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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생황 부는 소년(송하취생도)" 본문

글과 그림

단원 김홍도 "생황 부는 소년(송하취생도)"

새샘 2017. 6. 29. 10:14

 

 

단원 김홍도金弘道(1745~1806이후)는 음악적인 소질이 있는 화원이었다.

퉁소, 대금, 단소, 거문고의 대가였다.

정말 자유자재로 음악을 연주하는 꾼이었는데, 그런 그가 그린 음악을 소재로 한 <생황 부는 소년(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을 그렸다.

 

한 소년이 머리에 쌍상투를 틀고, 거위 깃털로 만든 옷을 입고, 맨발로 앉아서 입에 대고 부는 이 악기가 바로 생황笙簧이다.

생황 소리를 그야말로 천재적인 감각으로 시각화하는데 성공한 명작이다.

여기에서 소리가 안 들린다면 보는 이의 귀에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이 그림 속에서 저 소년이 부는 생황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듣는 귀', 바로 귀명창인 것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약간 기운 듯한 대각선으로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소년도 오른쪽으로 조금 비스듬히 앉아 있다. 똑바로 있지 않고 약간 비스듬하다. 선율이 번져나가는 동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구도를 일부로 이렇게 잡은 것이다.

 

다음으로 소나무 기둥을 보자.

소나무 껍질이 이렇게 용수철처럼 올라가고 있다.

이것이 현대 음악의 음표처럼 보인다.

궁상각치우가 아니라 서양의 음표처럼 보이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선율이 위로 올라가 소나무 가지처럼 이렇게 뻗어나가야 되는데, 당김음을 하나 줘서, 가지 하나가 거꾸로 탁 휘어서 코드를 지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리듬과 멜로디인 것이다.

이래도 귀에 생황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이렇게 그림에 음악적 감각을 살려낼 줄 아는 화가가 단원이었다.

천재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의 이 소년은 중국 주나라의 왕자 진晉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중국에서 왕씨의 시조로 이야기되는 사람이다.

왕자 진이 열다섯 살 때 도인을 만나서 생황을 배웠다.

크면 왕이 될 사람인데도 높은 지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생황을 즐기다 칠월칠석날 부모한테 인사들 드린 다음 학을 타고 날아올라서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생황을 불면서 하늘로 올라갔다는 유명한 일화인데, 그 고사를 그린 작품이다.

그래서 소년의 허리를 보면 깃털 옷을 입었다.

곧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도 할 것같은 .

 

단원이 그림을 그리고 난 뒤, 당나라 시인 나업羅鄴의 시 '제생題笙(생황에 부치다)'의 한 구절을 빌려왔다.

 

 "봉황이 날개를 펼친 듯 대나무관은 길고 짧은데(균관참치배봉시筠管參差排鳳翅)

  용의 울음보다 처절한 소리가 월당에 퍼지네    (월당처절승룡음月堂凄切勝龍吟)"

 

생황은 원래 중국에서 비롯되었지만, 우리는 1천 년 전 신라시대 때 벌써 생황을 만들어 불었고, 연주를 했다.

봉황이 날개를 펼친 모습을 본떴고, 그 소리는 용의 울음을 흉내냈다고 전해진다.

 

 

※이 글은 손철주 지음, '흥興-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그림 강의'(2016, 김영사)'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2017. 6. 2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