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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샘(淸泉)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1부 고대 근동 - 1장 서양문명의 기원 7: 메소포타미아 사회 5-우르 왕조와 아모리족의 흥기 본문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1부 고대 근동 - 1장 서양문명의 기원 7: 메소포타미아 사회 5-우르 왕조와 아모리족의 흥기
새샘 2022. 1. 4. 12:54
1. 우르 왕조(우르 제3왕조) The Third Dynasty of Ur(서기전 2100~2000년)
아카드 제국은 나람신 Naram-Sin의 긴 치세가 끝나자 궁정의 음모가 뒤따르면서 유약한 휴계자들이 계승했다.
이란 고원 출신의 고산족 침입자가 수메르와 아카드를 짧은 기간(서기전 2160~2100) 동안 지배한 뒤 수메르는 다시 한 번 경쟁적이고 독립적인 도시국가의 집합체로 분해되었다.
그러나 서기전 2100년 즈음 도시국가 우르에서 온 새로운 왕조인 우르 제3왕조가 첫 번째 왕 우르남무 Ur-Nammu와 그의 아들 슐기 Shulgi에 의해 확립되었다.
우르남무는 우르의 평야 지역에 21미터 높이로 솟아 있는 거대한 지구라트 Ziggurat를 비롯한 놀라운 건축물을 축조했다.
그의 아들 슐기 Shulgi는 부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자그로스 산맥 Zagros Mountains[현재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을 이루며, 북서에서 남동으로 뻗어 내린 길이 약 1,500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산맥이고, 남단은 호르무 즈 해협 Strait of Hormuz 북쪽까지 뻗었다]에 이르기까지 땅을 정복했고, 그 지역 주민에게 막대한 세금을 강요했다.
슐기는 국가가 운영하는 직물공장을 건설해 양모를 가공하도록 했고, 하층계급의 여성과 어린이를 노동력으로 동원했다.
그는 정직한 도량형, 과부와 고아의 보호, 죄인에 대한 사형 제한 등을 요청하는 법전을 공표하기도 했다.
우르남무와 슐기는 아카드 제국의 사르곤 Sargon과 나람신을 모델 삼아 왕권을 행사했다.
군사 정복을 수행하고 수메르 정부를 중앙집권화했으며, 상업의 팽창과 결속을 촉진하고, 예술과 문학을 후원했으며, 카리스마적 황제 지배 이념을 고취했다.
이런 식으로 아카드 지배자들과 우르 제3왕조 지배자들은 앞으로 몇 백 년 동안 그 지역에서 영향을 미치게 될 지배 패턴을 수립했다.
서기전 2047년쯤 슐기가 죽자 유능한 두 아들이 뒤를 이었으나 모두 젊어서 죽고 말았다.
그래서 왕권은 슐기의 손자 이비신(입비신) Ibbi-Sin에게 넘어갔는데, 그는 구제불능의 한심한 인물이었다.
'마마보이 mama's boy'였던 그는 중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초상화를 수염 없는 모습으로 표현했고, 심지어 공식 문서에서도 어머니를 항상 '엄마'라고 불렀다.
그는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치세 도안 제국 관료제는 방만해졌다.
그의 치세에 남겨진 기록물은 시들어가는 제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비신이 제국 지배권을 서서히 잃어가면서 우르 왕조 지배 아래에 있는 도시들에서는 왕립문서보관소가 하나둘 사라진다.
마침내 이비신은 자신의 어리석음이 초래한 재앙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이쉬비이라 Ishbi-Irra라는 아모리족 Amorite(셈족계 Semites) 출신 장군에게 의지했다.
이쉬비이라는 교활하고 무자비한 인물로 몇 번씩이나 사태가 악화되도록 방치해두었다가 마지막 순간에 개입해 더 큰 권력을 거머쥐었다.
이쉬비이라의 군사적 능력 덕분에 이비신은 24년 동안이나 왕위에 머물 수 있었지만 결국 우르마저 적에게 약탈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이비신이 포로로 잡혀간 직후 이쉬비이라는 돌연 영웅적 활약으로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스스로 우르의 왕권을 주장했다.
이비신은 사라졌지만 그의 이름은 메소포타미아 주민에게 끔찍한 몽매와 가망 없는 무능의 상징으로 몇 백 년 동안 남아 있었다.
이쉬비이라는 파괴된 우르 제국의 지배권을 온전히 다시 장악할 수는 없었다.
영역 내 수많은 도시는 속박에서 풀려났고, 바야흐로 이쉬비이라와 닮은꼴인 야심적이고 강력한 아모리족 족장들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 뒤 200년 동안 메소포타미아 역사는 옛 수메르-아카드의 주요 도시들에 기반을 둔 아모리 소왕국들 사이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서기전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아모리족 출신의 바빌론 Babylon의 함무라비 Hammurabi가 그 지역에 새로운 을 건설했다.
2. 수메르 르네상스와 아모리족의 흥기
우르 지배자들은 공문서를 수메르어로 기록했고, 셈어를 쓰는 아카드인의 영향력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수메를 문화를 다시 강조했다.
그러나 이 복고적인 '수메르 부흥기(수메르 르네상스) Neo-Sumerian'는 메소포타미아 문화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메소포타미아 문화는 그 무렵 셈어 사용 민족 Semites(Semitic people)—그들은 이후 1500년 동안 그 지역을 지배했다—의 주도권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특히 아카드인 Akkadians, 아모리인 Amorites, 아시리아인 Assyrians 등 세 집단이 주목된다[페니키아인 Phenicians, 가나안인 Canaanites, 히브리인 Hebrews을 포함한 다름 민족은 다음 2장에서 다룰 것이다].
아카드인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뿌리를 내린 최초의 셈어 사용 민족으로 가장 철저하게 수메르 문명에 동화되어, 신속하게 도시생활에 적응했고 근동 전역에 도시를 건설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모리인은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탁월한 군사적 기량으로 수메르와 아카드 도시의 귀중한 동맹국이 (그리고 궁극적으로 지배자가) 되었다.
아모리인도 아카드인처럼 종국에는 도시화되고 말았지만, 거칠고 투박한 고유의 문화적 뿌리를 상당 부분 간직하고 있었다.
북부 메소포타미아는 아시리아인의 고향이었다.
대상隊商[카라반 caravane: 낙타나 말에 짐을 싣고 떼를 지어 먼 곳으로 다니면서 특산물을 교역하는 상인의 집단]이었던 그들은 서기전 2000년 직후 아나톨리아 Anatolia[오늘날의 터키 Turkey] 방면으로 교역로를 개척했다.
수메르-아카드 문화의 깊은 영향을 받은 아시리아인은 오랫동안 독자적인 문명을 건설했다.
그러나 한동안 그들은 사촌뻘 되는 남쪽 아모리인의 침입을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출처
1. 주디스 코핀 Judith G. Coffin·로버트 스테이시 Robert C. Stacey 지음, 박상익 옮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상): 문명의 기원에서 종교개혁까지, Western Civilizations 16th ed., 소나무, 2014.
2. 구글 관련 자료
2022. 1. 4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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