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6부 혁명의 시대 - 21장 국가란 무엇인가? 영토, 국가, 그리고 시민(1848~1871) 2: 내셔널리즘과 1848년 혁명 3-이탈리아 통일의 초기 단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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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6부 혁명의 시대 - 21장 국가란 무엇인가? 영토, 국가, 그리고 시민(1848~1871) 2: 내셔널리즘과 1848년 혁명 3-이탈리아 통일의 초기 단계

새샘 2026. 3. 30. 14:38

1815년부터 1870년까지 3단계에 걸친 이탈리아의 영토 변화(출처-출처자료1)

 

이탈리아 반도 Italian peninsula는 로마 제국 Roman Empire(서기전 27~서기 1453) 이래로 통일된 적이 없었다.

19세기 초 이탈리아는 잡동사니 군소 국가들의 조각 모음이었다.

오스트리아 Austria는 이탈리아 반도 최북단 국가이면서 가장 도시화되고 산업화된 지역이기도 했던 롬바르디아 Lombardia(영어 Lombardy)아 베네치아 Venezia(영어 Venice)를 차지하고 있었다.

합스부르크 제국 Habsburg Empire(1526~1918)의 예속 국가들 또한 오스트리아의 영향력을 반도 이북까지 확대하면서 토스카나 Toscana, 파르마 Parma, 모데나 Modena를 지배했다.

이탈리아 Italia(영어 Italy)의 독립 국가들로는 프랑스 France의 부르봉 왕가 Maison de Bourbon(영어 House of Bourbon)(1268~1830)가 통치하는 두 개의 시칠리아 Sicilia(영어 Sicily) 남부 왕국,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 Gregorius PP. XVI(재위 1831~1846)가 통치하는 교황령 국가, 가장 중요하게는 사보이아 가문 Casa Savoia(영어 House of Savoy)의 개혁 지향적 군주 카를로 알베르토 Carlo Alberto(재위 1831~1849)가 지배하는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 Kingdom of Piemonte-Sardegna이 있었다.

카를로 알베르토는 이탈리아의 국민국가를 창설하는데 아무런 특별한 헌신을 하지 않았지만,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의 경제, 지리적 위치, 합스부르크 제국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반대와 같은 전통 덕분에 카를로 알베르토의 나라는 민족주의적인 반오스트리아 정치에서 중심 역할을 했다.

 

이 시대의 주도적인 이탈리아 민족주의자이면서 카를로 알베르토가 싫어했던 공화주의 정치를 주장했던 인물은 피에몬테의 제노바 Genova(영어 Genoa) 시 출신의 주세페 마치니 Giuseppe Mazzini(1805~1872)였다.

마치니는 이탈리아 통일을 추구한 비밀결사 조직인 카르보나리 Carbonari 당원으로서 정치적 경력을 시작했다.

카르보나리당은 이탈리아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지배권에 저항하고 입헌 통치의 확립을 서악한 지하 조직이었다.

1831년 마치니는 청년 이탈리아당(Giovine Italia,  영어 Young Italy)을 창건했다.

이 당은 오스트리아에 반대하고 헌법 개혁에 찬성했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통일에도 헌신했다.

권위(카리스마 charisma)가 있으면서도 설득력이 풍부했던 마치니는 당대에 가장 유명한 민족주의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인의 각성과 세계에 공화주의를 전파하기 위한 보통 사람의 사명에 관해 낭만적인(로맨틱한 ramantic) 분위기로 역설했다.

그의 지도력 아래 청년 이탈리아당은 세력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반란과 무장 폭동을 꾀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 조직의 전술은 비효율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1834년 마치니는 사르데냐 왕국에 대한 침공을 개시했지만 그 공격은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마치니는 영국 UK으로 망명길을 떠나야 했다.

 

통일된 이탈리아가 공화정이 되어야 한다는 마치니의 생각은 그의 잠재적 동맹자의 목적과 충돌했다.

많은 자유주의자는 단일한 이탈리아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그의 방침과 뜻을 같이했지만, 인민과 대중 운동을 향한 그의 열정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기존의 정부를 입헌군주정의 형태나 소수의 경우지만 교황 휘하의 정부로 통합하기를 희망했다.

사회적·정치적 변화에 전념하는 민주공화국을 세우자는 마치니의 주장은 실용주의적 자유주의자에게는 이상향적인(유토피아적인 utopian) 것으로, 그리고 중간계급의 유복한 사람들에게는 위험한 것으로 비쳤다.

 

1848년에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소란은 정치 및 사회 변화에 대한 기대를 높여주었고, 이탈리아의 통일이라는 과업이 진행되게 만들었다.

민중 반란은 이탈리아 반도의 보수적인 독립 왕국들로 하여금 시민적 자유와 의회제 정부를 허용하도록 만들었다.

반도의 북부에서 베네치아와 롬바르디아는 오스트리아의 점령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고,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의 카를로 알베르토는 그들에게 군사적 지원을 제공했다.

비록 많은 사람이 그가 자신의 세력을 팽창시키는데 일차적으로 관심이 있다고 비난했지만 카를로 알베르토이탈리아 민족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로마 Roma(영어 Rome)에서는 민중 봉기가 교황의 권능에 도전했고 마치니를 우두머리로 하는 공화국을 수립했다.

이 운동들은 통합된 것도 아니었고 궁극적으로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다.

오스트리아는 1년 내에 북부에서 다시 승리를 거두었다.

찰스-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Charles-Louis Napoléon Bonaparte(1808~1873) 휘하의 프랑스 군대는 교황력 국가에 개입했다.

프랑스 군은 주세페 가리발디 Giuseppe Maria Garibaldi(1807~1882)가 가세한 로마 공화주의자들로부터 격렬한 저항에 부딪쳤지만, 교황의 권세를 회복시켜주었다.

1848년에 일어난 대부분의 급진 운동처럼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이 봉기들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 봉기들은 이탈리아를 로마 시대와 르네상스 기간 동안의 영광스러운 지위로 복귀시키고자 '리소르지멘토 il Risorgimento(영어 The Resurgence)' 즉 '이탈리아의 부활'을 외치는 민족주의자들의 희망을 되살렸다.

 

※출처

1. 주디스 코핀 Judith G. Coffin·로버트 스테이시 Robert C. Stacey 지음, 손세호 옮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하): 근대 유럽에서 지구화에 이르기까지, Western Civilizations 16th ed., 소나무, 2014.

2. 구글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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