작이 될 것이다(참고로 공룡은 7,000만 년 전에 멸종했으니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데 200만~400만 년 전이라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Australopithecus 또는 거와 비슷한 호미니드 hominid(사람과科 동물로서 흔히 '유인원類人猿'으로 번역)가 활동하던 시기로 아프리카 대륙에 한정되며 별다른 석기가 없다(최근 200만~300만 년 전에도 석기를 사용했다는 주장이 대두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 슬기사람)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에 고고학 안에서도 매우 한정된 학문 분야인 '고인류학古人類學 paleoanthropology)에서 주로 논의된다.

 

현생인류와 관련이 있는 호모속의 선조인 호모 에렉투스(곧선사람) Homo erectus는 꽤 발달된 아슐리안 Acheulean 계통의 석기(주먹도끼)를 사용하며 약 170만 (200만~160만 년 사이로 추정되며 학자들마다 조금씩 이견이 있다) 전에 아프리카를 탈출하여 세계 곳곳으로 확산했다.

석기를 사용하는 호모 에렉투스가 세계 곳곳에 확산되는 시점부터 비로소 본격적인 고고학 연구가 시작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고고학이 연구하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시대는 언제일까.

많은 사람이 고고학은 선사시대 또는 삼국시대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고고학의 시간적인 범위는 고려, 조선시대는 물론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도 포괄한다.

현대 시기를 발굴한다는 것이 얼핏 이해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이에 대한 수요는 최근 많아지고 있다.

그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50년대에 영국에서 18세기의 산업혁명과 관련된 유적을 조사하면서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산업혁명 고고학 industrial archaeology으로 불리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방공호를 조사하는 '방공호고고학'으로 현대 시기 발굴이 시작되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며 세계 곳곳은 경제개발로 급격히 산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성장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를 둘러싼 물질문화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의 흔적을 제대로 발굴하고 남기는 작업은 매우 시급하다.

한국의 경우도 20세기 이후의 고고학은 많은 이슈 issue(쟁점爭點)가 되고 있다.
예컨대 2023년 하반기에 개발된 경복궁의 월대月臺(궁궐의 정전正殿, 묘단, 향교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가 좋은 예이다.

일제가 훼손한 월대를 복원하기 위하여 고고학자가 투입되었고 그 과정에서 일제 때 월대 위를 지나간 전차 철로도 파악되었다.

지금도 서울 사대문 안에는 수많은 근대의 유적들이 있다.

대한민국 시기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은 많은 주택지에 아파트가 건설되고 예전에 건축된 아파트는 다시 재건축되는 과정이 반복된다.
대한민국이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난 1960~1980년대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이제 발굴 조사가 필요한 시간이 되었다.

고고학의 시간적 경계는 이렇듯 곳곳에서 허물어지고 있다.

 

고고학자가 다루는 시간의 범위는 몇백만 년을 넘나들지만, 정작 발굴은 엄격하게 법적으로 제한되고 있다.

고고학 자체는 학문의 일부이지만, 발굴 작업에는 유적이 어쩔 수 없이 파괴되기 때문에 제한을 하는 것이다.

고고학 발굴이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경우는 새로운 건설 사업과 맞물려서 땅속의 유적이 파괴될 때이다.

그러니 고고학적인 발굴은 순수한 고고학의 영역보다 넓어서 순수 학문과 사업의 경계에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고고학에 종사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매장문화재를 발굴하는 재단에 소속되어서 현장 발굴을 담당한다.

예컨대 2022년에는 발굴 조사가 1,827건이 이루어졌고 전체 비용은 3,027억 원이었다.

대략 1건당 1억 원이 넘는 비용이 소요된다.

이러한 규모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지탱하는 배경이 된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뫼비우스의 띠 Möbius strip'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 미래를 알 수 있다고들 말한다.

그것은 고고학도 마찬가지이다.

고고학자는 과거를 발굴하지만, 그 목적은 단순한 과거 자료의 수집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에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은 크게 보면 역사학의 범주에 속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역사학과 다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고고학이 다루는 자료에 있다.

지금도 날마다 몇백 건의 논문이 발표되고 몇만 건의 유물이 출토된다.

그러나 매일 고고학자가 다루는 자료는 급격하게 바뀐다.

반면에 문헌을 중심으로 하는 고대사는 큰 내용이 바뀌기는 어렵다.

50년 전에 남한의 청동기시대는 서기전 7세기부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보다 거의 1,000년이나 빠른 서기전 15세기부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독자는 역사책에서 "구석기시대에는 토기는 없었다"고 배웠겠지만 30여 년 전부터 구석기시대의 토기가 사방에서 발견되었고, 지금 대부분의 고고학자는 아직 빙하기였던 2만 년 전부터 토기를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거가 바뀌었을까?

그렇지 않다.

객관적인 과거는 변하지 않지만, 고고학자가 발굴하는 유물이 계속 늘어났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느끼고 배우는 과거는 변한다.

200년 전만 해도 서양 사람은 역사가 6,000년이고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50년 전에는 구석기시대 사람은 다들 미개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보면 모두 틀렸다.

인간의 역사는 몇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구석기시대인 1만 5,000년 전에 이미 토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과거의 모습이 나올지 모른다.

바로 이 점이 역사학과 고고학의 가장 큰 차이이다.

물론 역사학도 새로운 문헌자료가 등장하고, 또 기존에 알려진 문헌을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고학만큼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자료가 등장하는 일은 정말 드물다.

 

이런 점에서 고고학은 진정한 미래 지향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고고학이 미래를 지향한다고 해서 당장 다음 주의 주가를 예측한다든지 범죄를 예방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설사 몇천 년 전의 지중해를 둘러싼 고대문명의 교역을 배운다고 해서 당장 내년도 해외수출업의 대안을 마련할 수는 없다.

그 밖에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수많은 현상을 예측하는 데에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고고학이 미래지향적인 학문인 이유는 바로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행동과 생존을 위한 방법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필자 수업을 듣는 법학과 학생이 고고학은 현실과 관계없는 과거의 지나간 일을 공부하는 것인데 학문의 생존을 위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식으로 포장하는 것은 아니냐고 반문했다.

필자는 그 학생에게 판결을 내릴 때에 과거의 판례를 중요시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앞날을 과거 자료에 근거해서 판단한다.

증권계의 분석가(애널리스트 analyst), 법조인, 그리고 의료인과 같은 대부분의 전문직은 다양한 과거 자료를 통해서 앞날을 판단한다.

심지어 인공지는 AI의 심층학습(딥러닝 deep learning)이 구사하는 알고리듬(알고리즘, 셈법) algorithm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의 자료를 근거로 앞날을 그럴듯하게 예측한다.

인간에게 과거란 단순하게 지나간 일이 아니다.

슬기사람은 발달된 지능으로 자신의 과거 자료를 이용하여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해왔다.

그 몇십만 년 동안 쌓인 노하우(비결) knowhow로 인간은 자신의 문명을 일구어왔다.

혹자는 첨단 학문은 최근의 자료를 분석하지만 고고학자는 우리와 관계없는 머나먼 과거의 자료를 연구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란 기준은 없다.

슬기사람만 해도 약 10만 년 전에 등장했을 때의 두뇌와 신체 구조는 지금 디지털시대의 우리와 전혀 차이가 없다.

심지어 슬기사람 이전 2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 Neanderthals(Homo neanderthalensis)의 유전자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고, 그들이 전한 유전자에는 코로나바이러스 coronavirus를 잘 막아내는 구조가 있다는 연구도 등장했다.

이렇듯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 자신의 모습은 그 시간과 공간에 제한이 없다.

다양한 환경과 시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배우고 미래를 판단했다.

고고학은 그 시간과 공간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지만 어쨌든 기본으로 하는 자료가 인간이 직접 남긴 물질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김영사, 2024)
2. 구글 관련 자료

 

2025. 11. 20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