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81 - 잎갈나무 본문

바늘잎나무이면서 잎갈이를 하므로 '이깔나무'라고도 부른다.
우리 주변의 잎갈나무는 거의 대부분 일본에서 가져다 심은 일본잎갈나무로서 낙엽송落葉松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강원도 이북의 높은 산 비탈면에서 35미터 높이에 1미터 지름까지 자라는 소나무과 잎갈나무속의 갈잎 바늘잎 큰키나무이며, 극동 시아와 몽골, 그리고 중국 동북부에도 분포한다.
학명은 라릭스 지멜리니 Larix gmelinii, 영어는 Dahurian larch(다후리아 낙엽송),한자는 낙엽송落葉松이다.
필자는 해방되기 전 함경도 개마고원에서 잎갈나무 숲을 보았다.
그러한 숲을 본 사람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숲이 아니라 잎갈나무의 바다였다.
막막히 처져서 하늘가에 이어지는 잎갈나무의 바다, 수해樹海.
이른 봄의 그 푸르름은 말문을 턱 막히게 한다.
신록新綠(늦봄이나 초여름에 새로 나온 잎의 푸른빛)이 좋다 하지만 그것은 잎갈나무의 신록을 말하는 것이지, 다른 나무의 신록이 어찌 잎갈나무의 그것에 비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꿈의 물결이고 가장 깨끗한 태양광선의 파장을 가려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색깔은 햇빛 안에 숨어 있다는데, 햇빛의 조화가 그렇게도 황홀할 수가 있을까?
잎갈나무는 한 그루가 외따로 서 있어서는 잘 안 된다.
모여 있어야 하고, 그것도 수가 많을수록 좋다.
한 나무로는 영웅도 아니요, 천재도 아니요, 절세의 미인도 아니다.
그들은 모일 때 그 위대함이 여지없이 발휘된다.
단결의 힘을 과시하고 어느 나무 집단에도 뒤지지 않는 뭉쳐진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잎갈나무 숲에는 철학이 있고, 깊은 사색이 있고, 야생적이지만 고요가 있다.
찬바람 부는 높은 산에 즐겨 자리 잡은 그들의 뜻이 여기에 있다.
그들은 뛰어난 족속이기 때문에 황량한 환경의 고독을 즐긴다.
고독은 강한 것들의 귀중한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잎갈나무를 잘 볼 수 없다.
잎갈나무는 일본에도 있으며, 그것을 낙엽송(일본잎갈나무)이라 한다.
낙엽송과 잎갈나무는 구별이 거의 안 되며, 우리는 이 낙엽송을 주로 심고 있다.
잎갈나무는 주로 북쪽에서 자라는 나무이다.
강원도 북부 지방에서 볼 수 있지만 흔하지 않다.
잎갈나무는 말하자면 우리 것이고 낙엽송은 일본 것이지만, 아무튼 서로 많이 닮아 있다.
잎갈나무는 추운 것을 좋아하고, 낙엽송은 더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낙엽송을 많이 심고 있다.
○일본인의 시정詩情

일본 사람들은 잎갈나무 숲에서 시정을 많이 느끼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문인들이 잎갈나무를 대상으로 한 작품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화, 난초, 대나무, 소나무, 국화, 배롱나무, 오동나무처럼 집 안에 심는 것, 그것도 한 그루로도 능히 그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는 그러한 나무에 대한 감상이 많다.
일본 사람들의 느낌을 추켜세우는 것은 아니지만, 잎갈나무 숲은 시詩이자 예술인 것에 틀림없다.
그것도 기가 막히는 걸작에 해당한다.
필자가 좋아하는 일본 시 가운데 시마자키 도손(도기등촌島崎藤村)의 <지쿠마강 여정가(천곡천여정가千曲川旅情の歌)>와 기타하라 하쿠슈(북원백추北原白秋)의 <잎갈나무의 노래>가 있다.
그중 <잎갈나무의 노래>를 우리말로 옮겨 그 시감詩感(시적인 감흥)을 감상해본다.
"잎갈나무 숲을 지나노라면
나는 보았네 잎갈나무를
쓸쓸히 지내는 잎갈을 보았네
나는 쓸쓸한 나그네였네
지나온 잎갈 앞에는
새로운 숲이 또 있었네
그 잎갈의 숲속에는
좁고 긴 오솔길이 있었네"
신록의 잎갈나무 숲은 말할 것도 없지만, 노란 단풍이 든 가을의 숲은 더욱 아름답다.
해가 산을 넘으려 하는 저녁이면 이 숲의 하늘지붕선(스카이라인 skyline)이며 그 색채는 인간의 마음을 미라로 만들 것만 같다.
○백두산 폭발과 잎갈나무

백두산이 마지막 숨을 쉬고 하늘을 뚫는 불기둥을 솟아 올릴 때 거센 바람이 몽고 지방에서 불어와 동해 바다로 빠져나갔다.
이는 믿을 수 있는 이야기로, 화산이 폭발할 때 나온 재가 동남쪽으로 퍼져서 몇백 리 면적 위에 쌓였지만 다른 방향에서는 그것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비가 내릴 때 그곳의 원시림은 불바다가 되었다.
원시림의 주인공인 전나무, 가문비나무, 잣나무가 모두 타버린 것이다.
타고 난 자리에 들어와 그곳을 점령한 것이 바로 잎갈나무이다.
자작나무도 이곳에 들어왔다.
이러한 나무를 우리는 선구수종先驅樹種 pioneer tree species이라고 부른다.
불로 인해 강력한 나무들이 타버리고 그 자리에 잎갈나무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 뒤 세월이 지나면서 전나무와 잣나무는 서서히 잎갈나무를 쫓아내고 다시 그 자리를 되찾는다.
일종의 생활 터전의 쟁탈이라고 할 수 있다.
잎갈나무가 야성적이고 강인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주장은 억지스러움이 있다.
잎갈나무는 결국 황량하고 춥고 건조한 극단적인 환경으로 밀려난 것이다.
○양지나무(양수陽樹)의 후손 만들기

낙엽송과 잎갈나무는 사람이 심어 주고 도와주지 않으면 스스로는 그들의 사회를 만들기 어렵다.
나무란 것은 커서 성숙하게 되면 열매를 맺고 씨가 떨어지고 싹이 터서 후손들을 키우고, 늙게 되면 세상에서 사라져 간다.
다른 나무들은 씨를 내려서 번성하는 자손을 볼 수 있는데, 낙엽송은 그늘에서 살 수 없는 양지나무이기 때문에 일본잎갈나무 숲 아래에서는 어린 나무들이 생겨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그 모나무(묘목)를 길러서 산에 심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무가 살기 싫어서 포기한 버림받은 그러한 땅을 이 나무들은 잘 찾아간다.
이것은 슬픈 사연이 아닐 수 없지만, 타고난 운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전나무와 잣나무는 쓸모가 있어서 사람이 큰 나무를 솎아내는데, 이렇게 하면 잎갈나무는 그곳을 넘겨다보고 들어간다.
사람이 조그만 도와주면 잎갈나무는 힘을 펴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백두산 지대에서 잘 관찰할 수 있다.
학자들은 북쪽 지방의 잎갈나무가 자연 상태로 한반도의 어디까지 남하南下할 수 있는지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곳이 강원도 오대산에 있는 월정사라고 한다.
월정사에 잎갈나무가 있으며, 그것이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 잡은 자연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것은 사람이 심은 것이라고도 한다.
이에 대해 알 도리는 없고, 다만 잎갈나무는 북방의 나무임에는 틀림없다.
○러시아의 낙엽송
1979년 여름, 필자는 러시아 Russia 동부 지방의 원시림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는 다후리카 낙엽송 Dahurica larch(학명은 라릭스 다후리카 Larix dahurica)이 있었다.
이는 시베리아 Siberia 지방 아무르강 Amur River(흑룡강黑龍江) 유역 원시림의 주인공으로, 그 나라의 주요 삼림 자원이었다.
모나무를 키워서 심고 있었는데, 바다처럼 넘실거리고 퍼지는 다후리카 낙엽송의 원시림은 정말 장관이었다.
그곳에서는 곰과 시베리아 호랑이의 포효도 있으리라.
낙엽송의 목재는 질기고 단단해서 쓸모가 많다.
모스크바 올림픽이 열렸던 자전거 속도 경기장은 다후리카 낙엽송으로 만든 판자로 깔았다고 한다.
이처럼 하면 더 속도를 낼 수 있고, 따라서 좋은 기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낙엽송이 없는 시베리아는 생각할 수 없으며, 이와 같이 낙엽송은 소중했다.
한편 낙엽송의 목재는 너무 강하고 결이 세기 때문에 잘 갈라지고, 대패질이 어려우며, 못을 잘 받지 않아 좋은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80년, 100년이 지난 낙엽송 목재는 그렇지 않다.
즉 오래 기르면 귀중한 목재로 이용할 수 있다.
줄기가 굽는 일이 없고 시원시원하게 자라나는 낙엽송이 좋아서 모두 이 나무를 심는다.
낙엽송은 빽빽하게 들어선 숲을 만들지 못한다.
그곳 숲 땅은 햇볕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낙엽송 숲은 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이 좋다.
그러한 때 그곳 오솔길을 지나볼 만하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3(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6. 4. 15 새샘
'글과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6부 혁명의 시대 - 21장 국가란 무엇인가? 영토, 국가, 그리고 시민(1848~1871) 3: 국민국가의 건설 4-독일의 통일 (0) | 2026.04.16 |
|---|---|
| 고고학자의 특별한 해외답사 (0) | 2026.04.16 |
| 좌뇌형 인간, 우뇌형 인간 (1) | 2026.04.15 |
| 단원 김홍도 '새참' (2) | 2026.04.13 |
|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6부 혁명의 시대 - 21장 국가란 무엇인가? 영토, 국가, 그리고 시민(1848~1871) 3: 국민국가의 건설 3-이탈리아의 통일 (0) | 2026.04.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