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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식물 이야기와 사진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92 - 청미래덩굴

새샘 2026. 5. 27. 21:20

청미래덩굴(출처-출처자료1)

 

남부 지방의 숲 가장자리에 자라는 갈잎 가시덩굴나무이며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에도 분포한다.

청미래덩굴은 분류학적으로 청미래덩굴과 청미래덩굴속에 속하고, 덩굴은 마디가 굽어지면서 이리저리 구불구불 뻗어나가며 마디마다 갈고리 같은 단단한 가시를 갖고 있다.

'망개' 또는 '명감'이라고도 하며, 붉은 열매가 늦가을에 달린다.

 

학명은 스밀락스 키나 Smilax china, 영어는 East Asian greenbrier(동아시아 청미래덩굴), 한자는 토복령土茯苓이나 산귀래山歸來로 쓴다.

 

 

○조엽림

 

필자는 어릴 때 청미래덩굴을 고향 뒷산에서 보았는데 아무리 보아도 이상해 보였다.

동네 사람들은 이것을 '망개'라고 불렀다.

1~2미터 정도로 뻗어나가는 덩굴식물로 둥글고 강인해 보이는 잎이 인상적이었으며, 잎 색깔이 진한 푸름을 띠었고 유난히도 번쩍였다.

광택이 있다는 말이다.

 

남쪽 지방에 나는 동백나무, 가시나무, 녹나무 따위의 잎도 이처럼 윤이 난다.

작열하는 남쪽의 햇볕에 견디어 나가자면 번쩍일 수밖에 없다.

내리쬐는 태양 광선을 되도록이면 반사하여 체온의 상승을 막아야 살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광택이 나는 아름다운 잎을 가진 나무로 이루어진 숲을 조엽림照葉林이라 한다.

충만한 에너지 속에서 땀을 흘리면서 휴식을 모르는 삶을 영위하는 생태계를 만든다.

조엽림 안에 있는 모든 생물은 늘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것 같다.

청미래덩굴은 조엽림의 하나로 있을 만한데도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온대 지방에까지 올라오고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옛적에도 온대 지방 역시 이글이글 햇볕이 끓어대는 곳이었고 보면 남아 있을 만도 하다.

 

 

○외떡잎식물

 

청미래덩굴은 원시적인 식물로서 떡잎이 하나밖에 없는 외떡잎(단자엽單子葉)식물이다.

우리나라 산에 있는 대부분의 나무들은 모두 2개 이상의 떡잎을 가지고 있는 쌍떡잎(쌍자엽雙子葉)식물인데, 청미래덩굴만은 대나무처럼 하나의 떡잎을 가지고 있다.

 

외떡잎식물은 풀들이 대부분이고 화석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적지만, 청미래덩굴은 줄기가 나무의 성질을 띠고 있고 화석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

1억 년 이전 백악기 때부터 살아온 나무로서 지구의 변화와 함께해 왔다.

둥근 잎을 보면 그간 원만히 살아왔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줄기와 가지는 철사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하다.

1억 년 이상 살아온 굳은 의지를 가지와 줄기 속에 힘줄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잎을 보면 아래쪽에서 잎맥이 방사상으로 갈라져 잎 끝으로 나가고 있다.

잎자루 밑에서 나는 수염인 덩굴손이 길어서 무엇이든지 감고 올라갈 수 있다.

이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기진맥진해진 탓이 아닐까?

덩굴손이라는 지팡이로 몸을 지탱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늙어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래도 줄기와 가지에 가시를 달고 있다.

가지가 지그재그로 자라는 것도 무언가 감고 올라갈 물건을 찾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망개 열매

 

청미래덩굴의 열매(출처-출처자료1)

 

청미래덩굴은 암나무와 수나무가 다른 포기로 되어 있다.

암수한꽃(자웅일가雌雄一家 또는 자웅동가 雌雄同家)이 아니라 암수딴꽃(자웅이가雌雄異家)이다.

가을이 되면 굵은 콩알만한 열매가 열리는데, 열매 색깔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붉은색을 띠고 있다.

이 열매는 먹을 수 있다.

 

필자는 따스한 가을 햇볕을 받으면서 고향 뒷산 길을 지날 때 이 열매를 따먹곤 했다.

약간은 새큼한 맛이 있지만 열매 속살이 적어서 항상 안타까웠다.

그러나 둥그런 열매가 혀 속을 지나는 매끄러운 감촉은 잊을 수 없다.

그때의 망개 열매가 아직 필자 입속에서 돌고 있는 듯하다.

 

청미래덩굴의 잎과 열매는 필자에게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동네 어른들이 산에서 해오는 땔감 나뭇짐에는 으레 청미래덩굴이 섞여 있었다.

붉은 열매는 푸른 가을 하늘과 멋있게 조화를 이루었다.

 

 

○한자 이름과 고전에 등장하는 청미래덩굴

 

청미래덩굴의 한자 이름은 토복령土茯苓 또는 산귀래山歸來이다.

'복령'이라 하면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균류菌類 fungi가 혹 모양으로 된 것으로 약으로 쓰인다.

껍질에는 흑갈색의 주름이 많으며, 속은 담홍색을 띠고 약간 물렁물렁하지만 마르면 딱딱해진다.

 

토복령은 청미래덩굴의 뿌리가 혹처럼 된 것을 말한다.

청미래덩굴은 뿌리가 오래 살아 있는 여러해살이뿌리(숙근宿根: 겨울이 되면 줄기는 말라 죽고 뿌리만 살았다가 이듬해 봄에 새로 움이 돋는 묵은 뿌리) 식물이다.

토복령은 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매독을 치료한다고 한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요사이 ···· 매독 같은 성병이 많이 유행하고 있는데, 약을 좀 써도 다시 이 병이 재발하여 고질화된다. 이때 토복령이 치료제로 쓰인다"고 했다.

또한 강장제强壯劑(온몸의 물질대사를 촉진하고 영양을 도와 체력을 증진하고 몸을 튼튼하게 하는 약)로도 쓰여 식량이 부족할 때는 이것을 가지고 허기를 면할 수 있었는데, 이것을 우여량禹餘糧이라 했다고 한다.

옛날 우禹씨가 먹을 것을 구하려고 산에서 청미래덩굴의 뿌리를 캤는데, 식량을 하고도 남아 남은 것을 버렸다고 해서 우여량('우禹 씨의 남은 양식'이란 뜻)이란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밖에 신선이 남겨놓은 음식이라고 해서 선유량仙遺糧이라고도 했다.

 

또한 청미래덩굴은 산귀래山歸來라고도 한다.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귀거래사는 도연명이 관인을 돌려주고(귀歸) 관직을 떠나(거去) 집으로 왔다(래來)는 뜻이다.

청미래덩굴은 산으로 돌아왔다는 것일까?

청미래덩굴을 볼 때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생각난다.

 

청미래덩굴의 일본 이름은 '사루도리이바라 サルトリイバラ(원포자猿捕茨)'로 원숭이를 잡는 가시덤불이란 뜻이다.

가시가 있어 이런 이름을 얻은 것 같다.

일본 사람들은 청미래덩굴의 잎(망개 잎)으로 밥을 싸서 먹는다.

1960~1970년대 우리나라는 일본으로 망개 잎을 대량 수출했다.

 

 

○청미래덩굴과 슬픈 추억

 

청미래덩굴의 꽃과 잎, 그리고 덩굴(출처-출처자료1)

 

필자는 청미래덩굴 하면 슬픈 추억이 떠오른다.

필자가 스물한 살 되던 해 여름방학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네 여동생이 몹시 아프다는데"하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가서 데리고 올까, 그러면?" 나는 걱정이 되어 대답했다.

"맡며느리 노릇 하느라고 여간 아프지 않고서는 눕지도 못할 거야. 그애 남편도 학교에 가고 집에 있지 않으니 더 걱정이야"

 

총각 오빠를 두고 동생은 먼저 시집을 갔다.

아니 시집을 보낸 것이 맞다.

 

필자는 산길을 올랐다.

데리고 와야겠기에 산길을 올랐다.

너무나도 많은 청미래덩굴이 길을 막고 있었다.

시집 갈 때 여동생은 이 길을 지났다.

여동생의 붉은 인조 치마가 틀림없이 이 망개나누 가시에 걸려서 찢어졌을 것이다.

필자 동생의 인조 치마는 너무나도 값싼 것이기에 후줄근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입었던 치마를 입고 시집을 갔다.

 

필자는 산길을 오르면서 새삼스레 걱정이 되었다.

동생의 새 고무신이 벗겨지지나 않았을까, 잔솔밭에서 날아가는 꿩 때문에 동생이 크게 놀라지는 않았을까···.

 

돌아오는 산길에서 여동생은 땀을 많이 흘렸다.

종이보다 더 흰 얼굴빛이 한여름 햇볕 아래에서 더 불쌍하게 보였다.

 

"오빠, 이 밭이 우리 시집 거고···."

"넓고 좋구나."

"오빠, 이 산이 우리 시집 거고···."

"나무가 제일 좋구나."

"오빠, 나 혼자서 이젠 못 걷겠어···."

 

어깨동무로 산길을 걸었다.

몇 번인가 고무신이 벗겨지고 치맛자락이 청미래덩굴 가시에 걸렸다.

가시를 떼주는 필자는 한없이 행복했다.

이 산을 넘어 집에 가면 여동생이 건강해질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수원으로 온 필자는 기숙사에서 슬픈 전보를 받았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캄캄한 여름밤이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슬픈 줄도 몰랐다.

책상에 앉아서 뜬눈으로 새벽을 맞았다.

빗소리만 들으면서.

 

그 다음 해 여름방학에 필자는 다시 한번 이 산길을 걸었다.

이 산길을 오빠가 걸어주어야만 저 세상에 있는 동생이 더 행복할 것 같아서였다.

여동생이 이 산길을 넘다가 쉬었으리라고 짐작되는 넓은 산돌에 앉아 보았다.

틀림없이 친정 동네 쪽을 바라보고 앉았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필자도 그 방향으로 앉아 보았다.

여동생이 앉은 방향마저도 내 마음에 걸리었다.

필자가 먼저 장가를 갔으면 여동생은 죽지 않을 터인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필자는 길가까지 뻗쳐 있는 청미래덩굴의 줄기를 하나하나 산 쪽으로 치워버렸다.

여동생이 살아서 돌아올 때 두 번 다시 청미래덩굴 때문에 고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많은 청미래덩굴을, 20리도 넘는 산길의 청미래덩굴을 하나하나 길에서 치워버렸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필자는 손에 박힌 가시를 혼자서 빼냈다.

빼낸 가시의 자리가 아렸지만, 침을 바르고 다시 청미래덩굴을 치워버리는 일을 계속했다.

 

필자의 여동생은 귀밑머리가 길었는데, 살아서 돌아올 때 그 귀밑머리가 신나게 바람에 나부낄 것이다.

동생이 입고 있었던 치마는 매우 값싼 것이었지만 필자에게는 가장 귀중한 치마로 생각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청미래덩굴이 밉지 않다.

그 산길이 슬프지 않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3(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구글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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