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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의 흔적을 추리하다

새샘 2025. 12. 12. 15:52

고고학자의 발굴을 '수술 자국이 작을수록 좋은 외과수술'에 비유하면 설명하기 편하다.

발굴도 수술처럼 규모가 크면 클수록 비용도 많이 들고 유적의 파괴도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최소한의 노력으로 땅을 파서 유물을 조사하는 게 이상적이다.

고고학 발굴 조사의 첫 단계는 마치 의사가 환자를 청진기로 진찰하듯 땅을 파지 않고 땅속의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것을 '지표조사 surface survey'라고 한다.

일반인은 땅을 파지 않은 채 유적이 어디에 있고 상태가 어떨 것이라는 고고학자의 진단에 대단한 비결이 있을까 기대한다.

사실 그런 것은 없다.

다만 지표조사를 반복하면서 어떤 지형에 유적이 있지 않을까 예측한 것에 불과하다.

 

 

땅 위에 토기와 기와가 깔려 있는 몽골 하르가닌 두르불진의 흉노 유적(출처-출처자료1)

 

지표조사는 고고학의 첫걸음이다.

준비 과정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유적이 있을 법한 지역을 다니면서 유적의 징후를 찾는다.

그것은 주로 토기 조각(편片)이다.

땅은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동한다.

지하수나 바람으로 흙은 이리저리 쌓인다.

동물이 파놓은 땅, 식물 뿌리 따위로 땅속 유물은 계속 파괴되고, 그 흔적이 땅 위에 보인다.

그리고 인간의 활동으로 땅이 파헤쳐지는 경우가 많다.

고고학자는 길을 만들거나 건물을 지으면서 땅을 깎아놓은 곳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는데, 이런 경우는 굳이 땅을 파지 않아도 땅속의 유적을 쉽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표조사에는 전체 유적의 범위를 미리 파악해서 그 지역에서 더 이상의 건설 사업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도 있다.

 

필자 경험상 지표조사 가운데서도 특히 힘들었던 것은 구석기 유적 조사였다.

유라시아 한가운데 위치한 몽골 Mongolia과 알타이 Altai 지역은 세계 구석기의 주요 연구지이다.

얼마 전 화석 사람뼈가 나와서 더욱 유명해진 데니소바 동굴 Denisova Cave은 발굴과 고고학자의 숙소를 겸하는 곳이다.

필자도 알타이를 조사할 때는 데니소바 동굴을 근거지(베이스캠프 base camp)로 삼았는데, 어느 날 구석기 전공자가 "같이 석기 주우러 갈까?"라며 필자를 부추겼다.

석기를 줍다니?

구석기를 발굴하려면 '홍적세洪積世(플라이스토세 Pleistocene: 신생대 제4기의 첫 시기. 인류가 발생하여 진화한 시기. 지구가 널리 빙하로 덮여 몹시 추웠고, 매머드 같은 코끼리와 현재의 식물과 같은 것이 생육)'라고 하는 단단한 진흙층을 깨야 나오는 게 정상이다.

고고학 발굴 작업 가운데서도 가장 중노동으로 꼽히는 작업이다.

그런데 석기를 줍는다는 게 신기하기도 해서 따라가 봤다.

러시아 알타이공화국 Altai Republic of Russia을 가로지르는 추이스키 도로 Chuya Highway/Chuysky Tract를 따라서 몽골 방향으로 반나절을 달려 코쉬-아가치 Kosh-Agach에 도달하자 반사막 지역이 나타났다.

러시아 군용트럭으로 초원을 가로질러 유적에 도착하니 사방에 석기가 널려있었다.

심지어 커다란 바위에 몇만 년 전 사람이 돌을 떼어낸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지금 막 원시인이 다녀간 듯했다.

그 놀라움도 잠시, 석기를 수집하면서 돌이 배낭에 쌓여갈 때 드디어 이 답사의 뜻을 알게 되었다.

하나둘씩 석기를 배낭에 넣다 보니 곧 묵직해져 걷기조차 힘들어지는 것 아닌가.

그래도 같이 간 연구원은 '여기 하나 더, 저기도···'하면서 돌을 건네니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결국 필자는 반기를 들었다.

"좀 버리고 가지. 여기서 10만 년 이상 놓여 있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 아닌가."

 

이것은 비단 알타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30년 전 한국의 연천 전곡리 일대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학부 시절 전곡리 답사를 따라갔을 때 답사팀의 막내인지라 배낭은 필자 몫이었다.

유적이 정비되기 전이었으니 주민들은 밭을 갈고 경지정리도 맘대로 하고 있었다.

석기를 발견했다는 기쁨은 잠시, 묵직해지는 배낭의 무게로 발걸음은 느려져만 갔다.

그러던 중에 교수님이 석기를 찾았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 보니 비닐하우스 밭이었다.

비닐하우스가 날아가지 말라고 괴어놓은 돌들이 전부 석기였던 것이었다.

유물을 발견했다는 기쁨도 잠시, 그 무거운 석기를 주워서 배낭에 넣을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해졌었다.

나중에 농담처럼 필자가 구석기가 아니라 청동기를 전공으로 삼게 된 데에는 그때 구석기 지표조사와 관계가 좀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지표조사를 하면서 발견한 중국 옌벤자치주 허룽시 싱청 유적 파괴 현장. 3,000년 전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지층 단면의 검은색이 주거지 흔적이다.(출처-출처자료1)

 

고고학자가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그곳에 유적이 있는 줄 어떻게 알았는가"이다.

고인돌이나 피라미드같이 외부에 잘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유적·유물은 땅속에 묻혀 있다.

그러다 보니 고고학자는 지표조사를 하면서 자연적으로 땅이 침식되는 절벽이나 건설로 파헤친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자연적 또는 인공적으로 침식되어 노출된 지역에 과거의 유물을 찾아내는 식으로 유적을 찾는다.

즉 일반인은 지나치기 쉬운 지표면에서 사소한 증거로 유적을 찾아내는 지표조사를 하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원리는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정작 현장을 나가면 땅은 모두 다르고 지역별로 차이가 많다.

그러니 다양한 지표조사의 경험이 많은 학자도 놓치는 유적이 많고, 심지어는 국가적인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울 풍납토성이 그 예이다.

처음 풍납토성이 사적으로 지정된 때는 아직 강남이 개발되기 이전인 1960년대였다.

한적한 논과 과수원이 있는 곳이니 당시에는 눈으로 보이는 성벽만 문화재로 지정했다.

이후 서울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풍납토성 안에도 사람이 거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집을 짓다 보면 유적이 나올 법도 한데, 풍납토성은 신기하게도 유물이 없었다.

워낙 한강이 범람한 적이 많아서 백제시대의 유적은 지면보다 5미터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내부에 유적지가 없을 리가 없지만, 지표조사를 해도 유물이 안 나오니 개발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1997년에 풍납토성 내부에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 기반공사를 하는 중에 유적이 발견되었다.

IMF로 힘든 상황에서도 결국 정부는 추가 개발을 중지하고 해당 부지를 매입하는 쪽을 선택했다.

2,000년 전의 유적 때문에 재산권에 피해를 받은 현지 주민의 민원도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당시의 큰 결정으로 한국의 문화재법은 바뀌었다.

지표조사를 해서 설사 유물이나 유적의 흔적이 없다고 해도 일단 시굴試掘(시료를 선정해서 일부 발굴하는 것)해서 땅속에 유물이 없다는 것을 완벽히 확인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지표조사가 얼마나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과정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또한 고고학자가 감으로 했었던 지표조사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이제 지표조사는 진화하고 있다.

구글어스 Google Earth나 지구물리탐사 같은 것으로 땅을 파지 않고도 그 내막을 속속히 파악한다.

마치 과거 의사의 상징이었던 청진기가 사라지고 다양한 기계를 동원한 검사로 건강을 파악하듯이, 고고학자의 감으로 유적의 존재를 판단하는 시절은 지나고 있다.

그래도 지표조사를 위해 현장을 다녀보며 감을 익히는 것도 여전히 중요하다.

과거의 사람들도 기계나 지도로 살던 곳을 택하지 않고 직접 땅을 다니면서 자신의 터전을 고르고 살았기 때문이다.

 

지표조사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땅을 파괴하지 않고 유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가면 이제까지 고고학자가 발굴한 여러 유적이 표시되어 있다.

직접 그 유적을 돌면서 땅 위에 남아 있는 성벽의 흔적이나 토기와 기와 조각을 발견할 수도 있다(토기 조각이나 기와는 꼭 학술적인 필요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진을 찍고 그냥 그 자리에 놔두는 것이 좋다).

고고학자라고 반드시 모든 유적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유적이 있을 법한 곳을 답사 다니면서 직접 유물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유적이나 유물처럼 보이는 것이 나온다면 고고학과 교수나 군청 또는 시청의 문화재 담당자에게 알려주기 바란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김영사, 2024)
2. 구글 관련 자료

 

2025. 12. 12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