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오주석의 단원 김홍도 "소림명월도" 해설 본문
이상적인 진경산수화, 성근 숲에 밝은 달이 떠오르는 그림
차고 맑은 가을 하늘, 성근 숲 뒤로 온 누리에 환하게 비추이며 둥두렷이 보름달이 뜬다.
높은 가지부터 잎이 지고 있으나 아래쪽 잔가지와 이파리는 아직 지난 여름의 여운을 간직하고 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곳에서 절로 자란 예사 나무들이 심드렁하니 꾸밈없는 가지를 이러저리 내뻗었다.
시골 뒷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야산 풍경.........
그런데 왜 가슴이 저려오는 것일까?
마음 한편이 싸 하니 알 수 없는 고적감孤寂感에 시리다.
오른편 가에 서 있는 곧은 나무 아래로 작은 시내가 흐른다.
그러나 얕게 흐르는 개울 물소리가 너무 잔잔해 오히려 주위를 더욱 고요하게 할 뿐......
'성근 숲에 밝은 달이 떠오르는 그림'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는 김홍도가 쉰두 살 되던 해, 놀랍게도 어느 봄날에 그린 작품이다.
예부터 화가는 작은 조물주라고 일렀지만, 어쩌면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이렇듯 가을이 고스란히, 한 계절이 오롯이 담길 수가 있을까?
<소림명월도>의 나무들은 앙상하고 헐벗었으나 겸허함으로 계절을 받아들인 것처럼 생명 자체는 온전하다.
가지 일부를 짙게 그린 탄력 넘치는 필치가 이제 막 붓이 닿는 순간을 지켜보는 듯,
말할 수 없는 직접성과 천진함을 느끼게 한다.
은은한 화면 속 넉넉한 공간의 깊이도 그 덕에 마련됐다.
나무들이 살아 있다.
나무의 존재감을 더욱 드높이는 것은 뒤편에 떠오른 보름달의 후광이다.
작가의 예술혼은 전례없이 과감하게도 화면의 중앙에서 살짝 아래편에 달을 배치함으로써 고요하게 잦아드는 가을 기운을 남김없이 드러내었다.
주변의 키 작은 잡목들은 간략하고 느슨한 묵점墨點으로 아울러져 있다.
어디를 돌아보아도 특별하거나 신기한 것은 없지만 <소림명월도>는 볼 때마다 경이롭고 새로워 우리에게 늘 서늘한 가을을 가져다준다.
숲 사이로 환하게 번지는 달빛......
<소림명월도>에서 단원은 가장 심상心象(마음속에서 시각적으로 나타난 형상)한 것이 가장 영원永遠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오늘날 아파트 뒷동산을 이렇게 그려 낼 수 있는 화가가 과연 있는가?
※이 글은 오주석 지음,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푸른역사, 2017)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20. 3. 6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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