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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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디지털 유물들

새샘 2026. 5. 13. 22:25

국립중앙박물관 중앙 로비에 설치된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출처-ETRIWebzine https://www.etri.re.kr/webzine/202408/sub05.html)

 

미래 고고학자에게 또 다른 도전은 바로 21세기 우리 자산의 보존이다.

고고학은 단순히 과거 자산을 발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주요한 업무 중 하나는 유물을 보존하고 정리하여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는 것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21세기에 보편화된 디지털 digital(전자) 자산은 어떻게 유물로 전달될까도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종이 대신에 PDF(Portable Document Format)(이동 가능 문서 양식)로 된 문서를 읽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 smartphone(똑똑손전화)의 보급과 함께 빠르게 바뀌는 디지털 인터페이스 digital interface(전자 접속환경)를 따라가기도 바쁜 상황이다.

게다가 젊은 세대의 삶은 대부분 온라인 on-line(바로잇기)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 21세기 사람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실제 발굴해서 나온 유물만큼이나 그들이 소통했던 디지털 증거도 소중한 시대가 될 것이다.

최근 디지털고고학이라는 분야도 각광받고 있으며, 과연 미래의 고고학자는 21세기 디지털 문명을 어떻게 발굴할 지 궁금하다.

그러나 미래의 고고학자에 대한 걱정보다 급한 게 있으니, 바로 지금 빠르게 쌓여가고 있는 디지털 데이터 digital data(전자자료)는 어떻게 보존해야 할지가 21세기 고고학자에게도 급하게 닥친 현안이다.

 

 

○백남준의 예술이 보여주는 미래의 전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비디오 아트 거장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출처-2022.9.25 주간조선 인터넷판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212)

 

고고학자와 박물관의 가장 큰 역할은 문화재의 발굴과 보호이다.

세월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과거의 유물을 보존하고 지키기 위해서 첨단과학을 동원하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 가능한 한 유물은 파괴하지 않고 우리의 후손에게 전하는 것이라는 박물관의 상식에 혼란을 주는 유물이 있다.

바로 전자기기를 이용한 예술품이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video art(비디오 예술)라는 혁명을 거쳐 지금 세상은 빠르게 디지털화가 되면서 한시라도 전자기기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것들을 어떻게 보존하고 후대에 남길 것인가.

AI 혁명만큼이나 새로운 디지털 자산을 둘러싼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런 고고학자의 고뇌를 미리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다.

바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1988년에 서울 올림픽과 개천절을 기념하여 1,003대의 TV로 쌓은 탑은 숨 가쁜 한국의 현대사를 상징한다.

나선형의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보이는 브라운관 Braun tube(음극선관 cathode-ray tube)에는 다양한 장면이 나오고, 알 듯 모를 듯한 그 그로테스크 grotesque한(기괴奇怪한) 작품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백남준이 만들 때의 브라운관은 수명이 다하고 더 이상 만들어낼 수 있는 회사도 없다.

과연 그 화면을 LED와 같은 현대의 모니터 monitor(화면기)로 바꾸는 게 맞을까, 불 꺼진 채로 그냥 두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수명을 다했으니 폐기하는 것이 맞을까?

 

현대의 모니터로 바꾼다면 원래의 브라운관이라는 오리지널 original(진품)을 파괴하는 것이요, 불 꺼진 채로 두면 전력을 이용한 본래 비디오 아트의 성격을 잃어버린 거대한 흉물일 뿐이다.

그렇다고 버리거나 창고에 방치한다면 예술품을 없앤다는 비판을 받을 처지이다.

 

사실 <다다익선>뿐 아니라 수많은 비디오 아트 작품, 나아가 디지털 기기는 위기에 처할 운명일 듯하다.

집에 있는 전자기기도 몇 년만 안 쓰면 먼지가 쌓이고 고장 난 채 방치되기 일쑤다.

하물며 몇십 년 전의 전자기기는 어떻게 가동되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공간도 많이 차지하는데, 이들을 관리하려면 단순한 박물관 큐레이터 curator(전시 기획자)가 아니라 몇십 년 전 기계를 관리하는 기술과 인력을 갖춰야 하고, 그러려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하다.

과연 그럴 만한 비용과 공간이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수많은 작품으로 넘치는 기존 박물관에서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빠르게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쌓여가는 유물의 보존과 관리에 대한 예언이기도 한 셈이다.

 

 

○플로피디스크의 역설

 

고고학 유물이 보존되려면 원래의 모습과 기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디지털 전자기기는 외장 케이스 case(상자)가 아니라 실제 그것이 작동되고 그 안의 디지털 정보가 유지될 때에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저장 매체는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그 원래 기능을 유지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이제는 저장 버튼 button(단추)의 아이콘 icon(쪽그림)으로만 남아 있고 40대 이상만 실물만 접한 플로피디스크 floppy disk가 그 좋은 예이다.

필자는 30여 년 전부터 컴퓨터 computer로 작업하며 수많은 자료를 다양한 저장 매체에 담아왔다.

그 가운데서 플로피디스크에 담긴 내 기억은 더 이상 꺼내 볼 수 없다.

이렇게 디지털 정보를 꺼내 볼 수 없다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제 사람들도 디지털시대의 문화재가 가진 특성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최근에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라고 하여 디지털에도 문화재적 가치를 부여하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엔 또 다른 문제가 있으니, 디지털시대의 기술 변화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도자기나 불상처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어떠한 유물보다 빠르게 그 사용법이 바뀐다.

어디 그뿐인가, AI와 메타버스 Metaverse(확장 가상 세계)의 등장으로 가상 세계의 유산도 보존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도 등장한다.

 

 

○디지털로 시작된 망각의 시대

 

디지털시대는 이제 역행할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역설이 존재한다.

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몇십 년만 지나도 그 시대의 데이터 data(자료)를 제대로 열어볼 수 없다.

바로 망각의 시대가 되는 것이다.

유형화된 책이나 신문이 사라지고 디지털사회가 된 지금, 만약 인터넷 internet(누리소통망)이 사라지고 새로운 기술의 등장하면 아마 이 시대를 기록하는 자료는 대부분 소실되는 셈이다.

그러니 정작 중요한 디지털 자료는 책과 같은 유형의 출력물로 백업 backup해서(여벌을 만들어서) 보존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디지털을 가장 확실히 보존하는 것은 아날로그 analogue(연속형)라는 구시대의 유산인 셈이다.

지금 할 일도 많은 고고학자가 몇백 년 또는 몇천 년 뒤의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질 유산을 걱정하는 것은 쓸데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고학자에게 과거와 미래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 Möbius strip처럼 이어진 것이다.

고고학자의 역할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발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역사의 유물을 온전히 전하는 것이 궁극적인 고고학자의 역할이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김영사, 2024)
2. 구글 관련 자료
 
2026. 5. 1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