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65 - 소나무 2 본문

소나무과 소나무속에 속하는 늘푸른 바늘잎 큰키나무인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 견디는 힘이 다른 어떤 나무보다 강하다.
한반도에 인구가 늘어 경작지가 확장되고 숲이 파괴되면서 솔숲(송림松林, 소나무 숲)은 전성기를 맞는다.
학명은 피누스 덴시플로라 Pinus densiflora, 영어로 Korean red pine(한국붉은소나무 또는 한국적송), 한자는 송松, 적송赤松, 육송陸松, 여송女松 따위로 쓰고 있다.
○척박토에 적응

우리나라 소나무는 다른 수종과 비교하여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가장 넓다.
이러한 나무를 우리는 '적응력이 강하다' 또는 '환경인자에 대한 요구도가 낮다'라고 말한다.
이는 어떠한 곳에서도 자랄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소나무는 대체로 땅 힘이 약하고 건조하고 바람이 강한 곳에서 잘 나기 때문에 이 나무가 나쁜 땅만 좋아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일이 많다.
땅이 좋아야 좋은 좋은 소나무가 자라게 된다.
여기에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나무는 다른 수종 사이에서는 다툼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단풍나무 사이에 소나무가 들어서게 되면 살 터전을 빼앗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
이러한 경우 땅 힘이 좋은 곳에서는 소나무가 단풍나무나 떡갈나무, 물푸레나무에 지고 만다.
그렇지만 땅 힘이 약하고 건조한 곳에서는 소나무가 이기게 된다.
이처럼 서로의 다툼은 힘의 차이로 결정되지만, 그 힘 즉 적응력이라는 것이 장소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나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일반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즉 물이 고인 논에서는 벼가 밀을 이기고 벼논이 될 수 있지만, 건조한 밭에 밀과 물을 좋아하는 벼를 함께 심으면 밀이 이겨서 밀밭이 된다.
그러나 소나무의 경우 땅 힘이 좋은 곳에 소나무만 있게 해주면 자람이 뛰어날 수 있다.

산에 가보면 흔히 산 아래쪽에는 들메나무·음나무·가래나무와 같은 넓은잎나무(활엽수) 종류가 자리를 차지하고, 위로 올라가면서 소나무가 불어나고 산등성이에는 소나무만이 있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이것은 아래쪽에서는 다툼에서 지고 위에서는 이겨서 남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이유로 소나무가 많은 나라는 국력이 약하고, 심한 말로 소나무는 그 나라의 운명을 기울게 한다는 비관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다.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독일·폴란드·러시아와 같은 나라들은 소나무의 나라라고 할 수 있고, 미국도 소나무류가 판을 치고 있으며, 또 이들 나무가 높은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의 용도

우리 조상들은 소나무 은혜 아래 살아왔다.
솔잎이 땔감으로 너무 좋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솔갈비' 또는 '갈비'로 불러왔다.
고기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것이 갈비인데, 땔감으로서는 솔잎이 갈비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솔갈비는 불 힘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 힘이 좋기 때문에 가장 맛있게 밥을 지을 수 있고, 또 국을 끓일 수 있다.
지금은 갈비를 채취하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지난날 어머니들은 솔갈비를 이용해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었다.
소나무 장작은 땔감의 왕으로서 이것을 당해낼 것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날날 고려자기의 화려한 색채와 예술도 소나무 장작으로써 창작되었다.
소나무를 때서 나오는 그을음으로는 먹을 만들어 문필文筆(글과 글씨)과 묵화墨畫(수묵화水墨畫: 먹으로 그린 그림)를 공부하는 데 사용했다.
사람이 죽으면 소나무 관으로 장례를 지냈고, 소나무 목재로 집을 지어 그곳에서 대대손손 살았다.
지금은 식량 때문에 죽을 고비를 겪는 일이 없지만, 예전에는 이른 봄(초初봄: 음력 정월)이 오면 식량이 떨어지는 소위 절량絕糧(양식이 떨어짐) 농가가 많이 생겨 이에 대한 방책으로 소나무의 속껍질을 벗겨 떡을 만들어 먹었다.
즉 소나무가 구황식물救荒植物(흉년 따위로 기근이 심할 때 농작물 대신 먹을 수 있는 야생식물)의 역할을 한 셈으로, 초근목피草根木皮(풀뿌리와 나무껍질이라는 뜻으로, 맛이나 영양 가치가 없는 거친 음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연명하였던 것이다.
또한 소나무의 꽃가루 즉 송홧가루(송화분松花粉)을 모아서 그것을 과자나 떡을 만들어 먹었다.
가을에 딸을 시집보내거나 며느리를 보게 될 때에는 어머니들은 으레 봄날 송홧가루를 따 모으곤 했다.
송화다식松花茶食(송홧가루를 꿀에 반죽하여 판에 박아 낸 과자)이 빠져서는 좋은 상차림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송홧가루 채취 때문에 나무의 모양이 괴상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순筍/笋(나뭇가지나 풀의 줄기에서 새로 돋아 나온 연한 싹)을 따서 송홧가루를 모으기 때문에 순이 잘린 나뭇가지는 길게 뻗을 수 없고, 나무는 빗자루 모양으로 터부룩하게 되었다.
이러한 나무꼴은 목재를 생산하는 데 있어서는 좋지 못한 것이었다.
초여름이 되면 도토리만 한 푸른 솔방울을 따서 팔고 있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다.
솔방울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어느 해인가 이것을 조금 사서 소주를 부어 술을 담가보았지만, 송진 맛이 강해서 필자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소나무의 한반도 점령 역사
우리나라에 사는 소나무는 일본에서도 나지만 그 밖의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세계적으로 분포 면적은 넓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이 소나무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있었는지 궁금하다.
일본의 소나무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소나무 역사와 비슷하지 않을까?
일본의 섬들이 현재의 모양으로 배열된 것은 약 1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그때 나무들의 분포도 거의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그때 우리나라도 현재의 삼림 상태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는 인구가 극히 적고 삼림 파괴도 진전되지 않아 숲은 거의 원생림原生林(원시림原始林: 사람의 손이 가지 아니한 자연 그대로의 삼림)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부 지대에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밤나무, 서어나무, 단풍나무 같은 것이 우세하였을 것이고, 더 남쪽으로 가서 제주도 따위에는 가시나무, 녹나무, 조록나무, 구슬잣밤나무와 같은 늘푸른 넓은잎나무가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나무들이 그곳의 원생림을 만들고 있었다.
일본에 소나무숲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약 2천 년 전부터라고 한다.
농경지가 개간되고 쇠도끼가 만들어지며 큰 고분이 축조되면서 원생림이 파괴되고 그 뒤 소나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천 년 전 일본에 만들어진 고분의 수는 약 10만 개에 달했고, 고분 축조를 위해서 나무가 잘리고 산이 벌거벗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신라시대 도읍지인 경주에서 인구가 많아 사찰과 궁궐의 건축 및 땔감 따위로 주변의 수목이 크게 고갈되면서 소나무가 들어오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때때로 자연적으로 산불이 나면 일시적으로 소나무가 들어왔다가 쫓겨났으며, 다만 암석지나 산 능선 같은 데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뒤 인구가 점점 불어나고 농경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자 나무가 잘리고 갑자기 소나무의 시대가 오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소나무 숲의 역사는 인간의 활동이 많이 관련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럽 대륙은 현재 대부분이 유럽소나무로 뒤덮혀 있고 또 그들이 잘 살고 있는 것을 볼 때, 소나무 시대의 출현이 반드시 걱정되는 것은 아니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2(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5. 12. 27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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