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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의 특별한 해외답사

새샘 2026. 4. 16. 11:14

비단길 도시였던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시내 한가운데 발굴 현장(출처-출처자료1)

 

고고학자가 자기 나라의 유적만 조사하지 않는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각국의 유적과 유물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해외의 실제 현장에서 고고학 유적을 발굴하는 것만큼이나 답사踏査 exploration(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조사함)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처럼 외국인의 유적 조사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곳이나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유적을 둘러보며 세계 곳곳의 여러 자료를 파악하기 위한 방법이 답사이다.

이들 자료를 직접 보고 조사하는 답사 과정 또한 고고학 연구의 주요한 일부분이 되고 있다.

 

이런 고고학자의 답사는 다양한 대중매체(매스컴 mass communication, mass media)에서 다루어지고 때로는 미화되기도 한다.

실제로 고고학을 주제로 하는 책이나 기사를 보면 '여행' 또는 '기행'이라는 제목이 많이 등장한다.

'고고학자의 여행'을 떠올려 보라.

뭔가 중절모(페도라 fedora)를 쓰고 한 손에는 보물지도가 그려진 공책(노트 note), 다른 손에는 칼을 쥔 채 밀림을 헤쳐나가는 모습이 떠오를지 모르겠다.

실제 현장조사나 유적탐사는 고고학자로서 가장 즐거운 여행이기도 하지만,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전문가로서 능력을 숨 가쁘게 발휘해야 하는 짠 내 나는 삶의 현장이다.

전 세계 고고학자가 다들 비슷하겠지만, 유독 해외 답사와 조사를 많이 하는 필자에게 여행은 한정된 시간에 유라시아 Eurasia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꼭꼭 숨어 있는 유물과 (때로는 현지 공안과) 숨바꼭질을 하는 과정에 가깝다.

화려한 박물관이나 대도시를 찾는 일은 거의 없고, 쉽게 가기 어려운 지역을 다니면서 성과를 올려야 한다.

여행은 즐거움 못지않게 괴로움이 많은, 마치 전쟁터 같은 현장인 셈이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 Indiana Jones>를 보면 학생들이 밀어닥치자 존스 교수가 문을 걸어 잠그고 도망치듯 떠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업과 지도를 포함하여 학교에서 요구하는 의무를 어기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니 시험기간이나 방학을 이용해서 집중적으로 다니고, 새벽에 공항에 도착해서 강의실로 직행하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인디애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Indiana Jones and the Kingdom of the Crystal Skull>에도 의미심장한 장면이 스치듯 지나간다.

학교 일은 외면하고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밤낮으로 여행을 하는 존스 교수에게 "당신 선생님 맞아요?"라고 묻자 존스는 "가끔씩 part-time"이라고 심드렁하게(마음에 탐탁하지 아니하여서 관심이 거의 없는 것처럼) 말한다.

미국에도 만연한 고고학자의 애환 섞인 불만이 투영된 답변인 듯하다.

 

아무도 없는 초원 한복판에서 때로는 가슴 벅찬 감동을, 때로는 허탈감을 맛보다 보면 몸은 녹초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고된 고고학자의 해외조사를 제대로 평가하고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어렵게 조사한 유물이 박물관에 전시된다고 해도 필자 혼자만의 기쁨으로 그칠 뿐이다.

유물을 발굴하고 조사한 사람의 이름을 써주는 박물관은 거의 없다.

그러니 어지간한 체력과 특정 대상에 강하게 몰두하는 '오타쿠 オタク Otaku'적인 감성이 없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고고학자의 해외조사이다.

 

 

○고고학자의 수첩

 

강인욱 교수가 해외 발굴에서 쓴 야장의 일부(출처-출처자료1)

 

코로나19로 세상이 얼어붙고 나서 처음에는 '여행 스트레스'(엄밀히 말하면 '출장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어 한편으로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고고학자의 해외조사는 언제나 시간과의 전쟁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넉넉지 않은 출장비로 목적을 달성해야 하고, 짧은 시간에 수많은 유적과 유물을 보아야 하는 일정은 긴장의 연속이다.

식도락은 꿈도 못 꾼다.

유물 한 점이라도 더 보기 위해 하루 종일 흙길을 다니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그렇게 힘들게 유적지나 박물관에 도착하더라도 또 무거운 DSLR 카메라를 들고 한 시간 동안 사진을 기본 500~600장은 찍어야 한다.

 

그런데 사진 찍는 일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 있다.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이다.

파김치가 되어 저녁에 숙소에 도착하더라도 기억이 날아가기 전에 사진을 정리하고 메모를 해두어야 한다.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보드카를 들이켜면서, 휘발성 강한 기억의 편린을 꼼꼼히 기록해두는 일은 유라시아 사방을 다니는 고고학자의 기본이다.

 

보물찾기가 주 내용인 영화에서는 고고학자의 노트가 종종 등장한다.

보물이 있는 곳을 탐험했던 고고학자가 남긴, 너덜너덜한 수첩에 그려진 보물지도를 들고 여행을 떠나는 클리셰 cliché(틀에 박힌 장면).

사실 이것은 상당 부분 실제에 가깝다.

고고학자의 여행에서 '야장野帳 fieldwork notebook'이라고 불리는 작은 수첩은 필수품이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수첩에는 발견된 유물, 여정 그리고 수많은 여행의 정보가 빽빽하게 적힌다.

유적의 약도는 기본이요, 갓 발견한 유물의 스케치 sketch(사생寫生)와 탁본拓本 rubbing(비석, 기와, 기물 따위에 새겨진 글씨나 무늬를 종이에 그대로 떠낸 종이)도 들어간다.

일종의 보물창고인 셈이다.

여기에 현장에서 긴요한 축적과 비상연락망, 때로는 동료에 대한 불평도 적혀 있기 마련이다.

지금이야 다양한 디지털 기기가 발달해서 기억 보조 장치로 쓰이지만, 과거에는 오로지 빠르게 갈겨쓴 몇 쪽의 종이를 통해 위대한 발견이 알려지고 책이 탄생했다.

 

그래서 자신의 야장에 대한 고고학자의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필자도 출장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야장부터 만들고 여정이나 정보를 조금씩 붙여나간다.

그리고 여행 중에 약간의 틈만 나도 방금 본 수많은 자료와 광경을 담는다.

마치 USB 메모리 스틱 memory stick처럼 내 기억 저장 장치로 쓰는 셈이다.

이후 여행을 마치면 여러 자료를 다시 보완해 서고 한쪽에 꽂아 둔다.

고고학자의 서가에 일렬로 꽂힌 야장은 수많은 여행을 증명하는 일종의 훈장이기도 하다.

여행은 야장이라는 수첩으로 박제되고 역사로 새롭게 부활한다.

진정한 고고학자의 여행은 자기가 발견하고 느낀 것을 적고 기억할 때에 비로소 완성된다.

기록하지 않은 여행은 의미가 없다.

 

그런 필자의 야장 또한 디지털시대를 피해 가지 못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노트북 notebook computer(책크기 전산기)을 사용해 자료를 파일로 만들고 사진도 DSLR 대신 스마트폰 smartphone(똑똑전화/똑똑손전화)으로 찍으면서 야장의 효용이 사라진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 사진을 찍는 순간 시간과 공간이 자동으로 기록되니 몇 시 도착, 몇 시 출발과 같은 기본 정보는 물론이요 순식간에 구글지도 Google map에서 내 여정을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의 효용이다.

 

그러나 디지털 정보는 당장은 편리하지만 휘발성이 너무 강하다는 단점이 있다.

필자도 사피엔스인지라 손과 머리를 열심히 써서 기록한 야장의 내용의 머릿속에 더 잘 남아 있다.

게다가 디지털카메라는 별도의 내용이 거의 들지 않으니 기관총처럼 찍어대는데, 수많은 사진 가운데서 결국 꼭 필요한 정보를 정리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아무리 명석한 머리라도 하루에 1,000장이 넘는 디지털 사진 정보와 유물을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이제 고고학자의 여행은 시간과의 전쟁에서 디지털과의 전쟁으로 바뀌었다.

 

구글이 필자 대신 야장을 써주는 디지털시대가 편리한 듯하지만, 마냥 좋아하기만 할 일은 아닌지 모른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고고학자의 여행을 대신하는 야장을 써주는 날이 오면, 그다음엔 고고학자가 직접 여행을 다니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수 있으니 말이다.

 

 

○현지 주민은 알고 있다

 

1950년대까지도 고고학은 귀족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되었다.

파이프 pipe를 물고 여유롭게 자연과 유적을 즐기며 상념에 빠지는 그림 같은 장면이 그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영화 <더 디그 The Dig>에서 귀족 부인이 자신의 영지를 한가롭게 발굴하며 인생을 반추하는 모습을 말이다.

하지만 이는 이제 옛 이야기이다.

더 이상 귀족의 고고학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설사 자신의 토지에 거대한 고분이 있다고 해도 그 고분의 발굴권과 유물은 국가에 귀속되거니와 내 집 마당에서 금관 같은 보물이라도 나온다면 그 순간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는 '국가의 땅'이 되어버린다.

그러니 만약 억대의 재산과 부동산을 기반으로 옛 보물을 가지고 싶다면 고고학 발굴 현장이 아니라 소더비 Sotheby 경매장으로 가는 것이 빠르다.

 

실제 고고학자의 답사 여행은 여유나 상념과 거리가 멀다.

고고학자는 한정된 연구비와 시간 속에서 사투를 벌인다.

이런 필자 사정을 이해할 리 없는 현지 담당자가 느긋하기라도 하면 필자만 애가 탈 뿐이다.

얼마 전 중국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신장 위구르 자치구)(신강유오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의 알타이 지구(아러타이 지구)(아륵태 지구阿勒泰地區)에 있는 박물관에 갔을 때였다.

무더운 카라마이 사막 Karamay/Karamai Desert을 열 시간 넘게 관통해 간신히 도착했더니 정작 박물관은 잠겨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철석같이 약속해둔 담당자가 정작 당일에 친척집 잔치 소식을 전해 듣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루를 더 기다리면 모든 조사 일정이 뒤틀리는 상황이었다.

결국 현지 관계자에게 사정사정해서 잔칫집에서 춤을 추고 있던 담당자를 불러올 수 있었다.

그때 우여곡절 끝에 조사한 사진을 보면 지금도 흥겹게 춤을 추는 위구르 사람 Uyghurs(Uighurs/Uygurs/Uigurs)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듯하다.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내몽골 자치구)(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區)의 작은 도시인 닝청(영성宁城/寧城)의 박물관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제대로 된 식당 하나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시골이지만 요나라의 수도인 요중경辽中京/遼中京이 있던 곳이다.

워낙 외지고 작은 도시의 박물관인지라 필자와 답사 일행이 갔을 때에는 전기세를 아낀답시고 전원을 모두 내리고 담당자가 일찍 퇴근한 상황이었다.

결국 흐릿한 휴대전화 불빛에 기대 유물을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너무나 감격스러울 따름이었다.

닝청 박물관은 이전에도 세 번이나 방문했지만 번번이 잠겨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급하게 유물만 조사하며 다니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고고학자의 여행에서 현지인에게 듣는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농부가 갈아놓은 밭고랑 사이에서 깨진 토기 조각을 발견하기도 하고, 파괴된 무덤에서 나온 그릇이 개 밥그릇으로 쓰이는 걸 보는 경우도 제법 있다.

그러니 현지인과 다양하게 어울리면서 여유롭게 술 한 잔 기울이는 것이 수많은 답사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냥 술만 먹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현지 주민과 술이나 차를 마시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어떤 여행에서도 만날 수 없는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

물론 고고학이란 것을 평생 접해보지 못한 시골 주민에게서 고급 정보를 얻으려면 참을성이 필요하다.

그래도 현지인과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찾아낸 유물로 새롭게 역사를 쓰는 경우도 있다.

 

 

라바를 닮은 말갈 전사 석상(출처-출처자료1)

 

중국어로 헤이룽장강(흑룡강黑龙江/黑龍江), 러시아어로 아무르강 Amur River은 두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400년을 두고 대치해온 지역이다.

'나선정벌羅禪征伐(러시아 정벌, Sino-Russian border conflicts)', '알바진 요새의 전투(알바진 공성전 siege of Albazin)', '네르친스크 조약 Treaty of Nerchinsk'처럼 어디서 들어본 듯한 사건이 모두 이곳에서 벌어졌다.

그 이전에는 발해渤海의 기층 집단이기도 했던 말갈인靺鞨人 Malgals이 살던 지역이었다.

대표적인 국경도시인 블라고베셴스크 Blagoveshchensk의 한 대학 박물관에는 이 지역에서 지난 100여 년 동안 발굴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중 기묘하게 생긴 석인상石人像이 하나 있다.

마치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영화(애니메이션 animation) <라바 Larva>의 주인공처럼 생긴, 길쭉한 머리를 한 말갈 전사戰士 석상이다.

 

이 석인상이 발견된 상황이 재미있다.

아무르주 Amur Oblast의 '콘스탄티놉스키 Konstantinovsky'라는 동네를 조사하던 고고학자가 한잔하고 가라는 어떤 농가에서 식사 대접을 받았다.

러시아 사람의 식탁에는 김치 같은 것이 꼭 빠지지 않고 오른다.

독일어로 '자우어크라우트 Sauerkraut'라고 하는 일종의 양배추절임이다.

새콤달콤한 것이 맛도 좋지만 비타민 vitamin이 풍부해 추운 북구 지역에서는 필수 음식이다.

고고학자 손님을 맞이한다고 주인은 겨우내 땅속에 묻어둔 양배추절임통을 꺼냈는데, 그 위를 묵직한 돌이 누르고 있었다.

양배추를 제대로 발효시키기 위해 얹어놓은 돌이었다.

바로 그것이 길쭉하고 작은 눈과 광대뼈는 이 지역 말갈인의 후예인 토착 원주민과 비슷한 생김새였다.

농부가 몇십 년 전 어딘가를 파다가 말갈의 무덤을 건드렸는데, 다른 유물은 그냥 버리고 양배추김치를 담글 때 요긴한 묵직한 돌만 들고 온 것이다.

그렇게 1,200년 전 말갈 전사는 영화 <미이라The Mummy>에 나온 파라오 Pharaoh(고대 이집트 Egypt 군주 칭호) 전사처럼 부활해 김장이라는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농부는 기가 막힌 양배추김치의 맛을 자랑하고 싶었지만, 정작 손님은 김치 맛보다는 석인상에 흥분했다.

고고학자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농부는 영문도 모르고 당황했지만 농부도 곧 상황을 이해하고 그 유물을 고고학자에게 선물했다.

그 뒤 말갈 전사 석상은 러시아 아무르주를 대표하는 유물이 되었다.

 

누군지 알 수 없지만 그 석인상을 만든 장인은 자기가 만든 작품이 시대를 건너서 수많은 사람의 눈과 입맛을 만족시켰다는 것을 알았다면 정말 기뻐했을 것 같다.

말갈 전사 석상은 지금도 박물관의 대표적 유물로 세 번째 임무를 수행 중이다.

 

오늘날에는 고고학의 답사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직접 다니면서 유물을 실견實見하고(실제로 보고) 시료를 조사하는 전통적인 답사에 더하여 무인기無人機(드론 drone), 구글지도 따위로 지역 정보는 더욱 정교해지고 고고학자가 준비해야 할 장비도 바뀌고 현대화되고 있다.

초기 인류가 170만 년 전 아프리카 Africa를 떠나면서 인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그 이래 인간에게 수많은 여행이 있었다.

그중 하나인 고고학자의 여행은 특별하다.

남들이 다 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듣도 보도 못한 산과 숲속에서 모기에 뜯기며 조사를 하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 트북(책크기 전산기)을 두드리는 팔자이다.

그렇게 고고학자는 일생의 대부분을 길 위에서 보낸다.

황금 같은 보물은 거의 볼 일 없고 흙구덩이 속에서 캐낸 토기 조각을 만지작거리면서 평생을 보낸다.

하지만 그 혼자만의 즐거움이 없었다면 박물관의 수많은 유물도 없었을 것이다.

고고학자의 여행은 고난이지만 그 결과는 우리 모두의 유산으로 남는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김영사, 2024)
2. 구글 관련 자료
 
2026. 4. 16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