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형식, 유물과 대화하는 법 본문

박물관에 가면 여러 유물이 마구잡이처럼 진열되어 있는 듯 보인다.
심지어 신라토기 또는 가야토기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사람들은 어떤 근거로 저렇게 쉽게 단정을 지을까 궁금해한다.
'과연 실제 가야인이, 또는 신라인이 그것을 사용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고고학자는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한다.
유적을 답사하러 가면 예리한 눈으로 땅을 훑어보다가 토기 조각을 집어서 잠시 응시하고는 곧바로 평가를 내린다.
신라, 가야와 같은 생산 지역은 물론 심지어 대략적인 연대를 맞춘다.
필자는 수업의 일환으로 학생들과 한성백제 유적인 몽촌토성(서울 올림픽공원)이나 고구려의 요새가 몰려 있는 서울 광진구의 아차산 일대를 자주 간다.
이 유적들은 이미 정비가 잘 되어 있지만 여전히 자세히 보면 땅에 토기나 기와 조각이 제법 발견된다.
토기를 주워서 그 연대와 특징을 한참 강의하다 보면 지나가던 등산객이나 산책하는 사람도 귀를 쫑긋거린다.
대개 사람들은 손바닥보다도 작은 토기 조각을 손을 들고서 그 쪼가리가 언제 만들어졌고, 누가 사용했으며 어떻게 만들었는지 일장연설을 하고 있는 필자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가끔씩은 진지하게 무슨 근거로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냐 하면서 말을 걸기도 하고 가끔은 허풍을 떠는 사람이라는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고고학자를 신기한 마법사로 보이게 하는 그 재주는 흔히 '형식학型式學 topology'이라고 한다.
유물의 색깔, 크기, 재질 따위를 종합해서 하나의 '형식型式 format'이라고 묶어 연구하는 것이다.
흔히 옷이나 장신구를 말할 때 쓰는 '스타일(맵시) style'과도 비슷하다.
스타일은 전반적인 특징을 한데 어울러서 말하는 것이라면 형식은 유물의 길이, 색깔, 형태 따위의 구체적인 특징을 하나씩 분석하는 것이다.
고고학자가 유물을 분석하는 방법은 사방으로 흩어진 유물의 파편을 모으는,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는 방법이다.
각 유물의 여러 특징을 종합해서 중요한 특징(속성)을 정리한다.
일정한 무리로 분류하여 각각 형식이라고 이름 붙이고 분류된 각 유물의 무리들이 언제 만들어졌고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밝히는 것이 주목적이다.
이 형식의 분류는 마치 폐지더미 속에서 책을 찾아내서 다시 책꽂이에 꽂는 중고 서점과 같다.
서점 주인은 이리저리 흩어진 자료에 질서를 부여해서 다시 책장에 꽂는다.
그런데 서점 주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전체 책이 다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 서점을 찾는 사람이 필요할 때 찾아볼 수 있도록 자기 나름대로의 원칙으로 배열한다.
고고학자도 각자 자기의 원칙으로 유물을 분류한다.
유물의 재질, 색깔, 손잡이의 형태와 같은 수많은 특징에서 그 분류할 원칙을 찾는다.
그 분류할 원칙을 '속성屬性 attribute'이라고 한다.
하나의 유물에서 속성은 몇백 가지로 나올 수 있다.
고고학자는 그 안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쉬운 속성을 정해서 분류한다.
예를 들어 신라토기와 백제토기를 구분하는 기준도 별다른 비밀이 아니다.
그들을 가르는 기준에 대입해서 토기를 판단했기 때문이다.
백제토기는 대체로 우윳빛깔이 많으며 무른 편이다.
신라토기는 어두운 바탕에 아주 단단하다.
한편, 신석기시대의 토기 가운데 바닷가 모래에서 반짝거리는 성분인 운모를 섞은 것은 모래가 풍부한 서해안 해안가에서 주로 나온다.
이렇게 고고학자는 다년간의 경험에 기반을 두어서 효과적으로 유물을 구분하는 법을 만들어낸다.
본인은 잘 인지하지 못해도 각 시대의 사람들의 외모,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물건에는 그때만의 독특한 형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우리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자.
한껏 뽐을 내고 있지만 어쩐지 어색하고 촌스럽게 느껴진다.
아마 오늘 우리가 찍은 사진도 10~20년만 지나면 얼굴이 화끈거려서 제대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단순하게 오래되어 색이 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해도 우리가 지니고 있는 물건의 형식이 이미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사람은 자신이 지금 쓰고 있는 물건이 이후에는 어색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거의 못 느낀다.
그 이유는 치마나 소매 길이가 해마다 조금씩 짧아지거나 길어지듯이 물건의 유행도 그것을 쓰는 사람이 느끼지 못할 만큼 서서히 바뀌어 나가기 때문이다.

고고학자는 마치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유물이 발견되면 서로 비슷한 형식의 유물을 모으고, 그들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밝혀낸다.
서로 비슷한 형태의 유물일수록 비슷한 시기와 장소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고고학자가 '이것은 고구려 토기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전에 이미 발견돼서 알려진 고구려 토기와 비슷한 형태와 색깔이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자.
예외도 있지만 대체로 지난 몇 년 동안 스마트폰은 비슷한 조건에서 작은 화면을 점차 키워왔다.
크기대로 배열한다면 대체로 스마트폰이 발달해온 과정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니 토기도 그 형태에 따라서 비슷한 것을 배열하면 몇백 년 동안 사람들이 사용했던 토기의 변천사가 나올 것이다.
고고학자의 업무는 이렇게 비슷한 유물을 모으고 형식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된다.
비슷한 유물을 비슷하게 쓰고 있다면 그들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이고, 그 변화를 배열하면 사람들이 살아온 과정과 일치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 발에 차이는 사소한 유물 하나가 우리의 역사를 밝혀내는 자료로 활용된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형식학이 고고학에 도입된 시기는 19세기 과학이 발달하면서 생물학의 진화론 개념이 널리 알려진 이후이다.
생물은 점진적으로 환경에 맞게 형태를 바꾸어 진화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바로 지난 몇천 년 동안 서양을 지배했던 '창조론' 때문이다.
창조론은 단기간에 모든 생물이 만들어졌다고 보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생물이 변화한다는 진화론의 사고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니 창조론이 대세이던 시절에는 고고학 유물도 마치 골동품 같은 것으로 다루어졌다.
진화론이 공인된 이후에야 비로소 고고학에서 형식학이 확립되면서 고고학은 과학의 일부가 됐다.
이렇게 사소해 보이는 유물을 형식으로 모아서 그 시간과 공간의 위치를 파악하고 나면 그 집단, 나아가 민족, 때로는 국가별로 고유한 문화를 볼 수 있다.
이는 수학의 프랙털(프랙탈) fractal(임의의 한 부분이 전체의 형태와 닮은 도형)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하나의 현상은 융합돼서 전체를 반영하고, 전체의 모습은 하나의 현상으로 표출된다는 뜻이다.
고고학자가 바라보는 사소한 토기의 차이가 사실은 각 국가나 집단 사이의 큰 문화 차이를 반영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고고학자는 하나의 유물에 숨어 있는 과거의 모습을 보고자 하고, 또 과거의 모습은 사소한 유물에 남아 있다.
그러므로 고고학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물은 찬란한 황금이 아니라 흔하디흔하게 보이는 토기 조각이다.
토기의 무늬와 형태, 원료가 된 점토의 성분, 그리고 구운 온도 따위를 보고 쉽게 그 시대를 판정한다.
사소한 토기가 중요한 자료가 되는 이유는 빨리 쓰고 버리는 물건이라 변화하는 시대를 빠르게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계속해서 변하는 사물 속에 지난 시간 인간이 밟아온 발자취가 녹아 있다.
20~30년 전 부모님의 젊은 시절이 담긴 사진을 보면 지금과는 다른 화장법과 옷이나 물건 때문에 우리는 다소 촌스럽게 느낀다.
하지만 그 사소한 물건의 변화에는 부모님 세대에서 우리로 이어지는 시간의 고고한 변화가 담겨 있다.
고고학은 형식이라는 틀을 가지고 사소한 유물의 변화를 통해 몇천 년을 두고 이어지는 인간 세상의 흐름을 찾아나간다.
찬란한 황금에 혹하지 않고 사소한 토기의 조그마한 변화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고고학은 소박하지만 인간을 생각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다.
고고학자가 수많은 경험으로 정립한 형식학이지만, 사실 사람보다 보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가야토기, 신라토기라고 하면 혹시 저 고고학자가 주관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처럼 고고학자가 그냥 자의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고고학계에 큰 논쟁이 발생했다.
과연 고고학자가 분류하는 형식은 과거 사람이 분류하던 원칙을 반영하는가, 아니면 후대의 고고학자가 만들어내는 자의적인 분류인가.
1950~1970년대에 미국에서 포드 James A. Ford(1911~1968)와 스폴딩 Albert Spaulding(1914~1990)이라는 두 학자에 의해 이 문제가 촉발되었다.
전통적인 고고학을 추구하는 포드는 실제 과거 사람의 용도를 정확히 알아낼 수 없으며, 다만 우리가 지금의 기준으로 분류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반면에 최신 과학적인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고학에 도입할 것을 주장하던 스폴딩은 다르게 보았다.
두 학자의 견해 차이를 요즘 오디션(경연競演) audition으로 가수를 선발하는 '서바이벌 오디션 survival audition'이나 <복면가왕> 같은 프로그램 program에 대입해보자.
심사위원은 각 경쟁자의 노래를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한다.
심사위원의 결과는 대체로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경우도 가끔 있다.
과연 잘 부르는 노래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하는 것일까?
포드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좋은 노래라는 기준은 각 사람마다 다르고 자의적이기 때문에 심사위원이 누군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와 달리 스폴딩은 우리가 서로 다른 식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도 조금씩 다르겠지만 궁극적으로 좋은 노래를 구분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년 넘게 이어진 두 학자의 논쟁은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끝났다.
어느 누가 분명히 맞는다고 판단하기보다는 각각 고고학 자료에 따라서 적절히 두 시각을 취사선택한다고 하게 되었다.
형식학이라는 것이 포드와 스폴딩의 논쟁에서처럼 속성·형식이 유물 속에 내재된 것인지, 아니면 후대의 고고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위하여 긋는 임의의 인식을 위한 범주인지 우리는 여전히 혼동하며 때로는 논쟁한다.
지금도 고고학자들은 서로 자신이 찾아낸 형식이 맞다고 논쟁하는데, 상당수는 여전히 '감'에 의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유물은 주관적인 인간이 만들고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분석하는 고고학자도 객관을 지향하지만 주관적인 판단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각 유물의 특성과 연구의 맥락에 따라 유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정답일 것이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김영사, 2024)
2. 구글 관련 자료
2026. 2. 28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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