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공인된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본문

글과 그림

공인된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새샘 2026. 5. 7. 12:13

유네스코 세계유산 상징(출처-https://librewiki.net/wiki/%EC%9C%A0%EB%84%A4%EC%8A%A4%EC%BD%94_%EC%84%B8%EA%B3%84%EC%9C%A0%EC%82%B0)

 

고고학 유적이 세계유산이 된다는 뜻은 무척 각별하다.

유네스코 UNESCO라는 세계 기관에서 지정하는 만큼 그 절차도 복잡하고 경쟁도 치열하다.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는 말처럼 유적이 많은 우리나라지만 그중에서도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은 특별하다.

1978년에 등재가 시작된 세계유산제도의 역사는 45년밖에 되지 않지만 문화재청과 각 지자체에 세계유산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고, 또 해마다 전 국민적인 쟁점(이슈 issue)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세계유산은 어떻게 태동했고 우리는 왜 세계유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세계유산의 등장과 그 과정을 통해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유적을 둘러싼 뜻을 살펴보자.

 

 

○세계유산의 탄생과 발전

 

이집트 아부심벨 사원의 이전 광경(출처-출처자료1)

 

현재 유네스코 등재 세계유산은 크게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그리고 둘이 합쳐진 복합유산 따위로 구분되며, 문화유산은 흔히 세계문화유산이라고 불린다.

세계유산제도는 2025년 8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170개국 1,248건이 지정되어 명실상부한 유네스코의 대표적인 사업이 되었다.

 

본래 세계유산은 자기 나라의 유산을 경쟁하며 등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유산을 국적 불문하고 힘을 합쳐서 지키자는 뜻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의 Egypt의 나일강 Nile River 유역이었다.

나일강은 이집트 고대 문명의 중심지인 동시에 현대 이집트인 Egyptians의 유일한 젖줄이다.

현대에도 이집트 전체 인구의 97퍼센트가 이 나일강 주변에 몰려 살고 있어서 고질적인 물 부족에 시달려왔다.

1950년대에 이집트 정부는 아스안댐 Asan Dam의 건설 계획을 수립했고, 그에 따라 아부심벨 사원 Abu Simbel Temple과 같은 세계적인 유적이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한국을 비롯한 50여 개국이 국제적으로 모금을 하고 서방의 여러 나라에서 기술을 보조해서 아부심벨 사원을 이전하는 과제(프로젝트 project)를 추진했다.

 

이 사업의 성공 직후 세계 곳곳에서 개발로 소멸되어 가는 문화유산에 대한 국제적인 공동대처가 발의되었다.

이집트는 나폴레옹 Napoléon Bonaparte(1769~1821)의 침략 이래 근대 서구 열강으로부터 문화재의 약탈과 파괴를 가장 심각하게 당한 곳이었다.

바로 그 이집트에서 세계 여러 나라가 힘을 모아서 문화재를 보호한 것은 역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었다.

 

세계유산제도가 시행되면서 가장 많은 유적이 지정된 곳은 서유럽 Western Europe이었다.

지금도 세계유산의 절반이 좁은 서유럽에 몰려있고 심지어 유럽에서는 경제활동에 제약이 많으니 세계유산에서 해제해달라는 청원이 등장할 정도이다.

이런 등재 유적의 편중은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기 위해 많은 절차와 행정적인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개발이 뒤처진 나라의 경우 아무리 유적이 세계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 과정을 처리할 인력과 재정이 충분치 않으면 등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유럽 중심의 세계유산제도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로 경제적인 번영을 이룬 동아시아 각국이 이 경쟁에 뛰어들면서이다.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중국으로 2025년 현재 60개로 이탈리아 61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중국은 문화유산 자체가 매우 풍부하며 등재 및 심사 과정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기 때문에 선정 가능성 또한 매우 높은 편이다.

2025년 8월 현재 17개가 선정된 대한민국은 1995년에 석굴암과 불국사가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경쟁에 뛰어들었고, 지금도 해마다 여러 지자체에서 지역 유적이 세계유산으로 선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선정을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와 잡음

 

실제로 1990년대까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보편적 가치는 비교적 잘 구현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2000년대 이후 아시아 Asia를 비롯한 제3세계권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세계문화유산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면서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경제적인 부흥을 등에 업은 신생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자국의 문화적 유산을 관리하고 홍보하면서 자국 중심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세계문화유산에 주목했다.

이로 인한 문제의 예로 고구려 문화유산을 자국의 것으로 등록하려는 중국과 북한의 갈등이 있었다.

2004년에 중국과 북한은 각각 따로 고구려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는데, 중국은 지린성(길림성吉林省) 지안시(집안시集安市) 일대의 고분을 "Capital Cities and Tombs of the Ancient Koguryo Kingdom"으로 신청했고, 북한은 "The Complex of the Koguryo Tombs"으로 따로 등재했다.

두 세계문화유산은 지역적으로 인접했고 문화적으로도 거의 동일한 고구려 수도의 벽화고분과 산성이다.

이들을 가르는 기준은 오로지 현대의 국경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업을 둘러싼 현대 정치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자국의 문화유산을 통치 수단으로 연결시키는 현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어서 자칫하면 세계문화유산이 국가 사이의 갈등을 일으키는 기제機制(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의 작용이나 원리)가 될 가능성마저 무시할 수 없다.

 

 

팔레스타인 헤브론 옛 시가지 전경. 2017년 세계유산에 선정되자 미국과 이스라엘이 유네스코에서 탈퇴했다.(출처-출처자료1)

 

2017년에 요르단강 Jordan River 서쪽의 헤브론 옛 시가지 the Old City of Hebron가 팔레스타인 Palestine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자 이에 항의하여 유네스코 최대 지원국이었던 미국 USA과 이스라엘 Israel은 유네스코를 탈퇴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정치적인 활동의 일환으로 생각했음을 반증한 것이다.

 

 

강제징용의 역사를 은폐하려고 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일본의 군함도 전경(출처-출처자료1)

 

일본은 세계유산을 통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지우고 '선택적인 기억'을 합리화하고자 한다.

2015년에 크게 논란이 되었던 이른바 '군함도軍艦島'로 더 유명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Sites of Japan’s Meiji Industrial Revolution: Iron and Steel, Shipbuilding and Coal Mining'이 좋은 예이다.

유네스코는 군함도가 일본 근대화가 지닌 세계사적 상징성을 공인받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잘못된 역사도 모두 표기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에 일본이 감추고 싶어 하는 강제징용 문제를 명기하는 것을 조건으로 등재시켰다.

하지만 일본은 강제징용 부분을 보란 듯이 삭제하고 전시함으로써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2022년에도 일본은 사가현(좌하현佐賀縣)의 대표적인 금광 유적인 사도(좌도佐渡)광산의 신청서를 올리면서 조선인의 강제노동을 삭제하여 또다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한 세계유산과 함께 최근 주목받고 있는 유네스코 기록유산에서도 일본은 '가미카제(신풍神風) 자살특공대 유서'의 등재 추진을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가미카제에 희생된 개인에게 큰 비극이라는 점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궁극적으로 그 원인이 된 전범국으로서의 역사를 숨기려는 의도이다.

이러한 일본의 의도가 성공한다면 유대인 수용소에서 근무하던 독일 나치병의 일기도 등재 후보에 올릴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최근 들어 각국의 노골적인 정치색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취지가 근본부터 흔들릴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몇 년 동안 세계유산을 둘러싼 경쟁은 치열하여, 각종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는 공약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세계유산의 선정을 기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관광에 대한 기대이다.

그런데 최근 단일 유적이 아니라 여러 유적을 함께 지정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어느덧 우리 주변에서 세계유산을 보는 것이 흔해지고 있다.

예컨대 백제유산지구의 경우 서울, 부여, 공주, 익산 등지가 함께 선정되었다.

가야나 조선의 서원도 마찬가지여서 넓은 지역에서 골고루 퍼져 있다.

때로는 시가지 전체를 한번에 선정하기도 한다.

중국 베이징(북경北京)은 이미 일곱 개나 선정되었음에도 2024년 베이징 중축선(북경중축선北京中軸線) Beijing Central Axis를 등재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관광자원으로 이용하기 위해 세계유산으로 선정되길 바라지만 주변에서 세계유산이 많아질수록 관광자원으로서의 희소성은 줄어들 것이다.

이제 세계유산의 등재 자체에 목적을 두고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그것을 유지 관리할 비용과 효과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지금은 레고랜드가 들어선 춘천 중도 유적. 이곳에는 청동기시대에만 2,000기가 넘는 주거지가 있었다.(출처-출처자료1)


과도한 세계유산의 경쟁 이면에 문화유산의 파괴라는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김포金浦 장릉章陵처럼 이미 지정된 세계유산 근처에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법정으로까지 이어지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유산에 대한 열풍과 함께 경제개발에 따른 문화재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춘천 중도中島 레고랜드 Legoland 부지의 경우 청동기시대 집터 1,300기와 고인돌 150여 기가 발견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사시대 유적으로 대를 이어서 사랑받을 법한 남한 최대의 유적이었다.

하지만 유적은 모두 발굴되었고 그 위에는 레고랜드가 지어졌다.

반면 비슷한 규모의 일본 도호쿠(동북東北) 지방에 위치한 산나이마루야마(삼내환산三內丸山) 유적은 2021년에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청동기시대에 필적할 만한 규슈(구주九州)의 요시노가리(길야가리吉野ヶ里) 야요이 やよい(미생弥生/彌生) 문화 유적도 개발 대신에 유적 공원을 만들어 세계적인 고고학 명소가 되었다.

 

 

중국 네이멍구 얼다오징즈 유적과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그 밑을 지나가는 고속도로(출처-출처자료1)

 

최근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도 유적 보호에는 한국보다 더 엄격하다.

2008년에는 만주 서쪽 랴오허(요하辽河/遼河) 상류의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유적인 샤자덴(하가점夏家店) 하층문화에 속하는 '얼다오징즈(이도정자二道井子)라는 성터 유적이 고속도로 건설 중에 발견되었다.

이 유적 주변에는 이미 몇백 개의 비슷한 성터가 발견된 바가 있으니 유적을 발굴하고 공사를 계속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춘천 중도 레고랜드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얼다오징즈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유적 밑으로 굴(터널 tunnel)을 뚫어서 고속도로가 지나가게 하여 유적을 보존했다.

중국과 비교해도 너무 초라한 우리의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러니 '중국에서 지안의 고구려 고분을 발굴하고 그 위에 놀이동산을 짓는다고 해도 우리는 할 말이 없다'라는 자탄이 나올 지경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설립된, 교육과 문화를 위한 국제기구인 유네스코가 벌인 가장 성공적인 사업으로 세계유산을 꼽는다.

그 배경에는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각국이 경제적으로 개발되면서 무차별적으로 세계유산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유엔의 활동이 있다.

21세기에 들어서 세계유산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그 원래의 취지는 희미해지고 정치적으로 악용되기도 하며, 여전히 문화재와 경제개발의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단순히 세계유산의 숫자가 많은 것으로 문화 수준의 우열을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화유산 등재를 둘러싼 과도한 경쟁은 잠시 멈추고 고고학 유적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진정한 목적이 과연 세계유산뿐인지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김영사, 2024)
2. 구글 관련 자료
 
2026. 5. 7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