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 총정리 본문

질병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을지 내부에서 찾을지에 따라 두 가지 관점이 있다.
외부의 어떤 실체가 질병의 원인이라 생각하는 관점을 '본체론적本體論的 질병관', 내부의 변화가 질병의 원인이라 생각하는 관점은 '생리학적生理學的 질병관'이라 한다.
악령이나 자연의 저주라는 실체가 질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원시시대의 비과학적인 본체론적 질병관 이후 고대 그리스 Ancient Greece 자연철학자들에 의해 생리학적 질병관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생리학적 질병관에 따라 인체 내부 무언가의 변화(많고 적음)가 질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한다면 변화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연철학자들은 그것을 세상을 구성하는 4가지 요소, 즉 4 원소애서 찾았다.
탈레스 Thales(서기전 624~548/545)는 물, 아낙시메네스 Anaximenes(서기전 545 무렵 활동)는 공기, 헤라클레이토스 Heraclitus(서기전 535~475)는 불, 크세노파네스 Xenophanes(서기전 570 무렵~478 무렵)는 흙을 세상을 구성하는 근본 원소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엠페도클레스 Empedocles(서기전 490 무렵~430 무렵)에 의해 4원소로 규정되었다.
그리고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Hippocrates(서기전 466~377)가 등장했다.
그는 4원소에 인체의 액체 즉 체액體液 body fluid을 하나하나 연결시켰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인체의 질병을 설명하는 4체액 이론이다.
4체액은 점액粘液 mucilage, 혈액血液 blood, 황담즙黃膽汁 yellow bile, 흑담즙黑膽汁 black bile이다.
이제 고대 의학자들은 4가지 체액의 많고 적음으로 질병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자연철학자였던 파르메니데스 Parmenides(서기전 510 무렵~450 무렵)는 최초로 세상을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한 이원론자二元論者 dualist였다.
그는 세상을 생성, 소멸,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영역과, 어떤 변화도 불가능한 이성적 진리의 영역으로 나누었다.
플라톤 Platon(영어 Plato)(서기전 427·428 또는 423·424~347·348)은 이것을 현실現實 reality 세계와 이데아 imagination(이상理想) 세계로 정리했다.
과학적 자세를 중요시한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영어 Aristotle)(서기전 384~322)는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현실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오히려 절대자의 뜻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절대자가 자신의 의도대로 생명체를 만든 뒤 영적인 공기를 주입한 것이 생명이며, 생명체를 자세히 탐구함으로써 절대자가 의도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영적인 공기가 사라진 생명체는 연구를 위해 거리낌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Alexandria in Egypt였다.
알렉산드리아는 각종 의학책을 모아 ≪히포크라테스 전집≫을 발간한, 의학을 우대했던 도시였다.
이곳에서 활약하던 헤로필로스 Herophilos(서기전 335~280)는 최초로 인간 사체를 해부하기도 했는데, 특히 눈여겨봐야 할 의학자는 에라시스트라투스Erasistratus(서기전 304 무렵~250 무렵)이다.
히포크라테스가 몸 전체를 흐르는 체액의 이상으로 질병을 연구한 것과 대조적으로 에라시스트라투스는 인체의 국소적인 구역을 이루는 고체 장기들의 이상으로 질병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매우 선진적인 생각이었지만 아쉽게도 고대 의학을 지배했던 로마 Roma(영어 Rome)의 갈레노스 Galenus(서기 129~199?)가 히포크라테스를 지지함으로써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의 아버지가 되었고, 에라시스트라투스는 역사에서 상당 기간 묻히고 말았다.
갈레노스가 몇백 년 동안 의학을 지배한 이유는 의학 전반에 대한 시스템 system(체계)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가 완성한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이론들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여기에 더해 갈레노스의 의학 이론과 기독교 교리의 유사성 때문에 갈레노스에 대한 도전은 종교에 대한 도전이 되어 갔다.
기독교의 힘이 더욱 강해지는 중세가 되면서 이런 분위기는 심화되었고 갈레노스 의학만이 살아남았다.
종교가 지배하는 중세에 과학적 의학은 두 군데서 살아남았다.
한 군데는 이슬람 Islam 지역이었다.
교리 문제로 유럽 Europe을 도망치듯 탈출한 일부 의학자들이 이슬람 지역에서 과학적 의학을 꽃피웠다.
고대 자연철학자들과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갈레노스의 이론들이 이슬람 학자들의 관점에서 다시 검증받았다.
이슬람 지역에서 보다 향상된 고대 의학은 중세에 살아남은 또 다른 고대 의학의 본거지로 전달되었으며, 그곳은 바로 수도원이었다.
수도원 의학과 중세 길드 guild(동업조합同業組合)의 에너지가 만나 만들어진 것이 중세 의학교(의과대학)이다.
이제 원시시대 주술사와 고대 자연철학자, 중세 수도사가 의술을 담당했던 시대를 지나 일반인들이 시험을 보고 의사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대부분 몇 년 동안의 시간과 학비를 충당할 수 있는 귀족층 자제들이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등장한 의사들은 오로지 내과의사였다.
그들은 점성술과 의학을 종교적으로 해석한 스콜라 의학 Scholastic medicine을 통해 자신들의 고상한 의술을 뽐냈다.
교황이 성직자는 피를 보지 말라는 엄명을 내린 데다 고상한 내과의사들 역시 피 보기를 꺼렸기 때문에 이것을 담당하는 새로운 직업군이 필요해졌다.
그들이 이발사와 외과의였다.
이들은 작은 상처 치료나 수술을 도맡아 하면서 내과의사의 지시를 받아 사체를 해부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공부한 내과의사는 칼을 잡지 않았고, 칼을 잡은 외과의는 공부를 하지 못했기에 갈레노스 해부학의 오류는 수정되지 않은 채 몇백 년을 이어갔다.
그러던 차에 엄청난 팬데믹 pandemic(범유행병)이 중세 유럽에 휘몰아쳤다.
다름 아닌 페스트 pest였다.
페스트에서 겨우 살아남은 인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갔다.
바로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는 르네상스 Renaissance(문예부흥) 시대가 온 것이다.
이 시대의 벨기에 Belgium 의학자 베살리우스 Vesalius(1514~1564)는 드디어 직접 칼을 잡고 해부를 했다.
그 순간 갈레노스 해부학의 오류들이 속속 드러났다.
의학자들의 머릿속을 뒤덮고 있던 갈레노스의 짙은 먹구름이 서서히 걷혔다.
갈레노스의 이론이 틀릴 수도 있구나!
본격적인 근대 과학의 시대가 왔다.
영국 UK의 베이컨 Bacon(1561~1626)과 프랑스 France의 데카르트 Descartes(1596~1650)가 지원한 사상적 배경 속에 의학자들의 본격적인 인체 탐구가 시작되었다.
예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생명의 기운 유무에 따라 인체를 구분했듯이, 데카르트도 마음과 육체의 이분법을 통해 과학자들이 거리낌 없이 인체를 탐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만유인력의 발견을 대표로 하는 근대 과학의 흐름 속에서 과학 정신으로 무장한 의학자들은 인체를 물리적인 법칙이 통용되는 기계라 생각하고 접근했다.
그들이 남긴 업적의 최고봉이 바로 '혈액순환 이론'이다.
영국의 하비 Harvey(1578~1657)는 인체를 기계로 보는 관점을 기반으로 수학적 계산, 간단한 인체 실험, 해부학적 관찰을 통해 '신神 God'이라는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인체의 혈액순환 현상을 증명했다.
물론 이탈리아 Italia(영어 Italy)의 말피기 Malpighi(1628~1694)라는 현미경 학자가 모세혈관 capillary을 발견했기에 가능했지만 말이다.
혈액순환 이론은 인류에 두 가지 선물을 남겼다.
하나는 혈액 수혈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맥을 통한 투약이 가능함을 알려준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대단한 과학적 발견은 또 다른 미신적인 치료를 강화하기도 했다.
체액설에 기반해 인체의 혈액을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뽑아냈던 '사혈瀉血(정맥절개) bloodletting'이 그것이다.
인체를 기계로 보는 의학자들과 달리 인체를 여러 성분이 섞여 있는 화학 공장이라 생각하는 학자도 여전히 있었다.
이집트 Egypt의 연금술鍊金術 alchemy로부터 쭉 이어져왔던 이런 생각의 대표자는 르네상스 시대의 스위스 Swiss 의사이자 연금술사인 파라셀수스 Paracelsus(1493~1541)였다.
그는 연금술과 화학의 중간지대에 서서 화학 지식을 이용해 인간을 치료하는 약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냈다.
이어진 근대 화학자들의 활약은 고대 4원소설을 극복했다.
4원소설이 극복된다는 것은 4체액설이 극복된다는 점에서 의학의 역사에 큰 의미를 남겼다.
어떤 물질이 둘로 나누어진다면 그것은 기본 원소가 될 수 없다는 영국의 로버트 보일 Robert Boyle(1627~1691)의 주장을 바탕으로 하여, 독일 Germany 화학자 베허 Jochim Becher(1635~1682)가 흙을, 스코틀랜드 화학자 블랙 Joseph Black(1728~1799)이 공기를, 프랑스 France 화학자 라부아지에 Antoine-Laurent de Lavoisier(1743~1794)가 물을 두 개 이상의 원소로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4체액설이 틀렸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질병의 발생에 관한 새로운 이론이 필요해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의사인 에라시스트라토스 Erasistratus(서기전 304 무렵~250 무렵)는 몸의 부분을 이루는 국소 장기의 이상 때문에 질병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이어받은 이가 이탈리아 해부학자이자 병리학자인 모르가니 Morgagni(1682~1771)다.
모르가니는 질병이 우리 몸 어딘가의 '장기臟器'(내장의 여러 기관)에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질병의 실체가 장기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은 질병의 실체를 존재하는 범위를 점점 좁혀나가는 시도로 이어졌다.
그 결과 프랑스 해부학자·생리학자 비샤 Xavier Bichat(1771~1802)는 질병의 실체가 '조직組織 tissue'에 있음을, 독일 의사 피르호 Rudolf Virchow 는(1821~1902)는 '세포'에 있음을 밝혀냈다.
그와 동시에 질병이 존재하는 곳을 찾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오스트리아 Austria 의사 아우엔브루거 Leopold Auenbrugger(1722~1809)는 몸을 두드려 질병의 위치를 찾으려 했고, 라에네크는 청진기를 사용해 질병의 위치를 찾았다.
그 정점에 엑스선 X-ray을 발견한 독일 물리학자 뢴트겐 Wilhelm Conrad Röntgen(1845~1923)이 있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질병의 실체는 미생물微生物 microorganisms이다.
물론 영국의 사회 개혁가 채드윅 Edwin Chadwick(1800~1890)처럼 공중위생을 해결하거나 잉글랜드 England 의사 스노 John Snow(1813~1858)처럼 오염된 물을 못 마시게 해도 미생물 감염을 예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현대 의학은 프랑스 생화학자 파스퇴르 Louis Pasteur(1822~1895)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주변의 미생물이 단지 방관자가 아니라 인체에 영향을 주는 존재이며, 저절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미생물이 증식增殖 multiplication 함으로써 생기는 것임을 증명했다.
이것은 주변의 미생물을 제거함으로써 인간을 질병에서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이로써 임산부의 죽음을 초래한 산욕열産褥熱(산후열産後熱) puerperal fever이 의사의 손에 의해 전달된 감염체 때문이었음을 외롭게 주장한 헝가리 Hungary 의사 제멜바이스 Ignaz Philipp Semmelweis(1818~1865)가 재평가받았고, 영국 외과의사 리스터 Joseph Lister(1827~1912)는 수술 부위에 미생물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소독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
파스퇴르의 업적 중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백신 vaccine의 원리를 깨달은 것이다.
영국 의사 제너 Edward Jenner(1749~1823)가 우연한 경험적 관찰을 통해 알아낸 백신의 원리를 이론적으로 규명한 파스퇴르에 의해 다양한 백신이 개발될 수 있었다.
파스퇴르와 같은 시기에 독일 의사이자 미생물학자인 코흐 Robert Koch(1843~1910)는 세균과 질병의 일대일 관계를 밝혔다.
결핵과 결핵균, 콜레라엔 콜레라균.
이렇게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목표로 삼아야 하는 미생물 표적이 정해지자 다양한 세균을 공략하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독일 생리학자 베링 Emil Adolf von Behring(1854~1917)의 디프테리아 diphtheria 치료제 항독소抗毒素 antitoxin, 독일 미생물학자 에를리히 Paul Ehrlich(1854~1915)의 매독梅毒 syphilis 치료제 살바르산 Salvarsan, 독일 의사 도마크 Johannes Paul Domagk(1895~1964)의 항균제抗菌劑 antibacterial인 설파제劑(술폰아미드) sulfonamide, 스코틀랜드 Scotland 의사 플레밍 Alexander Fleming(1881~1955)의 항생제 antibiotic 페니실린 penicillin, 미국 USA 세균학자 왁스먼 Selman A. Waksman (1888~1973)의 결핵 치료제 스트렙토마이신 streptomycin이 그 결과물이었다.
질병의 실체에 대한 연구는 더 깊어졌다.
담뱃잎에 반점이 생기는 질병을 연구하다 발견된 바이러스 virus는 이후 스페인 독감 Spainsh flu의 주역이었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influenza virus, 코로나-19 바이러스 COVID-19(Corona virus disease 2019), 에이즈 바이러스 AIDS virus와 같은 다양한 종류로 이어졌으며, 크기가 엄청나게 큰 미미바이러스 mimivirus도 등장했다.
거기에 과학적 상식을 뒤엎는 프리온 prion의 발견은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 pathogens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질병의 실체를 찾는 과정에서 미생물이 아닌 정상적인 물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질병이 생기는 경우도 새롭게 조명되었다.
생리학적 질병관이 재조명되도록 한 것은 호르몬 hormones과 비타민 vitamins이다.
프랑스 생리학자 베르나르 Claude Bernard(1813~1878)가 인체 스스로 분비하는 물질을 발견하여 '내분비 현상 endocrine phenomena'으로 이름 지은 뒤 영국 생리학자 베일리스 Leonard Ernest Bayliss(1900~1964)와 스탈링 Ernest Henry Starling(1866~1927)은 그 물질에 '호르몬 hormon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캐나다 Canada 의사 밴팅 Frederick Grant Banting(1891~1941)은 인슐린 insulin 호르몬을, 헨치는 스테로이드 steroid 호르몬을 발견해 당뇨병 diabetes과 류마티즘 rheumatism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빛을 선사했다.
한편 성 호르몬 sex hormones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임신을 피하게 하는 '피임제 contraceptive pill'도 개발되었고, 간절히 원하는 임신을 도와주는 '인공 수정 artificial inseminzation'도 가능하게 되었다.
의학자들이 3대 주영양소 macronutrients(탄수화물 carbohydrates, 단백질 proteins, 지방 fats)조차 제대로 모르던 시절, 오랜 선상 생활을 하는 선원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것은 비타민 vitamine C 부족이었다.
스코틀랜드 의사 린드 James Lind(1716~1794)는 여러 음식을 먹여보는 대조군 실험을 통해 뭔가 모르는 영양소가 있음을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영국 생화학자 홉킨스 Frederick Gowland Hopkins(1861~1947)는 우유를 먹지 못한 실험동물들의 사소한 성장 변화를 놓치지 않았고 비타민의 존재를 깨닫기 시작했다.
네델란드 Netherlands 의사 에이크만 Christiaan Eijkman(1858~1930)이 비틀거리는 닭을 보고 비타민 B1의 존재를 알아낸 뒤부터 다양한 비타민이 발견되었으며, 헝가리 Hungary 출신 미국 생리학자 센트죄르지 Szent-Györgyi Albert(1893~1986)가 비타민 C를 직접 찾아냄으로써 린드에서 시작된 비타민 여행을 정점을 찍게 되었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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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4. 25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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