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1980년대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9: 한우물 및 호암산성 본문
이 발굴조사는 서울시 구로구가 서울대박물관에 구로구 시흥동에 있는 산성 터와 우물 터[지금은 '서울 호암산성'이란 이름으로 사적 제343호로 지정]에 대한 학술조사 용역을 의뢰하여 1989년에 실시되었다.
유적은 해발 347미터의 조그만 봉우리를 최고봉으로 하며, 산 정상의 산성 내부는 비교적 평탄하다.
이 일대는 주로 관악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적 동쪽 약 2킬로미터 지점에 해발 629미터 관악산 정상이, 동남 방향 1킬로미터 지점에는 해발 460미터 삼성산 정상이 있다.
날씨가 좋을 때 유적 최고봉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인천 소래포구가 보일 정도로 가깝게 느껴진다.
이번 발굴조사는 본래 한우물(큰 우물, 하늘 못, 천정天井, 용보龍洑)이라는 조선시대 연지蓮池에 대한 복원을 위한 기초 자료조사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한우물 아래에서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새로운 연지가 확인되었고, 내부에서는 많은 양의 토기 파편과 철제 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한우물 남쪽에 이와 비슷한 규모의 제2 우물 터의 존재도 확인되었다.
이 두 우물은 모두 네모 형태이다.
한우물이라 부르고 있는 조선시대 연지 아래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연지는 긴 변이 동서로 17.8미터, 짧은 변이 남북으로 13.6미터, 깊이 2.5미터의 13단으로 축조된 석축지石築池다.
네 벽에 모두 석축시설을 했고, 돌은 주변 바위에서 떼어 낸 화강암이며, 석축 기법은 맨 아랫단은 바깥으로 내어 쌓고 위로 갈수록 조금씩 들여 쌓는 이른바 '들여쌓기(퇴退물림쌓기, 신자형臣字形 쌓기, 품자형品字形 쌓기)'로 정교하게 쌓아 무너짐을 방지하였고, 석축 뒤 1.5~2미터 가량이 뒤채움 되어 있다.
반면 통일신라시대 석축지 위에 축조된 조선시대 석축지는 동서 22미터, 남북 12미터, 깊이 1.2미터의 동서로 긴 네모 형태로, 원래 있었던 통일신라시대 석축지에서 서북 방향으로 약간 이동된 상태이고 규모도 약간 크다.
하지만 석축 기법은 통일신라시대 석축지보다 엉성하고 성근 느낌을 주며 더 큰 석재로 쌓았다.
제2 우물 터는 조선시대 석축지에서 남쪽으로 직선거리 약 3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으로 산성 터의 중앙부에 해당한다.
남북으로 18.5미터, 동서로 10미터, 깊이 2미터 이상 규모이고, 대체로 조선시대 석축지와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졌으며 앞으로 정밀조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특히 제2 우물 터 출토유물 가운데 '잉벌내역지내말仍伐內力只內末'이란 글자가 새겨진 명문銘文 청동숟가락은 축조 연대의 하한을 8세기 중엽으로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일곱 글자 중 '잉벌내仍伐內'는 ≪삼국사기≫ 「지리지」에 보이는 현縣 이름인 '잉벌노仍伐奴'와 같은 것으로 이 지역의 지명, '역지力只'는 사람 이름, '내말'은 신라 관등 중 11관등 '나마奈麻'의 별칭으로, 결국 '잉벌내 지역에 사는 11관등의 역지라는 사람'의 청동숟가락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757년(경덕왕 16)에 군현의 이름을 모두 바꾸었다는 ≪삼국사기≫ 기록으로 보아 '잉벌내'란 지역 이름이 새겨진 이 청동숟가락은 757년 이전에 제작되었고, 제2 우물 터도 8세기 이전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 조선시대 석축지의 동북 방향 50미터 지점의 성벽 끝 부분에 석구상石狗像(개 석상)이 있는데, 이것은 경복궁의 해태상(해치상)과 서로 마주보게 하여 한양 장안에 화재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세운 해태상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발굴단은 석상의 형상이 개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기읍지≫ 중 시흥읍지의 내용에 보이는 '사견우四犬偶[4마리의 개 형상]의 하나로 판단했다.
또한 조선시대 석축지의 석축에서 '석구지石狗池'란 글씨가 새겨진 돌이 확인됨으로써 이 석상의 동물은 해태가 아닌 개가 한층 분명해졌다.
발굴단은 석구상이 조선시대에 만든 것이지만 당 시대 도읍 관련 설화로서 보존된다면 서울과 관련된 훌륭한 설화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조선시대의 서울에 있는 석상 중 '개'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 유일하지 않을까?
호암산성에 올라갈 일이 있으면 꼭 이 석구상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에 돌로 만들어진, 나이로 치면 오래된 '할아버지 개'이지만 모습은 '돌강아지'와 같아 쓰다듬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산성 터 성벽 1개소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양호한 상태의 석축 성벽이 새로이 확인되었다.
즉 이 산성 터는 표고 325미터의 능선을 따라 부분적으로 석축을 한 퇴뫼식 산성[봉우리들을 둘러쌓아 성을 축조하는 형태로, 산 정상을 중심으로 7~8부 능선을 거의 수평으로 하여 둘러싼 형태의 산성]으로 총 둘레는 1.25킬로미터, 남북으로 긴축은 470미터, 동서로 짧은 축은 약 200미터 가량 되는 남북으로 길쭉한 형태이며, 발굴 당시 산성의 동북쪽으로 약 300미터 구간이 석축으로 남아 있었다.
발굴단은 이 산성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호암산고성虎巖山古城으로 추정하였다.
축조 시기는 대체로 신라가 한강유역으로 진출한 6세기 중엽 이후이며, 출토유물로 볼 때 7세기 전반은 넘기 힘들고 그 하한은 8세기 중엽쯤으로 추측하였다.
즉 호암산성이 축성되었을 가장 타당한 시기는 문무왕 12년경인 672년이며 신라가 나당전쟁 때 한강을 넘어 수원으로 내려가는 육로와 남양만으로 침입하는 해로를 효과적으로 방어·공격하기 위해 새워진 요새로 파악하였다.
이번 조사에서는 12개 종류의 1,313개체의 토기 자료가 출토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유적으로는 경주 월지月池(안압지) 다음으로 많은 양이며, 하한을 8세기 중엽(757년 이전)으로 볼 수 있는 '잉대내仍大內' 또는 '잉대내관仍大內官'이란 글[명문 청동숟가락에 새겨진 '잉벌내仍伐內'처럼 '잉벌노仍伐奴'현縣이란 지역의 다른 이름]이 새겨진 명문銘文기와가 함께 출토됨으로써, 한강유역뿐 아니라 경주 지역의 신라의 삼국통일기 토기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발굴단은 보았다.
마지막으로 발굴단은 통일신라시대 연지와 조선시대 연지를 모두 아우르는 한우물의 정비·복원 방향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지금 호암산성에 복원된 한우물의 모습은 통일신라시대 석축지 내부에만 물을 모아놓은 것이며, 통일신라시대 석축지 안에 있던 조선시대 석축은 제거한 것이다.
즉 통일신라시대 석축지 내부에 들어가 있는 조선시대 석축지 남벽과 동벽을 제거하고, 통일신라시대 석축지 남벽과 동벽을 복원하여 그 안에 물을 채운 것이다.
이 복원 방법은 최초의 석축 상태를 충실히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고, 조선시대 석축 일부가 제거되는 단점은 안내판 등의 보조자료를 이용하여 보완하면 될 것으로 보았다.
지금의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호암산성과 한우물 즉 사적 제343호 서울 호암산성은 신라 유적이다.
이미 1990년에 발굴되어 한우물 등은 복원되어 있고, 주변 지역도 등산로와 연계되어 정비되어 있다.
그러나 서울시민들은 서울에 신라 산성이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다.
많은 시민들은 서울의 고대사는 백제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최근 아차산보루가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서울 고대사는 백제사'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서울지역 고대사의 특징은 삼국의 문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삼국의 발전 과정에서 한강유역의 점령과 지배는 역사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서울의 백제 유적을 대표하는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뿐만 아니라 고구려 유적인 아차산 일대 보루군[17개 보루 가운데 10개는 고구려 보루, 나머지는 백제나 신라가 만들었거나 개축한 것으로 추정]과 신라 유적인 이 서울 호암산성도 많은 서울시민들이 찾는 고대사 유적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특히 산 정상 가까이 위치한 거대한 연못인 한우물은 많은 서울시민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유적임이 충분한데도 아직까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xanto74&logNo=140109003607
3. 구글 관련 자료
2021. 12. 18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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