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심전 안중식 '백악춘효도' 본문
"근대 회화교육을 일으킨 '미스터 션샤인'"

'총 Gun', '영광 Glory', 그리고 새드 엔딩 Sad Ending'.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 7. 7~9. 30)의 핵심단어(키 단어, 키 워드 keyword)다.
조선시대가 저물고 근대로 가는 길에서 우리의 주권을 빼앗으려는 일본에 맞서 뜨겁게 산 주인공을 비롯한 의병들의 이야기다.
드라마는 종영되었지만 우리 근대의 암울했던 역사(히스토리 history)를 한 연인의 사랑이야기(러브스토리 love story)로 극화하여 깊은 울림을 주었다.
조선시대 말기, 일제 침략의 혼란 속에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민초와 애국지사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예술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근대 민족화단 형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화가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1861~1919)도 그 들불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작품에 기울어가는 조선왕실의 경복궁을 묘사한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가 있다.
일본이 경복궁 건물을 해체하기 전의 모습을 담은 귀중한 작품이다.
주권이 일본으로 넘어가자 뜻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쳤다.
나라를 위해 애국단체가 움직이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이들이 조선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았다.
서화계에는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1843-1897)의 화풍을 계승한 심전 안중식과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晋(1853~1920)이 근대화단을 지켰다.
그들은 우리의 전통서화에 서구의 미술을 절충하여 '근대미술'이라는 새로운 양식(스타일 style)을 개척하였다.
안중식은 서울에서 성균관 생원을 지낸 안홍구安鴻逑(1810~1873)의 5남 5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배운 그는 집에서 서화를 익혔고, 1년 동안 도화서에서 그림 공부를 했다.
여러 대에 걸쳐 크고 작은 벼슬을 한 가문답게 안중식은 한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학식이 높았다.
1881년 정부에서 중국의 선진문물을 배우기 위해 청나라로 떠날 사신단인 영선사領選使[조선 고종 때에, 신문화新文化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톈진(천진天津)에 파견한 사절]를 결성한다.
그해 9월 안중식은 조석진과 함께 제도사製圖士(도면이나 도안 그리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로 선발되어 중국 허베이(하북河北)성 톈진에서 1년 동안 신무기의 제조법과 조련법을 배우고 돌아왔다.
당시 영선사를 이끈 김윤식金允植(1835~1922)은 "안중식은 매우 총명하여 그곳에서 쓰이는 말을 이미 통달하였고, 조석진과 함께 화도畵圖(여러 종류의 그림을 통틀어 이르는 말)를 배우는데 있어서, 그 예藝(재주)가 최고에 이르렀다. 본래 쉬운 것이 아님에도 그 기구器具 운용의 길에 이미 들어섰다"고 전했다.
안중식은 연수에서 사물을 과학적으로 보는 관찰력을 익히고, 과학문명의 중요성을 체감한다.
1902년에는 조석진과 함께 주관화사主管畵師(임금의 용안을 그리는 화사)로서 고종과 순종의 초상 제작에 참여한다.
이 공로로 통진通津, 양천陽川 군수를 지내기도 했지만 1907년 무렵 군수직을 사임하고 창작활동에만 전념하여 화가의 길을 걷는다.
안중식은 서화계의 명성이 높았던 장승업의 화방畵房(화실畫室)을 방문하여 그의 화풍을 전해 받았다.
그는 중국 청대 문인화풍의 심산유곡형深山幽谷形(깊은 산속의 으슥한 골짜기) 산수화와 인물화,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畫(여러 가지 그릇과 꽃가지, 과일 따위를 섞어서 그린 그림), 화조화花鳥畫(꽃과 새를 그린 그림), 영모화翎毛畫(새나 짐승을 그린 그림) 등 여러 갈래(장르 genre)의 회화를 계승하여 조선 말기와 근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다채로운 화제와 직업적인 필치의 화격畵格(회화 작품의 품격)을 발휘하여, 만년인 1920년대에는 뚜렷한 근대적 표현의식이 담긴 작품을 남겼다.
1911년 안중식은 이왕직李王職(일제 강점기에, 조선 왕실 즉 이왕가李王家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후원을 얻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미술 교육기관인 '서화미술회書畵美術會'에서 한국 근대 전통회화학교의 체계를 갖추는데 앞장선다.
안중식과 조석진은 서화미술회에서 화가를 양성하여 동양화 1세대인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1897~1972),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1899~1976), 심산心汕 노수현盧壽鉉(1899~1978),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1892~1979) 따위를 배출한다.
<백악춘효도>는 암울한 조선 왕실의 상징인 경복궁을 지키려는 정신이 강하게 배어 있다.
제목의 '춘효春曉'는 '봄날 새벽'이란 뜻으로,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근대의 새 시대를 여는 염원을 담았다.
이 작품은 흥미롭게도 쌍둥이다.
1915년 을미년에 그린 '여름본'과 '가을본' 두 점이 있다.
가을 작품은 여름 작품보다 쓸쓸하고 황량하다.
현실적인 감각이 밴 시대의 아픔이 서려 있기에 더 그런지도 모른다.
<백악춘효도>는 굳건한 조선의 상징 북악산을 당당하게 수묵담채로 묘사하고 있다.
산과 건물 사이에 자욱한 안개를 처리하여 신비감을 더한다.
반듯한 기와지붕은 왕실의 든든함을 기리는 것 같다.
여러 종류의 나무에서 왕실의 풍족하고 넉넉한 기운이 감돈다.
경복궁을 지키는 광화문은 우리의 자존심인 양 우람하다.
앞에서는 해태상이 조선을 수호하고 있다.
왼쪽 위에는 '백악춘효'라는 제목이 있고, 을미년 가을에 안중식이 그렸다는 글에 낙관이 있다.
안중식은 교육자로서 화가를 양성하기도 했지만 민족계몽단체인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3·1운동을 주도했던 민족대표 33인과 가까운 사이였다.
1919년 3·1운동에 연루되어 심하게 조사를 받은 뒤, 병으로 생을 마감한다.
1년 뒤에는 조석진마저 세상을 떠난다.
'새드엔딩'이다.
안중식에게 '총'은 작품이었다.
'슬픈 끝맺음'은 우리 근대의 초상이지만 작품은 남아서 그날의 '영광'을 증언한다.
※출처
1. 김남희 지음, '옛 그림에 기대다', 2019. 계명대학교 출판부
2. 구글 관련 자료
2025. 12. 23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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