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2부 그리스•로마 세계 - 4장 그리스의 팽창 5: 상업의 발달과 도시화 본문
헬레니즘 Hellenism(그리스적인 사상과 문화에서 유래하는 정신 즉 그리스주의를 말하며, '그리스인 자신'을 지칭하는 그리스어 '헬렌 Héllēn'에서 유래) 세계는 원거리 무역, 재정, 도시 등의 발달에 힘입어 전반적인 번영을 누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Alexander the Great(서기전 356~323)의 정복은 이집트에서 페르시아만까지 뻗은, 그리고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통치자들과 새로이 형성된 상인 집단이 주도하는 광대한 상권을 활짝 열었다.
이 정복은 또한 약탈로 획득한 대량의 페르시아 금화와 은화, 보석, 그릇 등을 유통시킴으로써 상업 경제를 자극했다.
공업 또한 번성했는데, 이는 전제적 지배자들이 교역을 통한 세입 증대 방편으로 제조업을 적극 장려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모험 상업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 지배 아래 있는 서아시아 지역—중심지는 시리아—에서 특히 활발했으며 수익성도 좋았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Ptolemaic dynasty와 셀레우코스 왕조 Seleucid dynasty는 상업을 장려하려고 모든 편의를 제공했다.
항만이 개선되었고 해상 치안을 확보하기 위해 전함이 파견되었으며 도로와 운하가 건설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지리학자들을 고용해 원격지로 가는 새로운 통로를 찾아내고 귀중한 시장을 개척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집트에서는 매우 다양한 제품들이 거래되는 활기찬 상업이 발전했다.
알렉산드리아 항구 Port of Alexandria에는 아라비아의 향신료, 에티오피아와 인도의 황금, 브리튼 Briton(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가 있는 지금의 영국 섬)의 주석, 소아이사의 고급 카펫, 그리고 중국에서 온 비단까지 흘러들어왔다.
정부와 일부 상인은 종종 20~30퍼센트에 이르는 높은 이윤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도시는 정치적·경제적 이유 때문에 헬레니즘 시대에 크게 성장했다.
경제적 동기와는 전혀 별개로 그리스인 지배자들은 비그리스인 주민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스인 관리들—그리스인 병사들—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정주지 가운데 상당수는 세로이 건립된 것이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인 지배를 위한 전초기지로서 약 70개의 도시를 건설했고, 그 후 2세기 동안 그의 후계자들은 약 200개의 도시를 추가로 건설했다.
상공업의 팽창 및 정부 사무소의 증가도 도시화를 가속시키는 요인이었다.
일부 중심 도시들의 인구 증가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시리아의 안티오크 Antioch는 100년 동안 인구가 4배 증가했다.
티그리스 강가의 셀레우키아 Seleucia는 원래 허허벌판이었지만 200년도 안 되어 인구가 수만 명에 이르는 대도시로 성장했다.
헬레니즘 도시 중 가장 크고 유명했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인구가 50만 명에 달했다.
로마 제국 이전에 등장한 고대의 어떤 도시도 규모와 장대함에서 알렉산드리아를 능가하지 못했다.
도시의 거리는 잘 포장되고 반듯하게 구획되어 있었으며, 화려한 공공건물과 공원, 박물관, 50만 권의 두루마리를 소장한 도서관 등이 있었다.
헬레니즘 경제는 전반적으로 성장했지만 모든 사람이 번영을 향유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농업은 헬레니즘 세계의 주요 산업이자 일차적인 부의 원천으로 남아 있었고, 특히 소농은 헬레니즘 군주들의 착취 성격의 세금정책으로 심각한 곤란을 겪었다.
공업 생산이 증대했다고는 하지만 공업은 여전히 개별 직공의 육체노동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가난을 면치 못했다.
헬레니즘 도시들의 넘쳐나는 인구 때문에 실업 문제는 지속적인 관심사였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구걸, 도둑질, 매춘 등을 하지 않은 수 없었다.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번영을 누린 사람들도 상업활동 고유의 불확실성 때문에 심한 기복을 겪었다.
예를 들어 사치품 직물 판매로 큰 재미를 본 상인이 거금을 투자해 잔뜩 상품을 사들였다가 고객의 취향이 변해 낭패를 당하는가 하면, 상품 수송을 위해 보낸 배가 침몰하는 등의 위험한 상황도 있었다.
상인은 호경기와 불경기의 급격한 기복에 시달려야 했다.
이를테면 가격 상승 국면에서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상인이, 상승 추세를 이용할 요량으로 부채를 떠안았다가, 취급 품목의 공급이 수요를 갑자기 초과해 채권자에게 갚을 돈마저 없어 빈털터리가 되는 상황을 맞이하곤 했다.
전체적으로 헬레니즘 세계의 경제 지형은 그야말로 극단을 달리는 것이었는데, 헬레니즘 사상과 문화를 고찰할 때 그 같은 상황을 염두에 필요가 있다.
※출처
1. 주디스 코핀 Judith G. Coffin·로버트 스테이시 Robert C. Stacey 지음, 박상익 옮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상): 문명의 기원에서 종교개혁까지, Western Civilizations 16th ed., 소나무, 2014.
2. 구글 관련 자료
2022. 9. 19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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