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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서원아집도" 6폭병과 8폭병 본문

글과 그림

단원 김홍도 "서원아집도" 6폭병과 8폭병

새샘 2022. 1. 1. 10:12

김홍도, 서원아집도 6폭병, 1778년, 비담에 담채, 122.7x287.4cm,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1)

 

김홍도, 서원아집도 6폭병, 1778년, 비담에 담채, 122.7x287.4cm,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2)

 

김홍도, 서원아집도 6폭병 부분 5, 6폭의 강세황이 쓴 화제,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2)

 

김홍도, 서원아집도 6폭병 부분 1,2폭 인물,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2)

 

김홍도, 서원아집도 6폭병 부분 3폭,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2)

 

김홍도, 서원아집도 6폭병 부분 4폭,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2)

 

김홍도, 서원아집도 6폭병 부분 5폭 인물,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2). 이 그림에서 긴 탁자 위쪽에 분홍색 옷을 입은 사람이 주빈 왕선이고, 탁자 왼쪽 가운데 앉아 붓을 쥐고 고 있는 사람이 소식이다.

 

김홍도, 서원아집도 6폭병 부분 6폭 위쪽 인물,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2)

 

김홍도, 서원아집도 6폭병 부분 6폭 아래쪽 인물,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2)

 

단원檀園 김홍金弘道(1745~1806)의 초기 그림인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34세 때인 1778년에 중국의 유명한 '서원아집' 관련 얘기를 그린 여섯 폭 병풍(6병幅屛)['폭병'과 '곡병'이란 용어가 같이 쓰이고 있는데, 국어사전에서 곡병曲屛은 머리맡에 치는 보통 두 쪽으로 된 병풍이라 되어 있고, 폭병이란 용어는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3폭이 넘는 병풍은 곡병보단 폭병이란 용어가 더 적합한 것 같아 곡병 대신 폭병이란 용어 사용]이다.

단원이 30대에 그린 이 6병과 이 다음 소개될 좀 더 후기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같은 제목의 8병 그림을 보면, 30대의 젊은 나이임에도 단원은 이미 화가로서 거의 완성된 실력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서원아집西園雅集이란 중국 북송의 학자 진경晉卿 왕선王詵(1036~1093이후)이 자신의 집 서쪽 정원인 서원에서 친구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을 비롯하여 당시 명성이 높았던 학자, 서화가, 승려, 도사 등 16명(또는 17명)을 초대한 모임의 이름이며, 이 모임에 참가했던 화가 이공린李公麟이 그린 그림에 문인서화가 미불米芾이 찬문을 쓴 그림이 바로 <서원아집도>다.

하지만 이공린이 그린 이 그림은 전하지 않는다.

후대에 이공린 그림을 바탕으로 남송의 마원馬遠, 명의 구영仇英을 비롯한 중국의 여러 화가들이 <서원아집도>를 그렸으며, 김홍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화가들도 많이 그렸다.

 

 

김홍도, 서원아집도 6폭병 부분 1,2폭 중문과 인물, 국립중앙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3)

 

한양에 이렇게 번듯한 대문간을 가진 집이 있었는가.

지붕이 없는 것으로 보아 대문은 아니고 중문中門[가운데뜰로 들어가는 대문]쯤 되어 보인다.

그런데 그 규모를 보니 오척 단구가 지나다니는 시시한 문이 아닌 사람 머리 위로 곱절로 솟아 있는 유난히 큰 문이다.

문틀은 조각을 새긴 웅장한 돌기둥을 썼고, 그 사이로 나무로 짠 액방額枋[기둥과 기둥 사이, 또는 문이나 창의 아래나 위로 가로지르는 나무]을 걸었다.

큰 문짝의 아래쪽에는 박쥐문 장식이 보이고, 중문과 이어지는 담장에도 상서로운 구름무늬로 치장을 했다.

문 뒤쪽에 무언가 가로막고 있는데, 선반 같아 보이는 틀에 식물을 잔뜩 채운 취병翠屛[나무의 가지를 이리저리 틀어서 문이나 병풍 모양으로 만든 물건]이다.

이 취병은 동궐도에서도 자주 보인다.

문간에 선 사람들의 복장을 보면 모두 중국 옷임을 알 수 있다.

중문 안쪽에 이 모임에 참가한 문인묵객들이 서화를 휘호하고 악기를 연주하곡 토론하는 모습이 하나하나 그려져 있다.

 

이 병풍도의 구도는 6폭을 하나의 화면으로 하여, 대각선 방향으로 지나가는 계곡과 대문 사이에 모임의 장면을 배치함으로써 화면 중앙에 중심을 두었다.

버드나무, 매실나무, 오동나무, 파초, 소나무, 대나무 등을 비슷한 비중으로 배경에 등장시켰고, 인물은 사선의 축을 기준으로 조금 왼쪽으로 치우쳐 배치하되 각기 다른 동작과 자세, 표정마저 읽을 수 있는 단원의 기본 구성과 인물 표현에는 변함이 없다.

한 쌍의 학과사슴도 각기 인물군과 문쪽으로 향하게 하여 시선을 양분시킴으로써 전체적인 화면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바위와 나무는 자신감 있는 강한 필선과 인물 표현의 고른 선 등 여러 면에서 단원의 기량과 격조를 읽을 수 있다.

특히 소나무와 암벽의 필치는 단원이 30대에 정립한 독특한 표현 기법이고, 건물과 기구 등은 자를 사용해 정밀하게 그렸다.

대체로 필선이 명료하고 세밀하여 화려하고 말끔한 느낌을 준다.

 

<서원아집도> 6병은 엄정하고 격조 높은 필법, 오른쪽 위 끝에 해서로 반듯하게 쓴 김홍도라는 이름, 왼쪽 위에 쓴 강세황의 진중한 화제 문장 등으로 미루어 궁중에서 왕이 보는 어람용御覽用 병풍으로 추정된다.

 

다음은 표암 강세황이 쓴 화제의 내용이다.

"내가 이전에 본 아집도가 수십 점에 이르는데, 그중에 십주十洲(구영仇英의 자)가 그린 것이 첫째이고 그외 변변치 않은 것들은 지적할 가치가 없다.

지금 김홍도의 이 그림을 보니 필세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포치布置[배치: 넓게 늘어놓음]가 적당하며 인물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원장元章(미불의 자)이 벽에 글씨를 쓰고, 백시伯時(이공린의 자)가 그림을 그리고, 자첨子瞻(소식의 자)이 글씨 쓰는 것 등에 있어, 그 참된 정신을 살려 그 인물과 더불어 서로 들어맞으니 이는 선천적으로 깨친 것이거나 하늘이 가르쳐 준 것이다.

십주의 섬약한 필치에 비교하면 이 그림이 훨씬 좋다.

백시의 원본과 우열을 가릴 정도이다.

우리나라에 지금 이런 신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그림은 원본에 떨어지지 않으나 내 글씨가 서툴러 원장에 비교할 수 없으니 훌륭한 그림을 더립힐까 부끄럽다.

보는 사람의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1778년 설날 표암이 화제를 쓰다."

 

 

 

김홍도, 서원아집도 8폭병, 비담에 담채, 131x372cm, 개인

 

김홍도, 서원아집도 8폭병 부분 맨 오른쪽 1, 2폭

 

김홍도, 서원아집도 8폭병 부분 오른쪽에서 2번 째 3, 4폭

 

김홍도, 서원아집도 8폭병 부분 오른쪽에서 3번 째 5, 6폭

 

김홍도, 서원아집도 8폭병 부분 맨 왼쪽 7, 8폭

 

<서원아집도> 여덟 폭 병풍(8병)은 그림에 단원 그림으로 인정할 만한 낙관이나 화제가 전혀 없기 때문에 '전傳 김홍도 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전칭 작품이라 그런지 이 그림에 대한 해설이나 감상평은 현재 인터넷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참고자료를 찾게 된다면 작품에 대한 해설을 올릴 예정이다.

 

※출처

1.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검색 '서원에서의 아취 넘치는 모임 서원아집도'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1323)

3. http://koreanart21.com/review/onView/view?id=8322&page=1 (서원아집도 6폭병 1 ,2폭 중문과 인물)

4. https://blog.daum.net/bohurja/5713(서원아집도 6병)

5. https://tayler.tistory.com/276(서원아집도 6병 강세황 화제)

 

2022. 1. 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