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7부 세계의 중심에 선 서양 - 22장 제국주의와 식민주의(1870~1914) 8: '아프리카 쟁탈전'과 콩고 본문

글과 그림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7부 세계의 중심에 선 서양 - 22장 제국주의와 식민주의(1870~1914) 8: '아프리카 쟁탈전'과 콩고

새샘 2026. 6. 25. 14:34

1886년 무렵의 아프리카(출처-출처자료1)

 

1914년 무렵의 아프리카(출처-출처자료1)

 

아프리카 쟁탈전(1870~1908년)
유럽의 중앙아프리카 진출
프랑스의 튀니지 획득
베를린 회의
독일의 카메룬 및 탄자니아 식민지화
프랑스의 서아프리카 연합
콩고가 벨기에의 식민지가 됨
1870년대
1881
1884년
1884년
1895
1908년

 

 

프랑스 France의 서아프리카 west Africa로의 팽창은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 Europe의 탐욕을 보여준 단지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주요 유럽 강대국들이 정복하고 식민화한 범위와 속도는 공식적 통제력이 놀랍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결과들은 대단한 것이었다.

1875년 아프리카 대륙의 1퍼센트만이 유럽의 수중에 있었다가 1902년에 이르러 이 수치는 90퍼센트에 달했다.

유럽 강대국들은 수송과 통신의 논리적 문제에 숙달했고 질병을 저지하는 방법을 익혔으며 신무기를 갖고 있었다.

1889년 영국군이 채택하고 영국 식민지 군대가 최초로 사용한 맥심 기관총 Maxim gun은 분당 500발에 달하는 탄알을 난사했다.

이 맥심 기관총은 원주민 군대와의 교전을 대학살로 변질시켰고 무장 저항을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콩고 자유국

 

1870년대 영국 UK은 아프리카 북부와 서부에 그리고 남부 및 동부 해안을 따라 새로운 제국주의적 관계를 형성했다.
유럽 개입의 새로운 단계는 바로 아프리카 대륙의 심장부를 강타했다.

19세기 후반까지 이 영토는 유럽인들의 영역 밖에 있었다.

콩고강 Congo River과 잠베지강 Zambezi River 같은 전략적 강들의 급류는 내륙으로 이동하는 것을 힘들게 만들었고, 유럽인에게 저항력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열대성 질병은 대부분의 탐험가들에게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1870년대에 중앙아프리카 central Africa에 불어 닥친 새로운 경향은 모종의 결과들을 만들어냈다.

그 대상은 콩고강 주변의 비옥한 계곡들이었고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은 벨기에 Belgium 국왕 레오폴드 2세 Léopold II(재위 1865~1909)에게 고용된 벨기에인 Belgians 집단에게 사적으로 재정 지원을 했다.

그들은 헨리 모턴 스탠리 Henry Morton Stanley(1841~1904)의 발자취를 뒤따랐다.

스탠리는 나중에 영국 국민이 되어 기사 작위를 수여받은 미국 USA의 신문기자이자 탐험가였다.

스탠리는 그 어떤 유럽인 Europeans도 이전에 발을 디딘 적인 없는 울창한 정글 jungle로 뒤덮인 영토를 자신의 칼로 길을 내며 나아갔다.

그의 '과학적' 여정은 벨기에 브뤼셀 Brussels in Belgium에 아프리카 문화 연구자들과 학생들의 협회를 창설하는데 영감을 주었다.

이 협회는 실제로는 레오폴드 2세가 세운 상업적 회사를 위한 전위 조직이었다.

야심찬 명칭을 단 '콩고 탐험과 문명을 위한 국제협회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Exploration and Civilization of the Congo'는 1876년에 설립되었고, 곧이어 콩고강 분지 전역을 상업적 탐험에 개방했던 지방 정예(엘리트 elite)들과의 조약을 맺었다.

야자유와 천연 고무와 같은 방대한 자원들과 광물(다이아몬드 diamond를 포함)에 대한 기대는 이제 유럽인의 손길이 미치는 범위 안에 있었다.

 

레오폴드 2세의 회사가 직면한 가장 강력한 저항은 다른 식민 강대국, 특히 새로운 점령 추세에 반대했던 포르투갈 Portugal로부터 왔다.

1884년 콩고강 분지에 대한 지배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를린 Berlin에서 회의가 소집되었다.

이 회합은 유럽 강대국 정치의 대가인 독일 제국의 수상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 Otto von Bismarck-Schönhausen(1815~1898)가 의장을 맡아보았고,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주도적인 식민 국가들이 참석했다.

베를린 회의 Congress of Berlin는 유럽의 경제적·정치적 팽창의 새로운 국면을 위한 기본 원리를 확립했다.

유럽의 양대 해외 제국인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유럽에서 떠오르고 있는 가장 강력한 제국인 독일 Germany은 세력을 규합해 콩고 문제를 해결했다.

이들 열강의 명령은 19세기 자유주의와 완벽하게 조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콩고 계곡은 자유 무역과 통상에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이 지역에서 일부 이슬람교 왕국 Islamic kingdoms들이 여전히 실시하고 있는 노예무역은 자유노동을 옹호하게 되면서 억압되었다.

그리고 콩고 자유국 Congo Free State(CFS)이 세워졌다.

이와 더불어 이 지역에 대한 유럽의 어떤 단일 국가의 공식 지배권도 거부되었다.

 

콩고 자유국은 실제로는 레오폴드 2세의 개인 회사가 운영했고 이 지역은 유럽 대기업의 무제한적 착취에 노출되어 있다.

이전의 노예무역은 억제되었지만 유럽 회사들은 베를린에서 보장된 아프리카인의 '자유' 노동을 취하며 노동자들을 열악한 상황에 두었다.

유럽 모든 나라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큰 방대한 면적의 토지는 다이아몬드 광산과 야자유, 고무, 코코아 cocoa 따위를 추출하기 위한 대농장이 되었다.

아프리카인 Africans 노동자들은 소름끼치는 상황에서 일을 했는데, 그들에게는 정말로 의약품이나 위생이 전혀 없었고 너무나도 적은 음식이 제공되었으며 유럽 공장 노동자들의 생산 시간표를 오히려 약과로 만들 정도로 강도 높은 시간표에 따라 일해야 했다.

몇십만 명의 아프리카인 노동자들이 질병과 과로로 사망했다.

유럽인 경영자들은 중앙아프리카의 서로 다른 계절주기를 무시했기 때문에 연중 내내 있었던 수확들이 사라져버리면서 기근이 다가왔다.

건기의 더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종종 유럽의 공장에서 중장비가 처리했음직한 분량의 짐을 등에 지고 날랐다.

수많은 아프리카인은 유럽이 원하는 상품들을 수확하는 일을 강요당했다.

그들은 콩고 자유국의 법을 만든 대농장 회사들에 대해 몇십 개 항목의 사소한 위반들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구타와 절단의 위협을 받으며 임금을 거의 받지 못하거나 전혀 받지 못한 채 일을 했다.

결국 콩고 자유국의 추문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도 심각했다.

세대를 초월한 작가와 언론인들은 독단적 야만 행위와 엄청난 규모의 고통을 널리 알렸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폴란드 Poland 출신 영국 소설가의 조지프 콘래드 Joseph Conrad(1857~1924)의 ≪어둠의 심장 The Heart of Darkness(1899)≫이었다.

1908년 벨기에는 콩고를 벨기에 식민지로 만들면서 콩고를 직접 관리해야만 했다.

노예제나 다름없는 제도를 시행함으로써 유럽 산업에 거대한 신흥 원료 공급지로 기여한 거대한 대농장 회사의 활동에 기껏해야 소수의 제한들만이 가해졌다.

 

 

○아프리카의 분할

 

콩고의 점령과 그로 인한 거대한 물질적 부의 약속은 식민 강대국들로 하여금 자국의 소유지를 확장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1880년대까지 '아프리카 쟁탈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중앙 및 남부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들에서 고무나무 숲이나 다이아몬드 광산들에 관한 이야기들로 더욱 촉진되었다.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합의된 보장들은 유럽인을 더 이상의 단계로 나아가게 해주었다.

프랑스와 포르투갈은 자국의 소유지들을 증대시켰다.

이탈리아 Italia(영어 Italy)는 영국이 소유한 토지와 에티오피아 Ethiopia 독립 왕국 옆에 있는 홍해 Red Sea를 따라 있는 영토들로 이동했다.

 

독일은 상대적으로 뒤늦게 해외 제국의 길로 들어섰다.

비스마르크는 경제적 또는 정치적 이익을 거의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사업에 관련되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그는 영국이나 프랑스 그 어느 쪽이 아프리카를 지배하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독일은 전략적 위치에 있는 식민지들을 장악했다.

카메룬 Cameroon과 오늘날의 탄자니아 Tanzania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독일의 식민지들은 더 오래되고 한층 더 확고한 강대국들의 영토를 갈라놓았다.

독일인 Germans은 가장 열정적인 식민주의자들은 아니었지만, 1900년 초 독일령 서남아프리카(오늘날의 나미비아 Namibia)의 헤레로인 Herero people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독일인은 마을을 불태웠을 뿐만 아니라 헤레로인을 거의 절멸시킨 인종 학살이라는 사악한 군사 행동으로 대응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자신들만의 야망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는 대륙을 서에서 동으로 가로질러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은 1898년 프랑스가 수단 Sudan에 있는 파쇼다 Fashoda(오늘날의 남수단 코도크 Kodok, South Sudan)로 원정을 떠난 중요한 이유였다.

주로 남부 및 동부 아프리카에 있었던 '아프리카 쟁탈전'에서 영국의 역할은 다이아몬드계의 거물이자 식민지 정치인이면서 제국주의 공상가인 세실 로즈 Cecil John Rhodes(1853~1902)의 꿈과 경력으로 요약된다.

1870년대와 1880년대에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돈을 벌었고 다이아몬드 광산 회사인 드비어스 DeBeers를 세운 로즈는 1890년 영국의 케이프 식민지 Cape Colony의 수상이 되었다(그는 재산의 일부를 미래의 제국 지도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로즈 장학금의 설립을 위해 옥스퍼드 대학교 University of Oxford에 남겼다).

독립 공화국을 보유한 보어 Boers 정착민들과의 불편한 동맹 그리고 런던 London으로부터의 다양한 수준의 지원에 힘입어 로즈는 두 가지 원대한 개인적이면서도 제국주의적인 목적을 추구했다.

개인적 목적은 다이아몬드 위에 남부 아프리카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제국 '로디지아 Rhodesia'는 자랑스레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 Union Jack을 휘날리겠지만 이윤은 로즈의 개인 회사로 가게 될 것이다.

뇌물, 이중 거래, 영국과 보어 정착민의 세심한 연합 정치, 전쟁, 명백한 절도 따위를 통해 로즈는 그 대부분이 남부 아프리카의 사바나(열대초원) savanna에 있는 오늘날의 잠비아 Zambia, 짐바브웨 Zimbabwe, 말라위 Malawi, 보츠와나 Botswana와 같은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토를 분할하는데 일조했다.

로즈는 한층 더 광범위한 제국주의적 전망(비전 vision)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1890년대 말의 영국 식민지 장관인 조지프 체임벌린 Joseph Chamberlain(1836~1944)과 공유했던 전망이었다.

이러한 전망의 첫 번째 부분은 케이프타운 Cape Town에서 카이로 Cairo에 이르는 철도 건설이라는 목표로 상징적으로 나타났던 동부 아프리카 전역을 따라 영국이 주둔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이 제국이 영국을 자급자족적으로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영국의 산업이 자국의 식민지들로부터 실어온 상품과 원료를 관리하고, 그런 다음에 많은 완제품들을 이들 식민지로 다시 수출함으로써 가능했다.

일단 잠비아와 로디지아 Rhodesia의 영토를 장악하자 로즈는 자신이 이 지역 유럽 정착민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1899년에 즉각적인 전쟁을 불러왔던 충돌이었다.

 

전략적 이점, 다이아몬드, 유럽의 자부심 따위를 둘러싼 이 투쟁은 아프리카 쟁탈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유럽 열강들은 독일 황제 빌헬름 2세 Wilhelm II(재위 1888~1918)의 유명한 말처럼 '양지陽地 a place in the sun'를 추구하면서 아프리카를 더욱더 직접적인 식민지 통치 아래 두었다.

그것은 이 대륙의 자원들을 빼앗기 위한 회사들이 계획되고 운영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규모의 약탈이 자행되게 만들었다.

프리카인 Africans은 유럽의 이해관계에 우호적인 지방 정예들로 하여금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문자 그대로 군림하는 것을 허용해주었던 유업의 직접적인 통제와 간접적인 지배가 결합된 형태의 통치에 직면했다.

아프리카 분할은 국제 및 국내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신제국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사례였다.

 

※출처

1. 주디스 코핀 Judith G. Coffin·로버트 스테이시 Robert C. Stacey 지음, 손세호 옮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하): 근대 유럽에서 지구화에 이르기까지, Western Civilizations 16th ed., 소나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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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6. 2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