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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두 번째 궁금증-고려 시대 무신정권의 대몽 항쟁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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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두 번째 궁금증-고려 시대 무신정권의 대몽 항쟁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요?

새샘 2026. 6. 25. 22:16

몽골 침입로(출처-우리역사넷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eh/view.do?levelId=eh_r0153_0010&code=ganada)

 

정요근: 1170년 무신정변으로 시작된 무신정권은 무신 집정자의 잦은 교체에도 불구하고 1270년까지 10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무신정권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우호적으로 내리기 어렵습니다.

 

정권 유지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세력에 대한 숙청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권력을 공고히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정권 유지의 정당성을 담은 이념이나 사상이 빈곤했던 만큼, 개혁의 추진이나 민생의 안정보다 권력의 유지에 필요한 물리적 기반 확보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1231년부터 1259년까지 이어진 대몽 항쟁 기간에 최씨 무신정권은 강화도로 피난 가서 항쟁을 일관되게 이어갔습니다. 몽골 Mongolia의 침략에 굴복하지 않았던 점은 높게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그 과정에서 일반 백성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가장 피해가 컸던 1254년의 경우, 전쟁으로 죽은 사람의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고 몽골군에 끌려간 사람만 206,800명이었다고 합니다. 무신정권은 강화도에서 근근이 버텼지만, 지방 사회는 사실상 초토화된 상황이었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전쟁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터전을 잃고 살상을 당했지만, 최씨 정권은 개의치 않고 강화도에서 권력을 이어 나갔습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실질적인 협상은 진정으로 추진하지 않았고, 미봉책과 시간 끌기로 몽골이 전쟁을 포기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는 몽골과의 화친이 최씨 정권의 권력 유지에 커다란 장애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정권의 유지가 백성의 생명과 안전보다 훨씬 중요했던 셈입니다.

그런 까닭에 최씨 정권이 무너진 뒤 몽골과의 화친이 이뤄지자, 온 나라 백성이 기뻐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의 생계가 안정되고 안전이 유지되어야 나라와 정부가 존재의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1. 박현도, 곽민수, 강인욱, 정요근, 허준 지음, 역사를 보다 2(믹스커피, 2025)
2. 구글 관련 자료
 
2026. 6. 2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