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금서 한 권이 나라를 뒤흔들었던 사연 본문

허준: 지배 세력이 판단하기에 정치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미풍양속을 어지럽힌다고 생각하는 책을 출판 또는 판매 금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보통의 상식으로는 그저 '금지된 책'이라는 정의를 담고 있으나 사상통제의 의미가 다분한 것 같습니다. 역사상으로도 '금서禁書'로 유명한 책들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정요근: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금서로는 ≪도선비기道詵秘記≫와 ≪정감록鄭鑑錄≫이 있습니다. ≪도선비기≫라 하면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 도선이 지었다고 전하는 풍수서로 현재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요. ≪고려사≫에 인용된 일부 구절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죠. 조선시대가 되면 ≪도선비기≫의 원본은 이미 사라졌지만, 동일한 이름의 예언서가 현실 상황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가기도 합니다.
≪정감록≫의 경우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 널리 퍼진 예언서로 이심李沁과 정감鄭鑑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한양에 도읍을 둔 이씨 왕조가 멸망한 뒤 정씨가 새로운 나라를 세워 계룡산에 도읍을 정할 거라는 예언이 핵심 내용이죠.
≪도선비기≫든 ≪정감록≫이든 결국 예언서이자 도참서圖讖書(고대 중국에서, 음양오행설에 의하여 인간 사회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책)인데, 체제를 바꾸려는 의도가 담겨있어요. 시대의 억압적인 질서를 파괴하려는 움직임이 그런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배 세력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널리 퍼지는 걸 막으려 했을 테고요. 특히 조선은 왕조 국가이니 왕조가 쭉 이어져야 하는데 언젠가 망할 거라는 예언을 하고 있으니 반드시 그 유포자를 색출해야 했을 겁니다.
그런가 하면 조선시대의 경우 후기로 갈수록 유교 사상, 그중에서도 주자 성리학을 나라의 근본 사상으로 강하게 밀어붙였으니 주자의 해석과 다른 학설을 펼치는 사람들을 비방하고 배척했어요. '사문난적斯文亂賊'은 그렇게 나온 명칭인데요. 대표적으로 서인西人 송시열宋時烈이 주자의 주석에 의심을 보이고 독자적으로 경전을 해석한 남인南人 윤휴尹鑴를 사문난적으로 지목해 공격했죠. 이후 송시열을 따르는 이들이 노론老論이 되었고 윤휴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보인 윤선거尹宣擧와 윤증尹拯 부자를 따르는 이들이 소론少論이 되었습니다.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 투쟁의 방법으로 성리학적 명분론을 앞세웠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단異端'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텐데, 대체로 기독교 용어인 줄 알고 계시지만 유교에서 나온 용어죠. 보다 구체적으로는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의 '공호이단攻乎異端 사해야이斯害也已(이단을 공부하면 해롭다)'에서 나왔습니다.
박현도: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의 소설 데뷔작이자 대표작 ≪장미의 이름 The Name of the Rose≫(1980)을 보면 나이 든 장님 수도사 호르헤 Jorge가 수도사들이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영어 Aristotle)의 ≪시학詩學≫ 제2권을 어떻게든 읽지 못하게 막으려 하죠. 책장 모서리에 독약을 발라놓기까지 해서요. ≪시학≫은 희극, 그러니까 웃음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 호르헤가 생각하기에 웃음이란 추하고 경박한 것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수도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 겁니다.
그런가 하면 이슬람 Islam 세계에도 금서들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책이 철학자 이븐 루시드 Ibn Rushd의 책들이에요. 그는 이슬람의 근본주의 신학자들의 비판을 받아 저서가 소각당하고 감금당하기까지 했는데, 그가 해석한 아리스토텔레스 신학이 이슬람 수니파 Sunni Islam 또는 Sunnite의 보편적 신학과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죠. 대표적으로 "영혼은 불멸하지 않지만 지성(이성)은 불멸한다"라고 주장했는데 이슬람 정통 교리와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견해였습니다.

곽민수: 그래서 이븐 루시드의 경우 유럽에서, 특히 문예부흥(르네상스 Renaissance)시대 때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았어요. 이를테면 단테 알리기에리 Dante Alighieri의 ≪신곡神曲 Divina Commedia(영어 Divine Comedy≫에서도 엄청 중요하고 멋있는 존재로 등장하죠. 그리고 라파엘로 산치오 Raffaello Sanzio의 프레스코화 fresco <아테네 학당 The School of Athens> 있지 않습니까. 고대의 대학자들을 한자리에 모은 상상화인데, 거기에도 놀랍게 이븐 루시드가 등장합니다. 이후 유럽에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이븐 루시드의 저서가 알려지면서 유럽이 아리스토텔레스 열풍에 휩싸이기도 했을 정도죠.
강인욱: '금서'라는 말 자체가 뭇사람들이 엄청나게 접하니까 가능한 거죠. 굳이 찾아볼 책이 아니라면 굳이 금서로 정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리고 금서로 지정되었다가도 나중에 해금이 되어 세상에서 인기를 얻어야 비로소 '금서'라는 이름(타이틀 title)도 얻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소련 USSR의 금서도 빠질 수 없습니다. 금서로 지정된 것도 많고 또 소련 말기부터 해금되어 다시 사랑받은 책도 많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소련 소설가 중 미하일 불가코프 Mikhail Bulgakov라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 ≪거장과 마르가리타 Master and Margarita≫를 손꼽지만 저는 1925년에 발표한 ≪개의 심장 Heart of a Dog≫을 가장 좋아합니다.
혁명 시절, 어떤 의사가 개와 사람의 머리를 바꿔치기해요. 개의 머리를 한 사람이 예의도 없고 거친데 혁명 세력들이 그 모습에 반해 그가 혁명 지도자가 되는 거죠.
그야말로 당대 정치 상황을 철저하게 비판한 거예요. 볼세비키 Bol’sheviki Bolsheviks에게 "너의 혁명 우두머리는 예의도 없고 거친 개나 다름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죠. 그러니 발표 직후 반볼셰비키적이라는 맹렬한 비판과 함께 원고가 압수당했고, 60여 년이 지난 1987년에야 비로소 해금되어 러시아 Russia에서 복간될 수 있었죠. 복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얻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졌죠. 금서로 아무리 묶어놔도 사람들이 꾸준히 사랑했다는 반증이죠.
박현도: 개인적인 일 하나가 생각나는데, 제가 대학교를 다닌 1980년대만 해도 대학교 근처에 전경들이 배치되어 있곤 했습니다. 그들이 학생들 가방을 다 뒤졌거든요. 금서가 나오면 압수하려고 말이죠.
그때 카를 마르크스 Kark Marx, 당시만 해도 '칼 막스'라고 부르곤 했던 그와 막스 베버 Marx Weber를 구분 못해서 막스 베버의 책을 압수하곤 했어요. 마르크스야 공산주의 혁명가라지만 베버는 법률가이자 사회학자 아닙니까.
곽민수: 금서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기독교 Christianity 아니겠습니까. 이른바 종교에 관련된 금서들 말이죠. 교황청에서 지정한 '금서목록 Index Librorum Prohibitorium'이 유명한데요. 주요 목록(리스트 list)만 봐도 전부 다 오늘날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헌들입니다.
'금서목록'이 처음 만들어진 게 1546년이에요. 개신교 Protestantism에 맞서 가톨릭 Catholicism 내부를 단속하고 쇄신하고자 대항 종교개혁의 개념으로 소집한 트리엔트 공의회 Concilium Tridentinum 직후 금서목록을 만든 겁니다. 이 금서목록은 1962년부터 3년 동안 이어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Concilium Oecumenicum Vaticanum Secundum 후 해제돼요. 즉 420여 년 동안 교회법적 효력을 갖고 있었던 거죠. 이후 교회법적 효력은 없어졌지만 도덕적 참고 사항 내지 금지 권고 대상으로 존치 중입니다.
금서목록을 살짝 살펴보면, 아무래도 시작이 반종교개혁의 일환이었으니 종교개혁의 주된 운동가들 저작물이 포함되어 있죠. 장 칼뱅 Jean Calvin이나 울리히 츠빙글리 Ulrich Zwingli를 비롯한 개혁신학 신학자들의 모든 저작물과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를 비롯한 루터파 신학자들의 저작물이 포함되어 있어요.
그런가 하면 잘 알 수 없는 이유로 알렉상드로 뒤마 Alexandre Dumas, 빅토르 위고 Victor Hugo, 오노레 드 발자크 Honoré de Balzac 따위의 소설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고요.
프랜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바뤼흐 스피노자 Baruch Spinoza,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장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와 같은 철학자들 저작물이 포함되어 있는 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
또 조르다노 브루노 Giordano Bruno, 갈릴레오 갈릴에이 Galileo Galilei,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Nicolaus Copernicus 따위의 과학자들 저작물도 많이 포함되어 있고요.
보통의 시선으로 보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목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많은 인류의 고전을 금지하면 뭘 접하면서 지식과 지혜를 함양할 수 있겠습니까.
박현도: 곽민수 소장님이 교황청의 금서목록을 말씀하셨을 정도로 기독교와 금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데요. 사실 교황청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기독교 초창기에, 그러니까 로마시대 Roman era 때는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책을 읽지 못하게 막았어요.
이를테면 ≪도마복음 The Gospel According to Thoma≫이라는 게 있습니다. 1945년 이집트 Egypt의 나그함마디 Nag Hammadi에서 콥트어 Coptic language(Copt)(고대 이집트어 ancient Egyptian)로 적힌 온전한 문서가 발견되고, 연구를 진행하면서 1988년 이집트 Egypt의 고대 로마 ancient Rome 유적지에서 발견한 그리스어 Greek 문헌과 일치하는 게 확인되었죠. 통상적으로 2~4세기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당시 금지하고 읽지 못하게 하니 그냥 사라지고 만 겁니다. 걸리면 큰일 나니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놨던 거죠.
강인욱: 다른 나라 사람들은 너무나도 잘 아는데, 금서로 지정되어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은 모르는 책들이 있죠.
가장 좋은 예로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르테르나크 Boris Pasternak의 ≪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를 들 수 있는데, 소련에선 금서로 지정되어 출간하지 못한 게 알음알음 서방으로 알려지고 이후 소련의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195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소련 안에서 큰 반발에 직면해 수상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죠. 소련에선 1988년에야 공식적으로 출판이 허용되었고요. 그러니 정작 소련 안에선 오랫동안 이 국제적인 작품을 알 도리가 없었던 거죠.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미국 CIA에서 ≪닥터 지바고≫를 냉전 시절 선전으로 적극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2014년에 해금된 CIA 문서를 통해 밝혀진 사실인데요, 출판이 금지된 ≪닥터 지바고≫를 전격적으로 이탈리아 Italia(영어 Italy)에서 발간하고 나아가 노벨상을 수상하게끔 홍보하는데 도움을 주면서 광고로 활용한다는 게 밝혀졌지요.
※출처
1. 박현도, 곽민수, 강인욱, 정요근, 허준 지음, 역사를 보다 2(믹스커피, 2025)
2. 구글 관련 자료
2026. 6. 9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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