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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몇만 년을 뛰어넘어

새샘 2026. 2. 10. 16:58

20만 년 동안 쌓인 데니소바 동굴의 지층(출처-출처자료1)

 

지난 2018년 여름 필자는 경희대 학생들과 함께 시베리아과학원 Siberian Branch of the Russian Academy of Sciences (SBRAS) 고고민족학연구소가 발굴하는 데니소바 동굴 Denisova Cave에서 현장을 견학했다.

데니소바 동굴은 네안데르탈인 Neanderthals(Homo neanderthalensis)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또 다른 인류인 '데니소바인 Denisovans(Denisova hominins)'이 발견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곳이다.

알타이산맥 Altai Mountains 속의 어두컴컴한 동굴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간 학생들은 흐릿한 백열등을 켜고 음침한 땅을 긁어대는 고고학자의 모습을 보고 다소 실망하는 눈치였다.

세계적인 유물이라고 하지만 정작 눈에 보이는 것은 컴컴한 땅속에서 하염없이 벽을 꽃삽으로 긁고 있는 모습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반응을 뒤로 하고 벽의 층위를 가리키며 강의를 시작했다.

각각의 층위에는 붙임딱지(스티커 sticker)가 붙어 있고 "여기 보이는 지층 하나하나는 각각 1만 년 정도의 시간이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100년도 못 사는 우리 인간이지만 1만 년의 시간을 쉽게 넘나들 수 있는 것이 바로 고고학자이다.

그제야 학생들은 고고학자는 몇만 년의 시간을 넘나들어서 유물을 발굴한다는 점을 실감한 듯했다.

데니소바 동굴의 가장 밑 층위는 약 20만 년 전으로 판명되었고, 그 근처에서 발견된 뼛조각의 DNA를 분석한 스웨덴 Sweden의 스반테 페보 Svante Eirk Pääbo(1955~ )는 2022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고고학자는 보잘 것 없는 흙더미에 시간이라는 실마리를 부여했고, 그 실마리를 풀어낸 결과가 세계적인 수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왼)나이테 측정법을 쓰기 위해 채취한 고대 목관과 (오른)채취한 목관을 절단한 고대 목재(출처-출처자료1)

 

데니소바 동굴뿐이 아니다.

고고학 현장에 가면 정말 다양한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있다.

현장에서 수많은 유물을 보면서 여전히 우리 고고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은 어느 시대일까"이다.

현장에서 돌아와 맥주를 한잔하면서 토론할 때도 토기 한 점이나 유적의 연대를 두고 불꽃 튀는 설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옛 유물을 연구하는 첫 걸음은 그 유물의 시간과 공간을 밝히는 것이다.

즉 언제 어디에서 만들고 쓰였는가를 밝히는 것이 모든 연구의 첫걸음이다.

어디에서 쓰였는가라는 질문은 발굴을 하면 할수록 정확하게 밝힐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제'라는 질문에 고고학자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고고학자가 몇만 년의 연대를 본격적으로 측정하게 된 것은 1960년대 이후로, 과학을 사용하여 측정한 기간은 60년 남짓 되었다.

물론 연대 측정 방법이 없었을 때에도 역사 기록이나 비문 따위에 남아있는 달력이나 연대를 토대로 그 시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런 경우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그 연대도 5,000년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그 이전 시기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고, 종교나 신화에서 믿는 연대를 그대로 신봉하는 식이었다.

우리가 지금 별다른 부담 없이 보는 몇십만 년의 역사는 사실 고고학자가 사회의 통념과 싸워온 시간 전쟁의 결과이다.

 

 

○지층, 흙으로 덮힌 세월의 나이테

 

2007년 강인욱이 목탄을 채취하고 있는 모습(출처-출처자료1)

 

고고학자의 현장 작업에서 삽질만큼 중요한 것이 지층이다.

발굴할 때 구덩이의 벽을 꽃삽으로 정돈하는 작업을 많이 한다.

고참은 후배에게 구덩이의 벽을 마치 거울처럼 닦으라고 주문한다.

땅속의 흙은 일정한 기간을 두고 케이크 cake처럼 쌓여 있다.

그러니 한 층 한 층의 지층이 몇백 년 또는 몇천 년의 시간을 두고 쌓인 것이다.

영화 속 시간 여행(타임 슬립 time slip)처럼 고고학자는 한 층 한 층 발굴을 하면서 고대의 시간으로 미끄러져 간다.

지층을 발굴하는 것은 그 시간을 하나씩 벗겨내는 과정이다.

땅을 한 삽 뜨는 순간 우리에게 펼쳐지는 유물은 몇백 년 또는 몇천 년의 것이다.

몇천 년의 시간 동안 유적은 퇴적작용을 겪으며 흙으로 덮힌다.

바로 그 흔적이 지층이다.

그러니 한 삽만 더 떠도 몇백 년을 지나칠 수있다.

그리고 순간의 부주의로 지나친 층위는 두고두고 고고학자의 실수로 기억된다.

 

 

슐리만이 발굴한 트로이 유적(출처-출처자료1)

 

튀르키예 Turkiye에서 트로이 유적 Ruins of Troy을 발굴한 Heinrich Schliemann(1822~1890)은 바로 그 시간 여행을 제대로 못해서 자기가 원하는 시대를 지나쳤다.

슐리만은 트로이를 발굴하기 위하여 몇천 년 동안 사람이 살면서 지층이 쌓인 테페 Tepe를 발굴하고 있었다.

그는 트로이의 화려한 황금만을 찾아서 내려가던 중 황금 유물을 발견하고 그의 젊은 아내 소피아 Sophia가 유물을 착용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그가 발굴한 것은 트로이보다 몇백 년 이전인 프리기아 왕국 Kingdom of Phrygia의 황금이었다.

 

고고학자는 사실 황금같이 화려한 것과 관련이 멀다.

대부분이 먼지 구덩이에서 무슨 흙을 그리 소중하다는 듯이 긁어내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한 겹 한 겹이 몇백 년의 역사를 넘나들 수 있는 시간 여행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한 겹씩 벗기는 과정은 육체적인 노동이 뒤따른다.

 

예전에 한번 파였던 땅의 흔적을 찾아내는 데에는 사실 별다른 설명서(매뉴얼 manual)가 없고 체계적인 교육법도 만들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지역마다 땅이 다르고 현장의 기온이나 날씨 따위에 따라서 그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층위나 토양에 대한 몇 가지 개설서는 있지만, 여전히 가장 좋은 무기는 경험뿐이다.

흔히 AI(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간의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걱정을 많이 하는데, 고고학 발굴에서 AI가 전면적으로 도입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을 파괴하는 대가로 받은 선물

 

20세기에 들어서야 고고학자는 창조론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과거의 연대를 알기 위하여 다양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절대적인 연대를 아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집트 Egypt나 고대 메소포타미아 Mesopotamia의 글자와 함께 나온 유물을 비교해서 파악하는 식이었다.

그러니 기껏해야 문자를 쓰기 시작한 5,000년 전 이상의 연대는 아주 애매하게 알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매우 부정확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고고학계에서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과거의 유물을 넣으면 뚝딱 그 연대를 말해주는 기계가 실제로 발명되었다.

 

새로운 발명을 가져온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핵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유명한 '맨해튼 프로젝트 Manhattan Project'가 엄청난 자본과 인력으로 수행되었다.

미국 각지에서 핵물리학과 관련된 다양한 기술자 몇천 명이 동원된 이 프로젝트의 결과는 잘 알다시피 수많은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핵폭탄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당시 미국의 물리화학자인 윌러드 리비 Willard Frank Libby(1908~1980)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고고학 현장에서 흔히 발굴되는 목탄이나 사람뼈로 과거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상(아이디어 idea)을 생각해냈다.

전쟁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 뒤 핵 개발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진 그는 자신의 발상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당시는 핵 개발을 하면서 핵물리학의 수준도 비약적으로 발달하던 때였다.

연구를 해보니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주에서 우주선 cosmic ray이 지구로 쏟아지고, 그 과정에서 중성자 neutron가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 중성자는 대기 중 질소와 결합해서 방사성을 띤 동위원소인 탄소-14(C-14)로 바뀌게 된다.

지구상의 탄소 대부분은 주기율표의 값과 똑같은 12개의 양성자와 중성자를 가지는데(탄소-12, C-12), 우주선과 결합하여 중성자 2개가 더 많은 탄소-14가 아주 미미하지만 존재한다.

탄소-12가 전체 탄소의 98.89퍼센트이고 탄소-13은 1.1퍼센트인 데에 반해서 탄소-14의 비율은 0.000001퍼센트에 불과하다.

게다가 탄소-14는 똑같은 원자 값의 질소로 바뀌게 된다.

지구상에서 호흡하는 동식물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인다.

식물은 광합성을 하고 동물은 그 식물을 먹거나 다른 동물을 먹는 식이다.

즉 모든 동식물은 몸 안에 탄소-14를 대기와 똑같은 비율로 가진다.

하지만 동물이나 식물이 죽고나면 더 이상 대기에 있는 탄소-14를 받지 못한다.

그러고 몸 안에 있는 탄소-14는 천천히 질소로 바뀐다.

 

이러한 성질을 띠는 다른 방사성물질도 많지만 탄소-14가 고고학에 도입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 반감기였다.

각 방사성물질은 반감기가 다르다.

예컨대 의료 기기에 사용되는 방사성물질은 반감기가 짧게는 몇 분 정도이고, 후쿠시마(복도福島) 원전 사고의 결과로 사람들이 걱정하는 세슘-137은 30년, 플루토늄-239는 2만 4,300년이다.

이에 비해 탄소-14는 반감기가 인류의 역사를 측정하기 적절한 5,730±40년이다.

 

리비가 개발한 방법 덕분에 고고학자는 가장 큰 두통거리인 연대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었다.

발굴 중에 흔히 발견되는 숯 덩어리나 뼈를 잘 포장해서 방사성탄소연대 실험실로 보내고 결과만 기다리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을 파괴하는 핵폭탄의 연구 끝에 얻은 새로운 방법으로 고고학자는 글자나 역법이 없는 몇만 년 전의 시간도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고고학자를 위한 초시간 여행선(타임머신 time machine)이 발명된 것이다.

핵폭탄의 개발 과정에서 발견된 이 방법을 고고학자에게도 핵폭탄과 같은 변화를 주었다.

고고학자를 옭아맸던 시간의 제약이 풀린 것이다.

리비의 연구로 고고학계는 큰 전환을 이루었고, 리비는 1960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물론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은 완벽하지 않다.

방사성탄소연대의 기본 원리는 통계이다.

보통 오차 범위를 표시한다.

예컨대 어떤 연대가 98퍼센트의 신뢰도로 2,000±100이라는 연대가 나왔다면 확률적으로 이 시료는 1,900~2,100년 전 사이의 어딘가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98퍼센트에 이른다는 식이다.

그리고 방사성탄소연대의 기본 전제는 과거나 지금이나 대기 중의 탄소-14 비율은 일정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방사성탄소연대의 비율은 계속 변하며, 실제로 측정할 때마다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 오차를 줄이는 방법이 지금도 개발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가속기질량분석법 Accelerator Mass Spectrometry(AMS)의 도입으로 좀 더 정확한 연대 산출 방법이 개발되었다.

이 방법은 탄소 원자 하나하나를 분리시켜서 일일이 그 질량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훨씬 더 적은 양의 시료를 가지고 측정이 가능하다.

예전에는 적어도 손가락만 한 숯이 필요했지만, AMS는 탄소 0.01 그램이면 가능하다.

즉 토기에 남아 있는 숯검정을 긁어서 나온 가루나 쌀알 한 톨을 측정할 수 있다.

대신에 AMS 기기는 정밀한 대신에 장치의 크기도 거대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

서울대 기초공동기기연구원에 설치되어 있는 AMS 기기는 3층 건물 정도의 높이이다.

 

최근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Novosibirsk in Russia에 위치한 시베리아과학원 핵물리학연구소에서 탄소 입자를 측정하는 기통(실린더 cylinder)을 U자형으로 돌리는 기술을 개발해서 크기는 반으로 줄이고 비용도 줄였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고고학연구소 연구원들의 푸념을 들은 핵물리학연구소의 작품이다.

고고학연구소에서도 AMS 기기를 사와야 하는데 몇백만 달러에 달하고 수입도 어려워서 도저히 들여올 수 없다고 푸념하는 이야기를 핵물리학자가 듣고서 그렇게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A4 용지에 연필로 슥슥 설계도면을 그리고 차고를 개조한 실험실에서 직접 만들었다.

1980년대 소련 시절에 만들어진 양수기(펌프 pump)와 전동기(모터 motor)를 재활용해서 만들어놓아 얼핏 보면 무슨 잡동사니를 모아놓은 것 같다.

서울대학교에 있는 AMS 기계의 3분의 1 정도로 작고 제작비와 유지비도 대폭 줄였다.

얼핏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지만, 사실 핵폭탄이라는 인간을 파괴하는 무기 대신에 발명된 신기술임이 다시 상기된다.

 

 

○방사성탄소연대, 변방에 서광을 비추다

 

전쟁이 준 뜻밖의 선물인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으로 고고학계는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그전까지는 영국의 스톤헨지 Stonehenge가 이집트의 피라미드 pyramid에서 기원했다고 생각했다.

방사성탄소연대를 몰랐기 때문에 막연하게 우월한 고대 문명에서 변방의 영국으로 전파되었다고 본 것이다.

사실 4대 문명에서 세계의 모든 문명이 확산되었다고 하는 과거의 주장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이 나오기 전의 견해이다.

절대연대를 알 수 없으니 크고 훌륭한 피라미드 같은 것에서 돌을 쪼개서 변방의 고인돌이 생겨났다고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방사성탄소연대를 측정해보니 변방의 거석문화가 훨씬 연대가 오래되었음이 밝혀졌고, 4대 문명 기원론은 곧 자취를 감추었다.

 

또한 1960년대에 일본의 조몬토기(새끼줄무늬토기 또는 승문縄文토기)를 측정해보니 무려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1만 2,000년이 나온 적이 있다.

처음에 후쿠이(복정福井) 동굴에서 측정한 연대가 1만 2,000년보다 더 오래된 연대가 나오자 고고학자들은 일제히 그 측정 방법에 불신을 보냈다.

심지어 일본에 떨어진 두 차례의 핵폭탄으로 일본 대기에 방사성물질의 비율이 높아져 방사성탄소연대에 혼란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학자도 있었다.

거듭되는 측정과 발굴 방법의 개량으로 토기가 구석기시대의 유물과 같이 나오는 예가 여럿 확인되었다.

이후 1980년대에 러시아 연해주沿海州(프리모르스키 Primorsky 또는 프리모리예 Primorye)에서도 비슷한 시기의 토기가 출토되었고, 지금은 중국에서 2만 년 전의 토기가 나왔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나아가 튀르키예의 괴베클리 테페 Göbekli Tepe와 같은 구석기시대 후기에 이미 거대한 신전을 만들었다는 점도 증명한다.

이렇게 기존의 4대 문명이 아니라 변방으로 치부되었던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가 일찍이 발달했음이 밝혀진 것은 전적으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도입 덕분이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발달에 힘입어 세계 각지에서 밝혀진 사실들로 고고학계에서도 기존의 문명에 대한 통설이 무너지고 있다.

20세기에 이야기하던 '4대 문명의 위대한 발명품이 각지로 전파되면서 세계가 계몽되었다'는 식의 주장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는 결코 거대한 기념물과 위대한 왕이 선도하지 않았으며,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 의해 형성되었음이 수많은 증거로 밝혀지고 있다.

문명은 결코 위대한 업적도 아니고, 구성원의 행복을 위한 과정도 아니었다.

각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구사했고, 그 와중에서 그들이 선택했던 수많은 과정이 서로의 작용으로 후대에서 말하는 문명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중심과 변방으로만 인식되었던 기존의 선사시대에 대한 인식은 바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개발로 무너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방사성탄소연대의 도입은 전쟁과 관련되어 있다.

한국전쟁 때에 한국에서 미군 상사로 근무하던 고고학자 하워드 맥코드 Howard MacCord(1915~2008) 소령은 경기도 가평의 북한강 지류인 가평천 근처에 미군 캠프를 설치하면서 개인 참호를 파다가 땅속에서 고대 집자리의 흔적과 유물을 발견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 고향인 버지니아 Virginia에서도 발굴 경험이 많은 전문적인 고고학자였던 맥코드 소령은 당시 전시 상황에도 불구하고 발굴 중에 찾아낸 숯이 된 나무기둥을 갓 설립된 미시간대학교 University of Michigan의 방사성탄소연대 실험실로 보냈다.

1958년에 공개된 이 가평리의 연대는 1,700±250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대체로 초기 백제 또는 원삼국시대에 해당한다.

 

이렇게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등장으로 고고학의 경험이 비교적 짧은 지역에서도 쉽게 연대를 측정하고 고대 문화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 결과 4대 문명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갔다는 식의 연구도 빠르게 사라지게 되었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등장으로 연대에 대한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숫자는 숫자일 뿐, 결국 고고학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숫자만 믿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개발은 논란이 되는 많은 문제에 새로운 시사를 주기도 했다.

 

2003년 5월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엄청나게 큰 소동이 있었다.

일본의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연구자들이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결과를 공개하며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야요이(미생彌生)문화의 개시 연대를 기존의 통설인 서기전 300년에서 무려 600년이나 올린 서기전 10세기라고 주장한 것이다.

갑자기 연대를 올리면서 일본 야요이문화의 기원지로 한반도 대신에 중국 요서 지역의 비파형동검문화를 지목했다.

새로운 야요이문화론은 여러 논란을 거치면서 일본 고고학계의 정설이 되고 있다.

자국의 역사를 오래된 것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해지는 일본의 분위기도 한몫했다.

일본의 청동기시대도 다른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과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연대를 올리기 전까지 일본은 방사성탄소연대를 믿지 않는 대표적인 나라였다.

바로 이웃한 한반도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유물이 서기전 15세기의 것으로 측정되었다고 해도 변함없이 서기전 300년에 청동기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한의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도 일본에 맞추어 그 연대를 늦게 보았다.

일본 고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남한은 일본의 연대에 맞추어서 그 연대를 맞추는 경향이 강했다.

예컨대 2018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쇠·철·강> 전시회에 설치된 철의 역사 연표를 보자.

한반도에 철기가 도입된 것은 서기전 4세기인데, 남한에서 철기가 제작된 것은 서기전 1세기라고 되어 있다.

서기전 4세기는 중국의 철기가 한반도로 도착한 연대를 말하지만, 서기전 1세기라 함은 남한과 일본의 철기시대를 한나라 낙랑군의 도입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 한반도는 이미 고대국가가 성립되어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한반도 북부에서 남부까지 철기가 도입되는 데 약 30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는지 납득되지 않는다.

이뿐 아니라 대부분 남한의 선사시대는 만주 및 북한과 연대 차이가 많이 난다.

이는 북한과의 소통이 오랜 기간 단절된 상태에서 남한 중심의 역사관이 너무 깊어지며 단절적으로 역사를 인식한 결과이다.

 

북한은 중국 만주에 이어졌기 때문에 방사성탄소연대를 그대로 신뢰한다.

하지만 남한은 상대적으로 연대가 떨어지는 일본과 붙어 있기 때문에 연대를 더 늦게 보는 것이 안전(더 신뢰도가 높다는 뜻)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어떤 유적의 연대가 서기전 3세기부터 서기전 1세기라는 측정결과가 나왔다면 '안전하게' 보아서 서기전 1세기나 그 이후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그래서 주변 국가들의 선사시대 연대는 계속 이른 시기로 올라가는데 반해 한국과 일본만 마치 갈라파고스제도 Galapagos Islands처럼 고립된 연대를 고집해왔다.

그러던 차에 일본에서 태도를 바꿔 갑자기 연대를 올려버렸으니, 상황은 웃지 못하게 전개되었다.

일본의 연대가 한반도보다 더 빨라져서 대륙의 청동기시대가 곧바로 일본으로 점프해서 jumping 건너갔다가 다시 한반도 남부 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오해할 상황이 된 것이다.

 

일본 야요이 연대는 바로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그 연대를 추정해서 새로운 사실을 증명하고자 했다.

지금도 수많은 방사성탄소연대가 등장하고 있지만, 논쟁은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연대 편년編年(고고학적 자료를 시간의 선후로 배열하고 연대를 부여하는 것) 방법이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의혹을 해결해준 것은 아니었다.

연대의 측정은 그 수많은 문제 가운데 극히 일부이며, 사실상 또 다른 해석을 위한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 속뜻은 나이보다 젊게 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내포된 것이지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삶과 고고학에서 나이는 단순한 숫자 이상이다.

그 하나하나의 숫자에는 영겁의 세월 동안 쌓여온 인류의 삶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연대는 단순하게 숫자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숫자 그 이상의 과거 정보를 담아내고 있다.

그러니 각국의 고고학자는 그 숫자에 자기의 생각을 투영한다.

지금도 더 정확한 연대를 얻기 위하여 고고학자는 연구하고 있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김영사, 2024)
2. 구글 관련 자료

 

2026. 2. 10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