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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비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와 함께한 매실나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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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비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와 함께한 매실나무

새샘 2019. 3. 19. 17:09

안동 도산서원의 매실나무 도산매(출처 - http://www.tourandong.com/public/sub4/sub3_4.cshtml?id=jzR090_zaLW_xoLGTOmplKCc340FVbxgdPQOUIM8jsc%3D&page=7&searchCategory=&searchKey=1&search=)

 

 

실제로 한 해의 시작은 1월이 아닌 봄이며, 봄 가운데서도 꽃이 피는 때이며, 꽃 가운데서도 매화 피는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보통 매화梅花나무 또는 매화라고 부르지만 매실梅實나무란 이름이 보다 정확하다. 왜냐하면 감나무, 잣나무, 석류나무 등과 같이 나무 이름은 주로 열매 이름을 따서 붙이기 때문이다. 매실나무는 많이 커야 5미터 남짓한 작은키나무로서 우리나라에는 그리 크고 오래된 나무는 많지 않다. 하지만 옛부터 사군자의 하나로서 우리 문인 선비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사람살이의 내력이 함께 담긴 매실나무는 적지 않다. 우리 옛 사람들은 매화를 얘기할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매화는 "번거로운 것보다 희귀한 것을, 젊음보다 늙음을, 비만보다 수척을, 활짝 피어난 것보다 꽃봉오리를 귀하게 여기는 꽃"이라는 말이다. 또한 우리가 아끼는 매실나무에는 대개 고유명사가 붙어 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산청 단속사 터 정당매政堂梅, 안동 도산서원의 도산매陶山梅, 순천 선암사 선암매仙巖梅, 구례 화엄사 화엄매華嚴梅, 산청 산천재 남명매南冥梅 등이다.

 

매화는 한 송이 한 송이 참 예쁘게 피어나지만, 그 생김생김이 번거롭거나 풍성하기보다는 은둔한 선비의 모습을 지니지 않았나 생각하게 되는 나무이다. 그래서 매화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온 산을 매화로 뒤덮은 매실농원을 찾기보다는 선비들의 옛 서재나 정원, 또는 오래된 절집의 뒷마당을 찾는 게 제격인 것이다. 이런 매화의 특징이 화려하게 피었다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벚꽃과 대비된다. 매화와 벚꽃의 차이가 한국인과 일본인의 성격에 그대로 드러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안동 도산서원에는 매실나무가 많은데 그 가운데서도 도산서원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매실나무가 바로 위 사진의 도산매이다. 이 도산매에는 다음과 같은 퇴계 이황과 관기 두향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퇴계 선생이 마흔여덟 살 때 단양 군수로 있을 때 미모와 기품을 갖춘 열여덟 꽃다운 나이의 두향杜香이라는 관기와 만났다. 두향은 퇴계 선생의 용모와 인품에 감동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어 선생께 온갖 선물을 다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늘 꼿꼿하기만 한 선생이 전혀 흔들림이 없자 주변에 수소문하였더니 선생이 좋아하여 거절하지 못할 유일한 선물이 바로 매화라고 알려 주었다. 두향은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찾아낸 기품을 갖춘 매실나무 한 그루를 선생께 보냈는데 예상대로 선생이 그 선물을 받아 들임으로써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사랑의 증거는 퇴계 선생이 이임하고 다음 부임지인 풍기군수로 떠나게 됐을 때 두향이 저고리 옷고름을 풀어헤치고 '차라리 젖가슴 하나를 베어내 당신을 향한 미망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했다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두향은 단양의 남한강가에 초막을 짓고 20년 동안 정절을 지키며 살았고, 선생은 도산서원에서 69살의 나이로 삶을 마쳤다. 선생이 이승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두향은 단양에서 도산서원까지 흰 소복 차림으로 걸어서 문상을 하러 왔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초막으로 돌아가서 강물에 몸을 던져 선생의 뒤를 따랐다.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두향의 시신을 거둬 양지바른 곳에 묘를 만들어주었다. 그 묘는 충주호가 완공되면서 수몰 위기를 맞자 원래 위치보다 조금 위쪽으로 옮겨졌다. 지금도 충주호를 오가는 유람선을 타고 지나다 보면 두향의 묘를 볼 수 있고, 단양에서는 두향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퇴계 선생은 단양을 떠날 때 두향이 선물한 매실나무를 그대로 옮겨갔다. 그 뒤 자리를 옮길 때마다 두향의 매화는 반드시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나중에 도산서원을 짓고서 그곳에 옮겨 심고 애지중지했다고 전한다. 선생이 생을 마치면서 마지막에 했던 말은 "저 나무에 물 주거라"였다고 한다. 이 말 한마디에서 선생이 한평생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고작 아홉 달의 짧은 시간 동안 나눈 두향과의 애절한 사랑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가 도산서원에서 볼 수 있는 매실나무는 두향이 선생께 선물했던 그 나무가 아니다. 그때 나무는 오래전에 고사해 버렸고, 선생을 기억하며 서원을 지키는 후학들이 여러 그루의 매실나무를 새로 심어 키운 것 중 하나가 지금의 도산매가 되었다. 비록 지금 도산서원의 매실나무들이 선생이 아끼던 바로 그 나무는 아니라 하더라도 선생을 기억하면서 함께 기억해야 할 나무라는 이야기이다.

 

안동 도산서원은 비교적 북쪽 낙동강가에 자리잡고 있어 도산매의 꽃 피는 시기는 조금 늦다. 그래서 처음 남도에서 봄소식이 들려오면 먼저 남도를 찾아가서 이러저러한 매화를 구경한 다음, 아쉬움이 남을 즈음 찾아가면 예쁘게 피어난 도산서원 매화꽃을 감상하면서 즐길 수 있다.

 

※이 글은 사진을 제외하고는 고규홍 지음, '고규홍의 한국의 나무 특강(휴머니스트, 2012)'에 실린 글을 발췌한 것이다.

 

2019. 3. 1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