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빅토르 위고와 심령술 본문
<75살 때 빅토르 위고 모습>(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B%B9%85%ED%86%A0%EB%A5%B4_%EC%9C%84%EA%B3%A0)
1852년,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빅토르 위고 Victor-Marie Hugo(1802~1885)는 채널 제도 Channel Islands의 저지 섬 Jersey Island으로 피신해 춥고 어두운 계곡에 위치한, 귀신이 나온다는 외딴집을 빌려 살기 시작했다. 그의 도착은 별다른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조용하고 작은 섬에서는 일대 사건이었다. 빅토르 위고는 이따금 주민들을 집에 불러 저녁을 대접하고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1년 뒤, 그의 친구이자 시인인 델핀 드 지라르댕 Delphine de Girardin(1804~1855)이 섬을 찾았다. 그녀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와 유행하는 폭스 자매 Fox sisters의 심령술心靈術 spiritualism과 프랑스 심령술 운동의 새로운 교주인 알랑 카르테크 Allan Kardec(1804~1869) 얘기를 들려주었다. 단 1주일 저지 섬에 머무는 동안 그녀는 저녁마다 사람들을 불러 심령회를 했다. 섬 주민들은 테이블 터닝(테이블 돌리기) table turning[몇 사람이 손을 대면 신령의 힘으로 테이블이 저절로 움직이는 현상]에 열광했지만, 정작 빅토르 위고는 미덥게 여기지 않아 첫 심령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실제로 1853년 9월 7일에 있었던 첫 번째 심령회에는 영혼이 나타나지 않아, 실망한 참석자들이 사자死者들 얘기가 아니라 반反 보나파르트 음모를 얘기하다 헤어졌다.
1853년 9월 11일, 드디어 테이블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때 나타난 영혼은 다름 아닌 센 강 Seine River(우리는 흔히 세느 강이라 부름)에서 익사한 빅토르 위고의 딸 레오폴딘 Leopoldine(1824~1843) 이었다. 유명 작가는 이때부터 태도가 돌변해 열성적으로 심령회에 참석했다. 그는 죽은 딸과 나눈 대화는 물론 다른 사자들과 나눈 대화도 꼼꼼히 기록했다. 빅토르 위고는 심령 대화를 소재로 <어두운 입이 하는 말>이란 시를 쓰기도 했다.
빅토르 위고는 델핀 드 지라르댕이 돌아간 뒤에도 거의 매일 저녁 섬 친구들을 집에 불러 심령회를 열고 사자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했다. 그가 소통했다고 한 유명인들 중에는 모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이스킬로스, 카르타고의 한니발, 예수 그리스도, 루터, 단테, 갈릴레오, 셰익스피어, 라신, 몰리에르, 루이 16세, 장폴 마라, 로베스피에르, 나폴레옹 1세, 바이런, 샤토브리앙이 있다. 그는 자신이 흰색 부인, 검은색 부인, 회색 부인이라 이름 붙인 세 인물과 나눈 대화도 기록에 남겼다. 위고는 안드로클레스의 사자, 발람의 당나귀, 노아의 방주의 비둘기 등 신화 속 동물들도 심령회에 소환했다.
영혼들과는 모두 프랑스어로 소통했으며, 유명한 사자들 외에도 철천지원수였던 나폴레옹 3세(위고는 그의 면전에서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했다고 적었다)의 잠든 영혼과도 대화를 나눴다고 그는 기록했다. 심령회는 대개 밤 9시 30분경 시작해 새벽 1시가 넘도록 이어졌다.(위고는 심령회의 시작 및 끝 시각을 정확히 기록해 두었다.)
1855년, 심령회 도중 의사 에밀 알릭스의 동생 쥘 알릭스가 갑자기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심령회는 중단되었고, 쥘 알릭스는 결국 샤랑통의 정신 병원에 수용되었다.
이 무렵 빅토르 위고는 정치적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저지 섬에서 쫓겨나 채널 제도의 다른 섬인 건지 섬 Guernsey Island으로 이주했다. 여기서 14년을 지내는 동안 그는 집에 있는 가구에 자신과 심령 대화를 나눈 유명인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새겨 놓았다.
※ 이 글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죽은 2'(열린책들, 2019)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20. 1. 26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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