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71 - 시로미 본문

한라산 정상 부근과 북한의 고산지대에 융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무리를 이루어 자라는 자그마한 암수딴그루인 늘푸른 넓은 선형잎 떨기나무이다.
키가 한두 뼘 남짓하며 초가을에 흑자색의 콩알 굵기 열매가 익는다.
핵과核果(단단한 핵으로 싸여 있는 씨가 들어 있는 열매)로서 즙이 많고 약간 신맛이 시큼하므로 시로미란 이름이 붙었다.
'시로미'란 나무 이름은 다소 이국적인 맛을 풍긴다.
우리나라에서, 아니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나무로서는 암매岩梅와 함께 그 크기가 가장 작은 것으로 생각된다.
문헌에 '늘푸른(상록常綠)의 작은 떨기나무(관목灌木)'이라고 쓰여 있듯이, 시로미는 자라서 그 높이가 10~20센티미터 가량 된다면 큰 편이며, 이처럼 한 자도 못 되는 나무인 까닭에 매우 작은 나무로 취급할 만하다.
시로미과 시로미속에 속하며, 한반도를 비롯하여 중국 동북부와 일본, 러시아 사할린, 캄차카와 같은 지역에서 자란다.
학명은 엠페트룸 니그룸 Empetrum nigrum, 영어는 Japanese crowberry(일본 시로미) 또는 Korean crowberry(한국 시로미)이고, 한자는 오이烏李 또는 암고란岩高蘭으로 쓴다.
○나무 이름
시로미의 한자 이름은 '오이烏李' 또는 '암고란岩高蘭'으로, '오이'는 '까마귀의 자두'라는 뜻이다.
새들이 이 나무의 열매를 먹어서 그러한 이름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가을이 되어 한라산의 시로미가 익으면, 이때 큰 까마귀들이 산을 날고 백록담의 돌벽에 모여든다.
시로미의 영어 이름은 crowberry로 역시 '까미귀 열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동양 사람과 서양 사람이 시로미의 이름을 지을 때 서로 상의한 것은 아닐 텐데, 그 뜻이 서로 같다는 것은 아무래도 신기하다.
일본어 이름은 간코랑(암고란岩高蘭)이다.
시로미는 우리나라에서는 한 종種으로서 시로미속屬을 만들고 또 시로미과科를 만들고 있다.
이것은 은행나무가 역시 한 종으로서 은행나무속 그리고 은행나무과를 만들과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식물을 우리는 '모노타이프 monotype(단형單型)'이라 부른다.
○시로미 산지와 특성

1911년 도쿄대학교(동경대학교東京大學校) 나카이(중정中井) 박사가 제주도 한라산 해발 1,700미터 이상에서 시로미가 난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 뒤 백두산 관모봉, 설령, 남포태산에서도 시로미가 있음이 밝혀졌다.
시로미는 일본, 유럽, 캘리포니아에서도 분포하고 있다.
시로미는 높은 산의 건조한 곳에 나고 작은 콩만한 검은색 열매(물열매, 장과漿果 berry)를 맺는다.
제주도 지방에서 이것을 '시로미'로 부르고 열매를 식용하였으며, 옛적부터 산에 살고 있는 선인仙人이 먹는 불로장생의 열매라고 믿어지고 있다.
양력 9월이면 제주 시내 시장에서 시로미 열매를 볼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옛적 제주도를 동영주東瀛州라고 불렀을 때 한라산 위에서 나는 시로미의 열매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나무 열매라고 전해지고 있다.
필자는 몇 번인가 한라산 정상까지 오른 일이 있지만, 시로미 열매를 많이 볼 수 없었다.
과거 한때 시로미가 분재 목적으로 채굴당한 일이 있는데, 멸종위기종이므로 잘 보호해야 할 것이다.
시로미는 잎이 가늘고 빽빽하게 달려 있다.
이것이 많이 나 있는 곳을 보면 융단과 같아서 그 위를 걸어가면 푹신푹신한 탄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곳을 오래 걸어가면 피로를 느끼게 된다.

시로미의 꽃은 초여름 고산高山에 봄이 오면 곧 피게 되므로 늦게 올라가면 이 꽃을 볼 수 없다.
가지 끝에 나는 진홍색의 작은 꽃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에는 암수딴그루의 경향이 뚜렷하지만, 스웨덴과 핀란드, 노르웨이에서는 암수한그루의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
열매로 잼을 만들고 또 술을 빚기도 하는데, 많이 먹으면 취해서 두통이 온다고 해서 독일에서는 '라우슈베에러 Rauschbeere'라고 하지만 독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시로미 잎은 실제로는 넓은데 돌돌 말려서 가늘게 보인다(넓은 선형잎).
이는 높은 산에서 물의 증산을 줄이자는 뜻이며, 호흡 작용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강한 산성 땅을 좋아하고 꺾꽂이 또는 열매로 번식이 된다.
일반 정원 땅에서는 키우기 어렵고, 토탄土炭 같은 것이 있는 곳에서 키우는데 알맞다.
필자가 스웨덴의 산을 걸을 때 줄곧 시로미 열매를 따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러나 맛은 그곳에 함께 있는 들쭉의 열매만큼 진하지 않았다.
어느 해인가 스웨덴의 산에서 학술 연구의 현장 발표가 있었다.
스웨덴 임목육종 연구소장인 예스타 Gösta 박사가 열심히 무언가 설명을 하고 있는데, 세계 각처에서 모인 학자들이 처음에는 조용하게 설명을 듣고 있다가 한 사람 두 사람 발목 부근에 있는 시로미 열매를 따먹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것을 따먹게 되자, 설명하고 있던 예스타 박사마저 시로미 열매를 따먹었다.
필자는 그때 정말 순박하고 고결한 인간성을 가진 학자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했다.
필자도 물론 열심히 시로미 열매를 따먹었다.
그 뒤 그분의 학술 발표는 다시 계속되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시로미 열매의 맛은 새로운 것이었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3(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6. 2. 26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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