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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94 - 팥배나무

새샘 2026. 6. 8. 16:17

팥배나무 잎과 꽃(출처-출처자료1)

 

빨갛게 익은 수많은 열매를 매달아 가을날 산새들의 좋은 먹이가 된다.

열매는 팥을 닮았고 하얗게 피는 꽃은 배나무를 닮았다 하여 팥배나무이다.

그러나 팥배나무와 배나무는 속屬 genus이 다른 만큼 분류학적으로 거리가 있다.

 

동아시아 원산의 장미과 마가목속의 갈잎 넓은잎 큰키나무로서 높이 10~20미터, 줄기 지름 30센티미터까지 자란다.

한반도 산지 숲속에서 흔하게 자라며, 마을 주변에도 심어 키운다.

러시아 사할린, 연해주, 우수리, 일본, 중국 동북부에도 분포한다.

 

학명은 알니아리아 알니폴리아 Alniaria alnifolia, 영어는 Korean mountain ash(한국 마가목), 한자는 두杜, 감당甘棠, 당리棠梨 따위로 쓴다.

 

 

○혼란스러운 나무 이름

 

팥, 콩, 녹두 따위는 예전부터 무언가 작은 것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팥배나무만 하더라도 그 열매가 팥 만하다는 뜻으로 무척 작다는 것이다.

그런데 팥배나무는 배나무 종류는 아니다.

배나무류 축에 끼는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팥배나무속 Alniaria을 만들었다.

 

사과(능금)는 좋은 과일이고 꽃도 피지만, 배나무 같이 사람들에게서 주목을 받지 받지 못했다.

사과나무속과 배나무속은 우선 열매와 꽃의 특성의 차이로 구별할 수 있다.

배나무 종류는 꽃의 암수술 아래쪽이 떨어져 있고(이생離生), 사과나무속은 암수술이 붙어 있다(합생合生),

또 배에는 단단한 돌(석石)세포가 많지만, 사과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러나 배나무나 사과나무의 꽃은 한 곳에 많이 달려 다발처럼 보인다.

이것이 팥배나무와 크게 다른 점이다.

팥배나무는 꽃대에 다시 꽃대가 나서 마치 가지가 차례로 갈라지듯 된다.

산에 나는 마가목도 팥배나무와 같은 꽃차례를 가지고 있어 예전에는 팥배나무를 마가목속 Sorbus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지금은 독자적인 팥배나무속 Alniaria을 만들어 마가목속과는 달리 분류하고 있다.

 

'배나무'란 이름은 조금은 무질서하게 사용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즉 아그배나무 하면 이것은 사과나무속의 나무이고, 산돌배나무 하면 배나무속의 나무이며, 팥배나무 하면 팥배나무속(예전에는 마가목속으로 분류)에 들어가는 나무이다.

이러한 이름들은 우리 선조들이 붙였고 또 쓴 것으로,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이 이것을 쓸 수밖에 없다.

 

 

완전히 익은 팥배나무 열매(출처-출처자료1)

 

팥배나무는 잎이 넓고 둥글며 봄에 흰꽃이 핀다.

가을이 되면 팥 비슷하고 콩알만한 열매가 붉게 익는다.

우리나라 어디에나 자라고 만주와 일본에서도 볼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아즈키나시 あずきなし'라 부르는데, '아즈키 あずき'는 팥을 뜻하고 '나시 なし'는 배나무를 뜻해서 역시 팥배나무라는 표현이다.

 

한자로는 감당甘棠, 당리棠梨, 두리豆梨, 두杜, 두리杜梨 따위로 쓴다.

한자 사전을 보면 두杜의 열매가 감당甘棠이라 했고, 또 기록에는 두杜 즉 팥배나무에 배나무를 접붙이면 열매가 잘 맺는다고 했다.

그런데 당리棠梨란 이름은 아그배나무에도 적용되고 있는데, 아그배나무는 팥배나무와는 달리 사과나무속에 들어간다.

아그배나무도 꽃이 아름답고 열매가 붉게 익어서 볼 만하다.

따라서 예전 책에 당리로 쓴 것이 팥배나무인지 아그배나무인지 또는 다른 나무에 해당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홍리紅履, 즉 붉은 배로 부른 것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통틀어 일컫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예전에 남산 북향 비탈에서 자라는 큰 팥배나무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어느 청명한 늦은 가을날로 기억되는데, 팥배나무 열매들이 푸른 하늘을 날고 있는 붉은 구름의 조각을 생각나게 하였다.

몇천 몇만의 붉은 열매가 떼를 지어 살랑이는 가을 바람에 무더기로 앞으로 움직였다 다시 뒤로 돌아오고 하는 모습들은 틀림없이 구름으로 보이는 듯했다.

팥배나무 열매가 그렇게도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낼 줄은 정말 몰랐다.

서울 남산에는 큰 팥배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다.

 

 

○한시 속의 팥배나무

 

배나무는 그 꽃으로 한몫하고 있다.

배꽃은 달밤이라든가 봄비와 무척 어울린다.

배꽃과 관련 있는 시조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조년, <이화에 월백하고>-

 

"이화우梨花雨(비처럼 내리는 배꽃잎)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이매창, <이화우>-

 

"이 몸이 죽어가서 접동새 넋이 되어 이화梨花 핀 가지 속에 싸였다가

  밤중만 살아져서 우리 님 귀에 들리도록 울리라"

    -작자 미상-

 

"두견아 울지 말라 이제야 내 돌아왔노라

  이화梨花도 피어 있고 새 달도 돋아 있다.

  강산에 백구白鷗(갈매기) 있으니 맹세 풀이 하리라"

    -이정보의 시조-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는 "배나무 꽃가지에 봄비가 내린다 (이화일지춘대우 梨花一枝春帶雨)"라는 명구名句가 있으며, 이는 아름다운 여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배꽃은 깨끗하고 청초하며 순결한 아름다움을 상징하고 있다.

그런데 위 시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배꽃은 무언가 추창惆愴한(구슬픈) 슬픔과 관계있는 것이 많다.

어떤 이는 배꽃을 한아閑雅한(조용하고 품위가 있는) 부인의 상이라 평했다.

 

소식蘇息의 배나무꽃에 대한 다음 시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배꽃 희고 버들잎 푸르른데 (이화담백류심청 梨花淡白柳深靑)

  버들 솜 휘날릴 제 성안은 꽃으로 가득 찼다 (유서비시화만성 柳絮飛時花滿城)

  슬프다 동쪽 난간의 한 그루 눈꽃이여 (추창동난일주설 悵東欄一株雪)

  살면서 이러한 아름다운 정경을 몇 번쯤 더 볼 수 있겠는고 (인생간득기청명 人生看得幾淸明)"

 

여기서 한 그루의 눈(일주설一株雪)이란 꽃을 피운 배나무를 말한다.

배나무 꽃을 이설梨雪(배나무 눈) 또는 이운梨雲(배나무 구름)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눈과 구름은 순수한 맑음을 뜻한다.

 

"배 먹고 이 닦기"라는 말이 있다.

사각사각 끊어지는 배를 먹으면 이가 깨끗해진다는 건데, 이에 착안해서 '배나무 리梨'자가 만들어졌다.

이 글자는 '사각사각 잘 끊어진다"는 뜻을 가진 '리利'자와 '나무 목木'자가 합쳐 만들어졌다.

 

팥배나무가 ≪시경詩經≫의 여러 곳에 나오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관심의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감당甘棠>에 "우거진 팥배나무 자르고 베지 마라, 우리가 사모하는 소백召伯 님이 쉬어 가시던 곳이니. 우거진 팥배나무 자르고 꺾지 마라, 예전에 소백께서 그 나무 그늘 아래 쉬시던 곳이니"라는 대목이 있다.

그 사람이 좋으면 그 사람의 발자국도 좋다는 심리가 묘사되고 있다.

팥배나무는 넉넉히 그늘 아래 쉴 만한 곳을 마련해준다.

 

또한 ≪시경 <당풍唐風>에 "한 그루 팥배나무 푸른 잎 우거졌네, 형제 없는 몸 외로워, 세상에 사람은 많아도 동기간만할 건가"하는 내용이 있다.

동기간이 없는 고독한 자신을 돌아보고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팥배나무에 정을 던져보는 심정이 노래로 나타나고 있다.

형제가 있다는 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시 <당풍> '유체지두有杕之杜'에 "한 그루 팥배나무 길가에 서 있네, 그대가 나를 찾아주고 좋아해 주신다면 맛있는 음식 마련해 드리리다"하는 대목이 있으며, 이는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내용이란 풀이도 있고, 임금이 어진 군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내용이란 풀이도 있다.

 

이와 같은 시에 나오는 팥배나무는 모두 부족한 인간들에게 힘을 주고 있는 점이 공통적이다.

 

 

○술집 깃발 이야기

 

"마을가 보라색 콩꽃이 드리울 정도로 핀 때에 (촌변자두화수차 邨邊紫豆花垂次)

  강가 팥배나무(홍리紅梨) 잎들이 바람에 떨기 시작했다 (안상홍리엽전초 岸上紅梨葉戰初)

  연기 가득한 곳을 거듭 머리 돌려 그리워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막괴연중중회수 莫怪烟中重回首)

  술집 푸른 깃발에 쓰여진 한 구절의 문장에 내 마음이 유혹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기청저일행서 酒旗靑紵一行書)"

 

콩꽃 피고 팥배나무 잎이 바람에 우수수 하는 때 술집 있는 곳으로 머리를 돌려 술집 깃발에 쓰여진 문장에 마음이 홀린다는 나그네의 마음을 묘사한 한시이다.

이 시에서 홍리紅梨가 과연 어떤 나무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잎이 단풍 진 배나무라는 풀이도 있으나 일단 팥배나무로 받아들여 보자.

술집에 술이 있을 때에는 그것을 알리는 징표로 깃발을 세운 모양이다.

모시로 만든 깃발에 무언가 문장을 써서 술 생각이 나도록 한 것이 무척 낭만적으로 보인다.

 

필자가 오스트리아 빈 Wien(영어는 비엔나 Vienna) in Austria에 갔을 때 그곳 주점에 들른 적이 있다.

술집 안쪽에 뜰이 있었고 포도나무가 심어져 녹음을 이루고 있었으며, 그곳에 탁자와 의자를 놓고 술 한잔 마실 수 있게 해놓았다.

악성들의 명곡이 은은하게 흘러 술맛을 돋우어 주었다.

이 주점에 술이 있을 때에는 문간에 솔가지 다발을 달아둔다.

만일 솔가지가 없으면 술이 없다는 뜻이고,그렇다면 들어갈 필요가 없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중국 한시의 주기酒旗와 통하는 점이 있다.

 

중국에서도 주기 대신에 잎이 달린 대나무를 높게 세우던 풍습이 있었다.

<주기酒旗>라는 시 한 구절에 "바람은 푸른 대나무(취죽翠竹)의 장대(강杠)를 치고, 내리는 비는 막걸리(향료香醪)라는 글자를 씻어주고 있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잎이 달린 대나무 장대는 술이 있다는 푯말이고, 무엇엔가 쓴 막걸리라는 광고 글자가 내리는 빗물에 푹 젖어 있다는 뜻이다.

술 생각 나게 하는 광경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주기 대신에 술집 처마나 대문간에 초롱불을 켜서 달아둔 풍속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초롱불이나 중국의 푸른 깃발이나 비엔나의 푸른 솔가지나, 무척 낭만적임은 매한가지이다.

 

 

○고전 속의 팥배나무

 

익어가는 팥배나무 열매(출처-출처자료1)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나오는 팥배나무(상리裳梨) 그림은 매우 사실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의 고전 ≪이아爾雅≫애 "두杜는 곧 감당甘棠인데 그중 붉은 것을 두杜라 하고 흰 것을 당棠이라 하나, 어떤 사람은 열매의 맛이 떫은 것을 두杜라 하고 단 것을 당棠이라 하고, 또는 암나무를 두杜라 하고 수나무를 당棠이라 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이시진李時珍은 "당리棠梨(팥배나무)를 야리野梨라고도 하는데, 각처에 자라며, 나무 모양은 배나무와 닮았으나 크기가 작고, 잎에는 톱니가 발달해 있으며 색이 검푸르고, 봄에 흰 꽃이 피며 가을에는 굵은 콩알만한 열매가 익는데 먹을 만하고, 배나무 접목에 있어서 밑나무(대목臺木 또는 접본椄本: 접을 붙일 때 그 바탕이 되는 나무)로 쓰면 결실을 도울 수 있다.

팥배나무 잎은 다소 쓴맛이 있지만, 어릴 때 따서 삶아 물에 우려 소금에 무쳐서 먹을 수 있고, 때로는 쪄서 차 대용으로도 할 수 있다. 그 꽃도 먹을 수 있으며, 열매는 위장을 다스리는 효과가 있다"로 했다.

 

우리나라아 일본에서는 팥배나무 잎을 염료로 사용했다.

날씨가 좋은 가을날 잎을 따서 건조시켜 붉은색(염강染絳) 염색 재료로 사용했다.

염색 재료를 생산할 목적으로 팥배나무를 심으면 이익이 많고, 뽕나무보다 더 좋으므로 많이 심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생산량이 많아야 하고 소량으로 심어서는 효과가 적다고 했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3(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6. 6. 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