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97 - 피나무 본문

피나무의 '피皮'는 껍질이란 뜻이다.
껍질 속의 인피섬유靭皮纖維(줄기 형성층의 바깥쪽 조직에 함유되어 있는 섬유)는 길고 질겨서 쓰임이 많았다.
잘게 쪼개서 옷을 만들거나 굵은 밧줄로 사용하기도 했고, 촘촘히 엮어서 바닥에 까는 삿자리(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에도 이용했다.
한반도 전역의 산지 숲속 및 계곡 주변에서 자라는 피나무과 피나무속으로 분류되는 갈잎넓은잎 큰키나무인 피나무는 높이 20미터, 너비 1미터까지 자라며, 러시아 극동 지방과 중국 동북 지방에도 분포한다.
학명은 틸리아 아무렌시스 Tilia amunrensis, 영어는 Amur linden(아무르 피나무) 또는 Amur basswood(아무르 참피나무), 한자 표기는 보리수菩提樹·피목皮木·단수椴樹·가수椵樹 따위이다.

생물 가운데는 이상하게 생겨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있다.
동물로 말하면 코끼리, 기린, 뱀 같은 것이고, 나무 가운데서는 은행나무와 백합나무의 경우 잎 모양이 이상하고 주목은 열매 모양이 이상한 편이다.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피나무는 꽃턱잎(포苞) bract(꽃이나 꽃차례 아래에 달리는 잎이나 꽃받침잎처럼 생긴 것으로 고도로 변태한 잎의 한 종류)에 열매 대궁(여린 줄기)이 붙어 있는 것이 신기하다.
사람들은 꽃턱잎이 비행기의 추진기(프로펠러 propeller)처럼 생겼다고도 하고, 또는 주걱같이 생겼다고도 한다.
열매 대궁이 꽃턱잎의 한가운데 붙어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 중에, 열매가 익으면 꽃턱잎과 함께 떨어져 나가는데 이때 주걱이 바람을 타고 빙빙 돌면서 더 먼 곳까지 날아갈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열매를 더 먼 곳까지 보내기 위한 방편으로 꽃턱잎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그럴싸한 설명일 뿐이다.
○나무 이름과 유래
피나무는 한자로 '피목皮木'으로 쓰며, 이것은 나무 껍질 즉 섬유의 쓸모가 많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피나무를 학술적으로 '틸리아 Tilia'라고 하는데, 이는 그리스어 Greek '틸로스 Tilos'에서 유래되었고 그 뜻은 '섬유 fiber'이다.
영어 이름은 basswood(참피나무)는 bast가 변한 것으로 bast는 나무 속껍질을 뜻한다.
다른 영어 이름으로 '라임 lime' 또는 '린덴 linden'으로도 불리는데, 두 단어 모두 피나무란 뜻이다.
유명한 식물학자 스웨덴 Sweden의 린네 Carl von Linné(1707~1778)의 이름 뜻은 '껍질'이며, 우리나라에도 피皮씨 성이 있다.
말하자면 린네의 성은 피씨이고 피나무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린네의 생가 뜰에는 큰 피나무가 있으며, 린네는 그 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필자는 린네의 생가 뜰에 있던 피나무 가지를 얻어서 표본으로 만들어 서재 벽에 걸어 놓았는데, 이는 린네의 학구적인 정신을 받아들이고 싶어서이다.
피나무류에는 약 30여 종이 있고, 주로 북반구의 온대 또는 온대 북부 지방에 퍼져 난다.
미국 USA 동부 지방, 캐나다 Canada, 유럽 Europe, 러시아 Russia, 만주 Manchuria, 일본 Japan에 많고, 대체로 한랭한 기후를 즐긴다.
피나무가 많은 나라는 대체로 부강한 나라들이 많으며, 이 점에 있어서 예외가 거의 없다.
어떤 구체적인 종種 species을 내세우지 않고 피나무 무리를 통틀어 나타내는 피나무의 한자 이름은 '피나무 가椵'와 '피나무 단椴'이며, 간단하게 '단段'자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가椵'자는 피나무뿐만 아니라 '유자나무 가'로도 읽고 녹나무·전나무를 뜻하기도 하며, '단椴'자는 '무궁화나무 단'으로도 읽고 그 밖에 전나무·자작나무를 뜻하기도 한다.
또한 피나무는 보리수菩提樹, 피목皮木, 성도수成道樹, 염주목念珠木, 난수欒樹, 피목被木 따위로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피나무 이柂'자도 있다.
잎이 둥글고 넓으며 잎밑(엽저葉底 또는 엽각葉脚)이 심장형(하트형 heart type)으로 오므라들고 있다.
이런 잎 모습은 대체로 모든 피나무 종류가 비슷하다.
잎이 심장형으로 되어 있고 잎의 가장자리가 풍만한 곡선으로 굽어 잎의 넓이를 최대한 확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피나무의 불타는 정열과 원만한 성품, 그리고 발전하는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편협하지 않고 너그럽다.
피나무는 잎 윤곽의 부드러운 원만성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
보름달의 외륜外輪(바깥 원), 쌍무지개(쌍홍雙虹)의 궁륭穹窿(활이나 무지개같이 한가운데가 높고 길게 굽은 형상), 팽만한 젖무덤(유릉乳陵), 팽팽히 당겨진 활줄(활시위), 큰 바다의 수평선, 이러한 아름다운 곡선들을 함께 모아 녹여 섞어서 하나의 비기하학적인 흐름선(유선流線)을 뽑아낸다면 찰피나무 잎의 윤곽으로 수렴될 것이다.
○피나무 종류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피나무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잎은 뽕나무 잎과 비슷하다.
초여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콩알 같은 열매가 검게 익는다.
꽃은 많은 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밀원수목蜜源樹木(벌이 꿀을 빨아 오는 원천이 되는 나무)으로 이름이 나 있다.
누구나 한 번쯤 피나무 꿀이란 이름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밀원수목으로 손꼽을 수 있는 나무는 아까시나무, 밤나무, 싸리, 그리고 피나무라고 할 수 있다.
초여름 피나무가 꽃을 달게 되면 그 옆을 지나가도 피나무의 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피나무의 꽃은 독특한 향기를 갖고 있다.
피나무는 목재의 결이 곱고 목질이 고른 편이어서 조각재로 인기가 있다.
흔히 바둑판으로 이용된다.
울릉도 피나무가 특히 유명한데, 울릉도에서 나는 것을 특히 '섬피나무'라고 부른다.
꽃턱잎이 흰색이고 털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울릉도 섬피나무는 높게 크고 굵게 자란다.
태백산맥의 깊은 산에도 피나무가 많으며, 연필대 재료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한편 피나무의 열매로 염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사실 염주나무는 피나무 종류 가운데 하나로서 잎 뒤에 흰 털이 나 있고 열매에는 다섯 개의 줄이 있어서 금방 알아볼 수있다.
경기도 지방에 퍼져 있다.
그 밖에 '찰피나무'가 있는데, 열매가 둥글고 열매 아랫부분에 희미한 줄이 있다.
피나무는 열매 표면에 줄이 없다.
피나무류는 비교적 추운 지방에 어울리는 나무이다.
스웨덴 Sweden, 덴마크 Denmark, 핀란드 Finland, 러시아 Russia, 캐나다 Canada, 미국 USA의 북쪽 지방에서는 도시의 가로수, 공원수 따위로 많이 심고 있다.
가지를 끊어서 잘 다듬어 주면 둥근 모양이나 모난 모양 따위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기하학적 풍치를 만들어 내는데 적당한 나무이다.
○피나무 용도

'피나무'라 하면 목재가 아름답고 결이 고와서 조각재나 바둑판으로 이용되는 만큼 값지다는 것쯤은 대개 알고 있다.
또한 피나무 꿀은 밀원수목으로 유명하며, 나무 모양이 단아해서 미화美化수목(환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나무)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구미 각국에서도 공원이나 길가에 많이 심어져 있고, 더욱이 가지를 쳐서 모양을 다듬을 수 있어 환영받고 있다.
피나무는 한자로 '피목皮木'으로 쓰기도 하여 목재로서 삿자리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필자는 해방되기 전 백두산 원시림 속에서 지낼 때 몇 개월 동안을 삿자리 방에서 살았다.
촉감이 퍽 좋고 깊은 산중에 어울리는 방바닥이었다.
몇 년 전 충남 계룡산 갑사에 갔을 때 대웅전 바닥이 한 장의 피나무 삿자리로 깔려 있는 것을 보았다.
대웅전 바닥에서 막바로 엮어댄 것으로 특이한 느낌이었다.
피나무의 삿자리는 오래 간다.
아버지가 쓰던 것을 아들이 계속 쓴다.
피나무 껍질은 이용 가치가 뛰어나서 여러 모로 이용되었다.
기왓장 대신으로 지붕을 덮는데 쓰였고, 껍질의 섬유는 삼보다 강해서 신발 만드는 재료나 끈, 밧줄, 그물, 도롱이(짚, 띠 따위로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 같은 것을 만드는데 썼다.
껍질의 귀중함이 이 나무의 이름에 반영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피나무로 만든 밧줄은 매우 강인해서 옛적에는 적군 진지에 화창火槍(총포, 총)를 쏘는데 쓰였던 모양이다.
특히 나무껍질 색깔이 흰 강가糠椵가 좋았다고 한다(차질백자왈강가此質白者曰糠椵 가피가제승椵皮可制繩 인화창引火槍 군중수지軍中需之).
이때 강가는 찰피나무를 말하며 일명 백가白椵라고도 한다.
피나무 껍질로 방직을 해서 옷감도 짰다.
피나무의 껍질 섬유를 얻자면 초여름에 줄기 지름 4센티미터쯤 되는 것을 끊어 바로 껍질을 벗겨야 쉽게 벗겨진다.
이렇게 하여 얻어진 껍질을 잿물로 삶아서 바깥 껍질을 제거하고 흐르는 물에 담가 표백시킨다.
그 뒤 이것을 실로 해서 옷감을 짜는데 무명실로 섞어서 짜기도 했다.
○사랑을 상징하는 잎
피나무류에 속하는 잎들은 서로 비슷한 심장 모양(하트형 heart type)의 생김새를 하고 있다.
단풍나무는 종에 따라 잎의 모양이 다양하지만, 피나무 종류는 종이 달라도 잎 모양은 서로 거의 비슷하다.
피나무 잎의 윤곽선(실루엣 silhouette)은 사랑과 아름다움과 관용과 평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러브 Love)'을 상징하는 잎이라면 서슴지 않고 찰피나무 잎을 찾으면 된다.
누구라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사랑이란 온유하고 성내지 아니하며 참고 견디며 진리를 좋아하고 좋지 못한 일을 따르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내용을 몸에 지니고 있고 또 구현하는 나무가 바로 피나무이다.
나무를 사랑하고 연구하고 공부하고 오래 함께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실을 서슴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나무 결이 곱고 순수하고 고르다는 것은 사람에 비긴다면 교양이 있고 품격이 고결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질박質朴함(꾸민 데 없이 수수함)과도 통한다.
원만한 잎을 가진다는 것은 성낼 줄 모른다는 것이고, 노怒(화냄)를 버렸다는 것은 덕목이 몸에 베어있다는 불유구不踰矩(마음 내키는 대로 행해도 법도에서 벗어남이 없음)의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다.
뜻이 있어 욕심을 내어도 그것이 한계를 넘지 않고 잘못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열매의 특성
피나무 열매는 두꺼운 껍질에 싸여 있어 땅에 떨어져도 싹이 쉽게 트지 않는다.
이것은 중후重厚함(태도 따위가 정중하고 무게가 있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여러 해 동안 땅속에서 그대로 지낼 수 있는데, 이것은 견디고 참는 힘을 보여준다.
산불이 나서 주변의 나무들이 모두 타서 죽었을 때에도 땅속에 묻혀 있던 피나무 열매는 힘차게 일제히 싹을 틔운다.
산불이 난 뒤 황량한 곳을 숲으로 뒤덮는 피나무의 개척적이고 용감한 선구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나무가 바로 피나무다.
이러한 억센 특성은 피나무가 변해서 여자로 되었다는 신화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 것인가?
여자의 억셈은 부드러움으로 나타나는 것인가?
피나무 꽃에서 꿀이 넘쳐 흐른다는 것은 이 나무의 희생이요 봉사며 모두들 서로 함께 잘 살아 나가자는 박애정신에서 온 것으로, 이기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벌을 살리고 나비를 살려 춤음악(무악舞樂)으로 이 세상을 장식하겠다는 뜻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봄직하다.
세계를 화려한 무대로 만들어서 기쁘게 살자는 것일까?

보은 속리산 법주사 경내에 네 그루의 큰 피나무가 있는데 필자는 이것이 찰피나무라고 기억하고 있다.
열매의 표면은 털로 덮여 있고 아래쪽에만 다섯 개의 줄이 보이는데 염주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어느 해 가을에 법주사에 가 보았더니 긴 대나무 장대로 가지를 치면서 열매를 따고 있었다.
이것으로 염주를 만들 거라고 했다.
피나무류의 열매 대궁은 독특한 생김새를 가진 꽃턱잎의 중간쯤에 붙어 있다.
꽃턱잎은 좁고 얇은 잎으로, 가을이 되어 열매가 익으면 함께 땅으로 떨어진다.
사람들은 이때 꽃턱잎이 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돌며 한 뼘이라도 더 멀리 열매를 날려 보내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피나무가 꽃턱잎을 가지고 있고 또 잎의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것은 혈통이 그만큼 순수하고 보수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잡스러운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나무는 넓은잎나무치고는 그 역사가 길다.
말하자면 고대 식물이라 할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깨끗한 곳을 차지해서 정결하게 살아오고 있다.
○외국의 피나무 가로수

외국에서는 피나무가 가로수로 많이 심어지고 있다.
필자는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국제공항 Warsaw Chopin International Airport in Poland에서 바르샤바에 이르는 긴 대로에 피나무가 가로수로 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말 그래로 장관이었다.
어떤 사람은 폴란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룬 가장 큰 국가적 업적의 하나가 이곳 피나무 가로수라고 했다.
몇 천 그루, 아니 몇 만 그루도 넘는 것 같았다.
모두 고르고 거대한 둥근 나무 모양을 한 가로수는 일종의 예술이었다.
노르웨이 Norway 서부 해안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 베르겐 Bergen에서도 피나무 가로수를 볼 수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Stockholm in Sweden도 피나무 가로수가 유명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 Vienna(영어 Wien) in Austria의 거리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도 피나무이다.
고요하고 깨끗하고 품위 있는 도시에는 피나무가 제격이다.
또한 독일 베를린 Berlin in Germany의 피나무 가로수도 유명하다.
체코 Czech는 피나무를 나라 나무로 정하고 있다.
피나무의 아름다움에 놀란 곳은 더 있다.
독일 함부르크 Hamburg in Germany 시내에는 2개의 인공 호수가 있는데 그중 작은 것으로 안쪽 알스터 호수 Alster Lake가 있다.
여기에서 시청 건물이 멀지 않다.
알스터 호수 한쪽 편을 따라 너무나도 멋있는 피나무가 줄 서 있다.
함부르크를 찾는 사람은 이 피나무를 볼 만하다.
한편 프랑스 France에서는 피나무 꽃 말린 것을 차로 쓰고 두통의 묘약이라 해서 팔고 있다는데, 약이라 하지만 차처럼 마시는 것이라 한다.
필자가 러시아에 갔을 때 그곳 호텔에서 피나무 꿀을 대접받은 적이 있었다.
호텔에서 근무하는 아주머니에게 화장품을 선물로 주었더니, 그 아주머니가 피나무 꿀을 준 것이다.
피나무 열매는 우리나라에서는 8월 하순 무렵이 되면 씨앗 속이 물컹한데, 이러한 유숙기乳熟期(식물이 성숙하는 과정의 초기 단계를 말하며, 배젖이 아직 단단하여지지 않고 진한 젖의 상태임)에 따서 바로 뿌리면 싹이 잘 튼다.
그러나 늦가을 익은 뒤에 따서 뿌리면 대체로 1~2년 안으로는 싹이 트지 않는다.
우리나라 피나무 열매에는 생활력 있는 씨가 거의 없고 쭉정이가 많은데, 이것은 외국에서도 비슷하다.
○피나무 연리수
그리스 Greece 신화에 태양의 신이 착한 부부를 피나무와 참나무로 만들고, 그 애정의 두터움을 칭찬해서 연리수連理樹(서로 다른 뿌리에서 나온 두 나무의 가지가 자라나면서 서로 맞붙어서 하나가 된 나무)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피나무와 참나무의 줄기가 붙어 한 나무로 되었다는 것으로, 피나무는 참나무의 사랑하는 아내였다.
오래오래 살다가 한 날 한 시에 죽어 나무로 되어 다시 오랜 생명을 누렸다는 이야기는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이처럼 종류가 서로 다른 나무끼리 접착, 즉 연리連理가 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신은 능히 이러한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어 보는 것이 인간의 심정이다.
연리는 부부 사이 사랑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으며, 부부란 정말 연리가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닐까 한다.
연리수라 함은 어떤 특별한 나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연리連理라는 말은 옛적부터 있었고,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에 관심을 갖고 의인화擬人化(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에 비기어 표현함)해서 큰 뜻을 부여했다.
연리 현상은 신기한 것이었고, 사람들은 신비한 것에는 때로 초월적인 뜻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따라서 집안에 있는 두 나무가 연리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그 집안에 큰 기쁨이 있을 징조로 보곤 했다.
연리수가 나오는 중국 진晉나라 때의 <자야가子野歌> 한 부분을 음미해보자.
"그대(환歡)가 슬퍼하면 저(농儂) 역시 상심합니다 (환수농역참歡愁儂亦慘)
그대(낭郞)가 웃고 좋아하면 저(아我) 또한 기뻐합니다 (낭소아편희郎笑我便喜)
연리수를 보지 못하였습니까 (불견연리수不見連理樹)
뿌리는 서로 다르지만 줄기는 하나가 되어 서 있지 않습니까 (이근동조기異根同條起)"
'자야'라는 여성이 남편을 사모하며 자신의 슬픈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남녀 간의 애정 시는 그 뒤에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 '자야가'라는 제목이 붙여지곤 했다.
○상사수相思樹
송나라 마지막 왕인 강왕康王에게는 한빙韓憑이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미모가 출중하기로 유명했다.
이를 알게 된 강왕은 한빙에게 죄목을 씌워서 감옥에 넣고 강제노동을 시켰고, 한빙은 세상을 슬퍼하며 자결하였다.
그러자 부인 하씨는 크게 상심한 나머지 아름다운 연회복을 물에 적셔 썩게 했고, 어느 날 그 옷을 입고 왕과 함께 높은 누대에 올랐을 때 틈을 타서 누대에서 뛰어내려 그 신하가 치맛자락을 잡았지만 썩은 옷 때문에 하씨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뒤 하씨에게서 유서가 발견되었고, 그 내용은 "나의 시체를 죽은 남편 한빙과 함께 합장해서 사후의 넋이라도 위로해 달라"는 요지였다.
성난 강왕은 이 청을 들어줄 리가 없었고, 왕은 망령이 두 손을 뻗쳐도 서로 닿지 못할 거리에, 그것도 서로 빤히 바라볼 수 있는 사이에 묘를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두 묘지에서 큰 나무가 자라고 며칠 뒤에는 줄기와 가지가 서로 엉켜서 한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연리連理 현상이고, 사람들은 이 나무를 상사수相思樹로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연리근連理根
나무의 줄기와 가지는 때로 이러한 연리 현상을 나타내지만, 흔한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나무의 뿌리는 서로 가까이 접촉했을 때 그 부근에 많은 기반基盤(캘러스 callus: 딱딱하게 굳어 있는 돌기) 세포 조직을 만들고 이것이 접합해서 한 몸이 된다.
이것이 뿌리연리(근계연리根系連理) 현상이며, 연리근連理根 또는 근접根接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뿌리연리는 줄기와 가지보다 훨씬 더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나무의 줄기를 끊을 때 그루터기에서 다시 움이 돋아나오는 이유의 하나로서 이 뿌리연리를 들 수있다.
연결되어 있는 옆 나무에게서 영양분이 공급되어 그 도움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와 같은 뿌리연리는 같은 수종 사이에 잘 나타나고, 종이 다르면 빈도가 적게 나타난다.
뿌리연리의 경우 한쪽 나무가 세력이 약해서 다른 나무에게서 영양분을 공급받고 살아가는 형편일 때, 상대 나무가 그 뒤 죽게 되면 약한 나무는 영양분 공급을 받지 못하여 고생하게 된다.
인간 사회에서도 이러한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미국 서부 지방에 자라는 미송美松(더글러스퍼 Douglas-fir)은 살아 있는 나무의 약 45퍼센트가 서로 뿌리연리를 이루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고, 대체로 소나무류에서 뿌리연리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뿌리연리는 일반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 많다.
그것은 한 나무가 병, 특히 바이러스 virus나 세균인 미코플라스마 Mycoplasma에 의해 피해를 입었을 때, 융합된 뿌리 부위를 통해서 다른 나무에 전파되기 때문이다.
단합과 협조도 좋지만 이처럼 쓰러질 때 다른 것도 함께 쓰러지는 소위 골패도骨牌倒(골패 한 개가 뒤집어질 때 그 옆의 다른 골패도 함께 뒤집어지는 현상)는 안타까운 일이다.
○보리수와의 관계

중국에는 가수椵樹라고 표현하는 피나무 종류는 보리수(보제수菩提樹), 성도수成道樹, 난수欒樹라고도 하며, 겨울에는 잎이 떨어지고 크게 자란다.
잎 뒤에 흰 털이 빽빽하게 나고, 초여름에 노란색 꽃을 단다.
열매로는 염주를 만든다.
중국에서는 피나무류의 일반 명칭으로 '가椵' 또는 '단椴'이라는 글자를 쓴다.
부처가 그 나무 아래에서 성도정각成道正覺(도를 닦아 이루고 올바르게 깨달음)했다는 보리수와는 다르다.
불교의 3대 영수靈樹(상서로운 나무)라 하면 무우수無憂樹(근심이 없게하는 나무), 정각正覺(올바른 깨달음)에 관련되는 보리수, 열반涅槃(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깨달아 불생불멸의 법을 체득한 경지)에 관련되는 사라쌍수沙羅雙樹(석가모니가 열반할 때 사방에 한 쌍씩 서 있었던 사라수)로서, 이때의 보리수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늘푸른나무이고 피나무와는 다르다.
그러나 ≪천태지天台志≫에 나오는 보리수는 피나무의 일종으로, 다음 기록은 피나무의 일종을 설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천태지에 이르기를 보리수나무는 산에 나고,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인도 불승의 힘으로 이 나무가 만들어졌고 꽃은 감꽃과 닮았고 크기도 그와 비슷하다고 한다. 꽃이 피기 전에 독특한 모양의 꽃턱잎 한 장이 자라나는데, 길이는 손가락 반에 이르고 너비는 좁다. 색깔은 희고 윤기가 나며, 잎의 뒤쪽에 꽃대궁이 달린다. 이 꽃턱잎은 꽃이 햇볕을 직접 받지 않도록 가려주고 더러운 것으로부터 꽃을 막아준다. 밤이 되면 열매로 하여금 이슬을 받게 하는데, 늦가을에 열매를 따서 염주를 만든다. 많은 열매 가운데 반드시 몇 개는 나한과 닮은 것이 있으며, 이것을 불두佛頭라고 한다. 이 나무는 다른 곳에는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절 부근에 피나무를 심고 이 나무를 불도에 관련시키는 데에는 이와 같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가을이 오면 피나무 잎은 아름답게 물든다.
우거진 피나무 숲속에서 살고 싶다.
어느 날엔가 우리나라에도 피나무가 많아지는 날이 꼭 올 것이다.
예술적인 이 나무에 꿀이 흐른다니···.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3(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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