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조선의 개혁가 교산 허균이 주장한 민중의 힘 '호민론' 본문

글과 그림

조선의 개혁가 교산 허균이 주장한 민중의 힘 '호민론'

새샘 2015. 1. 8. 12:31

교산蛟山 허균許筠(1569~1618)이 살았던 16세기 말~17세기 초 시기는 조선사회가 보수와 개혁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때였으며, 허균은 이런 시기에 개혁의 길을 택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허균은 '유재론遺才論'이나 '호민론豪民論'과 같은 글을 통해 평소부터 역사 속에서 민중의 힘을 발견했고, 능력있는 인재의 적극적인 등용을 소신껏 주장했다. 허균의 민중지향적 사상이 대표적으로 함축된 글이 바로 '호민론'이다.

 

천하에 두려워 해야 할 바는 오직 백성뿐이다. 홍수, 화재, 호랑이, 표범보다도 훨씬 백성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항상 업신여기며 모질게 부려먹음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대저 이루어진 것만을 함께 즐거워하느라, 항상 눈앞의 일들에 얽매이고, 그냥 따라서 법이나 지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이란 항민恒民이다. 항민이란 두렵지 않다. 모질게 빼앗겨서, 갈이 벗겨지고 뼈골이 부서지며, 집안의 수입과 땅을 소출을 다 바쳐서, 한없는 요구에 제공하느라 시름하고 탄식하면서 그들의 윗사람을 탓하는 사람들이란 원민怨民이다. 원민도 결코 두렵지 않다. 자취를 푸줏간 속에 숨기고 몰래 딴마음을 품고서, 천지간을 흘겨보다가 혹시 시대적인 변고라도 있다면 자기의 소원을 실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란 호민豪民이다.

 

대저 호민이란 몹시 두려워해야 할 사람이다. 호민은 나라의 허술한 틈을 엿보고 일의 형세가 편승할 만한가를 노리다가, 팔을 휘두르며 밭두렁 위에서 한 차례 소리지르면, 저들 원민이란 자들이 소리만 듣고도 모여들어 모의하지 않고도 함께 외쳐대기 마련이다. 저들 항민이란 자들 역시 살아갈 길을 찾느라 호미, 고무래, 창 자루를 들고 따라와서 무도한 놈들을 쳐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진나라의 멸망은 진승陳勝 오광吳廣 때문이었고, 한나라가 어지러워진 것 역시 황건적이 원인이었다. 당나라가 쇠퇴하자 왕선지王仙芝와 황소黃巢가 틈을 타고 일어섰는데, 마침내 그것 때문에 백성과 나라가 멸망하고야 말았다.

 

이런 것은 모두 백성을 괴롭혀서 자기 배만 채우던 죄과며, 호민들이 그러한 틈에 편승할 수 있어서였다. 대저 하늘이 임금을 세운 것은 양민養民하기 위함이며, 한 사람이 위에서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 메워도 차지 않는 구렁같은 욕심을 채우려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저들 진한 이래의 화란은 당연한 결과이지 불행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서얼 홍길동을 주인공으로 한 한글소설 '홍길동전'은 이러한 그의 사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런데 허균의 문집에 '홍길동전'이 포함되지 않은 것 등을 이유로 작가가 허균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조선중기 한문학 4대가의 한 사람인 택당 이식李植(1584~1647)의 문집인 '택당집澤堂集'의 별집 권15 '산록散錄'에는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세상에 전해지기를, '수호전'을 지은 사람의 집안이 3대에 걸쳐 농아가 되어 그 응보를 받았는데, 도적들이 바로 그 책을 높이 떠받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허균과 박엽朴燁 등은 그 책을 좋아한 나머지 적장의 별명을 각각 차지하고서 그 별명을 부르면서 서로 장난을 쳤다고 한다. 허균은 또 '홍길동전'을 지었는데 수호전을 모방하여 지었으며, 그의 무리인 서양갑徐羊甲과 심우영沈友英 등이 소설 속의 행동을 직접 그대로 실행하다가 한 마을이 초토화되었고, 허균 자신도 반란을 도모하다가 주살되기까지 하였으니, 이것이 농아보다도 더 심한 응보를 받은 것이라고 하겠다.

 

허균은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오직 백성뿐'이라고 전제한 후에 백성을 호민과 원민, 항민으로 나누었다. 여기서 항민은 '무식하고 천하며 자신의 권리나 이익을 주장할 의식이 없는 백성'을 말하며, 원민은 '정치가에게 피해을 입고 원망만 하지 스스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백성'으로 지금의 개념으로는 나약한 지식인을 뜻한다. 이와 달리 호민은 '자신이 받는 부당한 대우와 사회모순에 과감하게 대응하는 백성'으로, 시대의 사명을 인식하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인물이다. 호민의 주도로 원민과 항민이 합세해 무도한 무리들을 물리친다는 것이다.

 

이처럼 '호민론'은 '국왕은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백성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강조해 백성의 위대한 힘을 자각시키는 글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당시 사회에서는 혁명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었다. 특히나 소설에서 설정한 홍길동의 캐릭터는 호민과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은 가정에서의 신분적 제약과 사회에 등용되지 못하는 사회적 모순에 부딪쳤지만 이를 극복해 나가는 호민의 모습을 보였다.

 

허균이 살던 당시 조선사회는 밖으로는 전란으로 상처를 입었고, 안으로는 당쟁이 격화되어가고 있었다. 허균은 '유재론'이란 '호민론'과 같은 글을 통해 신분이나 배경보다는 능력 있는 인재의 등용을 줄곧 주장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의지는 백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설의 창작으로 나타났다.

 

역모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작품 '홍길동전'이 시대를 뚸어넘어 오늘날까지도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지식인의 책무를 허균 자신이 실천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 글은 신병주 지음 '조선과 만나는 법'(현암사, 2014)에 실린 글을 추려서 옮긴 것이다.

 

2015. 1. 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