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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 발굴의 마침표

새샘 2026. 1. 11. 14:14

천마총 발굴 당시의 장면. 세심한 발굴과 보존 덕에 지금 우리가 아는 천마총이 나올 수 있었다.(출처-출처자료1)

 

흔히 고고학자는 땅을 파는 것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고학의 진정한 역할은 발굴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고고학 발굴의 궁극적인 목적은 발굴된 유물을 최대한 손상 없이 보존하여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고학자는 이를 위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고고학에서 발굴은 여러 작업의 첫 단추를 여민 것에 불과하다.

이후 발굴된 유물에 일일이 일련번호를 붙이고 출토 위치를 표기하고 사진을 찍는 등 객관적으로 그 흔적을 증거로 남겨야 한다.

그리고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최대한 원래의 모습을 보존할 수 있도록 보존과학적인 처리가 뒤따라야 한다.

보존과학의 사전적인 정의는 인류가 남긴 유형문화재의 손상되고 파괴된 모습을 현대과학의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여 회복시키거나 현상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발굴유물이라고 하면 토기, 석기, 금속류를 많이 떠올린다.

이들 유물만 주로 나오는 것은 목재와 같은 유기물질은 썩어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특수한 상황에서 유기물질이 발견되면 그것을 최대한 보존해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보존과학이라는 분야가 고고학에서 독립하여 별도의 학회가 운영되며, 전공 과정도 여럿 생겼다.

그렇지만 고고학에서도 보존과학적인 지식은 필수이다.

다양한 현장의 환경에서 예상치 못한 유물의 출토는 빈번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손을 거치기 전 현장에서 긴급하게 처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게다가 발굴하는 유물의 재질 및 땅속에서의 보존 상태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굴하자마자 빠르게 보존 처리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현장에서 옻칠, 가죽손잡이, 머리카락 따위가 거의 삭아서 발견되면 급한 대로 사진을 찍거나 기록을 하는데, 그사이에 눈앞에서 하염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굳이 비유하면 고고학자는 전쟁 현장에서 병원으로 이송하기 전까지 부상병을 치료하고 이송하기 위하여 응급처리를 하는 위생병인 셈이다.

백제금동대향로, 인사동 금속활자 따위의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국보는 이러한 고고학자의 응급처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기에 전시되는 것이다.

이렇게 신속한 응급처치로 우리에게 전해진 한국을 대표하는 유물로는 천마총에서 발굴된 천마도를 꼽을 수 있다.

 

 

○천마도에 숨겨진 비밀

 

국보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출처-출처자료1)

 

천마도天馬圖는 하늘을 나는 말 그림을 그린 가로 75센티미터, 세로 56센티미터, 두께 0.6센티미터 크기의 자작나무 껍질을 앞뒤로 덧대어 만든 말다래(장니障泥)를 말한다.

말다래는 달리는 말의 발굴에 채인 진흙이 말을 탄 사람의 다리에 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단순한 실용적인 용도를 넘어서서 소유자(아마 왕이나 왕족)가 말을 타고 다닐 때에 그 옆을 장식하는 가장 화려한 상징이다.

천마도는 단순한 유물 이상의 뜻을 지닌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천마처럼 1,500년 전 유라시아 대륙과 맞닿으며 거대한 국가로 웅비하려는 신라의 모습의 다시 우리 곁으로 부활한 것이다.

비록 시작은 황남대총皇南大塚 대신 발굴해야 했던 천마총天馬塚 고분이었지만 그 안에서 발굴된 천마도는 지난 50년 동안 한국과 유라시아의 숨은 관계를 상징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유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도 천마도와 신라의 고분을 둘러싼 연구는 이어지며 그 비상은 계속되고 있다.

가히 '천마도 코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수많은 비밀이 숨어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천마도는 1973년 발굴 당시 무덤 근처에 유물을 따로 넣는 껴묻거리덧널(부장곽副葬槨)에서 두 장이 포개진 채로 발굴되었다.

보존 처리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던 발굴단은 당황했다.

수소문 끝에 화학전공자의 조언을 받아 다양한 실험을 거쳐서 안전하게 떼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그 생동감 있는 천마도의 그림은 우리에게 전해졌고 한국에서 보존과학의 서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도 유학 시절 서부 시베리아 Siberia를 발굴하던 중에 시신을 감싼, 잘 바스러지는 자작나무의 껍질을 발굴한 적이 있다.

트라울 trowel(흙손)을 대기만 해도 바스러지는 데다 공기 중에 노출된 하얀 자작나무 껍질은 빠르게 변색되어 눈앞에서 사라져 갔다.

주변 몇십 킬로미터 안에 사람은 살지 않는 오지라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결국 러시아 동료들과 상의 끝에 급한 대로 사진과 도면으로 기록하고 그나마 조금 잘 남아 있는 몇 센티미터 정도의 자작나무 껍질을 흙과 함께 담을 수 있었다.

 

하물며 남한에서 자생하지 않는 자작나무 껍질을 처음 맞닥뜨렸던 천마총 발굴단의 어려움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박물관에서 설치한 유물의 설명 판에는 화려한 유물에 대한 설명이 있을 뿐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고고학자의 노력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1,500년 전 한반도와 광활한 유라시아를 이어서 훨훨 날던 천마의 비밀을 다시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은 보존과학의 힘이요 고고학자의 노력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50년 전 천마총의 발굴로 시작된 한국의 고고학과 보존기술은 많은 경험을 축적했다.

덕분에 지금은 공적개발원조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ODA) 사업을 통해서 천마의 고향인 우즈베키스탄 Uzbekistan(라틴어 공식 표기  Oʻzbekiston/Oʻzbek) 등 중앙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 우리의 비결(노하우 knowhow)을 전해 주고 있다.

천마도에서 새겨진 고대 한국과 유라시아의 교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보고서, 지나치기 쉽지만 반드시 필요한

 

거의 매일같이 다양한 언론 매체에서 발굴장에서 발견된 새로운 유물이 보도된다.

으레 발굴을 하는 현장에서 수많은 유물이 집중 조명(스포트라이트 spotlight)을 받고 전문가의 회견(인터뷰 interview)이 이어진다.

새로운 유물은 널리 조명 받는 장면이 눈에 익다.

하지만 고고학자에게 이러한 발굴의 마무리는 기나긴 연구의 첫걸음일 뿐이다.

발굴이 마무리되면 유물을 발견한 위치를 표시하고 포장하여 연구소로 가져와야 한다.

이 유물에서 흙을 털어내어 세척하고 말린다.

박물관에서 보는 화려한 유물과 달리 땅속에서 발견된 유물은 산산이 조각난 것뿐이다.

이 유물을 마치 짜맞추기(퍼즐 puzzle)처럼 접착 작업을 하여 복원한다.

또한 금속이나 나무처럼 특별한 보존 처리가 필요한 것은 전문 작업실에 보내서 보존 처를 해야 한다.

 

유물에 대한 1차 처리가 끝나면 그 유물을 보고하기 위하여 준비한다.

기와나 토기 조각(편片)과 같이 너무 양이 많으면 생략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대부분의 유물은 사진을 찍고 '실측'이라고 하는 그림을 그려서 객관적인 증거로 남긴다.

최근에는 실측을 3D 스캔 scan으로 간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지만 과거에는 일일이 손으로 도면을 그리는, 매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을 해야 했다.

 

이러한 과정은 일반이 생각하는 화려하고 멋있는 전시품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모르는 작업을 작업실에서 반복하는 이유는 무질서한 유물을 객관적으로 분류하여 의미와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이다.

직접 발굴하거나 현장에 가보지 못한 다른 고고학자나 일반인에게 유적과 유물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이다.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서 고고학자는 '보고서 report'를 간행한다.

나라에 따라 보고의 방법이 다른데, 한국은 책의 형태로 제본해서 제출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는 문화재청과 같은 관리기관에 보고서를 제출한다.

 

이렇게 '보고서'라고 불리는 발굴한 내용과 유물을 담은 간행물의 존재를 일반인은 잘 알 수 없다.

보통 서점에서 판매하지 않으며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을 받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문화재청의 홈페이지나 발굴을 담당한 기관에 문의하면 최근 발간된 보고서를 얻어 볼 수 있지만, 그 내용은 전문적인 고고학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이 보고서에는 현장 고고학자 몇십 명이 흘린 땀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난 후대에도 전해져서 그 발굴을 다시 재평가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미래를 향한 기다림

 

국립경주박물관 수장고. 최근에는 지하에 두지 않고 일반인도 관람할 수 있는 개방형 수장고가 많아졌다.(출처-출처자료1)


보고서까지 간행하면 고고학자에게는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바로 고고학 유물을 국가에 귀속시키고 수장고에 넣어야 할 시간이다.

발굴자의 소속이 대학이나 발굴전문기관이라고 해도 모든 발굴 유물은 자동으로 국가에 귀속된다.

따라서 발굴된 유물의 분석 및 보고서가 완료되면 원칙적으로 국가가 지정한 국공립 박물관에서 관리하여 후대에게 전하기 위하여 보존된다.

그런데 발굴된 유물의 양이 워낙 많아서 대부분의 수장고에 공간이 없다.

게다가 발굴을 여러 곳에서 하기 때문에 발굴된 유물의 양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최근에 등장한 묘안이 바로 일제 때에 철도를 연결하기 위해 건설된 폐터널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옛것을 담은 공간, 옛것에 현재를 담는 공간'이란 뜻의 '예담고庫'라 불리는 폐터널 활용 문화재 수장고는 2023년 현재 충청권에는 대전 사진포泗津浦 터널, 호남권에서는 전주 신리新里 터널에서 열렸다.

얼핏 터널이라고 하면 음침하다고 생각하지만, 지하가 아닌 공간이라 오히려 항온항습에 유리하기 때문에 유물 보관에 적절하다.

게다가 관람할 수 있는 공간도 넓어서 문화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 때라도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앞으로 각 도별로 이러한 문화재 수장고가 생긴다고 한다.

 

사실 사람들이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유물은 극히 일부분이다.

몇십 만 점의 유물은 보이지 않는 수장고에서 후대 고고학자의 손에서 연구되는 것을 바라며 보관되고 있다.

토기 한 점 한 점이 과연 후대에 어떻게 자료로 사용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대다수는 다시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수장고에 계속 보관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유물의 운명은 미래 고고학자의 선택이다.

현대 고고학자의 임무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남겨서 후대에게 이어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누구보다 미래를 대비하는 작업이 바로 발굴이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김영사, 2024)
2. 구글 관련 자료

 

2026. 1. 11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