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74 - 아까시나무(아카시아) 본문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19세기 말 황폐한 우리나라 산의 복구를 위하여 들여왔으며, 한반도 전역에서 야생화하여 자란다.
꽃에서는 질 좋은 꿀을 따며, 목재는 단단하고 무늬가 고와 쓰임이 요긴하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아까시나무'로 표기되어 있다.
콩과 아까시나무속에 속하는 갈잎 넓은잎 큰키나무(낙엽활엽교목落葉闊葉喬木)로서 25미터 높이까지 자라며, 북미·유럽·아시아의 온화한 지역에 분포한다.
학명은 로비니아 슈도아카시아 Robinia pseudoacacia, 영어는 Black locust(검은아카시아), 중국어 한자 표기는 자회刺懷다.
○순백의 아까시나무 꽃에 대한 향수

우리는 흔히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 Acacia'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카시아는 호주 및 남태평양 원산의 노란 꽃을 피우는 나무 이름이다.
필자 어린 시절엔 멋있고 듣기 좋은 아카시아라는 이름을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 아카시아 노래가 유행했었다.
"아카시아 숲속으로 역마차는 달려간다"라는 가사였다.
이 노래는 만주의 하얼빈(합이빈哈尔滨/哈爾濱)을 무대로 한 것으로, 필자는 만주에서 마차를 타본 일이 있다.
우거진 아카시아 숲속을 마차로 달리는 기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아까시나무는 초여름인 5~6월에 흰 계절의 꽃을 피운다.
싱싱한 흰빛으로 장식한다.
아까시나무 꽃은 왜 흰빛일까?
초여름에 피는 꽃은 흰 것이 많다.
이팝나무의 꽃이 그렇고, 고광나무와 쥐똥나무, 으아리, 밤나무, 산딸나무 따위는 모두 흰 꽃으로 풍성한 여름을 맞는다.
아까시나무는 계절의 꽃을 단다.
초여름은 계절의 절정이다.
하늘을 보고 또 아까시나무 꽃을 보고 그 맑은 공기를 들이마실 때 마음의 문은 열리고 만다.
남의 잘못이 눈에 띄지 않는다.
부드럽고 평화스러운 그것이 가슴속에 꽉 찬다.
젊은 가슴이 환희의 감격으로 터질 것 같은 계절, 바로 이때가 아까시나무 꽃이 필 무렵이다.
그래서 아까시나무 꽃이 좋다.
어떤 해인가 유별나게 아까시나무 꽃이 많이 피었다.
지난날 필자는 이렇게도 많은 아까시나무 꽃을 본 적이 없었다.
아까시나무 꽃에서는 꿀이 흐른다.
그래서 '비 트리(꿀벌나무) Bee tree'라는 별명도 얻었다.
아까시나무 꽃은 우리나라 남해안에서부터 피기 시작해 북쪽으로 올라온다.
아까시나무 꿀을 모으는 사람들은 자동차에 벌통을 싣고 남쪽에서 초여름을 따라 북쪽으로 나아간다.
꿀이 흐르는 땅을 따라 나그네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큰 아까시나무가 더욱더 많았으면 한다.
아까시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세기 말이다.
그 뒤 이 나무가 많이 심어졌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나라 나무같이 되었다.
몇 해 전에 일본 친구가 방문했을 때 필자는 서울 남산으로 친구를 안내했다.
그는 길에 오르면서 아까시나무 꽃 향기를 맡으면서 옛 고향의 냄새라고 하며 감격해 했다.
그의 가족은 지난날 서울에 살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한국에 나가거든 아까시나무 꽃과 잎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한 줄기 아까시나무 꽃과 잎을 가지고 돌아갔다.
옛 고향의 추억은 나무와 함께 살아나게 된다.
산도 좋고 물도 좋고 개울도 좋지만, 추억에는 나무가 좋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얼마나 화려했던 고향인가.
향수가 아까시나무 꽃 향기에 실려서 천 리 만 리 퍼져나간다.
꽃이 져도 향기는 남아 있다.
○나무의 용도
아까시나무는 미국이 원산이다.
미국에서의 기록을 보면 큰 나무는 높이가 30미터를 넘고, 줄기 지름이 약 1.7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과거 아까시나무를 배를 만드는데 썼는데, 이는 이 나무 목재가 강인하고 오래 견디기 때문이다.
또한 황폐지荒廢地(황무지荒蕪地) 조림에도 이 나무가 많이 사용되었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President Franklin Roosebelt(재임 1933~1945)이 아까시나무를 이용하여 테네시강 Tennessee River 유역 황폐지 복구에 성공한 사례는 유명하다.
이 점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며, 프랑스 France 동부와 독일 Germany 서부, 헝가리 Hungary에서도 아까시나무를 많이 심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까시나무를 많이 심은 나라로 손꼽힌다.
이는 황폐지 조림에 알맞은 특성을 가지고 있고, 또 땔감으로 적당하며, 잎은 가축의 사료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까시나무 가지에는 가시가 나 있어 사람들이 싫어하기도 한다.
나무의 가시는 두 가지로 구별된다.
아까시나무 가시는 누를 때 뚝뚝 잘 떨어지는데, 이러한 가시는 나무껍질이 변해서 가시가 된 것으로 껍질가시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탱자나무나 시무나무, 주엽나무 따위와 같은 나무들은 가지에서 가시가 떨어지지 않고 칼로 잘라내야 떨어진다.
이러한 가시는 가지가 변해서 된 것으로 가지가시라고 할 수 있다.
아까시나무 가운데는 가시가 없는 것도 있다.
'민둥아까시나무'로 불리며, 취급하기 편리하고 가축 사료로도 좋다,
가시 없는 아까시나무는 일반 아까시나무가 변해서 된 것이다.
그런데 가시 없는 아까시나무에서 씨를 따서 땅에 뿌리면 생겨나는 모나무(묘목)의 약 반은 가시가 있고, 다른 반은 가시가 없게 된다고 한다.
가시 없는 아까시나무는 키가 작고 모양이 둥글게 되는 것이 있다.
○나무의 특성
아까시나무는 자람이 매우 빨라 10년이 되면 키가 10미터나 되기 때문에 좁은 뜰에 심을 만한 것은 못 된다.
겨울에는 잎이 떨어져 쓸쓸한 겨울의 맛을 한층 더 강조해준다.
이와 같은 야성적인 자연의 맛을 보기 위해서는 이 나무를 심는 것이 좋다.
어떤 사람들은 이 나무의 뿌리가 땅속으로 퍼져나가 움싹(갓 돋아나는 어린싹)을 내고 또 퍼져나가는 까닭에 심을 것이 못 된다고 한다.
특히 묘 안으로 파고들어가서 곤란해져 아까시나무를 없애는 방법을 물어오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 이러한 일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다.
줄기를 모조리 잘라주면 어린 새 가지가 돋아 나오는데, 가지를 20~30센티미터 정도 남겨놓고 잘라버린 뒤 이 가지를 휘어서 끝 쪽을 약물이 들어 있는 유리병에 잠기도록 한다.
이때 약물이란 황산동액이나 석유, 그밖에 나무를 죽이는 약(살목제殺木劑)을 물에 탄 것이다.
이처럼 하면 줄기가 약물을 빨아먹고 그 줄기와 관계 있는 나무 부분은 죽게 된다.
다른 나무도 그렇지만 아까시나무는 특히 뿌리로 서로 연결이 잘 되어 있다.
한쪽 줄기가 죽게 되면 이 나무와 뿌리로 이어져있는 다른 줄기도 해를 입게 된다.
아까시나무는 장소에 따라서 가로수로 심을 수 있고, 또한 풍치수나 녹음수로도 좋다.
아까시나무 목재는 잘 썩지 않는 까닭에 예전에는 철도 침목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땅속에서 오래 가므로 말뚝으로는 참나무 종류보다 더 좋다.
그러나 이 나무는 건조하고 바람이 부는 곳에서는 자람이 좋지 않다.
아까시나무의 꽃말은 '아름다운 우정'과 '청순한 사랑'이다.
○정태현 박사 이야기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기억에 오래 남는 사람도 있고, 기억에서 영영 없어지고 마는 사람도 있다.
필자에게 훌륭하다는 인상을 남긴 몇 분은 철두철미하게 온유하고 성내는 것을 볼 수 없는 그러한 인간성의 사람이다.
그중 한 분이 존경하는 정태현鄭台鉉 박사(1882~1971)이다.
그는 '마음씨 고운 할아버지'란 인상, 그것이 거의 전부였다.
모나지 않고 자기 자랑을 하지 않으며, 할 수 있는 한 남을 도우려고 한 분이었다.
정 박사가 1943년 출간한 명저 ≪조선삼림식물도설朝鮮森林植物圖說≫을 바탕으로 하여 1953년에 ≪한국식물도감韓國植物圖鑑≫ 목본木本 편이 신지사新志社에서 발행되었다.
1943년에 일본어로 낸 책에는 우에키(식목수간植木秀幹) 교수가 서문을 썼다.
우에키 교수는 훌륭한 인격자로 아량이 넓고 사리가 분명한 분이었다.
정태현 박사의 책에 '아가시나무(또는 아까시나무)'가 나온다.
한자 이름은 자회刺懷로 가시(자刺)가 있는 회화나무(회懷)라는 뜻이며, 잎의 모양은 깃꼴겹잎(우상복엽羽狀複葉)으로 서로 닮은 점이 많고 함께 콩과에 속한다.
○나무 이름의 유래

이 나무를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도입하여 심었을 때 '아카시아' 또는 '니세아카시아'라는 이름으로 보급 및 홍보되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쉽게 '아카시아'라고 불렀다.
그런데 식물학상으로는 아카시아 Acasia라는 속이 따로 있고, 역시 콩과에 속하며, 호주 Austalia에 많고 아프리카 사바나 African savanna에도 있다.
아카시아속 나무는 건조한 아열대부터 난온대 중심으로 분포하며,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심지 않고 있다.
발음상으로 아카시아속이 아카시아지만, 로비니아 Robinia를 아카시아로 부르는 사람도 많다.
아카시아속 나무는 고대 이스라엘 Ancient Israel 및 바빌로니아 Babylonia 사람들이 신목神木으로 여기고 생명력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아카시아 Acasia의 어원은 그리스어 Greek로 아키스 Akis(돌기 또는 바늘이란 뜻)에서 온 것으로 가지에 발달한 가시를 뜻한다.
이런 점에서 아카시아속이나 로비니아속이나 비슷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로비니아속 미국 원산의 Black locust를 아카시아로 부르면 호주 원산의 아카시아 속명과 똑같아 혼란이 있을 수 있다.
일본 사람들도 '니세아카시아 ニセ·アカシア' 또는 '하리엔쥬 ハリエンジュ'(가시회화나무)'로 불러 '아카시아'라는 말은 피하고 있다.
이러한 것이 이유가 되어서 정태현 박사도 '아가시나무(또는 아까시나무)'로 말한 것으로 짐작된다.
일본 이름 '니세아카시아'는 가짜 아카시아 false acasia 또는 학명에 나타나는 슈도아카시아 pseudoacasia(가짜 아카시아)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일반 식물학자들은 가시회화나무라는 이름을 고집하고 임업계의 통칭, 즉 니세아카시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속명 로비니아 Robinia는 캐나다 Canada에서 프랑스로 그 씨를 처음 옮겨간 진 로빈 Jean Robin을 기념하기 위해서 린네 Carl von Linné(1707~1778)가 이름 붙인 것이다.
영국 UK에 아카시아가 들어간 것은 그 뒤 미국의 버지니아주 State of Virginia in USA로부터였다.
그런데 ≪웹스터 영어사전 Webster's English Dictionary≫(1983)에 아카시아 acacia의 발음은 '아케이셔'로 되어 있고, 이는 호주 원산의 이른바 아카시아속 나무들, 미국 원산의 이른바 로비니아속 나무들을 뜻한다고 되어 있다.
아까시나무는 국민들이 가슴 깊은 곳에 담겨 있는 생활문화적인 나무 이름이다.
미국인이나 일본인이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관행에 대해서, 또 그것이 식물학적으로 타당한지에 대해서 그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 생활문화에 바탕을 둔 그러한 이름이 사랑을 받고 있다.
아카시아 꿀, 아카시아 껌, 아카시아 치약 따위가 그러한 것들이다.
다음 노래 가상 중 '아카시아 흰꽃'은 너무나 황홀하다.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아카시아가 짜릿한 맛의 감미로운 음향 가치가 있는 용어라면 아카시아에 향수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까다롭고 어려운 논의보다는, 기분 좋고 또 남들이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좋다는 것이다.
아까시나무는 이제 우리의 나무가 되었다.
우리의 산야를 덮고, 흰꽃의 타래타래가 이제 우리 대한민국의 것이 되고 말았다.
그 원산이 미국이라는 것을 따질 필요가 없다.
은행나무가 중국 원산이라 해서 우리나라에서 이단자 취급을 하지 않는다.
벼, 감자, 포도, 호박, 고추가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라 해서 색다르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우리 것이다.
○헝가리의 아까시나무

필자는 1997년 6월 초 헝가리 Hungary의 아까시나무 임업을 견학한 적이 있다.
헝가리 임업을 떠받치고 있는 수종은 아까시나무이고, 아까시나무 꿀이 흐르고 있는 나라가 바로 헝가리다.
아름다운 다뉴브강 Danube River 가에 고색창연하게 위용을 자랑하는 국회의사당 건물이 있다.
이 건물로 진입하는 길가에 아까시나무 노거목이 줄로 심어져 다뉴브강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헝가리에서도 아까시나무는 외래 나무다.
왜 그들은 외래 나무인 아까시나무로 역사적 전통이 있는 국회의사당 건물을 둘러쌌을까?
어리석어서일까? 아니면 그들의 역사를 가볍게 여긴 탓일까?
아니다.
아까시나무가 좋은 나무이고 값진 나무이기 때문이다.
헝가리에도 많은 토착종 나무가 있고, 또 임업도 발달해 있다.
필자는 국회의사당 건물 주변이 아까시나무로 장식되어 있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한 그들의 설계에 경의를 표했다.
이에 더해서 헝가리 정부 공무원은 아까시나무를 특별한 차원의 수종으로 대우하고 있었다.
각종 통계, 즉 수종별 삼림 면적이나 임상별 목재 축적량, 그리고 조림물량 통계 따위에 있어서 일단 토착 수종과 외래 수종으로 크게 나누어 아까시나무를 헝가리 토착 수종에 넣고 있었다.
그들이 아까시나무 원산지가 미국이란 것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이는 그곳 임업시험장 부장 레데이 Redei 박사와 필자가 나눈 다음 대화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형가리에 아까시나무가 들어온 지 오래되었나요?"
"약 200년으로 보면 됩니다."
"그렇다면 왜 아까시나무를 국산 토착 수종으로 취급해서 임업통계 처리하고 있나요?"
"200년이나 지났고 헝가리 임업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데 외래 수종으로 취급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한국적이며 향기가 좋고 흰 구름 같은 꽃으로 마을과 강산을 감싸는 나무, 부드러운 푸름이 있고 깊은 사색을 좋아하는 나무, 시와 노래에 가득한 미학의 나무, 그것이 곧 아까시나무다.
정태현 박사의 아까시나무다.
○황당한 이야기들
임학과 임업을 공부하면 비교적 긴 세월이 흘렀고, 그러다 보니 자연 각종 터무니없는 낭설도 듣곤 한다.
그러한 이야기는 어느 나라,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깨우치지 못한 집단일수록, 또 가난하고 서러움이 많은 사람일수록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더 많다.
필자가 들은 황당한 이야기 중 하나는 적송망국론赤松亡國論이고, 또 하나는 폐병을 유발한다는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Patanus, 세 번째는 아까시나무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 나무는 모두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심거나 가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적송망국론이란 유식한(?) 용어를 듣고 고집 센 인사들이 모이기만 하면 소나무 때문에 우리는 죽게 되었고, 이것은 일본 사람들의 처사라는 것이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잘못된 여론이다.
그러나 그때 그 여론은 큰 힘을 얻어 널리 퍼져나갔다.
한편 양버즘나무 잎 뒤에는 무서운 털이 있어서 이것이 떨어질 때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가면 폐병으로 죽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전국의 양버즘나무를 베어 없애자는 의견도 나돌았다.
이것 역시 잘못된 여론이었다.
아까시나무도 미국 나무로서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는 것으로 국력을 총동원해서 없애버려야 하며,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못 살게 하려고 심은 것으로 나무 안에는 좋지 못한 독기가 었어 우리 국토를 못 쓰게 만든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황당무계하게 퍼져 나온 이야기다.
신조가 없는 사람들은 이러한 말에 동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나무와 풀은 창조주가 인류를 위해서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아까시나무는 목재로서, 꽃은 꿀로서, 그리고 우리 생활환경의 나무로서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소나무는 나라를 망치고, 양버즘나무는 국민의 건강을 해치며, 아까시나무는 나라를 못 쓰게 만든다는 이야기는 무시해도 좋다.
지구상의 모든 나무와 풀은 고마운 존재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알맞게 쓰거나 좋은 일에 쓸 줄 아는 지혜를 개발해 가고 있다.
○가장 오래된 아까시나무

필자는 경북 성주군 월항면 지방리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아까시나무가 있단 말을 듣고 1995년 6월 30일 용기를 내어 그곳으로 향했다.
길가에 있는 아까시나무 거목은 1901년 심은 것으로, 나무 높이 약 16미터, 가슴높이 줄기둘레 368센티미터, 뿌리목 줄기둘레 600센티미터, 가지밑 줄기높이 350센티미터에 이르고 있었다.
가슴높이 지름은 117센티미터로 계산된다.
줄기는 세로 골이 지고 줄기껍질은 섬유질로 갈라지고 있었다.
이는 필자가 본 아까시나무 중에서는 가장 큰 나무로 녹음수 및 정자나무로 이용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신성神性 같은 것을 부여하여 보호하고 있었다.
자동차를 사면 먼저 이 나무 아래에서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올려 교통사고 없이 무사할 것을 기원한다.
사람이 죽어 출상을 할 때에는 이 나무 아래에서 노제路祭를 지내며 마을을 떠나 영원의 살 곳으로 간다는 보고를 한다.
이것은 이 나무가 예사로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외국 수종이라 그 안에 깃들어있는 신도 외국 신이겠는데, 그것을 우리 신으로 귀화시킨 우리 국민의 성품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3(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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