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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크와 설파제

새샘 2025. 3. 11. 11:11
최초의 항균제 '프론토실 레드'를 만든 도마크(출처-출처자료1)

 
독일 의학자 게르하르트 도마크 Gerhard Domagk(1895~1964)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위생병으로 복무하면서 수많은 동료 군인들이 총탄이 아닌 상처 감염으로 생명을 잃는 것을 목격하고 "언젠가 감염성 질환을 반드시 해결하리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도마크가 사회로 복귀했던 1920년대는 다양한 화학염료를 이용해 마침내 매독 치료제 '살바르산 Salvarsan'을 합성한 파울 에를리히 Paul Ehrlich(1854~1915)를 본보기(롤모델 Roll Model)로 삼아 전 세계의 많은 연구소들이 화학염료를 이용한 세균 감염 치료제를 연구하던 시기였다.
도마크 역시 한 연구소에서 새로 만든 화학염료를 다양한 세균에 감염된 쥐에게 주사해 염료들이 의학적인 치료 효과가 있는지 살펴보았는데 그 결과물이 4년 만에 나왔다.
 
오랜 시도 끝에 도마크는 붉은색 염료인 아조 염료 azo dye와 술폰아미드 sulfonamide라는 성분이 합성된 화학물질을 만들었다.
이름은 프론토실 레드 prontosil red였고, 보통 '설파제 sulfa drugs'라 불렀다.
1932년 도마크는 세균에 감염된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프론토실 레드를 투여한 쥐들은 살아남고, 그러지 않은 쥐들은 죽었다.
실험실에서 약물의 효과를 입증한 도마크는 인체 실험을 준비했다.
그때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도마크의 딸 힐데가르데 Hildegarde가 오염된 바늘에 손을 찔려 온 팔에 염증이 퍼진 것이다.
딸을 진료한 의사는 아무래도 생명을 구하려면 팔을 자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딸의 팔을 자를 수 없었던 도마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자신이 개발한 '프론토실 레드'를 딸에게 복용하게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딸은 약을 복용하고 며칠 만에 염증이 모두 사라져 딸의 팔을 지킬 수 있었다.

포론토실 레드의 인체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1935년 파스퇴르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프론토실 레드의 효과가 아조 염료 때문이 아니라 술폰아미드 성분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설파제의 술폰아미드가 몸 안으로 들어가 술포닐아미드 sulfonylamide로 변해 약물 효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곧바로 술포닐아미드를 이용한 항균제 개발 경쟁이 벌어졌다.
이렇게 개발된 설파계 항균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미군은 구급약으로 배낭에 항상 설파계 항균제 가루를 갖고 다녔다.

전쟁 영화에서 동료 군인이나 위생병이 부상병의 상처에 뿌리는 흰 가루가 바로 설파계 항균제다.

군인 동료들을 위해 감염성 질환을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던 도마크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물론 그가 독일 군인만 구하려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도마크는 모든 국적의 군인들을 감염의 위험에서 지켜낸 것이다.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Franklin Delano Roosevelt(임기 1933~1945)의 아들인 루스벨트 주니아 Roosvelt Jr.가 1936년 겨울 어느 날 파티에 참석하고 난 뒤 앓아누웠다.
기침과 인후통으로 시작된 감기 증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악화되었다.
그는 한쪽 얼굴에 통증을 느꼈다.
얼굴뼈의 코곁굴(부비동副鼻洞) paranasal cavity이라는 빈 공간에 세균이 감염되는 급성 코곁굴염(부비동염, 축농증)이었다.
지금이야 항생제 복용으로 몇 주 안에 호전되는 병이지만 당시에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중병이었다.
루스벨트 주니어를 살리기 위해 독일에서 임상시험 중이던 약이 미국으로 수송되었다.
다름 아닌 프론토실 레드였다.
프론토실 레드는 미국 대통령의 아들을 위기에서 구한 '기적의 약'이 되었고, 임상시험을 통과한 뒤 대량생산되어 많은 미국인들을 감염의 위험에서 구했다.
 
그러던 중 대형 약물 사고가 터졌다.
술포닐아미드는 알약으로 판매되고 있었는데 어린아이들이 알약을 먹기 힘들어하자 제약회사들이 물약으로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다.
1937년 마센질 Massengill이라는 제약회사가 마침내 그 방법을 찾아냈다.
유기용매인 디에틸렌 글리콜 diethylene glycol이라는 약제가 술포닐아미드를 효과적으로 녹일 수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당시 강제 조항이 아니었던 동물 실험을 생략한 채 약물의 판매가 결정되었고, 오늘날 자동차 부동액으로 쓰이는 공업약품인 디에틸렌 글리콜을 이용한 술포닐아미드 물약 약 1톤이 시중에 배포되었다.
약물 이름은 '엘릭서 술포닐아미드 elixir sulfanilamide'였다.
그런데 술포닐아미드 물약을 복용한 아이들이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미국의학협회는 판매 중지를 요구했지만 제약회사 측은 원인 규명이 먼저라며 시간을 끌었다.
논란 속에 사망자가 이어지자 의학협회는 언론에 알려 여론을 만들었고, 제약회사는 그제야 시중에 풀린 약물을 회수했다.
약물은 이미 150킬로그램이 판매되어 353명의 어린아이가 복용한 상태였다.
그중 105명은 약물에 의한 콩팥 손상으로 결국 사망했다.
약을 조제했던 제약회사의 연구자는 스스로 삶을 마감했지만 약을 만든 제약회사 마센질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
상표법을 위반했다며 3,000달러 미만의 벌금형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의료법의 문제점을 깨달은 당국은 1938년 '연방 식품·의약품·화장품법 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 Act'을 제정했다.
이 법은 향후 미국식품의약국 United State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USFDA)의 탄생을 이끈다.
 
비타민 B 복합체의 일종인 잎산(엽산葉酸, 폴산) folic acid은 생명체의 세포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필수 영양소다.
인간은 잎산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특히 임신 중 잎산의 섭취가 부족하면 치명적인 빈혈이 발생한다.
하지만 일부 세균은 '파라-아미노벤조산 para-aminobenzoic acid(PABA)'이란 효소를 이용해 직접 잎산을 만들 수 있다.
프론토실 레드는 PABA와 구조가 비슷해 세균이 잎산을 만드는 과정에서 PABA 대신 프론토실 레드가 끼어들어간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세균이 잎산을 만들지 못해 잎산 부족으로 죽게 된다.
이것이 설파제가 항균작용을 갖는 원리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설파제를 최초의 항생제抗生劑 antibiotic가 아닌 최초의 항균제抗菌劑 antimicrobic라고 부르는 것이다.
 
1939년 도마크는 프론토실 레드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독일의 화학과 약물학의 높은 수준을 전 세계에 알리는 좋은 소식이었다.
그렇지만 도마크는 선정 직후 나치 Nazi의 비밀경찰에게 체포되어 노벨상 수상 거부 서약서를 쓴 뒤 석방되었다.
어찌 된 일일까?
나치가 도마크의 노벨상 수상을 막은 이유는 그와 전혀 관련 없는 정치적인 이유에서였다.
노벨위원회가 나치를 비판한 유태인 카를 오시에츠키 Carl von Ossietzky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불쌍한 도마크는 8년 뒤에 노벨상을 받긴 했지만 상금은 못 받았다.
상금의 유효기간이 지나기도 했지만, 본인이 수상을 거부한 경우에는 상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늦은 노벨상을 받으러 가는 노년의 도마크는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그는 결혼식 때 입었던 20년 된 연미복을 입고 상을 받았다고 한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2. 구글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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