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경이롭고 신비로운 유적의 오만한 이면 본문

허준: '이때도 이런 기술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옛날에도 놀라운 기술력이 발달되었다고 느끼는 한편,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유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몇백몇천 년 된 유적과 유물을 보러 발길을 옮기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옛것이 그리도 신비롭게 느껴지는 걸까요?
박현도: 지금 사람들이 옛것을 보고 경이롭게 또 신비롭게 느끼는 저변에는 옛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라는 일종의 믿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데 그 옛날에는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는 현대인의 오만함이랄까요.
강인욱: 현대인의 오만함 하니 1969년 아폴로 11호 Apollo 11의 달 착륙이 생각납니다. 그때를 두고 1960년대에 어떻게 사람이 달에 갔다가 돌아올 수 있냐고,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달에 다녀왔으면 지금 화성에 갔다가 돌아와야 한다고 말이죠.
아폴로 사업은 우리가 고대문명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줍니다. 흔히 고대문명에는 너무나 많은 신비(미스테리 mystery)가 있다고 하지만요. '피라미드 pyramid, 진시황릉秦始皇陵, 바빌론 Babylon의 공중정원, 나스카 평원 Nazca Plain의 거대한 문양, 스톤헨지 Stonehenge 따위를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 옛날에 변변한 설계도면도 없이 어떻게 빈틈없이 지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외계인이 만들었다거나 초거대 문명을 지어놓고 사라졌다는 식으로 주장합니다.
사실 고대인들이 비결(노하우 knowhow)은 결국 하나의 목적을 두고 수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한 결과였을 겁니다. 고대에 대한 그런 인식과 똑같이 생각한다면 우리의 후손들도 '1960년대의 미개한 사람들이 어떻게 달에 갔다고 돌아올 수 있었을까, 외계인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라는 설을 유포하지 않을까요. 고대문명에 대한 편견은 유럽 Europe이 아닌 아시아 Asia, 아프리카 Africa 같은 제3세계 지역에서 특히 심합니다. 캄보디아 Cambodia에 있는 앙코르 와트 Angkor Wat가 대표적이죠.
앙코르 와트 경우에도 16세기에 포르투갈 Portugal의 가톨릭 수도자 안토니오 데 마달레나 Antonio de Madalena가 발견했다고 하는데, 엄밀히 말해서 '발견'한 게 아니라 서양인으로서 앙코르 와트를 '처음 봤다'고 하는 게 맞죠.
이후 19세기에 앙리 무오 Henri Mouhot가 앙코르 와트를 방문해 서방 세계에 처음으로 알렸는데 그가 직접 찾아간 게 아니라 현지 수도사가 데려갔습니다. 여기 앙코르 와트가 있다고 말이죠. 현지인들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지 서양인이 잊힌 문명을 발견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앙리 무오가 앙코르 와트를 딱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경이롭고 신비로운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극찬을 이어갔습니다. 그야말로 이색적이기 이를 데 없는 신세계라고요,
그런데 앙코르 와트는 현지인들이 만든 사원일 뿐입니다. 12세기에 크메르 제국 Khmer Empire 제 17대 국왕 수리야바르만 2세 Suryavarman II가 30여 년 동안 만들었고, 전체 면적은 160헥타르(160만 제곱미터)죠.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종교 건축물이지만 사원은 어디에나 있지 않습니까.
서양인들은 자신들이 미개하다고 무시하고 욕한 바로 그 사람들이 이토록 거대하고 아름다운 경이로운 건축물을 만들었다고 신기해했던 겁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런 식으로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강조하는 건 안 된다고 봅니다.
곽민수: 고대 이집트를 전공하다 보니 수없이 듣는 질문이 있어요. '그 옛날에 도대체 피라미드를 어떻게 만들었는가'하는 질문입니다. 사실 유명한 피라미드들은 정말 오래전에 만들긴 했죠. 서기전 2500~서기전 2600년에 만들었으니까요. 규모 또한 엄청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봤을 때 '그 옛날에 도대체 이렇게 이걸 만들었을까?'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서양인들이 사실보다 훨씬 부풀린 배경이 있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저는 인종차별적인 담론談論(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논의함)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18세기에 유럽인들이 이집트 Egypt에 와서 고대 유적들을 제대로 살피기 시작합니다. 그러곤 유럽으로 돌아와 관련된 기록들을 남겨요. 그런데 유럽인들에겐 당시의 이집트인 Egyptians들, 즉 아랍인 Arabs들이 굉장히 미개하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그 미개한 사람들의 선조가 이토록 대단한 걸 만들었다고?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라며 경이와 신비를 키워나간 것 같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에 '미개한 사람들'이 실제로 행했던 대단한 일을 가리고 묻어버린 거죠.
박현도: 유럽인들의 우월의식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말이 '지리상의 발견'입니다. 이 말을 정말 싫어합니다. 도대체 지리상에서 뭘 발견한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항상 있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종교개혁'이라는 말도 싫어합니다. 도대체 무슨 종교를 개혁한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엄밀히 말해 그리스도교 Christianity를 개혁한 거죠. 안 그런가요? 그런데 지금 우리도 쓰고 있습니다. 그대로 가져와 쓰고 있죠.
※출처
1. 박현도, 곽민수, 강인욱, 허준 지음, 역사를 보다(믹스커피, 2024)
2. 구글 관련 자료
2026. 6. 29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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