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오주석의 겸재 정선 "금강전도" 해설 본문

글과 그림

오주석의 겸재 정선 "금강전도" 해설

새샘 2020. 1. 21. 09:26

일만 이천 봉우리가 태극으로

<정선,  금강전도 , 1734년, 종이에 수묵담채, 130.8 ×94.5㎝, 삼성미술관 리움, 국보 제217호>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걸작 <금강전도金剛全圖>장엄한 금강산의 전경을 그린 작품인데,그 자체로서 우리 국토를 상징하고 있다.

후지산이 일본을 상징하듯이, 우리 겨레를 상징하는 것은 바로 금강산이기 때문이다.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로, 우리가 '그리운 금강산'을 자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선, 금강전도 구조>

선비 화가 정선은 그것을 어떻게 그렸는가 한번 보자.

위 <금강전도 구조>에서 보듯이 일만 이천 봉우리를 하나로 뭉뚱그려서 하나의 둥근 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정말 기겁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위대한 단순함이라니, 과연 대가는 다르다.

 

위 그림 한가운데 만폭동 너럭바위①가 보인다.

그 중심에서 남북으로 길게 S자로 휘어진 선이 바로 태극을 긋고 있다.

맨 아래 장안사 골짜기 오른편 장경봉에서 처음 크게 휘어서 만폭동을 거치면서 다시 반대로 휘었다가 정상인 비로봉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

우리 겨레의 상징인 태극기, 그것도 좌우로 나뉜 태극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태극이란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을 뜻하는 것으로,동시에 혼돈에서 질서로 가는 첫걸음을 말한다.

음양 자체는 원래 상반되는 것이지만 태극으로 맞물리면 서로가 서로를 낳고 의지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정선은 또 우뚝 솟은 비로봉②과 뻥 뚫린 무지개다리③로 음양을 거듭 강조했다.

그다음 심오한 오행五行의 뜻을 심었으니, 만폭동에선 든든한 너럭바위[토土]를 강조하고, 아래 계곡③에는 넘쳐나는 물[수水]을 그렸다.

오른편 봉우리④는 촛불[화火]인 양 휘어졌고,중향성⑤ 꼭대기는 창검[금金]을 꽂은 듯 삼엄하다.

끝으로 왼편 흙산⑥에 검푸른 숲[목木]이 있다.


그런데 이런 오행의 배열은 철학에서 말하는 선천先天이 아닌 후천後天의 형상이다.

즉, 정선은 민족의 영산 금강산을 소재로 해서 온 겨레의 행복한 미래, 평화로운 이상향의 꿈을 기린 것이다.

정선은 새해를 앞두고 <금강전도>를 완성했다.

오른편 위에 적힌 제시題詩에 그렇게 써 놓았다.

 

<정선,  금강전도  제시 세부>

위 <금강전도  제시 세부>의 내용을 보자.

 

일만 이천 봉 겨울 금강산의 드러난 뼈를                              만이천봉개골산萬二千峯皆骨山

뉘라서 뜻을 써서 그 참 모습 그려 내리                                하인용의사진안何人用意寫眞顔

    뭇 향기는 동해 끝의 해 솟는 나무까지 떠 날리고                    중향부동부상외衆香浮動扶桑外    

쌓인 기운 웅혼하게 온 누리에 서렸구나                               적기웅반세계간積氣雄蟠世界間

암봉은 몇 송이 연꽃인 양 흰빛을 드날리고                           기부용양소채幾朶芙蓉揚素彩

반쪽 숲엔 소나무 잣나무가 현묘한 도의 문을 가렸으라            반림송백은현관半林松栢隱玄關

설령 내 발로 직접 밟아보자 한들 이제 다시 두루 걸어야 할 터   종금각답수금편從今脚踏須今遍

그 어찌 베갯맡에 기대어 (내 그림을) 실컷 봄만 같으리오         쟁사침변간불爭似枕邊看不

 

참으로 호방한 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저 제시를 쓴 방식 또한 절묘하다.

 

가운데 1행이 '사이 간間'두 문짝 틈새로 비치는 햇빛이니까

한 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온다는 뜻이다.

그 좌우 2행은 두 글자씩이요, 다시 바깥쪽 4행은 네 글자씩이다.

태극의 첫걸음이 1에서 2로, 4로 끝없이 펼쳐져 미래로 뻗어 나간다는 원대한 희망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글은 오주석 지음,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2017, 푸른역사)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오주석吳柱錫(1956~2005)은 서울대 동양사학과,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호암미술관 및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원구원을 거쳐 중앙대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간송미술관 연구위원과 연세대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로도 재직했다.

단원 김홍도와 조선시대 그림을 가장 잘 이해한 21세기 미술사학자라 평가받은 그는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전국에서 강연을 펼쳤으며 한국 전통미술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1995년 김홍도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단원 김홍도 특별전'을 기획해 주목받았으며,

저서로는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을 비롯하여『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단원 김홍도』

『우리 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가 있고, 유작으로『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이 있다.

암과 백혈병 투병 끝에 스스로 곡기를 끊음으로써 49세 나이에 생을 마쳤다.

 

2020. 1. 2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