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퍼즐, 깨진 유물로 맞추는 역사 본문

대부분의 고고학자는 파편을 만지며 일생을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냥 깨져서 버려진 것도 있고, 무덤에 소중하게 놓인 것도 있다.
깨진 토기 조각 하나하나에서 과거 역사를 찾아내는 이유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극히 일부만 우연히 남은 조각을 매개로 과거와 인연을 잇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고고학자가 발견하는 유물은 크게 의도적으로 묻힌 것과 우연히 버려진 것으로 나뉜다.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이 의도적으로 묻힌 것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묻은 것이라도 기억상자(타임캡슐 time capsule)처럼 일부러 100년이나 1,000년 뒤에 열릴 것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무덤 속 유물은 죽은 사람과 함께 영원히 지하에 묻혀 있기를 바라고 묻은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고학 유물은 그런 물건을 현대의 고고학자가 다시 꺼낸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황금 유물로 꼽히는 신라 금관의 경우 그런 사정을 잘 보여준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금관이지만 가만히 보면 금관에 잘못 뚫은 구멍이 여럿 보인다.
가야나 신라 토기에도 껴묻거리(부장품副葬品) 가운데는 구울 때에 화도火度(도자기 따위를 굽는 온도)가 안 맞아서 여기저기가 부풀거나 터진 일종의 불량품도 제법 있다.
무덤 주인이 일일이 물건을 검사할 리가 없으니 그냥 넣은 것이다.
이와 달리 집자리(집터, 주거지)나 조개무지(조개무덤, 패총貝塚)에서 발견되는 유물은 사람이 살다 버리고 간 집이나 쓰레기장에서 발견되는 유물이다.
대부분의 유물은 우연히 발견될 뿐, 우리가 찾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은 지난 몇십 년 동안 남해안 앞바다에서 거북선을 찾기 위해서 수없이 노력했다.
실제 임진왜란(조일전쟁朝日戰爭) 때 남해안 일대에서 조선 수군은 왜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그 와중에서 몇백 척의 배가 침몰했다.
하지만 현재 그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기독교 성서에 기록된 사람과 사건을 찾아내려는 경우는 더 심하다.
기독교의 중심에 있는 예수의 무덤은 더욱더 사람들을 애타게 한다.
지난 몇백 년 동안 수많은 고고학자와 기독교인은 예수의 무덤이 발견되기를 기다려왔다.
심지어 그 무덤을 발굴했다는 해외 이야깃거리(화제話題, 토픽 topic)는 해마다 나오지만,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된 증거가 없다.
그밖에 노아의 방주方舟 Noah's Ark나 칭기즈칸 Genghis Khan(성길사한成吉思汗)의 무덤을 검색하면 해마다 새로운 '발견' 뉴스를 찾을 수 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찾고 싶은 유적이나 유물이 안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인형이 어딘가에 묻혀 있고, 그것이 몇천 년 뒤에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발견될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
고고학적 유물은 이러한 0에 가까운 가능성을 뚫고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기적 같은 인연은 사실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보는 유물에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고고학자의 숙명은 우연히 발견되는 작은 토기 조각 하나하나에서 수많은 과거 사람의 모습을 찾아내는 데 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사소한 인연의 결과는 결코 작지 않다.
○사소한 유물도 놓칠 수 없는 이유
고고학자의 손에 쥐어지는 고고학 유물은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시간과 환경의 한계를 뚫고 우리 앞에 놓인 것이다.
몇천 년의 세월을 견디고 발견되는 유물은 아마도 실제 사용했던 것의 몇만 분의 일도 안 되는 극히 일부일 것이다.
그리고 고고학자는 그 몇만 분의 일도 안 되는 몇개의 유물을 가지고 다시 과거를 복원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고고학자가 발굴하기 전까지 물건이 유물이 되는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물건 제작 --> 사용 --> 폐기(쓰다가 버리거나 무덤에 묻음) --> 퇴적(땅속에 묻힘)
--> 발굴 또는 파괴(땅속에 있는 것이 우연 또는 발굴로 다시 드러남 --> 발견"
유물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고고학자에게 중요한 것은 유물 그 자체가 아니라 유물이 놓여 있는 과거 삶의 흔적이다.
우리는 이것을 '유구遺構(옛사람들의 생활방식이나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라고 부른다.
비유를 하면 옛 사람이 김장을 하고 땅을 파서 묻어놓은 김장독이 발견되었다고 하자.
항아리 자체가 유물이라면 항아리를 묻기 위해 사람이 파놓은 구덩이 자체는 유구가 된다.
이 보이지 않는 흔적은 과거를 복원하는 강력한 단서가 된다.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관을 가면 6,000년 전 신석기시대 사람이 살았던 집을 복원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집이 '실제로' 발견된 것이 아니다.
암사동 유적에는 과거 사람이 구덩이를 파서 집을 만들었던 흔적만이 남았을 뿐이다.
터를 잡기 위한 구덩이와 벽과 지붕을 세우기 위한 기둥을 박아 넣었던 구멍의 흔적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과거 집을 재구성한 것이다.
마치 뼈 몇 개와 단서 몇 개로 범죄를 재구성하는 수사단과 같은 모습이다.
이런 그림자 같은 과거의 흔적을 찾는 것은 고고학자의 손과 눈썰미다.
한번 사람이 팠다가 다시 묻은 구덩이는 자연적으로 퇴적된 땅과 밀도가 다르고 그 안에 비교적 공기도 풍부하기 때문에 풀과 같은 유기물이 많아서 색도 다르다.
앞서 설명했던 트라울(흙손, trowel)이나 호미를 이용해서 고고학자는 흙을 긁을 때에 느껴지는 미세한 흔적과 차이를 파악하고 과거 유적의 흔적을 찾아낸다.
다양한 과학을 동원하고 논리적인 연구를 하는 고고학자도 일단 현장을 찾아서 연구하고자 하는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고고학자가 일반인과 다르게 유적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바로 유물이 놓여 있는 주변, 즉 유물이 놓여 있는 상황(맥락)이다.
이 맥락은 유물의 용도를 파악하는 주요한 단서가 된다.
비유하면 같은 회칼이라고 해도 생선 횟집에서 발견되는 것과 조폭이 활동한 어지러운 싸움판에서 발견되는 것은 그 용도가 완전히 다른 이치이다.
그리고 이런 관심은 고고학이 단순한 유물의 감상에서 벗어나는 기준이 된다.
유물 자체보다는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에 대한 관심이 이러한 고고학자의 연구방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김영사, 2024)
2. 구글 관련 자료
2026. 1. 21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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