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19 - 가시나무 본문
늘푸른나무이면서 도토리가 달리는 남부 지방의 참나무 종류인 가시나무는 제주도에서 많이 나며, 전남과 경남의 섬에서도 자란다.
학명은 쿠에르쿠스 미르시니폴리아 Quercus myrsinifolia, 영어는 Bamboo-leaf oak(댓잎참나무), 중국어 한자는 저櫧로 쓴다.
가시나무의 '가시'는 날카로운 진짜 가시라는 뜻이 아니라, 굳고 단단하다는 뜻의 가시이다.
○특징
'가시나무' 하면 제주도가 생각날 정도로 제주도에서 많이 난다.
가시나무에도 붉가시나무, 종가시나무, 개가시나무, 참가시나무 등 종류가 적지 않다.
가시나무는 도토리를 맺는다는 점에서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등과 비슷하다.
이들은 모두 참나무속(Quercus)이다.
단, 참나무속 가운데 가시나무처럼 늘푸른나무들은 가시나무아속亞屬으로 분류된다.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남쪽 해안 지대와 제주도, 그리고 일본과 중국에도 있다.
늘푸른 가시나무 종류가 갈잎의 신갈나무 종류와 다른 점은 도토리를 담고 있는 깍정이(곡두穀頭)의 바깥면이 원형의 띠로 층을 이룬 윤층輪層으로 되어 있다는데 있다.
바로 위 사진의 가시나무 열매를 보면 짐작이 간다.
가시나무는 목재가 단단하고 강인하며 터지는 일이 거의 없다.
○다양한 이름
깍정이 안에 있는 열매인 도토리를 중국에서는 '저櫧', '모茅', '역두櫟斗', '역강櫟橿' 등으로, 일본에서는 '단율團栗(동구리)', '둔율鈍栗'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도토리의 영어 이름은 에이콘 acorn이다.
가시나무를 나타내는 한자 이름에는 '돌가시나무 저櫧' 또는 '상수리나무 력櫟' 자를 쓰고 있다.
붉가시나무는 목재가 붉은색을 띤다고 해서 '혈저血櫧'로 표기한다.
예전 사람들이 붙인 한자 이름은 과학적으로 분명하지 못한 것이 많다.
'상수리나무 력櫟' 자만 하더라도, 이것은 겨울에 잎이 떨어지는 종류인데 역동부조櫟冬不凋', 즉 역櫟은 겨울에도 잎이 푸르다는 기록도 있어 어떻게 분간해야 할지 난감하다.
일본 사람들은 '견樫'자를 '가시'라고 읽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글자가 바로 떡갈나무나 북가시나무를 가리킨다는 점이다.
이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할까?
가시나무는 '가시목加時木'으로 쓰기도 하는데, 이것을 일본말로 읽어도 '가시'나무가 된다.
이는 두 나라의 나무 이름이 같은 데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우리말이 일본으로 건너갔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조엽수종
일본 사람들은 그들의 문화 그리고 동부아시아의 문화를 일컬어 조엽수림照葉樹林 문화라고 한다.
조엽수종照葉樹種이란 무엇인가?
이 말은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많은 지역에서 자라는 늘푸른넓은잎나무를 말한다.
겨울의 추위와 건조한 기후를 견디기 위해 잎이 두텁고 표면이 번쩍이는 짙은 녹색이며, 온대 지방의 갈잎넓은잎나무에 비해 대체로 잎이 작다.
여름이 덥고 비가 많이 오며 겨울이 비교적 추운 곳에 이러한 조엽수림이 형성되어 있다.
대표적인 조엽수종이 가시나무 종류이다.
물론 사철나무, 녹나무, 동백나무, 후박나무, 차나무 등도 조엽수종에 들어간다.
한편 유럽 지중해 연안과 근동 지방에 나는 올리브 olive를 대표로 하는 숲은 조엽수림과 비슷하지만 경엽수림硬葉樹林이라 해서 구별하고 있다.
그곳은 겨울에 비가 많이 내리고 그다지 춥지 않으며 여름은 매우 건조한 환경이다.
따라서 조엽수림은 겨울의 추위에, 경엽수림은 여름의 건조에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 식물이라 할 수 있다.
경엽수종의 잎은 보통 조엽수종에 비해 크기가 훨씬 더 작다.
우리나라의 조엽수림대는 난온대 또는 늘푸른넓은잎나무숲 지대로 언급되는 곳인데, 그 면적이 넓지 않다.
우리나라에 억지로 조엽수림 문화를 연결시켜 볼 필요성이 있고 없고는 차치하고 차나무, 대나무, 난초 등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럼에도 조엽수종인 차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귤 종류와 동백이 우리나라 민속과 문화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고 본다.
전남 두륜산 대흥사에 일지암一枝庵을 짓고 ≪동다송東茶頌≫, ≪다신전茶神傳≫을 집필하면서 다茶문화의 성지를 만든 초의선사草衣禪師의 행적, 또 다茶의 길에 통했던 실학의 거성 정약용, 흑산도에서 ≪어보魚譜≫를 낸 정약전, 보길도에서 고산孤山문학을 꽃피게 한 윤선도, 이들과 교유가 있었던 추사 김정희, 이들은 모두 조엽수림 지대에 유배되어 광휘光輝(환하고 아름답게 눈이 부심)에 찬 업적을 남겼다.
우암 송시열도 그러하지만 우슬령牛膝嶺(우슬재牛膝峙: 해남에 있는 고개)을 넘은 사람들이 만든 유배문화가 가시나무림 지대에서 꽃핀 사실을 우리 민족은 잊지 않고 있다.
대흥사, 송광사, 화엄사, 해인사, 통도사 등 가시나무림대에 위치한 불교문화도 다시 한번 삼림생태학적 시각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분포
늘푸른 참나무 종류와 갈잎 참나무 종류는 분포상 경계가 있다.
늘푸른 가시나무가 북쪽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겨울의 추위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고, 북쪽의 수종이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것은 여름의 더위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추위에 적응한 갈잎 넓은잎나무를 남쪽으로 가져오면 더운 여름에 에너지 소모가 심해져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제주도에 갈잎 참나무류가 없지는 않지만, 아마 제주도보다 더 남쪽에 영토가 있었더라면 내려가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제주도의 가시나무 숲은 이 지역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어로행위가 옛날부터 도민의 생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에 필요한 것이 선박인데, 이때 거대한 가시나무 목재는 가장 알맞고 긴요한 자재였을 것이다.
당나라의 거유巨儒(뭇사람의 존경을 받는 이름난 유학자) 한유韓愈의 글 가운데 탐라(제주도) 등의 외국 상선이 중국에 와서 폭행을 했다는 기사가 있는데, 이는 조선술과 항해술이 능한 탐라인들이 통일신라 이후 중국 연안까지 나아갔음을 뜻한다.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조선재造船材로 적당한 가시나무가 제주도에 많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남해안에 자라고 있던 가시나무는 군함의 재목으로도 쓰여 국난을 방비하는데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신화 속 가시나무
겸손하고 예의 바르며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가시나무가 되었다는 그리스 신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제우스 Zeus가 아들 헤르메스 Hermes와 함께 필레몬 Philemon의 집을 찾았을 때, 그 집에 겸손과 예절과 착함이 가득한 것을 보고 남편 필레몬은 가시나무로, 그의 착한 아내 바우키스 Baucis는 보리수나무로 변신시켜 오래 살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스에서는 "나는 가시나무를 보면서 말한다"라는 말이 "나는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와 같은 뜻이라고 한다.
행세를 잘못한 사람은 가시나무를 볼 때마다 자신이 천한 사람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유럽에서 사자는 백수百獸(온갖 짐승)의 왕이고, 독수리는 백금百禽(온갖 날짐승)의 왕이며, 가시나무는 숲의 왕이라는 말이 있다.
가시나무에 가장 신령스러운 영혼이 잠재해 있는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가시나무는 또한 굳세면서도 오래가는 사랑을 상징한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1,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구글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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