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단원 김홍도 "황묘농접도" 본문
"통통한 고양이, 건강을 누리소서 축원하네"
양지바른 풀밭 위에 화사한 빛깔 잔치가 벌어졌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환해 보이는 주인공들은 주황빛 새끼고양이와 검정빛 큰 제비나비, 그리고 고운 주홍색 패랭이꽃과 수줍은 자주색 제비꽃이다.
고양이는 눈이 호박씨처럼 오그라든 채 호기심어린 눈길로 훨훨 나는 나비를 올려다본다.
귀를 오똑 세우고 고개를 돌리니 그렇지 않아도 통통한 몸이 귀여워 꼭 끌어안고 싶다.
나비는 활짝 날개를 폈는데 긴 날개꼬리가 우아하기 그지없다.
정말이지 저렇듯 짙푸른 물감을 써서 나비를 가볍게 허공에 떠오르게 한 솜씨는 일품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가운데 부분에 하얗게 긁힌 상처가 있다.
'고양이가 나비와 노는 그림' 즉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는 생신 축하선물이다.
중국어로 고양이 묘猫는 칠십노인 모耄, 나비 접蝶은 팔십 노인 질耋 자와 발음이 같다.
그래서 각각 칠팔십 세의 노인을 상징하는데, 고양이가 나비를 바라보니 칠십 고개를 넘기고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께 드린 그림인 듯하다.
왼편의 크고 작은 돌은 두말할 것 없이 장수의 상징이다.
오랜 세월을 지내 오면서 표면에 푸르스름한 이끼가 끼었다.
패랭이꽃은 석죽화石竹花다.
죽竹은 축하한다는 축祝 자와 통하니 역시 '돌처럼 장수하시기를 빈다'는 뜻이다.
이 꽃은 분단장한 듯 고운 까닭에 '청춘'을 뜻하기도 한다.
제비꽃! 함초롬한 자태의 이 봄의 전령은 여의초如意草라고도 불린다.
제비꽃은 꽃자루 끝이 굽어 꼭 물음표(?) 머리같이 생겼다.
그 생김새가 가려운 등을 긁을 때 쓰던 도구, 즉 여의如意와 닮았는데, 여의란 내 맘대로 어디든 척척 긁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나중에 여의는 점차 귀금속으로 만들어져 귀인貴人들이 지니는 치렛거리가 되었지만 뜻은 여전히 '만사가 생각대로 된다'는 상징을 갖는다.
그러니 전체 그림을 합쳐 읽으면, 생신을 맞은 어르신께서는 부디 칠십 팔십 오래도록 청춘인 양 건강을 누리시고 또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하는 축원이 된다.
봄에 피는 제비꽃과 여름에 피는 패랭이꽃을 한 화면에 그린 것은 상서로운 뜻을 살리기 위함이다.
한껏 강조한 아름다운 색채의 조화, 편안한 느낌을 주는 안정된 삼각 구도, 그리고 양쪽 윤곽선을 가는 붓으로 섬세하게 그린 쌍구법雙鉤法, 잡풀까지도 일일이 정성들여 묘사한 것은 작품이 생신 선물인 까닭이다.
가운데 세로로 접혔던 금이 있어 원래는 화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리 화첩에 그려 넣은 김홍도의 작품을 필두로 화첩의 뒷장에는 잔칫날 모인 내노라하는 선비들이 뒤질세라 앞다퉈 쓴 축수祝壽 시와 문장이 갖가지 서체의 글씨로 줄줄이 이어졌을 것이다.
오른편 위쪽 글씨는 화첩 주인이 화가의 인적 사항을 적어둔 것이다.
※출처: 오주석,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2009, 월간미술).
2009. 10. 9.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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