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6부 혁명의 시대 - 21장 국가란 무엇인가? 영토, 국가, 그리고 시민(1848~1871) 3: 국민국가의 건설 5-오스트리아 제국 본문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6부 혁명의 시대 - 21장 국가란 무엇인가? 영토, 국가, 그리고 시민(1848~1871) 3: 국민국가의 건설 5-오스트리아 제국
새샘 2026. 4. 22. 18:03
독일 Germany은 1860년대부터 한층 더 강력한 통일 국가로 부상했다.
하지만 합스부르크 제국 Habburg Empire(합스부르크 군주국 Habburg Monarchy)은 상이한 자원들로 이루어진 매우 상이한 상황에 직면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Austria-Hungary라고도 부르는 약화되고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룬 다민족 이원二元 군주정君主政 dualistic monarchy으로 나타났다.
소수민족의 국가주의(내셔널리즘 nationalism)는 1848년 합스부르크 군주정에서 막강한 세력이었다.
하지만 군대를 앞세운 억압과 적들을 분리시키는 전술을 결합한 합스부르크 제국은 그보다 더 막강했다.
이 제국은 농노제를 폐지했지만 그 밖에는 반대자들에게 거의 양보를 하지 않았다.
1848년 봄 간신히 독립을 획득한 헝가리인 Hungarians은 본질적으로 재정복되었다.
상원으로 발전한 제국 회의는 명목상으로만 제국 내 여러 나라의 대표들을 수용했다.
그 밖의 발전들도 합스부르크 제국을 강화시키고자 의도한 것이었다.
행정 개혁은 새로우면서도 한층 더 통일된 법체계를 창출했고, 세제를 합리화했으며, 독일어에 편향된 단일 언어 정책을 부과했다.
하지만 소수민족 관계를 관리하는 문제는 한층 더 어려워졌다.
1850년대와 1860년대를 통해 자신들이 종종 그렇게 불렀던 종속된 소수민족들은 지방의회(디에트 Diet)의 무력함, 군대의 진압, 문화적 특권 박탈, 그리고 자신들의 의회 선출권을 축소시킨 선거구 따위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했다.
예를 들어 보헤미아의 체코인 Czechs of Bohemia은 그 지방의 독일인 소수민족을 편애하는 정책 때문에 점차 소외당했고 점점 슬라브인 Slavs으로서의 정체성을 주장했다.
이 운동은 기꺼이 광범위한 범슬라브주의 Pan-Slavism의 후원자가 되기에 충분한 러시아 Russia로부터 환영받았다.
가장 막강한 종속된 민족인 헝가리인 또는 마자르인 Magyars은 1848년에 얼핏 맛본 자치권을 다시 주장하고자 했다.
이런 맥락에서 1859년에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 Kingdom of Piemonte-Sardegna과 1866년에 프로이센 Preußen 또는 Preussen(영어 Prussia)의 손에 오스트리아가 치명적인 패배를 했다는 사실은 특히 중요했다.
특히 1866년 전쟁은 오스트리아 제국 Empire of Austria(1804~1867)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 Franz Joseph I(재위 1848~1867)로 하여금 제국의 구조를 재협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다.
헝거리인이 일으킨 혁명을 모면하기 위해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공통의 세금 제도와 공통의 군대를 보유하고 대외 및 군사 정책을 함께하기로 했다.
프란츠 요제프는 오트리아의 황제이자 헝가리 왕이었다.
그러나 국내 및 헌법적 문제들은 분리되었다.
타협 또는 협정은 헝가리인에게 그들의 헌법, 그들의 입법부, 부다 Buda 시와 페스트 Pest 시를 합친 그들의 수도 부다페스트 Budapest를 세우는 것을 허용했다.
다른 민족들에게 이것은 무엇을 뜻했을까?
이원 군주정의 공식 정책은 그들이 서로 차별받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하지만 공식 정책은 단지 느슨하게 집행되었다.
좀 더 중요한 것은 헝가리인의 기분을 고조시켜주고 그들에게만 정치적 독립국의 지위라는 혜택을 베푸는 것은 다른 집단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었다.
이원 군주정 중 오스트리아 쪽에서 폴란드인 Poles, 체코인 Czechs, 슬로베니아인 Slovenians 같은 소수민족들은 자신이 이류에 해당하는 지위를 갖는 것에 분개했다.
헝가리 쪽에서 이원군주정은 국가, 공무원직, 학교 따위를 한층 더 철저하게 헝가리인의 것으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마자르화(헝가리화) Magyarization 계획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세르비아인 Serbs 및 크로아티아인 Croatians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합스부르크 제국 영토 안에서 민족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스트리아 황제는 국가주의가 자신의 왕국을 파괴한 지방 분권 세력이라고 정당하게 생각하면서 그것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프랑스 France, 영국 UK, 이탈리아 Italia(영어 Italy), 독일 정부들과는 달리 합스부르크 제국 정부는 공통적인 문화적 정체성에 입각한 국민국가를 건설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에 합스부르크 정부는 서로 다른 소수민족들이 서로를 업신여기게 하고 필요할 때에만 자치권을 용인하면서 조각난 민족들이 계속해서 딴 것을 파생시키기에 충분한 나라와 행정 구조를 건설하려고 애썼다.
19세기가 전개되면서 종속된 민족들은 다른 강대국들인 세르비아 Serbia, 러시아, 오스만 제국 Ottoman Empire 따위에 호소하게 되었고, 이러한 갈등 조정은 한층 더 어려워졌다.
※출처
1. 주디스 코핀 Judith G. Coffin·로버트 스테이시 Robert C. Stacey 지음, 손세호 옮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하): 근대 유럽에서 지구화에 이르기까지, Western Civilizations 16th ed., 소나무, 2014.
2. 구글 관련 자료
2026. 4. 22 새샘
'글과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 총정리 (0) | 2026.04.25 |
|---|---|
| 혜원 신윤복 '단오풍정' (0) | 2026.04.23 |
| 상상을 뛰어넘는 발굴의 세계 (1) | 2026.04.20 |
| 뇌과학의 역사 총정리 (0) | 2026.04.18 |
| 학림정 이경윤 '고사탁족도' (0) | 2026.04.1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