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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13: 강동구 지역

새샘 2022. 10. 13. 20:59

 

<2000년 이후 발굴조사 목록-강동구 지역>

 

강동구 지역 유적은 암사동, 고덕동, 둔촌동, 상일동, 강일동 등에서 발굴이 실시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암사동 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암사동 유적으로 대표된다.

암사동 주변 지역에 대한 조사 이외에도 서원 건축, 아파트 재건축 부지, 병원 건립 부지, 택지개발사업 부지, 도로포장 구간, 정수장 부지 등 주로 사업을 위한 구제발굴이 실시되었다.

 

먼저, 2001년 구암서원龜巖書院 건립과 복원을 뒤한 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구암서원은 서울 지역에 건립되었던 몇 되지 않는 조선시대 서원으로 1667년(현종 8)에 건립되어 1697년(숙종 23)에 구암이라는 편액을 받아 사액賜額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사액서원은 임금에게서 편액扁額(종이, 비단, 널빤지 따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서적·토지·노비 따위를 하사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을 이른다.

그러나 구암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毁撤(헐어서 치워 버림)되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1987년 한강변 문화유적발굴조사단이 강동구 암사동 산1-1번지 일대를 조사하여 구암서원 터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에 강동구는 구암서원의 복원을 계획하여 암사동 산1-1번지 일대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했는데, 실지로 서원을 복원하기는 힘들다고고 판단하여 새로운 부지에 구암서원을 복원·건립하기로 했다.

이에 암사동 산1-1번지 일대와 마주보는 구릉지 일대의 동쪽 즉 올림픽대로를 사이에 둔 남쪽 구릉지인 암사동 산10번지 일대를 건립지로 선정하고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시굴조사 결과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이 확인되었으며, 발굴단은 이 토기를 청동기시대 유물로 추정하고, 그 일대에 당시 주거지 또는 관련시설이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향후 구암서원 복원시 발굴조사를 실시할 것으로 건의했다.

 

이후 2003년 구암서원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다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지만, 조사지역은 앞서 시굴조사가 있었던 암사동 산10번지가 아닌 암사동 132번지 일대로, 암사동 유적에서 북동 방향으로 약 200미터 지점이었다.

아마도 강동구청의 요구에 따라 복원 부지를 변경한 듯하다.

 

발굴 결과, 통일신라시대 인화문印花紋(도장 따위의 도구로 눌러 찍어 무늬) 토기 조각 4점, 고려시대 구들장 3매와 토기 조각, 자기 조각, 철못 2점, 그리고 조선시대 선조 때 인물인 안황安의 지석誌石(죽은 사람의 인적 사항이나 무덤의 소재를 기록하여 묻은 판석이나 도판) 조각 출토되었으나 발굴조사지역 전체가 대부분 교란되어 있어 그 시대 성격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발굴이 끝난 뒤 구암서원은 복원이 되었을까?

암사동 산10번지 일대에도, 암사동 132번지 일대에도 구암서원은 복원되지 않았다.

원래 위치도, 원래 모습도 모르는 상태에서의 문화재 복원은 복원이 아니라 서원을 새로 짓는 신축新築일 따름이다.

 

 

암사동 유적 체험마을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암사동 유적  근처에 대한 시굴조사가 2004년과 2006년에 있었다.

암사동 98번지 일대는 암사동 유적의 북동쪽 지역으로 선사문화교육장 조성 예정 부지다.

강동구에서는 유구 분포 범위의 한계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2004년에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주민들과의 협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조사지역 전체에 대한 조사는 하지 못하고 일부 지역에 대해서만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조사 결과 신석기시대 문화층은 확인되지 않았고, 백제 주거지 1기만이 확인되었다.

조사지역은 발굴 이후 암사동 유적 내 체험마을로 조성되어 있다.

 

2006년 암사동 114-5번지 시굴조사는 소규모주택 신축부지에 대한 조사였다.

이는 형질 변경시 관련 문화재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며, 일반적으로 소규모 주택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이 이유 때문에 실시된다.

조사지역 위치는 암사동 유적 북동쪽에서 도로 건너편이다.

조사 결과 유실이 심해 일부가 교란된 건물 터 2기와 원형(환상環狀) 석렬石列 유구遺構(옛 흔적) 1기, 구덩이 6기가 노출되었다.

발굴단은 건물 터의 경우 사용 하한이 근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2005년 강동시영아파트 재건축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청동기시대와 고려~조선시대 관련 유구와 유물들이 확인되었고, 2007년에는 보훈중앙병원 건립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지만 발굴보고서를 확인하지 못해 그 자세한 발굴 내용은 알 수 없다.

 

2008년부터 2009년에는 강일2지구 택지개발사업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위치는 강동구 강일동과 상일동 일대이며, 조사지역 서쪽에는 고덕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동쪽 경계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남쪽 경계는 상일교차로의 진입도로와 맞닿아 있다.

발굴 결과, 조선시대 건물 터 1기, 탄요炭窯(숯을 구워내는 가마) 1기, 소성유구燒成遺構(불을 사용한 흔적이 있는 옛 흔적) 7기, 구덩이 7기, 돌무지(적석積石: 돌더미) 유구 2기, 널무덤(토광묘土壙墓) 2기, 회묘灰墓(석회, 황토, 가는 모래의 세 가지를 한데 섞어 반죽한 물질인 회삼물灰三物로 만든 격벽이 있는 묘) 8기 등 총 28기가 확인되었다.

돌무지 유구는 소형 가마로 추정했으며, 널무덤과 회묘는 조선시대 것으로 판단하였다.

발굴단은 이 조사유적들을 모두 15~18세기의 조선시대에 해당되는 생산 및 생활 유적으로 추정했다.

 

 

고덕동 도로포장 구간에서 확인된 회묘들(사진 출처-출처자료1)

2009년부터 2010년에는 도로 확장 포장구간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당시 건설하고 있던 암사대교와의 연계도로서의 기능과 강동지역 아파트  건축, 강일 도시개발사업 등에 따른 교통량 증가에 대비하여 기존 고덕동 뒷길을 확장하는 공사였다.

발굴조사는 조사지역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크게 4구역(A, B, C, D)으로 나누어 실시되었다.

 

A구역에서는 구석기시대 유적과 고려~조선시대 널무덤, 회묘, 구덩이 따위가, B구역에서는 구석기시대 유적, 고려~조선시대 주춧돌(초석礎石) 건물 터, 움집터와 건물 터, 널무덤, 회묘 따위가, C구역에서는 구석기시대 유적과 통일신라시대 돌방무덤(석실묘石室墓), 고려~조선시대의 건물 터와 집터, 원형 구덩이, 회묘, 널무덤 따위가, 그리고 D구역에서는 구석기시대 유적과 청동기시대 집터와 널무덤, 회묘, 원형 구덩이 따위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발굴단은 암사동 유적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신석기시대 관련 유적과 유물을 기대했지만, 전체적으로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각 시기별 유적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은 1960년대 명일동 주거지가 확인된 이후 체계적이고 본격적으로 발굴되어 보고된 첫 번째 청동기 집터 유적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2010년에는 암사동 암사정수장 건립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위치는 암사동 62-1번지이며, 해발 400미터 이내의 구릉지형과 낮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북서쪽에는 한강변에 접하고 있다.

 

발굴조사에서는 고려~조선시대 움집터 3기, 건물 터 2기, 가마 1기, 소성유구 1기, 돌무지 유구 1기, 도랑(구상溝狀)유구(물이 흘러간 옛 흔적) 1기, 구덩이 15기, 석렬 1기, 널무덤 9기, 회묘 4기 등 모두 37기의 다양한 유구들이 조사되었다.

발굴단은 움집터와 건물 터 따위의 생활유구와 분묘유구를 통해 고려~조선시대의 생활상과 장례문화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았다.

 

 

구리 암사대교 연결도로 부지 조사지역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2013년에는 암사동 산19-5번지 일대 구리 암사대교 연결도로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발굴 결과, 구석기시대, 청동기시대,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구들—구석기 문화층, 청동기시대 주거지 16기, 고인돌 덮개돌 1기, 고려시대 움집터 1기, 조선시대 움집터 1기, 고려시대 무덤(분묘墳墓) 1기, 조선시대 무덤 29기, 구덩이 유구 31기, 석렬 유구 1기, 매납埋納유구(여러 가지 유물들이 묻혀 있는 옛날 묘지의 흔적) 3기 등 모두 89기이 조사되었다.

이 가운데 구석시시대 유물 포함층에 대해서는 정밀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2009년부터 2010년에 고덕동 지역 도로 확장 포장구간 에 대한 발굴조사와 비슷한 성격을 보여줬다.

 

 

2013년과 2014년에는 암사동 선사로-고덕지구간 도로확장공사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이는 강동지역 아파트 재건축, 강일 도시개발새업, 하남 미사 보금자리 주택지구 건설 등 이 지역 개발에 따른 교통량 증가에 대비한 도로 확장공사 때문이다.

 

1차 조사에서는 널무덤과 주거지 등 무덤 및 생활유구의 흔적이 확인되었고, 유물로는 토기, 백자, 청동숟가락·젓가락,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2차 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 집터, 조선시대 집터와 무덤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유물로는 토기, 백자,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3차 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 집터 3기와 조선시대 무덤 21기, 구덩이 1기 등 총 25기의 유구가, 4차 조사에서는 고려~조선시대의 돌덧널무덤(석곽묘石槨墓)과 널무덤 등의 무덤과 구덩이 따위가 확인되었다.

5차 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 구덩이 1기와 백제시대 집터(주거지) 1기, 고려~조선시대 집터 3기, 돌덧널무덤 1기를 포함한 무덤 87기, 구덩이 8기 따위가 확인되었다.

6차 조사에서는 조선시대 집터와 무덤, 구덩이가, 7차 조사에서는 조선시대 집터 6기, 무덤 34기, 구덩이 11기가 조사되었다.

 

그밖에 둔촌동의 일지산 이대에 체육관시설 신축에 따른 발굴조사, 2011년에는 강일동 도시개발사업지구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 2012년에는 암사동 233번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구글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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