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노인의 지혜 본문

글과 그림

노인의 지혜

새샘 2014. 7. 13. 16:06

노인의 나이가 칠순이 되면 산속에 갖다 버리는 나라가 있었다. 어머니 연세가 거기에 이르자 아들이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들어갔다. 가는데 어머니가 계속 나뭇가지를 꺾어 길에 던지는 것이었다. "어머니 지금 뭘 하시는 건가요?" 아들이 묻자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래, 너 돌아갈 때 길을 잃을까 봐 염려가 되어 그러는 것 아니냐? 그러니 너는 내가 뿌리는 나뭇가지를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아들의 눈에 핑하니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는 이내 가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내려왔다. 그날부터 아들은 마루 밑에 굴을 파고 그 안에 노모의 거처를 마련했다. 주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석으로 음식을 나르며 정성껏 어머니를 봉양했다. 국법을 어겼으나 눈치 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나라에 큰 우환이 생겼다. 큰 이웃나라의 사신이 찾아와 이렇게 말을 전했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우리 왕께서 쳐들어오겠다고 합니다." 약한 나라를 깔보고 침략의 빌미를 만들려는 수작이었다. 문제는 이러했다. "똑 같은 말 두 필 중 어느 쪽이 어미이고 어느 쪽이 새끼인가?"

 

문제의 답을 조정에서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자 모든 고을에 방을 붙여 답을 구하기 시작했다. 답을 아는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린다고 했다. 아들도 그 방을 보았으나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아들이 무심코 그 이야기를 노모에게 전했다.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 말을 굶긴 뒤 당근 한 포기를 가운데 놓아 보거라. 밀어내는 쪽이 어미이고 먼저 먹는 쪽이 새끼란다."

 

세월이 흘러 이웃나라에서 다시 문제가 날아왔다. 네모 난 나무토막을 보여주고는 어느 쪽이 위고 어느 쪽이 아래인지 맞추는 문제였다. 조정 대신들이 이러저리 살펴보았지만 분간할 수가 없었다. 다시 지난번처럼 고을마다 방을 붙였다. 아들이 다시 노모에게 물어보자 이번에도 술술 답이 나왔다. "그것도 모르느냐? 물속에 던져봐라. 가라앉는 쪽이 뿌리가 아니겠느냐?" 아들은 이번에도 큰 상을 받았다.

 

어려운 문제를 척척 풀자 이번에는 이웃나라에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마지막이라면서 다시 문제를 보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제가 아니라 과제였다. 재로 새끼를 꼬라는 것이었다. 손끝만 대어도 부스러지는 재를 가지고 어떻게 새끼를 꼰단 말인가? 조정은 다시 깊은 걱정에 휩싸였다. 오랜 논란 끝에 연거푸 답을 맞춘 그 사람을 찾아 그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아들이 노모에게 다가가 다시 물어보았다. "어머니, 재를 가지고 새끼를 꼴 수 있냐요?" 노모가 대답했다. "그럼 할 수 있지. 새끼를 꼰 다음 거기에 기름을 부어라. 그리고는 불을 질러 보거라. 그러면 될 것이다." 세 번째 문제까지 맞추자 임금이 아들을 불러 물었다. "너는 어찌 이런 놀라운 지혜를 지니고 있는가?" 아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제가 임금님을 속였습니다. 문제는 제가 푼 것이 아니옵니다."

 

"그런 또 무슨 소리냐? 네가 풀지를 않았다니?" 의아한 표정으로 임금이 다시 물었다. "문제를 푼 사람은 저의 노모입니다. 노인을 버리라는 법을 어기고 몰래 모신 지가 여러 해 되었습니다. 저를 벌하여 주소서." 그러자 임금이 탄식을 하며 말을 받았다. "어허, 그것이 다 노인에게서 나온 지혜였다는 말인가? 여봐라. 오늘부터 당장 노인들을 버리는 법을 없애도록 하여라."

 

노인들의 지혜가 빛을 발휘하던 시절이 있었다. 농경시대에는 당연한 일이었고 산업시대에 들어서도 한동안 장로가 군림하는 시절이 이어졌다.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서재 하나가 없어졌다고 할 정도로 지혜가 있고 지식도 많은 존재가 노인이었다. 때문에 노인은 공경의 대상이 될 수 있었고 경로의식은 그러한 바탕 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풍속이었다.

 

조간신문에 실린 원로 디자이너 노라노 여사의 인터뷰 기사를 보던 중 한 대목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야망과 도전은 달라요. 나는 도전하는 사람이지 야심은 없어요." 올해 84세가 되었다는 그 분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노인이 되어도 공경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받게 되는 법이다. 젊은이들의 경로의식이 문제라고는 하는데 그것이 꼭 젊은이들의 문제라고만 하기도 또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이 글은 민찬 지음 '도청도설道聽塗說 길에서 듣고 지껄이다'(도서출판 다운샘, 2013)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道聽塗說은 논어 양화편에 나오는 말로서 사전적 의미로는 근거없이 길에서 떠도는 뜬소문이란 뜻. 하지만 지은이는 이 말을 '길에서 들은 것을 그대로 길에서 말해버린다'는 뜻으로 해석하고서, 이 책에서 실린 글들은 길에서 듣고 길에서 지껄이듯이 이 글을 썼다고 한다.

 

2014. 7. 1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