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96 - 포플러 본문

일제 강점기 초에 미국과 유럽에서 들어온 미루나무나 양버들 따위의 버드나무과 사시나무속 genus Populus의 나무를 통틀어 포플러 poplar라고 한다.
포플러는 우리나라 재래 수종보다 자람이 훨씬 빨라 목재 자원 조달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므로 심기를 장려했다.
북아메리카 원산인 포플러는 버드나무과 사시나무속의 갈잎넓은잎 큰키나무로서 높이 30미터, 지름 1미터 정도로 자라며, 나무가 위로 길게 뻗어 원통형으로 된다.
우리나라 전역에 가로수나 조림수로 심어 키우고, 목재는 건축재, 상자재, 그리고 숯이나 땔감으로 사용한다.
학명은 포풀루스속 genus Populus(사시나무속), 영어는 poplar(포플러), 한자는 양류洋柳, 미루美柳, 양楊 따위로 쓴다.
○포플러가 쓰는 시
포플러는 시원스럽고 깨끗하며 기품이 있고 통일된 아름다움과 하늘로 솟아오르는 기상이 있어 철학적·예술적 성상을 담고 있다.
포플러를 고결한 시인에 비유해 보자.
포플러는 깨끗한 시인 같다.
푸른 하늘에 시를 쓴다.
알고 있는 어휘의 수가 말수보다 많지 않으나 멋있는 시를 쓴다.
담담한 시를 쓴다.
아침의 시가 저녁의 시와 다르고, 봄의 시가 가을의 시와 너무나도 다르지만, 그 시는 맑고 항상 새롭다.
필자는 이 나무의 겨울의 시가 좋다.
포플러는 스스로가 시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사람들도 그것을 알고 부러워한다.
하늘도 땅도 그 시를 부러워한다.
해도 달도 그 시를 부러워한다.
개고랑 물은 그 시의 뜻이 자기 것이라고 시샘도 한다.
개고랑 물에 발을 담근 포플러는 미소만 짓고 해명이 없다.
시감詩感을 불만 없이 개고랑 물에 나누어준다.
온통 산골짜기가 노래며 시다.
포플러 옆에는 으레 찔레가 있다.
찔레도 노래를 쓴다.
흰 노래를 쓴다.
찔레는 포플러에게서 시와 노래를 배웠다.
이처럼 산골 시인들은 모여서 산다.
솔솔 부는 바람에 시를 새겼다.
바람은 그들의 화려한 시집이었다.
길고 긴 시집이었다.
온갖 잎새가 모여서 비단같이 짜여진 시를 만들었다.
인간들이 찾아와서 중얼거리는 말들.
"이 나무는 이쑤시개 만드는데 쓰입니다", "이 나무는 짜장면 먹을 때 쓰는 나무젓가락 재료입니다", "이 나무로 병원에서 환자 혓바닥 누르는 것을 만듭니다", "내일 이 나무를 끊읍시다"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포플러는 여전히 시를 쓰고 있다.
포플러는 높고 맑은 품위로 산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이 나무를 좋아한다.
포플러는 줄로 나란히 서서 살아간다.
한 줄로 서서 모두들 하늘을 본다.
필자의 방에 걸어둔 두 개의 그림 가운데 하나는 포플러의 천연색 풍경이다.
예닐곱 그루의 포플러가 한 줄로 서서 가을 하늘의 구름을 찾고 있다.
그들의 용자容姿(용모와 자태)의 수려秀麗함(빼어나게 아름다움)에 놀라고, 그 단풍의 아름다움에 혀가 굳어버린다.
이 풍경은 어느 해의 달력에 선보였던 것으로, 나는 그것을 버릴 수가 없었고, 그래서 이 풍경은 오래도록 내 방을 장식해 주고 있다.
포플러 앞에는 길이 있고 그 밑에는 잔디가 있다.
먼 산을 보고 포플러를 보면 어느 사이엔가 이 나무 아래에서 스스로를 찾게 된다.
이 그림은 필자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한 모퉁이가 된다.
○포플러의 종류
'포플러 poplar'라고 하면 어떤 한 종류의 나무를 지정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포플러라는 말속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원래부터 있는 사시나무도 넓은 뜻으로는 포플러에 들어가고, 또 북쪽 지방에 많은 황철나무나 당버들 같은 것도 포플러에 속할 수있다.
그러나 우리가 포플러 하면 그 이름이 나타내듯이 원래부터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처럼 좁은 뜻으로 포플러를 해석할 때 두 종류의 나무가 해당된다.
그 하나는 미루美柳나무('미류나무'는 비표준어)이고, 다른 하나는 양류洋柳 또는 양버들류이다.
미루는 미국에서 들어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고, 양버들은 서양에서 왔다고 해서 이와 같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두 나무 종류는 서로 매우 닮아 있어 다 함께 포플러라고 불리기도 한다.
포플러와 가장 닮은 우리나라 나무로 사시나무가 있다.
잎의 모양이라든가 잎자루의 길이라든가 나무의 생김새가 닮은 점이 많다.
그러나 사시나무는 봄에 가지를 꺾어 땅에 꽂아도 뿌리가 내리지 않지만, 포플러는 뿌리가 매우 잘 내린다.
또한 사시나무의 줄기는 연한 푸른 색깔이지만, 포플러는 곧 검게 되고 표면이 더 거칠어진다.
그래서 사시나무를 백양白洋 white poplar의 종류, 포플러를 흑양黑洋 black poplar의 종류라고 한다.
이는 껍질의 색깔을 가지고 지은 이름이다.
사시나무는 북한의 높은 산지에 흔한 것으로 비교적 추운 지방에서 볼 수 있지만, 미루나무나 양버들과 같은 흑양 계통의 나무는 더 따뜻한 곳을 즐긴다.
○포플러(양버들)의 도입

포플러 가운데 양버들은 19세기 말에 유럽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왔는데, 주로 수나무였다.
1910~1918년 사이 약 10년 동안은 우리나라 조림 역사상 아까시나무와 포플러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아까시나무와 포플러가 자람이 빠르고, 또 그 당시 송충이의 계속되는 심한 피해에 겁을 먹고 이들 나무의 조림에 힘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1주 동안을 포플러 주간으로 설정하여 온 국민이 이 나무 심기에 힘을 기울였다.
그 당시의 임업 관계 책자에는 포플러의 용도, 조림법 따위가 계속 실렸고 홍보가 대단했다.
포플러 시대가 지나가고 그 뒤에 오리나무와 리기다소나무의 시대가 왔다.
양버들은 잎이 작고 너비가 길이보다 더 길며 가는 가지가 줄기를 따라 자라서 멀리서 보면 빗자루 같다.
이에 비해 미루나무는 잎이 더 크고 길이가 너비보다 더 크다.
미루나무는 비교적 굵은 가지도 생겨나서 전체적으로 모양이 옆으로 퍼지는 경향이 있다.
멀리서 보아도 미루나무와 양버들은 쉽게 구별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은 주로 양버들이다.
풍치적 가치는 양버들이 미루나무보다 더 높다.
흔히 개량포플러 또는 이태리포플러라는 이름의 나무가 심어지고 있으며, 이들은 미루나무와 양버들 사이에 만들어진 잡종이다.
미루나무는 미국에 나고, 이태리포플러는 주로 유럽에 난다.
과거 이탈리아에서 미루나무를 가져다가 심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미루나무와 양버들 사이에 혼인이 이루어지고 그 사이에 잡종이 생겨났다.
양버들이 어머니가 되고 미루나무가 아버지가 되어서 그 사이에 많은 후손들이 얻어졌으며, 이탈리아에서는 그중 자람이 특히 좋다고 생각되는 나무를 골라서 1호, 2호, 3호 따위로 번호를 붙이고 그중에서 특히 자람이 좋은 것을 다시 골라내었다.
154호, 214호, 475호 같은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것을 품종이라고 해서 구별한다면 품종 사이에 여러 면에서 그 차이를 볼 수 있다.
줄기가 굵게 된다든지, 병에 더 잘 걸린다든지, 또는 봄이 되어서 잎이 빨리 핀다든지, 가을이 되어 잎이 늦게 떨어진다든지 하는 차이가 뚜렷이 보인다.
○포플러의 생장 특성

포플러는 살 수 있는 땅의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모래 기운이 좀 있고 물기도 있으며 땅이 깊고 걸면 포플러가 신나게 잘 자라지만, 땅이 조금이라도 척박하면 생장이 위축된다.
이러한 경우 적응력이 약하다든지 또는 감수성이 강하다고 표현한다.
이처럼 생활 조건에 대해서 감수성이 강한 나무는 조림지 선택에 더 조심해야 한다.
포플러는 땅속에 물이 흐르고 있는 그러한 땅을 좋아하고 특히 석회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나무를 심을 때는 석회 비료를 많이 준다.
버드나무는 가지가 아래로 드리우고, 소나무 가지는 옆으로 나는 반면, 포플러 가지는 하늘을 향한다.
느티나무처럼 큰 가지가 옆으로 퍼지면 좁은 땅에 여러 나무가 들어서기 어렵지만, 포플러처럼 가지가 몸에 딱 붙어서 태양을 쳐다볼 경우에는 서로서로 가깝게 붙어서 살 수있다.
느티나무를 고고孤高한(세상일에 초연하여 홀로 고상한) 것으로 본다면, 포플러는 인정 많은 이웃을 만든다.
보통 낙엽송이나 소나무 같은 나무 가운데서 좋은 나무를 골라낼 때에는 가지가 위로 서거나 또는 짧은 것을 좋은 것으로 취급한다.
이러한 나무라야 서로 가깝게 설 수 있고, 좁은 땅에서도 더 많은 나무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지가 위로 선다든가 짧다든가 하는 것은 그만큼 서로 양보할 줄 안다는 뜻이다.
양보와 겸손이라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있어서나 나무 사회에 있어서나 통하고 있는 미덕인 것 같다.
○고전 속의 포플러
유럽의 전설에 따르면, 예수가 처형된 십자가는 산딸나무나 또는 사시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어느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사시나무로 된 연유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그 나무 위로 선혈이 흘러내렸을 때 사시나무 목재가 떨리기 시작했다고 하며, 그 이후 사시나무의 전신이 실바람에도 떨리게 된 것이라 한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부터 포플러나 사시나무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지게 되었다.
지금도 프랑스계 캐나다 사람들은 포플러를 베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시나무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근래 도입된 포플러는 그러하지 못했다.
이정보李鼎輔의 글에 "좁쌀죽 입쌀죽을 백양저白楊箸(백양나무 젓가락)로 찍어서 자시오"하는 대목이 있으며, 이때의 백양은 지금의 사시나무를 가리키는 것이다.
정철鄭澈의 글에 "이 몸 죽은 뒤면 지게 위 거적 덮어 졸라매어 ··· 억새풀, 속새풀, 떡갈나무, 사시나무 속에 가기만 하면 ··· 누가 한잔 마시자 할고 ···" 하는 대목이 있다.
사시나무는 무덤에 잘 어울리는 나무다.
그것이 왜 그런지 생각해 보았다.
사시나무는 양지나무(양수陽樹)로서 울밀한 산속에서는 나타나기 힘들다.
묘지가 만들어질 때에는 나무를 잘라 햇볕이 쬘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시나무 열매가 찾아들고, 자리를 잡으면 묘지 위에 서는 순서를 밟게 된다.
그래서 사시나무는 묘의 영혼과 가까운 사이가 된다.
그래서 사시나무는 탈속적脫俗的(세속을 벗어남) 속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유명한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죽어서 자신의 시신이 상여에 실려 무덤으로 향하는 장의葬儀(장례葬禮)를 상상하고 시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아 우거진 가시덤불이여
쓸쓸히 우는 사시나무여
가을 서리 차고 찬데
나를 보내려 머나먼 길 따라와 준 친구여
······
나는 가시덤불 잡초 속으로
스산하게 떨고 있는
사시나무 아래로 간다
늦가을 서리 차고 차가운데
친구여 나와 함께
먼 산속까지 왔구먼 그래"
—≪도연명집陶淵明集≫ <의만가사擬挽歌詞>—
이 시를 보더라도 묘지에는 사시나무가 있어 사시나무는 묘지와 어울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시나무의 줄기 껍질은 동서양을 통해 민간 약으로서 소중한 것이었다.
허묘墟墓(연고자가 없어 풀에 묻혀 폐허가 된 무덤)에 난 사시나무는 약용 가치가 더 높은 것으로 인식되어 일부러 허묘에 사시나무를 나게 하여 약용으로 사용했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도 중국의 무덤(분묘墳墓)에는 사시나무가 흔히 자라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포플러는 아름다운 나무이다.
그 열매는 솜털(종모種毛)이 있어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자리 잡지 않은 곳이 없다.
이제 포플러는 우리나라의 나무가 되었다.
그 나무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살아오고 있고, 또 살아갈 것이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3(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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