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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14 - 녹나무

새샘 2024. 7. 20. 11:59

일본 산사에서 자라는 녹나무와 그 굵은 몸통줄기(사진 출처-출처자료1)


녹나무과 녹나무속에 속하는 늘푸른큰키나무인 녹나무는 난대 및 아열대 지방에서 크고 굵게 자라면서 오래 사는 나무다.

목재는 선박이나 가구 만드는데 쓰이고, 나무에서 생화학물질인 장뇌樟腦를 추출하여 강심제를 만든다.

학명은 시나모뭄 캄포라 Cinnamomum camphora, 영어는 camphor tree(장뇌나무), 중국어 한자는 장樟 또는 예장豫樟이다.

우리나라에서 섬이 아닌 한반도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녹나무라는 이름이 조금 생소하다.

그것은 이 나무가 주로 제주도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명칭과 특징

 

녹나무는 한자로는 '녹나무 장樟'을 쓰고 이것을 '예장나무 장樟'으로도 읽는다.

예장은 樟이나 豫章으로 쓰는데 모두 녹나무를 뜻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녹나무로 부르고 있고, 예장나무란 이름은 드물게 쓰는 것으로 보인다.

예장이란 말은 사실 예전 중국에서 써온 말로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오늘날 우리도 예장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녹나무 잎과 가지(사진 출처-출처자료1)

 

가을 녹나무의 잎(사진 출처-출처자료1)


녹나무는 늘푸른나무이지만 한편으로 잎이 떨어지기도 하는 갈잎나무이기도 하다.

이 나무의 잎은 달걀 모양의 긴 타원형으로, 잎자루가 긴 편이다.

잎에는 한 개의 주맥主脈과 두 개의 측맥側脈이 있으며, 이것을 흔히 3대 맥으로 되어 있다고 표현한다.

주맥과 측맥이 서로 모이는 곳에는 사마귀 같은 작은 혹이 있는데, 이것은 벌레집으로 그 안에 응애가 들어 있다.

응애가 용하게도 이곳을 찾아 벌레집을 만드는 능력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럴 때 적소適所라는 말을 쓴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적당한 곳을 말한다.

적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으며, 하나는 생태적인 적소이고, 다른 하나는 먹이(식이적食餌適) 적소이다.

생태적 적소는 햇볕, 온도, 습도 등 생활환경이 가장 알맞은 상태에 있는 곳을 뜻한다.

파리는 뒷간이 먹이 적소이고, 표고버섯은 햇볕이 많이 쪼이지 않는 습기 있는 참나무의 죽은 줄기가 먹이 적소인 동시에 생태적 적소이기도 하다.

큰 나무 줄기에 붙어사는 풍란이란 난초는 그 줄기가 그들의 생태적 적소이다.

 

 

○문헌 속의 녹나무

 

경남 남해 도마리의 녹나무 고목(사진 출처-출처자료1)

 

≪군방보群芳譜≫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녹나문는 그 높이가 매우 높고, 잎은 매화나무 잎과 닮았으며, 잎의 끝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다.

 잎 뒤에는 황적색 털이 나 있다. 사시사철 나뭇잎이 푸르게 달려 있고, 초여름에 작은 꽃을 피운다.

 꽃이 지면 작은 열매가 맺는다. 나무의 결은 치밀하고 고와서 조각재로 알맞다.

 나무는 진한 향기를 풍기며, 큰 나무의 줄기는 몇 아름이나 될 정도로 굵다.

 중국 서남쪽 곳곳의 산골짜기에 나며, 집안 거실의 각종 기물을 만드는 데 쓰인다.

 또한 선박을 만드는 재료로 알맞다."

 

사실 녹나무는 보통 크기가 20미터에 이르고, 때로는 50미터에 달하는 것도 있다.

제주도 나무로서는 가장 크게 자라는 것으로 보인다.

녹나무의 잎은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고 물결치듯이 크게 몇 굽이 굽어 보인다.

 

녹나무는 굵게 자라 줄기 지름이 2미터에 달하는데, 지금까지의 기록을 보면 가슴높이 줄기의 지름이 8미터에 달한 것도 있다.

여간 큰 나무가 아니다.

 

 

○선박 재료로 이용

 

≪군방보≫에는 녹나무가 또한 배를 만드는 데 알맞다고 쓰여 있다.

조선시대에 군사용 배를 만들기 위해서 바닷가에 있는 큰 소나무와 녹나무를 보호하고 법으로 그 벌목을 막은 일이 있었다.

바다에서 쓸 군함을 만들자면 그 무거운 나무를 먼 곳에서 바닷가까지 가져오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해변가에 있는 큰 나무는 매우 소중했다.

따라서 제주도의 녹나무가 군용 목적으로 얼마만큼 큰 가치가 있었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된다.

 

예전에 경남에 사는 어떤 분이 나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이끌고 일본의 많은 배를 격침시켜 혁혁한 전과를 올린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지만, 어떻게 해서 이길 수 있었을까요?

 ···

 승전에 관한 주요한 사실은, 배와 배가 부딪칠 때 일본 배는 쉽게 산산조각 났지만, 우리나라의 배는 그것을 만든 목재의 성질이 강하고 단단해서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것을 연구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답장을 보내지 못했지만, 이 배의 재료로 사용된 나무도 녹나무와 소나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군방보≫에서도 녹나무에 대해 그리 말했으니 말이다.

 

배를 만드는 데에는 길고 굵은 나무가 좋다.

중국 고대 문헌인 ≪신이경神異經≫에 "동쪽에 예장나무가 있는데 그 높이가 지독히 높다(동방유예장東方有豫章 수고천장樹高千丈)"라는 설명이 있다.

좀 과장된 느낌이 있지만, 이때 동방이란 우리나라 제주도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나무의 가치

 

녹나무 잎에는 장뇌라는 향기 나는 기름이 다량 포함되어 있고, 목재 안에도 장뇌가 많이 들어 있다.

이것을 보통 캠퍼 camphor라고 하는데, 강심제를 만드는 원료가 된다.

 

녹나무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조무래기 같은 나무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가운데 유독 장엄한 기품을 지니고서 태연하게 몸매를 드러내고, 더욱이 몸통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좋은 향기를 내뿜는 까닭에 귀한 사람이나 어진 사람에 비유된다.

 

다음과 같은 기록은 음미할 만하다.

 

"신어에 말하기를 (신어왈新語曰)

 어진 사람이 처세하는 모습이란 것은 (현자지처세賢者之處世)

 모래밭 가운데 나는 금덩어리와 같기도 하고 (유금석생우사중猶金石生于沙中)

 깊은 산중에 나는 녹나무와도 같다 (예장산어유곡豫章山於幽谷)"

 

산에 나는 녹나무를 모래 속의 금덩어리로 비유하고 또 어진 사람의 모습에 비유한 것은 녹나무의 가치를 잘 나타내준다.

 

≪군방보≫에도 있었지만 녹나무는 중국 본토에 많이 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중국 시인들은 녹나무를 시제詩題로 꼽기도 했다.

두보杜甫의 시에서도 "예장나무는 바람에 펄럭이며 대낮의 해를 움직이고 (예장번풍백일동豫章翻風白日動)"라고 했으니, 녹나무가 시인의 눈에 한량없이 운치 있는 나무로 비쳤던 듯하다.

 

 

○일본과 한국에서의 녹나무 체험

 

언젠가 일본에 있는 임업시험장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이 시험장은 세계에서 손꼽힐 만큰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시설이 현대적이고 완벽한 것으로 이름나 있다.

시험장 현관에 들어서면 굵은 줄기를 켠 나무판이 장식되어 있다.

먼저 그 크기에도 놀랐지만, 목재의 아름다운 무늬와 색깔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곳에 찾아오는 손님의 기를 우선 눌러놓자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누구든지 카메라의 초점을 이것에 맞추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무가 바로 녹나무다.

말하자면 나무를 공부하는 학자들을 일본의 녹나무로 현관 입구에서부터 놀라게 해주자는 것이다.

녹나무가 얼마나 좋은 것이면 다른 나무를 제쳐놓고 이것으로 현관을 장식한 것일까!

 

제주도에 살고 있는 어떤 분이 종종 녹나무와 육계나무의 잎을 편지봉투에 넣어서 보내주곤 했다.

녹나무 잎차를 달여 맛보라는 것이었다.

이 쌍긋한 향기가 풍기는 차 맛은 손님들과 나누어 마시기에도 아까울 정도로 훌륭해서 비장해두고 혼자서 조금씩 달여 마셨다.

 

녹나무의 일본 이름 가운데 '난자몬자'라는 것이 있다.

이 이름은 권위 있는 책에도 나오는데, '이것이 대체 무엇일까?'라는 뜻이다.

시골에 살고 있었던 어느 농부가 녹나무의 이름을 알 수가 없어 그 잎을 따 가지고 수령(성주)한데 가서 물었더니, 그마저 이름을 몰라 "이것이 대체 무엇인가?"라고 하여 그날 수령이 했던 말 '난자몬자'를 그대로 나무 이름으로 붙였다는 것이다.

 

녹나무는 제주도와 같은 난대림 지방 나무 가운데서 가장 오래 살 수 있는 나무로서, 수명이 1천 년을 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녹음수綠陰樹(푸른 숲을 이루는 나무)로도 좋고 공원의 풍치수風致樹(멋진 경치를 꾸미는 나무)도 알맞다.

씨를 뿌리면 쉽게 묘목을 얻을 수 있고 움(새로 돋아 나오는 싹) 돋는 힘이 있기 때문에 가지치기를 해서 나무의 모양을 다듬어줄 수 있다.

많이 심어서 웅장한 거목으로 키워보면 좋지 않을까?

이 나무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필요가 충분히 있다.

녹나무가 우거진 제주도.

생각만으로도 멋진 풍경이 그려진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1,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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