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두성령 이암 '모견도' 본문
"체온 나누는 어미 개와 강아지에 반하다"

까만 눈망울이 애처롭다.
혀를 내민 채 연신 헐떡인다.
불안한 몸짓이 역력하다.
언니네 강아지가 왔다.
언니는 여행을 가거나 집을 비울 때면, 필자에게 강아지를 맡긴다.
이번에도 일주일 정도 필자가 '대리모'가 되었다.
강아지는 집으로 오는 내내 몸을 떨면서 헉헉 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영역 표시를 한다.
강아지의 이름이 '돈'이다.
뽀얀 털을 가진 돈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놀란 표정으로 필자를 바라볼 때가 가장 귀엽다.
필자가 무엇을 하는지 시종 예의주시한다.
한쪽 귀를 치켜세우며 낯선 대리모를 살피더니 스르륵 잠이 든다.
귀엽고 앙증맞은 강아지를 보면 누구나 마음이 열린다.
조선시대의 문인화가 두성령杜城令 이암李巖(1499 또는 1507~1566)은 미소 짓게 만드는 개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의 <모견도母犬圖>는 어미와 새끼들의 행복한 한때를 정감 있게 포착한 작품이다.
개 가족의 일상이 따스하다.
근심은 잠시 잊어도 좋다.
동물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위험한 동물도 많지만 인간을 지키며 위로를 주는 동물도 있다.
그중에게 개가 가장 인간과 가깝다.
특히 개는 인간과 동고동락하며 신분의 변화를 겪었다.
농경시대에는 가축으로 부를 향상시켜 주었고,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가족이 되었다.
고구려 때 무덤의 벽화에서도 개는 인간 옆에 있었고, 신라 때는 흙으로 만든 동물 토우土偶 중에 개도 있었다.
개는 인간의 사후에도 동행하는 영원한 동반자였다.
십이지신상으로, 무덤 주위를 수호하기도 한다.
동물이 그림의 주제로 등장한 것은 조선시대부터다.
조선시대는 왕족과 사대부 화가가 그림을 그렸으며, 직업적인 화원화가가 양성되어 그림 감상의 범위가 넓어졌다.
다양한 그림이 등장하고 중국 화풍의 도입으로 회화세계가 풍성해졌다.
조선시대 그림 중 가장 특이한 동물과 곤충, 꽃 따위를 소재로 그린 영모화翎毛畫와 화조화花鳥畵가 회화 장르로 주목받은 것이다.
이 영모화의 독보적인 존재가 왕실 화가 이암이었다.
이암의 자는 정중靜仲이고, 세종대왕의 넷째 왕자 임영대군의 증손으로 '두성령'을 제수받았다.
왕실의 후원 속에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한 품위 있는 화가였다.
그는 영모와 화조로 조선시대 초기 화풍을 정립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초상화에도 뛰어나 1545년에는 중종의 어진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모견도>는 어미 개와 세 마리의 강아지가 초록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서 마치 가족사진을 찍은 것 같다.
검은색의 기름진 털을 가진 어미는 금방울이 달린 붉은 목줄을 하고 있다.
자세가 귀품이 있어 지체 높은 사대부의 개임을 알 수 있다.
어미의 등에 올라탄 강아지는 평화롭게 잠들었고, 가슴에 파고든 강아지 두 마리는 한창 젖을 빠는 중이다.
평온하게 새끼를 감싼 어미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표정이다.
어미 개와 강아지는 먹의 농담을 이용한 몰골법沒骨法(동양화에서,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먹이나 물감을 찍어서 한 붓에 그리는 화법)으로 부드럽게 그렸고, 나무는 수묵담채로 대담하게 표현했다.
화가는 배경인 나무를 작게 표현하여 주인공인 개에게 시선이 집중되도록 했다.
어미 개는 사실적으로 묘사하였고, 세 마리의 강아지는 농담을 다양하게 구사하며 생동감 있게 그렸다.
어미 개의 붉은 낙관이 화면에 활력을 준다.
어미는 그윽한 눈빛으로 새끼를 보호한다.
맑고 투명한 강아지의 눈빛이 어미의 품에서 한없이 천진하다.
이암은 인물화에도 뛰어났지만 고양이, 새, 곤충, 개 따위를 통해서도 기량을 펼쳤다.
미술사가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1916~1984)는 "이암은 동심어린 화조화와 동물화에 특이한 양감量感 volume(손에 만질 수 있는 듯한 용적감이나 묵직한 물체의 중량감을 전해 주는 상태)을 묘사해 한국회화의 특색을 드러낸 개성있는 작가"라고 평했다.
동물을 그리기는 쉽지 않다.
세심하게 관찰하고 지속적인 교감을 통해 진심이 우러나야 그릴 수 있다.
이암의 따뜻하고 평화로운 성품이 <모견도>로 나타났다.
언니가 돌아온 날, 돈이를 데리고 언니 집으로 갔다.
돈이는 가는 동안 다소곳이 잠들었다가 고개를 들어 필자를 보았다.
우리 집에 올 때와 다르게 한결 평화로워 보였다.
돈이는 언니 집에 들어서더니, 유치원 다녀온 아이처럼 마구 뛰어다녔다.
생기가 도는 모양이다.
먹이를 챙겨주고 현관을 나서려는데, 돈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동그렇게 뜬 눈으로 고개를 조금 옆으로 기울였다.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는 걸까, 특유의 몸짓이 더 사랑스러웠다.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일은 인간이든 개든 아낌없이 체온을 나누는 일이다.
<모견도>의 어미 개와 강아지가 보란 듯이 서로 몸을 부비고 있는 것처럼.
그것이 사랑이고 행복이다.
※출처
1. 김남희 지음, '옛 그림에 기대다', 계명대학교 출판부,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6. 2. 25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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